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 병원 외래 준비

이동수단과 준비물

by 찰라

12월 17일 수요일, 맑음

내일은 아산병원 외래진료 날이다.

심장내과와 내분비과.

네 달에 한 번씩 돌아오는 큰 행사다.

아침 7시 50분 심장초음파를 시작으로

혈액검사, 소변검사, 엑스레이까지.

검사만으로도 하루가 훌쩍 간다.

오후 1시 30분 심장내과 외래,

이어 2시 30분 내분비과 진료.

시간표를 떠올리기만 해도 숨이 한 번 고르게 된다.

문제는 이동이다.

라이프요양병원 주차장은 하루 주차가 어렵고,

설령 자리가 있어도 24시간에 25,000원.

택시를 이용하려 했지만

새벽 6시경 출발해야 하고,

추운 새벽 휠체어를 타고 내려오는 일도 만만치 않다.

생각 끝에 결론을 내렸다.

집에서 차를 가져와 이틀만 주차하고

다시 돌려놓기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119를 불러야 겨우 병원을 오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휠체어에서 차에 오르내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 깊이 감사가 일었다.


오후 2시,

아내를 재활치료실에 데려다주고

그 시간에 맞춰 집에 다녀오기로 했다.

카카오택시를 부르니 5분 만에 도착했다.

차에 오르자 창밖으로 세상이 흘러간다.


병원동굴에 있다가

잠시 드라이브 포행을 하는 기분이다.

천호 IC에서 순환도로를 타고

강일대교를 건넜다.

출퇴근 시간이 아니라 길은 한산했고,

차는 경쾌하게 달렸다.


푸른 하늘, 푸른 강물.

서울이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싶다.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존재다.

요양병원의 특유한 냄새에서 벗어나

신선한 공기를 마시니

기분까지 맑아진다.

20분 남짓 달려 도농동 집에 도착했다.

집 가까이 오니

집이 얼마나 좋은 공간인지 새삼 실감이 난다.

23층 생활에서 엘리베이터는 생명줄이다.

정문 앞에서는 한창 엘리베이터 철거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나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3층만 올라가도 숨이 찼다.

히말라야와 안데스 산맥을 오르내리던 시절이 있었건만,

나이는 속일 수 없다.

다행히 3층마다 의자가 놓여 있다.

3층을 오르고 쉬고,

다시 3층을 오르고 쉬었다.

그 의자들이

마치 에베레스트를 오를 때의 베이스캠프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23층.

계단 오르기 수행을 마쳤다.

현관문을 열자

둘째 경이가 반갑게 맞아준다.


“홈 스위트 홈! 역시 집이 최고예요.”

“아빠, 우리 아빠, 얼마나 수고가 많으세요.”

“수고는 무슨. 엄마랑 수행 잘하고 있다.”

경이는 찻물을 올려주었다.

보이차를 한 잔 마시며

속옷과 얇은 티셔츠, 바지 몇 벌을 챙겼다.

병실은 환자 중심 난방이라

겨울옷은 오히려 부담스럽다.

4시 전에는 돌아가야 했다.

재활치료를 마친 아내를 다시 모셔야 하기 때문이다.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와

차에 시동을 걸었다.

어느새 오후의 햇살은 아파트 그늘에 가려

조금 어두워져 있었다.

석양빛을 받으며

강일대교를 건너 요양병원으로 돌아왔다.


원무과에 들러

외래진료 때문에 이틀간 주차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더니

뜻밖에 반가운 답이 돌아왔다.

“지금부터 24시간 안에 출차하시면

1만 원만 내시면 됩니다.”


아, 이런 은총이.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혼자 끙끙 앓지 말고

무엇이든 물어보는 것도 수행이다.

7층 재활치료실로 올라가니

아내가 치료를 받고 있었다.

집중한 얼굴,

포기하지 않는 몸짓.

그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재활은 더디지만

하루도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결과보다 과정이 먼저다.

아내가 오늘도 성실히 참여해 주어

고맙고, 또 고마웠다.


내일 외래시 준비할 물품을 챙겼다.

진료의뢰서, 아침약, 저녁약, 인슐린, 주시침, 혈당측정기, 여벌의 기저귀와 펜티, 저혈당시 마실 주스와 초콜릿, 휠체어, 아내가 입을 외출옷, 물 등등. 챙길 물품이 한가득이다,


내일 아침 6시에 출발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이 쉽게 오지 않는다,


그래도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보냈다.


나의 스승 밀라레파여,

이 하루를 살아낸 제자에게

짧은 가르침 한마디를 주소서.

“길은 멀어도

오늘 한 걸음을 내디뎠다면

이미 도착한 것과 다르지 않다.”

— 밀라레파의 가르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