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풍 사원 걸인 도사들

— 가난이 아니라, 기도가 앉아 있었다

by 찰라



라싸에 머무는 동안, ‘머문다’는 말은 곧 ‘수행한다’는 뜻이 된다. 도시 전체가 기도를 숨 쉬고, 사람들은 걷는 걸음마다 염송을 남긴다. 여행자는 어느새 그 물결에 젖어든다. 이곳에서 진정한 여행은 현지인처럼 먹고 자고 걷는 일이다. 스쳐 지나가며 본 것은 관광이고, 함께 뒹굴며 얻은 것이 이해다.


어제 해발 4,200미터의 간덴사원을 순례한 뒤 몸은 지쳤으나, 하룻밤의 잠은 마음을 다시 세웠다. 선정에서 깨어난 아침처럼 생기가 돈다. 오늘은 세계에서 가장 큰 사원, 드레풍 사원으로 향한다.


야크 호텔 앞 만두집에서 따끈한 아침을 먹고, 한국에서 홀로 온 젊은 여행자 양군과 함께 301번 버스를 탔다. 드레풍 사원 아래 정류장에 내리자 덜덜거리는 삼륜 릭샤들이 줄지어 기다린다. 경운기 엔진의 소음마저 수행의 박자처럼 들린다. 티베트 사람들은 걷거나 이런 릭샤를 탄다. 택시는 없다. 오르는 길 자체가 수행이기 때문이다.


드레풍 사원 입구에 닿자마자, 나는 먼저 사원이 아니라 사람을 만났다. 첫 사진처럼, 흰 벽의 건물 옆 긴 바닥에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 있다. 누군가는 모자를 눌러쓰고, 누군가는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누군가는 천천히 몸을 기울인다. 그 앞에 흩어진 지폐들은 ‘돈’이라기보다, 한 걸음씩 떨어지는 중생의 망설임처럼 보인다.


티베트의 걸인들은 인도의 거리에서처럼 달려들지 않는다. “원 달라”를 외치며 손을 뻗는 대신, 그 자리에 앉아 주문을 돌린다. 마니차를 돌리는 손은 바쁘지만, 표정은 바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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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지나가면 그때서야—아주 조금—소리가 커지고, 마니차가 조금 더 빨라진다.

구걸이 아니라 염송의 볼륨을 한 칸 올리는 것 같았다.


두 번째 사진을 보면 더 분명해진다. 왼쪽 남자는 바닥에 펼친 종이 위로 지폐를 정리하며 경전을 읽는 듯한 자세를 하고 있고, 오른쪽 남자는 두 손을 모아 합장한 채 기도하고 있다. 표정은 간절하지만, 초라하지 않다. 그 얼굴들은 “내가 불쌍하니 도와달라”가 아니라, “나는 오늘도 여기서, 내 업의 몫을 살고 있다”라고 말하는 얼굴이다.


이때 아내가 조용히 손을 움직인다. 작은 돈이지만 하나하나 놓는다. 나는 속으로 따져본다.


‘저 돈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그러나 곧, 더 솔직한 질문이 따라온다. ‘그럼 나는 여기서 무엇을 돕고 싶어 하는가. 그들의 배고픔인가, 내 마음의 죄책감인가?’ 그 순간, 걸인 도사들은 내 마음을 정면으로 비춘다. 그들이 바라는 것이 돈인지, 내 자비인지, 혹은 단지 지나가는 순례자의 인사인지—나는 확신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들은 나에게 “베풂”을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 “마음을 낮추라”라고 가르쳤다.


걸인행각을 보면 서글퍼진다.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 어떤 이는 부귀를 누리고, 어떤 이는 길가에 앉아 하루를 빈다. “자비로운 신이 있다면 왜 이런 격차를 그대로 두나” 하는 마음이 불쑥 올라온다.


불교는 이 풀 수 없는 숙제를 업과 윤회라고 부른다. 전생의 업이 금생에 나타나고, 금생의 업이 다음 생으로 이어진다는 말. 그래서인지, 이곳의 가난은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형태로까지 굳어 있다. 티베트 사람들은 금생에 선업을 쌓기 위해 순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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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풍 입구의 걸사들은—아이러니하게도—우리에게 복을 지을 기회를 내어준다. 부처님이 탁발로 중생의 손을 열어 공덕의 길을 놓았다면, 이들은 사원문 앞에 앉아 그 길을 말없이 펼쳐 놓고 있다. 받는 이가 아니라, 주게 하는 이들. 침묵으로 설법하는 도사들이다.


마침 부처님 오신 날 무렵, 행렬은 끊이지 않는다. 야크기름 덩어리를 깨 파는 사람들, 경전을 찍어 파는 손길들, 화덕에서 피어오르는 버터기름 냄새. 솔직히 말해—수행자에게는 향(香)이고, 여행자에게는 시험지다. 코끝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숨으로 붙잡아야 통과하는 문제.


그러나 끝내 남는 것은 냄새가 아니라 자세다.
앉아 있는 자들의 자세.
합장한 손의 자세.
돈을 놓는 아내의 자세.
그리고 그 앞에서, 조금씩 낮아지는 내 마음의 자세.


그날 드레풍의 첫 관문은 대문이 아니었다. 돌계단도, 현판도 아니었다. 입구에 앉아 있던 걸인 도사들의 침묵—그 자체였다. 그 침묵은 이렇게 말했다.


“너는 무엇을 보러 왔느냐.
불상을 보러 왔느냐,
아니면 네 마음을 보러 왔느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은 이미 손에서, 발걸음에서,
그리고 조금 낮아진 마음의 높이에서 끝나 있었으므로. 그리고 드레풍 입구의 걸사들은—아이러니하게도—우리에게 복을 지을 기회를 제공한다. 부처님이 탁발로 중생에게 공덕의 길을 열어주었다면, 이들은 사원문 앞에서 그 길을 조용히 펼쳐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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