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동굴 수행

-라이프요양병원에서 밀라레파를 만나다

by 찰라


12월 12일 목요일, 흐림


여기는 병원동굴이다.

청담병원에서 퇴원한 지 여섯 달 만에 다시 요양병원으로 돌아왔다. 지난 반년은 집에서 비교적 평온했다. 산책 중 두 차례 넘어져 무릎에 상처가 남았지만,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시간이었다.

아산병원에서 주 1회 재활치료를 받았으나 뚜렷한 변화를 느끼지 못해 석 달 만에 중단했다. 이후에는 집에서 실내 자전거를 타고, 짧은 거리 걷기를 반복하며 하루하루를 쌓아 올렸다. 회복은 더뎠지만, 무너지지는 않았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이번 입원은 병 때문이 아니라 생활 조건 때문이었다. 12월 15일부터 한 달간 아파트 엘리베이터 공사가 시작된다. 23층 생활에서 엘리베이터는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생명줄이다. 비상시 병원 출입조차 불가능해지는 상황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콘도와 펜션, 에어비앤비까지 모두 검토했다. 그러나 약 관리, 세면 환경, 전동침대, 화장실 구조, 외래 진료 접근성까지 하나씩 따져보니 선택지는 자연스럽게 하나로 좁혀졌다. 요양병원.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안전한 곳이었다.


남양주 집에서 가깝고 아산병원과의 거리도 무리가 없는 하남의 라이프요양병원을 선택했다. 간병은 변함없이 내가 맡는다. 하루 전인 11일, 병원에 필요한 살림을 미리 옮겼다. 한 달을 산다 해도 짐은 적지 않다. 기저귀, 밑반찬, 내 침구류, 휠체어, 목욕의자, 옷가지들. 자동차 한가득이었다.


12일 오후 3시, 아내를 휠체어에 태우고 입원 절차를 마쳤다. 다행히 2인실을 배정받았고, 당분간은 우리만 사용하는 병실이었다. 창밖으로는 낮은 야산이 보였다. 요란하지 않은 풍경이 마음을 조금 가라앉혀 주었다.

입원 첫날은 늘 분주하다. 의사 진료, 기본 검사, 여러 장의 설문지. 간호사들은 친절했고, 이웃 병실의 간병사들도 먼저 말을 걸어 병원생활의 요령을 알려주었다.


낯선 공간이 서서히 생활의 자리로 바뀌는 시간이었다.

첫날밤은 쉽지 않았다. 아내는 소변을 자주 보았다. 한두 시간에 한 번씩 잠에서 깼다. 환경 변화의 영향도 있겠지만, 저녁에 복용하는 이뇨제 라식스를 반 알로 줄이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그럼에도 아내는 비교적 차분했다. 적응하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간병은 병을 고치는 일이 아니다. 하루를 무사히 넘기는 일이다. 오늘도 넘겼다. 내일도 넘길 것이다. 힘을 내자.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이 시간을 슬기롭게 건너가자.


나는 티베트를 여행하면서 어디를 가나 밀라레파의 향기를 느꼈다. 그가 수행했다는 라크강 카르포, 초바르 동굴, 닥포 간체, 니옌첸 탕라, 티베트 전역의 초르텐들. 특정한 수행지가 아니어도 그의 숨결은 늘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지금, 아내가 입원한 이 라이프요양병원의 좁은 병실동굴에서 나는 다시 밀라레파의 영혼과 마주하고 있다. 병실 앞에는 야트막한 야산이 보이고, 나는 아내 침대 옆 야전침대에서 생활한다. 먹고, 자고, 명상하고, 글을 쓴다.



위대한 스승 밀라레파가 야생 동굴에서 쐐기풀로 연명하며 수행했던 것을 떠올리면, 이곳은 오히려 호화롭다. 하루 세끼가 나오고, 난방이 들어오며,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 이보다 더 좋은 수행처가 어디 있겠는가.

입원 첫날은 살림을 풀고, 방을 배정받고, 진료를 받고, 상담을 하고, 검사를 하며 오롯이 적응에 집중했다.


집보다 불편하고 낯설지만, 그대로가 좋다. 병원에 심신을 맡기자.

나는 아내를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아내를 스승 삼아, 내 심신을 수행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누군가를 위해 산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나는 나를 잃는다.”
— 밀라레파


잠들기 전, 간이침대에 앉아 조용히 심호흡을 했다.
숨이 길어질수록 하루의 소음이 가라앉았다.
그렇게, 명상 속으로 하루를 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