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끝없이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짧다.”
해발 4,200미터.
라싸 근교 방코르산의 어깨에 매달린 사원은, 땅이 아니라 하늘에 속해 있는 듯 보였다. 사원으로 가는 길은 길이라기보다 숨이었다. 한 번 들이쉬고, 오래 내쉬어야만 다음 발을 옮길 수 있는 고도의 문장.
간덴사원으로 가는 버스는 새벽 여섯 시, 조캉사원 앞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야크호텔을 나서며 아직 잠에서 덜 깬 도시의 숨결을 가르듯 걸었다. 새벽 다섯 시 반, 이미 순례자들은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염주가 손에서 손으로 흘렀고, 마니차는 아직 밤의 관성으로 천천히 돌고 있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우리는 하늘길의 첫 문턱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을 것이다.
버스는 키추강을 건너 라싸의 평원을 스쳤다. 이토록 높은 고원에 이렇게 넓은 평야가 있다니. 인간의 상식은 이곳에서 늘 수정된다. 간덴사원은 라싸에서 약 50km, 방코르산 기슭에 자리한다. 라싸의 모든 코라 가운데, 가장 높은 곳으로 향하는 길. 그래서 이 순례는 ‘하늘로 오르는 순례’라 불린다.
아침은 흐렸고, 곧 눈발이 흩날렸다. 티베트의 날씨는 질문을 허락하지 않는다. 버스 안의 순례자들은 끊임없이 염송 했다.
“옴 마니 반메 훔.”
그 말은 소리가 아니라 방향이었다. 삶이 기도이고, 기도가 곧 삶인 사람들. 이 고도에서는 생각이 길어질수록 숨이 가빠진다. 그래서 그들은 생각 대신 주문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삼거리에서 산을 올려다보자, 지그재그로 꼬인 길이 뱀처럼 이어져 있었다. 마치 마추픽추로 오르는 길을 옮겨 놓은 듯했다. 버스는 헐떡이며 기어올랐고, 사원은 조금씩 현실의 윤곽을 얻었다. 까마득하던 간덴사원이 눈앞에 와 닿을 즈음, 버스는 마지막 숨을 떨구듯 멈췄다.
순례자들은 말이 없었다. 침묵은 이곳의 공용어였다. 닝마파의 위대한 명상가, 펠트랄 린포체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삶은 끝없이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짧다.”
이곳에서는 그 말이 공기처럼 이해된다.
버스에서 내리자 현기증이 밀려왔다. 해발 4.2km의 허공. 수직으로 서는 일조차 의지가 필요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몸이 불편한 아내는 오히려 나보다 단단했다. 그녀는 순례자들의 흐름을 타고 성큼성큼 앞서갔다. 여행에서 늘 그렇듯, 아내가 주연이고 나는 조연—그리고 기록자였다.
아내는 걷는 동안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앞만 본다. 하루에도 몇 번씩 혈당의 파도가 몸을 흔들지만, 길 위에 오르면 그녀는 경이로운 집중을 보여준다. 길이 그녀를 부르는 순간, 병은 잠시 말을 잃는다.
눈과 안개에 가려진 방코르산은 실루엣만 남긴 채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늘에 걸린 사원, 실날처럼 이어진 길, 그 위로 겹겹이 포개진 산맥. 속세는 멀어지고, 별천지는 가까워졌다. 현기증 속에서 풍경은 신비가 되었다. 혹시 극락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어떤 이는 오체투지로 길을 잇고 있었다. 땅과 이마가 만나는 소리가, 고요한 산의 박동처럼 들렸다. 수행이란 무엇인가. 육체의 한계를 정신으로 넘는 일일까, 아니면 한계를 한계로 받아들이는 일일까. 질문은 고도에서 짧아지고, 숨은 길어졌다.
법당 앞에는 노인이 홀로 앉아 마니차를 돌리고 있었다. 큰 소리의 염송은 오히려 고요를 깊게 했다. 법당 안에는 라마승들이 중앙에 앉아 주문을 이어갔다. 그 중심에는 간덴사원을 세운 이의 형상이 있었다—총카파.
간덴사(甘丹寺). 티베트어로 ‘기쁨’, ‘즐거움’의 뜻을 지닌 이름. 겔룩파의 본산으로, 총카파가 1410년에 이곳을 세웠다. 계율이 흐려지고 수행이 사치에 물들던 시대, 그는 불교의 등을 바로 세우려 했다. 전해지는 이야기처럼, 바람에 날린 그의 모자가 산 정상에 떨어졌고, 그는 그 자리를 사원의 터로 삼았다. 황색 모자를 쓴 그의 제자들, 그래서 겔룩파는 ‘황모파’라 불린다. 오늘의 달라이 라마 역시 그 계보 위에 서 있다.
간덴 코라를 도는 동안 현기증은 간간이 찾아왔지만, 마음은 오히려 단순해졌다. 생각이 줄어들수록, 숨은 길어졌다. 우리는 코라를 마치고 법당에서 잠시 쉬었다. 순례자들은 방코르산 정상으로 열을 지어 오르고 있었다. 그 위에는 조장터가 있다 했다. 우리는 이미 랑무쓰에서 조장을 보았기에, 더 오르지 않기로 했다.
눈은 순식간에 사원을 덮었다. 버스가 내려갈 수 있을까, 잠시 염려가 스쳤다. 자동차가 없던 시대, 이 길은 얼마나 가혹했을까. 문명이 수행을 덜어주었는지, 아니면 수행의 밀도를 낮췄는지—그 답은 각자의 숨에 달려 있을 것이다.
오후 두 시, 버스는 간덴사원을 떠났다. 눈길에 익숙한 운전기사는 조심스럽게 핸들을 잡았다. 나는 생각했다. 저 사람 또한 도인일지 모른다고. 낡은 차량으로 이 길을 내려오는 기술은, 말없는 수행에 가깝다.
우리는 무사히 라싸로 돌아왔다. 감사는 말보다 고개 숙임에 가까웠다.
간덴사원의 순례길은 멀고 험했다.
그러나 그 길은 묻고 있었다.
순례란 무엇인가, 수행이란 무엇인가.
어쩌면 답은 간단했다.
숨을 잃지 않고, 끝까지 걷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