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리크티 공주의 숨결이 깃든 라모체 사원

관세음보살 눈물에서 태어난 '타라' 신앙을 전한 부리크티 공주

by 찰라


라모체 사원은 조캉사원 북동쪽에서 걸어서 15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조캉사원이 라싸의 심장이라면 라모체 사원은 그 심장에서 뻗어 나온 혈과 같은 곳이다.


“여보, 오늘은 라모체 사원까지 걸어요.”

“라모체 사원은 어떤 곳이지요?”
“가보면 알아요.”


조캉사원 바코르 순례를 돌고 나서 우리는 라모체 사원으로 걸어갔다. 번잡한 바코르광장에서 한 발짝 벗어나니 관광객의 소리는 잦아들고, 순례자의 발걸음이 또렷해지는 골목 끝에 라모체 사원은 아담하게 들어서 있었다.


라모체 사원도 조캉사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코라 안에 포함된다. 티베트 전통에서는 라싸의 지형을 하나의 거대한 만다라로 보았다. 라모체 사원은 그 만다라에서 자비가 순환하는 지점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라모체 사원의 의미를 알고 있는 순례자들은 조캉만 돌지 않고 반드시 라모체에 들려 기도를 완성한다.


라모체 사원은 문성공주가 12살 모습의 조워불상을 안치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문성공주는 이 불상을 가져오던 중 마차 바퀴가 빠진 곳에 사원을 세우기로 했는데, 그 자리가 현재의 라모체 사원이다. 네팔에서 부리크티 공주가 가져온 온 8살 석가모니 불상도 라모체 사원에 안치되어 있다.


라모체사원 앞쪽에는 정원, 뒤쪽은 불당과 누각, 회랑 등 부속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정문을 통해 들어서니 3층짜리 건물이 눈에 띄었다. 하얀색 지붕과 붉은 벽, 검은 천으로 가려진 대전이 아담하게 보였다.


“이 사원은 참 아담하네요. 제 마음에 쏙 들어요.”

“하하, 다행이네. 이 사원은 티베트에 타라신앙을 전한 부리크티 공주의 숨결이 깃든 곳으로 특히 여성 수행자와 병든 이들을 치유하는 데 효험이 있다고 해요.”

“어쩐지 보자마자 내 마음이 끌린다 했더니....”


아내가 마음에 들어 하니 기분이 좋았다. 1층으로 들어가니 아트리움, 경전 홀 경당, 그리고 불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아트리움은 화려한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시계방향으로 회랑을 따라 이동하자 경당이 나왔다. 경당 안에는 약 서른 개의 기둥이 화려한 탱화에 둘러싸여 천장을 받치고 있다. 홀 중앙에는 부리크티 공주가 네팔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 8살 불상이 안치되어 있었다.


네팔 부리크티 공주가 가져온 8살 부처 등신불


2층은 승려들이 거주라는 공간이고, 3층은 달라이 라마의 방문을 위해 마련된 공간으로 관광객의 출입이 금지하고 있었다.


부리크티 공주가 티베트에 전파한 ‘타라’ 신앙의 핵심은 즉각 응답하는 자비를 상징한다. 관세음보살의 눈물에서 태어났다는 전승처럼, 타라는 고통을 보자마자 가만있지 않는 보살이다. 그래서 타라 수행은 간절한 삶의 현장에서 가장 잘 작동한다고 한다. 타라의 자비가 아내의 고통을 감싸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저절로 생겨났다. 아내는 감격에 겨운 듯 사원을 향해 합장을 했다.






티베트에 타라신앙을 전 부리크티 공주


관세음보살 신앙과 타라 신앙을 티베트에 전한 부리크티 공주는 녹색타라의 화신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성공주가 부처의 형상을 가져왔다면, 부리크티 공주는 부처의 자비가 작동하는 방식을 가져왔다. 부리크트 공주는 네팔 카트만두 계곡의 네와르 장인들을 동반하고 왔다.


이들은 금불동 제작, 벽화, 만다라, 사원의 구조와 비례, 불상 주조기술을 티베트에 체계적으로 전했다. 오늘날 부드러움과 자비로운 얼굴선은 대부분 네팔 네와르 미술의 유산이다.


부리크티 공주가 전한 불교는 생활 속의 불교였다. 가정 제단, 여성 신앙, 치유, 수명, 자비중심의 수행으로 이는 훗날 티베트불교가 민중 전체의 종교로 뿌리내리는 토양이 되었다.


부리크티 공주는 네팔 리차비 왕조(Licchavi dynasty) 암슈바르만(605~621경) 왕의 딸로 전해지고 있다. 암슈바르만은 학문과 외교에 능했고, 불교와 힌두교를 함께 후원한 왕으로, 티베트와 전쟁을 원하지 않고 혼인을 통해 문화교류를 전략적으로 선택했다.


부리크티 공주는 카트만두 계곡에서 출발해 랑탕 키룽(Kyirong) 지역 혹은 나알람 계곡 히말라야 고개를 넘어 들어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녀가 히말라야를 넘은 것은 공주가 아니라 자비 그 자체였다.


송첸캄보가 품은 사랑스러운 두 여인 문성공주와 부리크티 공주는 티베트 불교의 시작이다. 문성공주가 지혜의 질서를 가져왔다면, 부리크티 공주는 자비의 온기를 가져왔다. 두 여인은 경쟁하지 않았다. 한 사람은 달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태양이었다. 송첸감포는 그 사이에서 처음으로 불법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두 여인이 가져온 불상은 궁 안으로 들어왔고, 왕의 언어는 점점 부드러워졌다. 전쟁은 줄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전쟁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미 달라지고 있었다.


부리크티 공주의 사랑은 낭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부리크티 공주는 자신의 나라를 떠났지만 자신의 뿌리를 버리지 않았다. 히말라야를 건너며 그녀는 네팔도, 티베트도 아닌 두 나라를 자비로 연결하여 전쟁을 막았다.


송첸감포는 강한 왕으로 기억되지만, 그의 위대함은 정복이 아니라 수용에 있었다. 다른 문화, 다른 신앙, 다른 사랑을 왕의 자리로 초대할 수 있었던 용기. 그래서 오늘날 라싸의 사원들에는 보이지 않는 네팔의 길이 있고, 포탈라궁의 침묵 속에는 여인의 발걸음이 남아 있다.


히말라야를 넘는 데 말이 필요 없듯, 진짜 사랑은 국경을 묻지 않는다. 부리크티 공주와 송첸감포의 이야기는 과거의 전설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 질문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가? 그 질문이 티베트 불교의 시작이었고, 지금도 고원 위에서 조용히 울리고 있다.




관세음보살의 눈물에서 태어난 '타라(Tara)' 신앙은 무엇인가?



관세음보살 눈물에서 태어난 '타라'신앙을 한 줄로 정리하면


"지금 바로 돕는 자비다."


타라의 가장 기본적인 염송 수행을 소개한다.


"옴 따레 뚜따레 뚜레 스와하"

(Om Tare Tuttare Ture Soha)


-따레: 윤회와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뚜따레: 현실의 고통과 위험에서 보호하소서

-뚜레: 무명과 집착을 깨닫게 하소서

-스와하: 이 기도가 내 삶에 뿌리내리게 하소서


방법은 단순하다.


들숨에 “옴 따레”

날숨에 “뚜따레 뚜레 스와하”


걷거나, 병상 옆에 앉아 있거나, 마음이 흔들릴 때 이 주문을 조용히 반복한다. 타라는 속도를 재촉하지 않고, 다만 멈추지 말라고 한다.


타라는 관세음보살의 자비가 여성의 형상으로 즉시 응답하는 존재로

기도가 끝나기 전에 손을 내미는 자비,

내일이 아니라 지금 작동하는 구원—그것이 타라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분은 녹색타라로 부리크티 공주는 녹색타라의 화신이다.

녹색은 행동의 색으로

위험, 병, 두려움, 길 위의 사고—

“망설이지 말고 지금 돕는다”는 결심의 빛이다.


왜 타라는 ‘여성’인가

타라는 말한다.


“깨달음에 남녀가 있다면, 나는 영원히 여인의 몸으로 돕겠다.”


타라는 가르치기보다 안아 준다.

설명하기보다 함께 건넌다.

그래서 순례자, 병자, 길 위의 나그네들이

타라의 이름을 먼저 부른다.


타라 신앙의 핵심 세 가지는

즉각성 – 기도는 길어도 응답은 빠르다

현실성 – 깨달음은 하늘이 아니라 오늘의 삶 속에 있다

연민의 실천 –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다


그래서 타라 신앙은

수행자만의 종교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의 신앙이다.


아내와 나는 합장을 하고 라모체 사원을 향해 조용히 염송 했다.


"옴 따레 뚜따레 뚜레 스와하"




※ 부리크티 공주의 히말라야 이동경로



① 카트만두 계곡 (해발 약 1,300m)
네팔 리차비 왕조의 중심. 불상·장인·의례가 함께 움직인 출발점.

② 기롱(규롱) 고개 (해발 약 5,100m)
남서 히말라야의 핵심 관문. 당시 기준으로 가장 안전한 고산 통과로.

③ 기롱 계곡 (해발 2,700~3,000m)
고산 뒤의 완충지대. 수행단과 운반대가 멈춰 숨을 고르던 곳.


④ 얄룽창포 강 계곡 (해발 3,500~3,700m)
티베트 문명의 대동맥. 강을 따라 이동하며 불교가 넓게 퍼짐.

⑤ 라싸 (해발 약 3,650m)
도착이자 시작. 이 인연은 곧 조캉 사원으로 뿌리내림.
한 여인의 발걸음이 한 문명의 심장이 된다.



나는 이 길을 따라 라사에서 네팔 카트만두로 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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