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사원 스님들의 선문답
세라사원은 티베트 최대의 불교대학이다. 한 때 5000여 명의 승려가 거주할 정도로 티베트 승려를 양성하는 스님들의 교육기관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약 300여 명 정도의 승려가 3개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중국의 문화혁명 당시(1959년) 승려들의 숙소와 사원이 거의 파괴된 데다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망명을 갈 때에 상당수의 승려가 함께 망명의 길에 올랐기 때문이다.
총카파(1357~1419, 티베트 불교 중심세력인 겔룩파 창시자) 제자인 사캬 예쉬가 세운 세라사원은 대법당을 비롯하여 3개의 대학과 13개의 캉첸(승려 숙소)이 들어서 있다. 대학 중 ‘세라 제’는 승려들의 토론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최라(Chora)’라고 불리는 선문답은 오후 3시 30분부터 약 1시간 정도 벌어진다.
토론장에 도착하니 오후 2시 30분이다. 스님들의 토론이 벌어지려면 아직 1시간 정도 남아 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대법당과 코라를 돌아보기로 했다. 시계방향으로 돌며 대법당과 대학, 숙소를 차례로 돌아보았다. 순례자들이 ‘옴 마니 반메 훔’을 염송 하며 코라를 돌고 있다. 티베트는 어디를 가나 기도를 하는 순례자들을 만난다.
3시경이 되니 다행히 비가 멎었다. 우리는 세라 제 앞마당 토론이 열리는 정원으로 갔다. 많은 관람객들이 카메라를 들고 토론장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스님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3시 반이 되자 드디어 스님들의 열띤 토론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토론장은 곧 스님들이 지르는 고함소리와 손뼉 치는 소리, 발을 구르는 소리 등으로 소란해지기 시작했다.
“저 모습이 선문답이라니… 스님들이 꼭 싸우는 것 같아요?”
“그러게, 우리나라 스님들의 선문답과는 영 딴판이네.”
스님들은 1:1 또는 1: 2로 마주 앉거나 서서 고함을 지르고, 삿대질을 하고, 손뼉을 치고, 춤을 추듯 빙그르 돌기도 하는 모습이 영락없이 싸움질하는 모습이다.
열띤 토론 중에도 스님들은 한 번 정도는 왼손을 밑에 받치고, 오른손을 높이 들어 힘껏 내리치는 특이한 손뼉 치기를 했다. 이는 우주의 진리와 불교의 교리가 충돌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때 위로 치켜든 손은 극락을, 떠받치고 있는 아래 손은 지옥을 상징하기도 한다고 했다.
선문답을 하는 스님들의 표정은 싸우는 것 같으면서도 무척 진지하고 재미있게 보였다. 우리나라 스님들처럼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지그시 감고 주고받는 선문답보다는 훨씬 자유분방하고 신나 보인다. 운동도 되고 스트레스도 해소될 것 같았다. 얏! 소리를 냅다 지르는 순간에 깨우침이 올까? 짝짝 힘껏 내리치는 순간에 번뇌가 사라질까?
손뼉과 고함, 자갈 위의 논증
세라사원의 선문답은 요란하다. 자갈 위로 쿵, 발이 떨어지고 공기를 가르듯 손뼉이 내려친다. 고함이 터지고, 삿대질이 이어진다. 순례자의 눈에는 이 장면이 수행이라기보다. 싸움에 더 가까워 보인다. 누군가 이기고, 누군가는 져야 할 것 같고 조금만 더 지나면 주먹이라도 오갈 듯하다.
그러나 이상하다. 이 격렬함 속에는 분노가 없다. 욕설도, 모욕도 없다. 서로를 쓰러뜨리려는 기색 대신 서로를 끝까지 밀어붙이려는 집요한 성실함만 있다.
이곳에서 공부는 조용히 앉아 눈을 감는 일이 아니다. 몸을 던져 생각을 끝까지 몰고 가는 일이다. 손뼉은 상대를 치는 소리가 아니라 자기 생각의 허리를 꺾는소리다. 자갈 위의 논증은 발바닥부터 머리끝까지 사유를 통과시킨다. 그래서 이 공부는 온몸이 아프다.
토론은 계속 치솟다가 어느 순간, 멈춘다. 말이 더는 이어지지 않는다. 논리는 끝까지 갔고 그 너머에는 길이 없다. 그 순간의 침묵은 조용해서가 아니라 너무 팽팽해서 숨이 막힌다. 생각이 스스로의 끝을 본 자리, 말이 벼랑 끝에 닿은 순간이다.
이 벼랑 앞에서 누구도 대신 넘어줄 수 없다. 스승도, 경전도 이 지점까지는 동행하지 않는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면 깨지고, 한 발 물러서면 다시 처음이다. 그래서 이 순간은 수행에서 가장 외롭다. 그리고 가장 정직하다.
격렬하게 손뼉을 치던 한 스님이 갑자기 고개를 숙인다. 손은 허공에서 멈추고 어깨가 미세하게 떨린다. 울음이다. 이 눈물은 패배의 눈물이 아니다. 틀렸다는 자책도 아니다. 오래 붙들고 있던 ‘내가 옳다’는 마지막 생각이 더는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무너질 때 흘러나오는 물기다.
아상은 이렇게 무너진다. 논리로 꺾이지 않고, 설명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끝까지 가본 사람만이 놓을 수 있다. 눈물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통과의 증표다. 여기까지 왔다는 몸의 확인이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스님은 그를 몰아붙이지 않는다. 정답을 말하지도 않는다. 그저 두 손을 내밀어 울먹이는 스님의 손을 잡아 준다. 말은 없다. 가르침도 없다. 그러나 이 침묵은 어떤 설법보다 정확하다.
괜찮다.
여기까지 잘 왔다.
지금 이 무너짐이 길이다.
두 손 사이로 체온이 오간다. 논증이 끝난 자리에 연민이 앉는다. 그제야 토론장은 고요해진다. 손뼉도, 고함도 사라진 뒤 남은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숨이다. 나는 그 순간 깨닫는다. 이곳에서의 선문답은 이기는 기술이 아니라 무너질 줄 아는 용기라는 것을.
싸움처럼 시작된 공부는 이렇게 끝난다. 말로는 갈 수 없는 곳에서 두 손이 먼저 도착하며. 이 네 장면은 세라사원 하루의 기록이자 삶 전체의 축소판이다. 우리는 모두 싸움처럼 공부를 시작하고, 벼랑에 서서 흔들리고, 눈물로 무너진 뒤에야 누군가의 손을 통해 다시 길을 배운다. 그리고 그 손은 대개 말보다 먼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