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쓰는 병실, 경계와 병문안
12월 16일 화요일, 흐림
오늘부터 병실은 더 이상 우리만의 공간이 아니다.
옆 침상에 새로운 환자가 들어왔다.
며칠간 누리던 고요는 조용히 물러나고,
생활은 다시 타인과의 거리 위에 놓였다.
병실은 이상한 공간이다.
가장 사적인 일들이
가장 공적인 장소에서 벌어진다.
잠, 식사, 배설, 신음, 한숨.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는 최소 단위의 삶이
커튼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놓인다.
함께 쓴다는 것은
친해진다는 뜻이 아니다.
참아낸다는 뜻도 아니다.
그저 서로의 경계를 알아차리는 일이다.
소리는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불빛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가.
냄새와 기침과 전화 통화,
그리고 간병인의 발걸음까지.
병실에서는
사소한 것들이 모두 수행의 주제가 된다.
나는 나도 모르게
‘우리의 리듬’을 기준으로 세상을 보려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내의 수면, 아내의 식사, 아내의 회복 속도.
그러나 병실은
누구의 속도도 우선하지 않는다.
각자의 고통이
각자의 시계로 흐를 뿐이다.
경계란
선을 긋는 일이 아니다.
선을 존중하는 마음이다.
조금 불편해도 말하지 않는 것,
말해야 할 때는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것,
상대의 하루가 내 하루와 다를 수 있음을
조용히 인정하는 것.
그 모든 것이 수행이다.
새로 입원한 환자는 80대 할머니다. 고관절 수술로 아직 걷지 못해 재활치료를 받으러 왔다고 했다. 간병인도 물론 여자다. 세 여인 속에서 나는 더욱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한다.
입원 첫날은 다 그렇듯이 하루 종일 검사, 상담 등으로 간호사와 의사가 들락거렸다. 나는 새로운 환자가 빨리 쾌유되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밀라레파는
동굴에서 홀로 수행했지만
나는 병실에서 세 여인과 함께 수행한다.
동굴이 고요를 가르쳤다면
병실은 관계를 가르친다.
아내는 오늘도 묵묵히 하루를 견뎠다.
나는 그 곁에서
말을 줄이고, 판단을 늦추고,
숨을 한 박자 더 고르는 연습을 했다.
함께 쓰는 병실은
불편하다.
그러나 그 불편함 덕분에
나는 오늘도
조금 덜 중심적이 되었고,
조금 더 인간적이 되었다.
경계는 벽이 아니라
다리다.
건너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치지 않게 하라고 있는 다리.
오늘도 아무 일은 없었다.
그러나
서로를 해치지 않고 하루를 마친 것,
그 자체가 깊은 은총이었다.
— 밀라레파를 부르며
오늘의 고단함을
이 밤에 내려놓습니다.
밀라레파여,
동굴의 어둠 속에서도
노래로 길을 밝히신 스승이여.
몸이 더딜 때
마음을 재촉하지 않게 하시고,
아픔이 머물 때
연민이 먼저 일어나게 하소서.
이 숨 하나에 머물러
오늘을 마치고,
내일의 걸음은
내일의 몸에 맡깁니다.
아무것도 이루지 않아도
이미 충분함을 알게 하소서.
이 밤,
숨이 잠들면
마음도 함께 잠들게 하소서.
— 밀라레파의 길 위에서
오늘, 광주에서 처제와 동서가 아내의 병문안을 왔다.
아내를 보러 먼 길을 달려왔다.
광주에서 SRT를 타고 수서역에 내려
지하철 8호선, 다시 5호선으로 갈아타고
미사역에서 택시를 타고 병원까지 왔다고 했다.
중간에 지하철을 잘못 갈아타
엉뚱한 곳으로 갔다가 되돌아오는 바람에
시간이 꽤 걸렸다고 했다.
“아이고, 저런 고생을 다 했네.”
그랬더니 동서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덕분에 서울 구경 잘했습니다. 하하.”
아내는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을 만나
반갑고 고마워서 얼굴에 웃음이 가득 번졌다.
싱글벙글, 그 표정 하나로
오늘의 병실은 이미 밝아졌다.
게다가 언니 맛있는 것 사 먹으라며
금일봉까지 건네고 갔다.
그 마음이 더 고마워
말이 잠시 멈췄다.
오후 재활치료 시간이 다가와
스무 분 남짓 머물다 돌아갔다.
멀리서 달려온 동생에게
밥 한 끼도 사주지 못하고,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채
그냥 보내려니
아내는 서운한 마음에 눈시울을 붉혔다. 처제도 덩달아 눈시울을 적셨다. 이별이란 그런가 보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카카오택시를 불러
병원 문 앞에서 배웅을 했다.
고맙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
이토록 미안할 줄은 몰랐다.
병문안은 짧을수록 좋다.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환자도 있으므로.
병원동굴에 머무는 환자에게
반가운 사람의 방문은
큰 위로가 된다.
없던 기운이 생기고,
오늘을 견딜 힘이 다시 차오른다.
동굴에서 수행하던 밀라레파는
불청객 사냥꾼의 방문으로 방해를 받았지만
그들을 내쫓지 않고
도력으로 항복시켜
마침내 제자로 만들었다고 한다.
무문관에서 목숨을 걸고 수행하는 스님들은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들을 때
어떤 마음이 들까.
불편한 몸으로,
거의 강제로 요양병원에 머무는 환자들은
사람이 그립다.
말 한마디, 얼굴 한 번이
약이 된다.
처제와 동서가 한없이 고맙다.
그 덕분에
감사한 마음으로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지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스승께 묻는다.
밀라레파 스승님,
오늘 같은 날
어떤 가르침을 새기면 좋겠습니까.
“사람이 찾아오는 것은
인연이 남아 있다는 증거다.
인연을 귀히 여길 줄 아는 자는
이미 고독을 수행으로 바꾼 것이다.”
— 밀라레파의 가르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