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불행
12월 13일 토요일, 눈비
이제 12월도 며칠 남지 않았다.
달력의 한 장이 마지막 잎새처럼 떨어지면 새해가 오고, 나는 팔십이 된다. 참으로 놀랍다. 어영부영 살아온 것 같은데 어느새 팔십이라니. 세월은 참 화살처럼 빠르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그것만이 내 세상이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아직도 아내와 함께 있으니까.
아내와 53년을 함께 살아왔지만, 지금처럼 아내가 소중하게 느껴진 적은 없다.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사라진다. 죽음은 필연이고,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앞으로 우리가 함께할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면 남은 날들만이라도 서로 사랑하며 살아간다면, 이보다 더 좋은 세상이 어디 있겠는가.
아프다고 꼭 불행한 것은 아니다.
또한 건강하다고 꼭 행복한 것도 아니다.
행복은 마음의 문제다. 마음이 평안하면 아파도 행복할 수 있다. 30년 동안 아픈 아내를 간병하며 살아왔지만, 불편함은 있어도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고통 속에 살더라도, 지금 이 순간을 살아 있음으로 받아들이고 행복하다고 여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라이프요양병원에서 하룻밤을 새우고 날이 밝았다. 밤새 화장실을 오가느라 아내도 나도 깊은 잠을 자지는 못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리 피곤하지 않았다. 왜일까. 아내와 함께 있다는 존재의 안도감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병원은 아직 낯설다. 하지만 함께 적응해 나가야 할 과제다. 다행히 아내는 비교적 잘 적응하고 있고, 나 역시 큰 어려움은 없다.
많은 것을 이미 내려놓았기에 마음의 공간이 넓어진 덕분일 것이다.
아침 7시, 공양간 보살님들이 날라준 조식을 먹을 먹었다. 밥 한 그릇, 김치 한 조각, 콩나물국, 무채... 식단은 단출하다. 아내도 나도 밥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밥이 달다.
나의 위대한 스승 밀라레파 님께서는 얼어붙은 히말라야 설산동굴에서 쐐기풀로 연명하며 수행을 했는데... 난방이 잘된 병원동굴에서 보살님들이 받쳐준 따뜻한 밥을 먹으며 수행하는 나는 스승님에 비하면 매우 사치스러울 정도다.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니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다. 진눈깨비는 작은 동산의 벌거벗은 나무를 적시며, 눈송이로 변했다가 다시 빗방울로 바뀌었다. 겨울과 겨울 사이를 오가는 하늘이었다.
아내가 복도를 조금 걷고 싶다고 했다. 허리 안전대를 채우고 아내를 앞세워 복도로 나갔다. 나는 안전줄 손잡이를 양손으로 꼭 잡고, 넘어지지 않도록 속도와 균형을 조심스레 맞추며 걸었다. 느린 걸음이었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 1년이 훌쩍 넘었다. 무엇보다 안전이 먼저다.
아내는 뒤뚱거리며 복도를 두 번 왕복했다. 이 정도만 걸어도 대견했다.
병실로 돌아와 숨을 고르고 있는데 둘째 경이가 찾아왔다. 어제 빠뜨린 물건들을 챙겨 왔다. 내 이불, 엄마 털조끼, 운동복, 유리창 방한용 뽁뽁이와 테이프까지. 가족의 힘은 역시 위대하다. 눈발이 더 굵어지기 전에 얼른 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우리에게 두 딸은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보물이요 희망이다.
“전기담요도 주문했어요.”
“뭐? 전기담요까지?”
창가에서 찬바람이 들까 봐 미리 준비했다고 한다. 그 마음이 고마워 한동안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병실에서 전기담요를 사용할 수는 없다. 그래도 엄마를 위 지극한 마음이 얼마나 훈훈한가!
경이가 돌아간 뒤 아내에게 저혈당과 저혈압 증상이 함께 왔다. 아침에 입맛이 없다며 식사를 너무 적게 한 탓이었다. 망고주스를 마시게 하고, 뜨거운 물에 율무차를 타서 천천히 마시게 했다. 곧 안색이 돌아왔다.
점심은 한 그릇을 다 비웠고, 저녁도 남김없이 먹었다.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한다.
왼쪽 종아리가 아리다고 해서 텔레비전을 보며 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한참 후, 많이 풀렸다고 했다.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갔다.
그 무사함에 감사하며, 밤 11시.
잠시 명상에 들고, 조용히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