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원을 그리며 걷는다 ― 라싸의 네 개의 코라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하여 라싸는 순례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티베트 전역과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순례자들이 포탈라궁과 조캉사원을 향해 둥근원의 길, 코라를 돌고 있었다. 우리도 그들 틈에 끼여 바코르를 돌았다.
코라(Kora)는 티베트인들의 순례길이다.
시계 방향으로, 끝없이 돌고 돌아가는 원(圓)의 수행.
걷는다는 행위가 곧 기도가 되고, 숨이 곧 염송이 되는 길이다.
라싸는 어디를 가나 코라가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지만, 그 중심에는 늘 조캉사원이 있다. 티베트의 심장이 뛰는 자리다. 라싸에는 크게 네 개의 코라가 있고, 그 네 개의 원은 서로 겹치며 한 도시의 영혼을 완성한다.
낭코르(Nangkor)
낭코르는 조캉사원 내부를 도는 가장 짧고, 가장 깊은 코라다.
이 길을 걷기 위해 순례자들은 새벽어둠 속에서 줄을 선다. 사원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숨으로 먼저 기도를 올린다. 프랑스 두 배 크기의 광활한 티베트 전역에서 모여든 이들이 파도처럼 밀려든다. 발 디딜 틈도 없이 붐비는 그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밀지 않는다. 밀리는 것은 몸이 아니라, 각자의 업(業)이다.
바코르(Barkhor)
티베트순례자들이 가장 많이 도는 코라다. 우리도 라싸에 머무는 동안 가장 많이 순례했던 코라다.
바코르는 조캉사원 외부를 한 바퀴 도는, 라싸에서 가장 유명한 코라다. 길이는 1km가 채 되지 않지만, 이 원 안에는 라싸의 하루가 모두 담겨 있다. 아침에도, 한낮에도, 해 질 녘에도 순례자들은 끊이지 않는다. 하루에 몇 번이고 바코르를 도는 이들도 적지 않다.
휠체어를 타고 도는 환자, 아기를 업고 도는 아주머니, 다리를 절뚝거리는 장애인, 남녀노소 모두가 말없이 마니주를 돌리며 돌고 돈다. 순례자가 아니어도 이 길에 발을 들이는 순간, 누구나 순례자가 된다. 상점과 사람과 향 냄새와 염송이 뒤섞인 이 길은, 세속과 성스러움의 경계가 사라지는 자리다.
포탈라 코라(Potala Kora)
포탈라 코라는 포탈라궁을 따라 궁 외곽을 한 바퀴 도는 길이다. 바코르와 더불어 가장 많은 순례자들이 모인다. 13층 높이에 해당하는 이 거대한 건축은 인간이 쌓아 올린 기도의 산이다. 순례자들은 티베트의 영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거주했던 백궁과, 종교의식이 이루어졌던 홍궁을 오른쪽에 두고 걷는다.
링코르(Lingkor)
링코르는 라싸 구시가지 전체를 한 바퀴 도는, 가장 큰 원이다. 길이는 무려 8km. 한때 이 길은 도시 전체를 감싸 안는 보호막이었다. 그러나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4차선 도로가 뚫리며, 코라는 상처를 입었다. 자동차가 먼저 지나가고, 기도는 가장자리로 밀려났다. 그래서 순례자들은 아직 거리가 조용한 이른 아침을 택한다. 도시가 깨어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은 침묵 속에서 링코르를 돈다. 우리는 라싸에 머무는 동안 딱 한 번 돌았다. 자동차의 소음과 개발로 중간 종간 콜라가 도로에 끊겨 매력이 없다.
네 개의 코라는 작은 원에서 큰 원으로, 개인의 내면에서 도시 전체로 확장되는 수행의 지도다. 라싸는 이렇게, 걷는 기도로 숨 쉬는 도시다. 그리고 그 길 위에 서는 순간, 우리 역시 잠시나마 자신의 삶을 한 바퀴 돌아보게 된다.
“옴 마니 반메 훔.”
그 여섯 음절은 주문이 아니라 방향이다. 삶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나침반이다.
라싸에 도착한 후부터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매일 순례자들의 물결 속으로 조용히 몸을 맡겼다. 포탈라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 바코르에서 우리는 말없이 코라를 돌았다. 낮은 지역에 위치한 조캉사원 바코르를 도는 사람들은 사원을 보러 오지 않는다. 사원을 돌기 위해 온다.
조캉사원은 문성공주의 사랑이 국경을 건너온 흔적, 믿음이 숨을 쉬는 심장이다. 문성공주가 가져온 것은 불상이었지만, 그녀가 남긴 것은 방향이었다. 고통을 어디로 두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
라싸의 심장은 그래서 조캉이다. 정치의 중심이 아니라, 숨의 중심. 천 년 전 한 여인의 조용한 선택이, 오늘도 수많은 생의 리듬을 늦춘다.
바코르 순례를 마치고 보리 가루와 야크 우유로 만든 참파(Zānbā)나, 야채가 많이 들어간 툭파(Thukpa)를 가볍게 먹고 야크호텔로 돌아와 몸을 눕히고 휴식을 취했다.
고원은 사람의 숨을 시험했고 아내의 호흡은 바람처럼 가늘었다. 그래서 우리는 서두르지 않았다. 한 걸음, 또 한 걸음—시간을 앞지르지 않고 몸이 허락하는 만큼만 걸었다. 말은 필요 없었다. 걷는 것이 언어였고, 숨을 고르는 그 사이사이가 기도였다. 발바닥으로 땅을 읽고 손의 온기로 서로를 붙들며 우리는 살아 있다는 문장을 조용히 완성해 갔다.
천천히 걷는 법을 배우는 것, 느림의 미학, 그 자체가 라싸가 우리에게 건네준 가장 깊은 가르침이었다. 마니차는 손에서 멈추지 않았고 입술의 염송은 발걸음보다 먼저 도착했다.
“옴 마니 반메 훔.”
그것은 소리가 아니라 방향이었다. 고통을 연꽃 속으로 옮기는 길, 두려움을 자비로 바꾸는 오래된 기술. 포탈라궁은 높았으나 조금도 거만하지 않았다. 붉은 벽과 흰 벽이 층층이 쌓인 모습은 한 인간의 내면 같았다. 욕망과 자비가 서로를 부정하지 않은 채 같은 지층에 머무는 풍경.
조캉사원 앞 바코르에서 오체투지로 몸을 낮추는 이들의 이마가 돌바닥을 닳게 하고 있었다. 돌은 더 단단해졌고 사람은 더 부드러워졌다. 그날의 하늘은 유난히 가까웠다.
산소는 옅었지만 마음은 깊었다. 아내의 손을 잡고 코라의 원을 도는 동안 우리는 묻지 않았다. 왜 여기까지 왔는지. 대신 알았다. 여기까지 와야만 했다는 것을. 병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었지만 두려움은 자리를 옮겼다. 자비의 그늘 아래로.
라싸는 결론이 아니었다. 삶을 다시 시작하라는 조용한 명령이었다. 낮아질수록 넓어지는 길, 숨이 짧아질수록 길어지는 마음. 그 심장의 박동에 귀를 대고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라싸는 지도의 중심이 아니라 숨의 중심에 있다. 해발 3,650미터. 산소는 옅고 하늘은 두텁다. 히말라야 고원들이 사방에서 둘러싼 이 도시는 지질학적으로는 아시아의 융기된 등뼈 위에, 정신적으로는 인류의 오래된 기도 위에 놓여 있다.
사람들이 라싸를 지구의 심장이라 부르는 이유다. 심장은 늘 가장 낮고 조용한 곳에서 온몸을 살린다. 남쪽의 히말라야는 바람을 걸러내고 북쪽의 탕구라와 쿤룬은 하늘의 문턱을 세운다. 빙하에서 태어난 강들은 느린 호흡으로 땅을 적신다. 이곳의 하늘은 별과 가깝고 낮의 햇빛은 직설적이며 밤의 추위는 정직하다. 과장이 없다.
자연은 늘 있는 그대로를 요구한다. 그래서 이 땅에서 거짓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종교적 의미에서 라싸는 더 분명하다
조캉사원 앞 바코르를 도는 순례자들의 발걸음은 시계처럼 정확하다. 오체투지로 땅에 몸을 낮추는 순간 인간은 키를 잃고 마음을 얻는다. 포탈라궁은 권력의 상징이 아니라 수행의 지층이다. 붉은 궁과 흰 궁이 층층이 쌓인 모습은 욕망과 자비가 한 인간 안에서 공존하는 방식처럼 보인다.
라싸의 불교는 장식이 아니라 실천이다. 만트라는 입술에 머물지 않고 마니차는 손에서 멈추지 않는다. “옴 마니 반메 훔”은 소리가 아니라 방향이다. 고통을 연꽃 속으로 옮기는 법, 분주함을 자비로 바꾸는 기술. 이 도시는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보여준다. 따라오든, 멈추든—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라싸에 도착하면 많은 이들이 운다. 고산병 때문만은 아니다. 길고 먼 삶의 우회로 끝에서 비로소 자신을 만났다는 안도 때문일 것이다. 우리도 라싸에 도착해서 가슴으로 울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냥 눈물이 났다. 지금까지 쌓여온 업장이 녹아내리는 순간이었을까?
이곳에서는 묻지 않는다. 얼마나 가졌는지, 얼마나 이루었는지. 대신 묻는다. 얼마나 낮아질 수 있는지. 그 질문 앞에서 사람은 자연히 조용해진다. 라싸는 결론이 아니다. 시작이다.
고원이 인간에게 건네는 마지막 예의는 침묵 속의 방향감각이다. 하늘은 높고 마음은 낮아질 때—심장은 다시 고르게 뛴다. 그래서 라싸는 오늘도 지구의 심장으로서 아무 말 없이 맥을 잇는다. 라싸에 도착한 후, 말은 필요 없었다. 숨이 먼저 가르침이 되었다. 밀라레파는 나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듯했다.
“밖에서 길을 찾지 말라.
네가 낮아진 그 자리가
이미 도착이다.”
우리는 먼 길을 왔지만 그가 가리킨 곳은 언제나 발아래였다. 오체투지로 이마를 땅에 대는 순간 산은 사라지고 마음만 남았다. 고비를 넘긴 것은 몸이 아니라 집착이었다. 라싸는 도시가 아니라 그 한마디가 머무는 자리였다. 숨이 고르고 눈물이 멈출 때—심장은 다시 길을 안다.
옴 마니 반메 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