황룡의 물빛과 숨으로 드리는 기도

-하늘과 땅의 문이 열리는 물빛 성소-황룡고사 순례기

by 찰라

황룡고사 —

황룡고사 —

고원의 물빛 성소


숨이 빛처럼 가벼워지는 자리에서
황룡고사는 하늘의 비늘처럼 반짝였다.


만년설의 기도가 모여

들꽃처럼 피어난 물빛.

아내는 떨리는 손으로 내 손을 잡고
조용히 말했다.


“여보… 여긴, 저 못에 하늘이 내려앉았어요.”


그 순간,
나는 그 말 한마디를

부처의 미소처럼 품고 합장했다.


옴 마니 반메 훔—


바람은 눈부신 금빛으로 흩어지고,
우리는 잠시 고원의 물빛 성소에서
구름보다 더 높은 평화를 만났다.





아침 7시 30분, 구채구에서 황룡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해발을 높일수록, 마치 호흡을 잃어가는 순례자처럼 덜컹거리며 기어올랐다. 차창 밖에는 5월에도 소복이 쌓이는 하얀 눈이, 설산의 능선을 따라 음울하리만치 고요하게 내려앉고 있었다.


“이러다가 눈 속에 갇히는 건 아닐까요?”

“글쎄… 그러지도 모르지.”


5월의 눈. 그것은 이 탑처럼 솟은 고원지대에서는 아주 자연스러운 사건이었다. 중국에서 가장 높은 명승지 중의 하나인 황룡은 해발 5160m의 옥취봉과 설보정(5580m) 줄기 아래 놓인, 티베트조차도 ‘숨이 얇아지는 땅’이라 부르는 곳. 차창 밖에는 사람이 사는 흔적 대신 “사고 다발, 안전 확보”라는 경고문만이 거센 바람 속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눈 때문에 예정 시간보다 한 시간 늦은 10시 30분. 드디어 황룡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낯선 풍경—거친 고원에 뜬금없이 만개한 튤립들이 붉고 노랗게 피어 있었다.


“와우, 웬 튤립이죠?”

“이런 산골에 튤립이라니…”


황룡은 티베트어로 슬이차(瑟爾嵯)라고 한다. 수백 개의 호수가 황금색을 띠고 있어 황룡이란 이름이 붙어졌다. 안내도를 보니 황룡은 말 그대로 누런 용이 길에 용틀임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입구는 해발 2,000m. 하지만 우리가 가야 할 황룡고사는 4,200m, 라싸보다도 높은 하늘의 마당이었다.

나는 큰 배낭을 관리소에 맡기고, 작은 배낭에 휴대용 산소통을 챙겼다. 오늘 우리는, 티베트로 들어가기 전 반드시 넘어야 하는 고원 트레이닝을 시작하는 셈이었다.



숲이 숨을 멈춘 길, 황룡으로 오르는 오솔길



오솔길은 전나무, 가문비나무 같은 침엽수들이 하늘을 가린 채 빛을 조여 놓은 좁은 통로였다. 이름 모를 고산 야생화들이 길 양 옆에서 허리를 낮춘 채 우리의 걸음을 맞았다.


“여긴 터키 파묵칼레 같지 않소?”

“작은 파묵칼레 같기도 하네요.”


길을 오를수록 크고 작은 연못들이 마치 다랑논처럼 층층이 이어졌다. 석회질로 만들어진 연못들은 햇빛을 받아 크림색, 황금빛, 연옥빛으로 천천히 변주했다. 가마를 타고 올라가는 여행객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가마를 짊어진 장정들의 심장은 어떤 신성한 기도보다 강하고도 단단해 보였다.

분경지에 다다르자 연못 속에 반쯤 잠긴 고목들이 옛 신화 속에서 빠져나온 수문장처럼 서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세신동(洗身洞). 황룡사에 올라가는 이들이 이곳에서 몸을 씻고 마음을 씻어 참배를 준비하던 곳이라고 한다.



작은 동굴들은 물이 석회암을 깎아 만든 세월의 길. 그 앞을 지나며 나는 아내의 손을 살짝 잡았다. 고도 3천 미터를 넘어서자 아내의 숨이 거칠어졌다. 나는 아내에게 작은 산소통을 건네며 말했다.

“여보, 조금만 쉬어가요.”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쟁염지의 휴게소에서 잠시 앉아 휴식을 취했다. 그 모습은 마치… 고원에서 잠시 숨을 돌리는 작은 새 같았다.

고도를 높인 만큼 설보정(5580m) 설산이 거대한 벽처럼 다가왔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아 가슴이 저릿해졌다. 그곳을 오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체 왜 우리는 이 고통스러운 길을 오르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곧 대답은 물빛처럼 고요하게 떠올랐다.

‘아내가 살아 있는 동안, 그녀가 보고 싶어 한 풍경을 단 하나라도 더 보여주기 위해.’


그 이유 하나면

우리는 어떠한 고산도, 어떠한 바람도

두렵지 않았다.



황룡고사 — 하늘과 땅의 문이 열린 곳


드디어 황룡고사가 보였다. 라마승도 보이지 않고, 당간주 하나가 험한 바람 속에서 외롭게 절을 지키고 있었다. 황룡고사에 다다르는 순간, 나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푸른 숨결이 내 호흡과 섞이며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어디부터가 나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하늘의 기운이 아래로 내려오고, 사람의 마음이 위로 올라가 서로의 경계를 지우는 순간—그 미묘한 떨림이 숨결 사이로 흘러들었다.



나는 아내의 손을 꼭 잡고 묵묵히 합장했다. 사원의 뒤편으로 올라가자 문득, 세상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오채지(五彩池)다! 하늘빛과 설산의 그림자, 바람과 구름, 물속의 광물질이 서로 겹겹이 스며들며 <오색의 빛>이 만들어진 곳. 아내는 오채지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여보, 저기… 물빛이 하늘 같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황룡의 계곡에 천상의 계단처럼 펼쳐진 연못, 옥빛과 황금빛이 겹겹이 번지는 그 풍경은 더 이상 땅의 것이 아니었다. 마치 신화 속에서 서왕모가 살던 하늘의 호수—요지(瑤池)가 그대로 이곳에 내려앉은 듯하였다.



그래서 황룡고사는 사람들이 ‘인간요지(人間瑤池)’, 즉 이 땅 위에 놓인 천상의 연못이라 부른다. 나는 그 말의 뜻을 이날 처음 진실로 이해했다. 눈앞의 물빛이 하늘의 조각처럼 반짝였고, 그 빛이 아내의 흰 얼굴에 살포시 머물렀다.


그 순간, 우리는 하늘 한 조각을 잠시 품고 있었고, 하늘 또한 우리를 품은 듯했다. 황룡고사—하늘과 사람이 하나가 되고, 천상의 연못이 인간의 땅에 내려오는 자리. 아내와 나의 작은 기도도 그 빛 사이에서 천천히 꽃처럼 피어났다.


천인합일의 자리에서 숨으로 드리는 기도



고원의 바람은 사찰의 종소리를 가만히 흔들었다. 그 울림은 마치 하늘이 땅을 품어 안듯 경계를 지우고, 형체 없는 자비가 계곡을 천천히 채우는 듯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곳이 단순한 사찰이 아니라 하늘과 사람이 서로를 껴안는 자리(天人合一)라는 것을.


고도에서 희미해진 숨 사이로 신(神)의 손길이 닿아오고 있었다. 아내는 두 손을 모으고 오래도록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옆모습은 바람 한 줄기에도 흔들리는 가벼운 촛불 같으면서도, 설산의 기도를 품은 바위처럼 단단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가슴 깊은 곳에서 작은 울음이 조용히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눈물은 슬픔이 아니었다. 고원의 물빛처럼 맑고, 만년설의 숨처럼 차분한, “살아 있음”에 대한 고요한 진실이었다. 그리고 그 곁에 아직도 함께 서 있다는 말로는 다 담기지 않는 뜨거운 감사였다.



황룡의 물빛은 하늘의 푸름과 땅의 고요를 함께 비추어내며 오래된 기도의 형상을 이루고 있었다. 비췻빛 호수 가장자리에서 나무 한 그루는 하늘을 향해 조용히 가지를 올리고, 그 아래의 물은 바람 한 점에도 떨리며 빛의 호흡을 반복했다.



그 풍경 속에서 우리의 숨도 천천히, 마치 오래전부터 준비된 리듬처럼 자연의 호흡에 맞춰 흘렀다. 나는 그날 이후로도 잊지 못한다. 고원의 침묵이 품고 있던 그 말 없는 가르침을— “모든 것은 흘러가고, 그러나 사랑만은 자취를 남긴다.” 는 것을。



아내와 나는 그 자리에서 고통도 두려움도 잠시 내려놓았다. 방아착(放下着)! 손에서 모든 짐을 놓아버리는 순간의 해탈이 바람과 물빛 사이에서 조용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오채지를 내려오는 길은 깔린 깃발들과 함께 티베트의 바람 냄새가 희미하게 따라왔다. 5시간의 고산길. 숨이 얇아지고 심장이 두근거리던 그 시간은 고통이 아니라, 두 사람의 인생이 가장 단단히 손을 맞잡은 순간이었다.



황룡 입구에 내려오니 오후 3시. 우리는 쑹판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차창 밖으로 점점 멀어지는 황룡의 호수들—그 물빛은 마치 우리의 생을 위로하던 마지막 빛처럼 가슴 깊숙이 남아 있었다.


그날 황룡의 물빛은, 아내의 생을 지탱해 준 산소처럼 우리 두 영혼의 숨을 새롭게 바꾸어 주었다. 그 순간 우리는, 아픔과 숨 가쁨을 넘어 다시 태어난 순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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