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공주 사랑이 머무는 집 조캉사원

라싸의 심장 조캉사원

by 찰라



나는 길 위에서 배웠다.

사랑은 설명이 아니라 지속이라는 것을.

한국에서 출발해 하롱베이의 물빛에 숨을 고르고,

차마고도와 당번고도를 따라

수만 킬로미터를 걸어

마침내 라싸에 도착했을 때,

나는 목적지보다 먼저 이유를 만났다.


나는 난치병 아내의 손을 잡고 여기까지 왔다.

시한부라는 말이

시간을 조각내 놓았지만,

우리는 그 조각마다

숨을 불어넣으며 걸었다.

후회 없이 존재하고 싶었다.

사랑으로 숨 쉬는 날까지

끝까지 함께 있고 싶었다.



조캉사원은 높지 않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이미 낮아져 있었다.

돌바닥은 차갑고,

공기는 오래 머문다.

이곳은 권력을 기념하는 집이 아니라

돌아오게 하는 집이다.


부처님오신날,

스님들은 정좌하여 낮고 긴 소리로 염불을 하고

순례자들은 공양을 올린다.

돈과 차, 보리와 마음이

손에서 손으로

말없이 건너간다.

그 장면은 아름다웠고,

동시에 정확했다.

허용된 시간, 허용된 자리,

허용된 침묵.



공안의 시선이 있었다.

사진을 찍다 제지당했다.

그러나 염불은 멈추지 않았다.

통제는 소리를 낮출 수는 있어도

숨의 리듬까지는 막지 못한다.

그날 남은 사진들은

증거가 아니라 증언이 되었다.


아내는 합장한 채 오래 서 있었다.

병은 그녀의 시간을 짧게 만들었지만,

기도의 깊이는 오히려 길어졌다.

숨이 가빠질 때마다 우리는 멈췄고,

멈출 때마다 더 가까워졌다.

나는 알았다.

사랑은 빨리 가는 기술이 아니라

함께 멈출 줄 아는 용기라는 것을.




스님들의 염불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수많은 순례자의 물결 속에 몸을 맡기고

조캉사원 내부를 도는 낭코르를 걸었다.


사람들은 밀지 않았다.

말하지도 않았다.

침묵이 질서를 만들고,

손끝에서 돌아가는 마니주가

시간의 속도를 낮추었다.

기도의 발자국은 급하지 않았고,

느림은 이곳의 유일한 규칙이었다.



회랑의 공기는 오래된 숨으로 가득했다.

벽에 스민 연등의 그을음과

수천 번 합장한 손의 온기가

사원을 하나의 살아 있는 몸처럼 만들었다.

나는 그 몸의 심장박동을 들으며

아내의 손을 놓지 않았다.


문성공주가 가져왔다는

조워불상 앞에서

사람들은 고요히 머리를 숙였다.

기도는 길지 않았고,

간절함은 소리 없이 깊었다.

합장한 손 사이로

각자의 삶이 잠시 내려앉았다.


문성공주가 가져왔다는 조워불상(조캉사원)


그 앞에서

아내와 나는 감격에 잠겼다.

말은 필요 없었다.

눈빛이 먼저 울고,

숨이 뒤따라 울었다.

병이 데려온 긴 밤들과

그 밤을 건너온 아침들이

한순간에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조캉사원은

문성공주의 사랑이 머무는 집인 동시에,

아픈 아내와

멀리서 온 순례자의 마음을

사랑’으로 치유하는 거룩한 장소였다.

여기서 기적은 번쩍이지 않는다.

다만, 사람을 다시 사람답게 돌려놓는다.


낭코르를 한 바퀴 마쳤을 때

아내는 작은 웃음을 보였다.


“이 오늘도 합격이네.”


그 농담이

가장 정확한 기도였다.


우리는 라싸에 머무는 동안

랑코르를 돌면서

조워 부처님을 참배했다,

아니 문성공주를 참배했다.

그럴수록 사랑이 깊어져 갔다.


1300년 전의 공주와

현재의 아내는 시공을 초월한 만남이었다.

그것은 사랑이 맺어준 인연이었다

오, 사랑이여 영원하라!


포탈라궁에 있는 문성공주 동상


랑코르를 걸을 때마다

나는 문성공주를 떠올렸다.

장안에서 출발해

당번고도를 따라

3000km를 건너

라싸에 도착한 그녀.

그것은 권력의 혼인이 아니라

자비의 이동으로 이 땅에 온 사람이었다.

작은 불상을 품고

큰 서원을 품은 사람.

동시에 사랑과 자비의 씨앗을 품은 사람.


그녀가 남긴 것은

이름이 아니라 방향이었다.

고통이 길을 잃으면

중심으로 돌아오라는 방향.

높이 오르기보다

낮게 머물라는 방향.



조캉사원의 한가운데,

말로 설명되지 않는 자리에서

나는 야릇한 향기를 느꼈다.

전설의 향이 아니라

견딤의 냄새,

끝까지 걸어온 사랑의 체온.

그 향기는 검문을 통과했고,

시간을 건너

우리의 가슴으로 들어왔다.

문성공주도 그랬고

아내와 나도 그랬다

사랑의 체온으로 걸어온 사람들이었다.


"여보, 여기에 서면 문성공주의 체온이 느껴져요."

"나는 문성공주의 향기가 느껴진다오."


그 순간 깨달았다.

문성공주가 찾은 사랑과

내가 붙잡은 사랑이

같은 질문을 품고 있다는 것을.


사랑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조캉사원은 대답하지 않는다.

다만 오늘도 사람을 받아들인다.

아픈 몸도,

두려운 마음도,

남은 시간이 적은 사랑도.


여기서는

시한부라는 말이

조용해진다.

대신 이 문장이 남는다.


지금, 함께 존재하고 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조캉의 돌바닥 위에서

나는 조용히 인사했다.

잘 왔다고,

사랑은 여기까지도 올 수 있다고.






랑코라를 돌고 사원 밖으로 나왔다.

조캉사원 앞, 바코르의 돌바닥은

수천 해의 이마와 무릎으로 윤이 난다.

여기서는 땅이 먼저 기도를 배운다.


천삼백여 년 전,

문성공주는

고향의 봄과 부모의 숨결을 접어

이 고원으로 왔다.

정략이라 불렸지만,

그의 사랑은 정략의 문턱을 넘어

한 나라의 심장을 데웠다.


석가모니 부처님 12살 때 모습인

작은 조워 불상을 품에 안고,

언어와 관습과 고도를 건너

침묵으로 나라를 사랑한 여인.

그의 걸음 끝에

조캉사원이 서고,

기도는 집을 얻었다.


지금, 같은 자리.

아내가 오체투지를 시작한다.

병은 그의 몸에 남아

숨을 짧게 만들었지만,

마음은 길다.

이마가 땅에 닿을 때마다

나는 시간의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는다.


“괜찮아.”


그 한마디가

하늘보다 먼저 내려온다.



아내의 절은

낮아짐의 기술이다.

고통을 부정하지 않고,

미루지 않으며,

오늘의 숨으로 오늘을 건너는 방법.

아내는 땅에 몸을 맡기고

나는 그 옆에서

무릎보다 낮은 기도를 배운다.

지켜본다는 말은

사실, 함께 내려간다는 뜻임을

이곳에서 알았다.


문성공주의 사랑이

제국의 거리를 건너

신앙의 집을 세웠다면,


아내의 사랑은

한 사람의 하루를 건너

내 마음에 집을 짓는다.


돌과 돌 사이에

세월이 끼듯,

우리의 사랑은

고통과 고통 사이에 끼어

빛난다.


오체투지가 끝나면

아내는 숨을 고르고

나는 등을 쓸어준다.

웃음이 짧게 튀어나온다.


“당신, 아직도 나보다 더 오래 숨 쉬겠다는 표정이네.”



조캉사원 앞에서 나는 안다.

사랑은 위대해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다만, 끝까지 낮아질 용기.

그 용기가

나라를 세우고,

사람을 살린다.

월, 수, 금 연재
이전 05화순례의 도시 라싸, 코라를 걷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