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게 버터차나 한잔하고 가게나

-드레풍 사원 순례기

by 찰라


바람과 사유가 쌓아 올린 드레풍 사원

-산자락에 '쌀더미' 처럼 세운 배움과 수행의 공간



라싸에 머무는 동안, ‘머문다’는 말은 곧 ‘수행한다’는 뜻이 된다. 도시 전체가 기도를 숨 쉬고, 사람들은 걷는 걸음마다 염송을 남긴다. 여행자는 어느새 그 물결에 젖어든다. 이곳에서 진정한 여행은 현지인처럼 먹고 자고 걷는 일이다. 스쳐 지나가며 본 것은 관광이고, 함께 뒹굴며 얻은 것이 이해다. 라싸를 중심으로 주변에는 거대한 사원들이 사원 도시를 방불케 하는 순례지들이 둘러싸여 있다. 간덴사원, 세라사원, 드레풍사원....


전날 해발 4,200미터의 간덴사원을 순례한 뒤 몸은 지쳤으나, 하룻밤의 잠은 마음을 다시 세웠다. 선정에서 깨어난 아침처럼 생기가 돈다. 오늘은 세계에서 가장 큰 사원, 드레풍 사원으로 향한다.


야크 호텔 앞 만두집에서 따끈한 녹두죽과 만두로 아침을 먹고, 조캉사원 앞에서 301번 버스를 탔다. 드레풍 사원 아래 정류장에 내리자 덜덜거리는 삼륜 릭샤들이 줄지어 기다린다. 경운기 엔진의 소음마저 수행의 박자처럼 들린다. 티베트 사람들은 걷거나 이런 릭샤를 탄다. 택시는 없다. 오르는 길 자체가 수행이기 때문이다.


드레풍 사원은 조캉사원 북서쪽에서 12km 떨어진 완만한 산자락을 등기고 남쪽을 향해 열려 있다. 1416년, 겔룩파의 거장 잠양 초제(Jamyang Chöje)가 창건했는데, 그는 총카파의 직제자로, “배움과 수행이 함께 숨 쉬는 공간”을 꿈꾸며 이 사원을 세웠다.


사원의 입지는 우연이 아니다. 라싸 북서쪽, 완만한 산자락을 등지고 남쪽을 향해 열려 있다. 햇볕은 골짜기를 따라 스며들고, 바람은 생각을 식혀준다. 드레풍은 평지 위의 궁전이 아니라 산 위에 흩뿌린 도시다. 드레풍은 직역하면 '쌀더미'란 뜻이다. 사원을 멀리서 바라보면 산자락에 하얀 건물이 촘촘히 포개져 그 모습이 마치 흰 쌀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 이름이 붙여졌다,


초기에는 소박한 수행처였으나, 시간이 흐르며 수만 명의 승려가 모여들었다. 전성기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불교 수도원으로 성장했고, 따라서 사원은 단일 건축물이 아니라 학문과 수행이 병렬로 증식한 구조체가 되었다.


이곳은 티베트 정치와 종교의 심장부였다. 제2~제5대 달라이 라마가 이곳에서 주석했다. 특히 제5대 달라이 라마(로상 갸초)는 이 사원에서 티베트를 통합하고 정교일치 체제를 확립했다. 그 시기, 드레풍은 학문과 명상의 공간이자 동시에 정치적 결정이 이루어지는 침묵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중국의 침공과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사원은 큰 상처를 입는다. 파괴, 약탈, 강제 해산... 돌은 남았지만 사람의 흐름은 끊겼다. 그럼에도 드레풍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기도는 금지되어도, 기도하는 몸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드레풍의 내부는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 사원은 보여주기 위해 지어진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집회당(쵸켄, Tsokchen Hall)은 수천 명이 법문을 듣던 공간이다. 기둥은 굵고 낮으며, 소리는 위로 울리지 않고 몸 안으로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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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당(드라창, Dratsang)은 철학·논리·율학을 공부하던 학문 공동체로 토론마당에서는 손뼉과 고함이 오가지만, 그 소란은 오히려 고요를 향한다. 라마들의 거처와 토굴은 화려함은 없고, 난방도 없다. 태양열 주전자 하나가 전부인 방들. 사원은 중심으로 갈수록 화려해지지 않고, 오히려 가난해진다.


수많은 문과 계단, 막다른 골목이 있고, 길을 잃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의도된 구조처럼 느껴진다. 이 사원에서 길을 잃는 일은 곧 자기 생각을 놓치는 연습이다.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드레풍의 골목을 올랐다. 숨이 가빠지면 멈추고, 멈추면 다시 숨을 고른다. 이곳에서는 빨리 가는 사람이 없다. 앞서지도, 재촉하지도 않는다. 걷는 속도는 모두의 합의처럼 느리다.


드레풍 사원을 하루에 순례하는 것은 어렵다. 아니 며칠 몇 달을 두고 순례한다 해도 사원의 진가를 느끼는 데는 부족하다. 그 깊은 수행처를 나는 숨을 고르며 며칠간 드나들었다. 그래도 그 깊이를 다 표현할 수 없다. 다만, 이 사원에서 만난 사람들과 풍경의 일부라도 기록하고 싶다.


여행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은 풍경이 아니라 사람이다. 산과 사원은 시간이 지나면 사진 속 배경이 되지만, 사람의 눈빛과 손짓은 마음에 눌러앉아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다.


토굴에서 만난 비구니 스님— 바람보다 먼저 숨을 고르는 수행

드레풍 사원의 골목길은 곧게 나 있지 않다. 숨이 먼저 흐트러지고, 발걸음이 그 뒤를 따른다. 좁은 길을 따라 천천히 오르다 보면, 왼편 바위에 새겨진 글씨가 먼저 말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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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 마니 반 메 훔.”


기도는 소리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듯이. 그 위쪽 바위에는 부처가 앉아 있다. 탱화처럼 칠해진 얼굴은 바람과 햇볕에 닳았으나, 눈빛만은 선명하다. 그 아래—사람의 눈높이보다 낮은 곳—작은 토굴들이 숨처럼 붙어 있다. 입구에는 태양열 주전자가 놓여 있다. 불을 피우지 않고도 물이 끓는 자리. 문명은 여기에 와서 말을 낮춘다.


토굴 안에는 비구니 스님이 홀로 기도 중이다. 난방도 변변치 않은 동굴 같은 방. 겨울이면 인내 없이는 하루도 견디기 어려울 곳이다. 그러나 그 얼굴엔 긴장이 없다. 겔룩파의 가르침은 이곳에서 문장이 아니라 생활이 된다.


“강한 인내의 갑옷으로 몸을 지키고, 그 인내의 힘이 차오르는 달처럼 자꾸 커지도록 하라.”


총카파의 말은 이 방에서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미 증명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내가 시주금을 건네자, 스님은 티베트 말로 무어라 한다. 알아듣지 못해도 괜찮다. 감사는 언어가 아니라 표정으로 도착한다. 토굴 안에는 중앙에 달라이 마라의 사진이 걸려있고, 간단한 침구와 식기 몇 점이 있다.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 토끼 몇 마리. 토끼는 문턱을 엉금엉금 넘나들고, 고양이는 이방인을 오래 바라본다. 이 열악함 속에서 스님의 표정은 놀랄 만큼 밝다. 부족함이 얼굴을 어둡게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기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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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굴을 나서면 길은 다시 미로가 된다. 드레풍은 거미줄처럼 얽힌 골목과 문들의 사원도시다. 자칫하면 길을 잃는다. 그러나 잃는 것은 방향이지, 마음은 아니다. 코끼리와 호랑이, 비둘기 모양의 암각화가 그때마다 문턱이 되어준다. 길을 잃지 말라는 표식이 아니라, 집착을 내려놓으라는 힌트처럼.


바람은 차갑고, 하늘은 높다. 그 사이에서 수행은 소리 없이 진행된다. 태양열 주전자에서 끓는 물처럼—연기 없이, 소음 없이. 이 토굴에서 나는 한 가지를 분명히 본다. 수행은 고행이 아니라, 선택된 단순함이다. 그리고 그 단순함은, 인내라는 이름의 따뜻함을 품고 있었다.



여보게, 버터차나 한잔하고 가게나

-그 말은 초대가 아니라 허락처럼 들렸다


순례자들 틈에 섞여 우리는 끝없이 이어지는 문과 골목을 지나 법당으로 향했다. 버터기름을 뿌리며 합장하는 손길, 불상 앞에 놓이는 몇 푼의 동전들. 우리도 가급적 그들처럼 행동하며 순례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 드레풍의 법당에는 문수보살과 역대 달라이 라마들의 불상이 모셔져 있었다. 특히 이 사원은 제3대 달라이 라마 소남 갸초를 비롯해 여러 달라이 라마들이 주석했던 수행의 본산이었다. 그러나 말 없는 불상보다 더 깊게 남은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미로처럼 얽힌 드레풍 사원에서 길을 몇 번이나 잃었는지 모른다. 그날도 길을 잃고 헤매다가 빛을 찾아 겨우 밖으로 나왔다. 그때 붉은 승복을 입은 늙은 라마승이 계단 위에 손짓했다. 말은 많지 않았고, 미소는 길었다. 우리는 언어를 잃고도 이해했다. 이곳에서는 말보다 온기가 먼저 도착한다는 것을. 아내와 나는 스님에게 다소곳이 합장했다.


라마승은 합장을 한 우리 부부를 보더니 정원으로 이끌었다. 관광객이 스님께 합장 배례하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언어는 닿지 않았으나 표정은 닿았다. 이심전심. 스님은 말없이 태양열로 끓인 뜨거운 버터차 한 잔을 내밀었다. 그저 웃으며. 그 차에는 설명도, 교리도 없었다. 다만 자비가 담겨 있었다. 순례 중에 스님에게서 버터차 한 잔을 대접받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축복이다. 차는 목을 데웠고, 마음은 그보다 먼저 풀렸다.



첫 모금은 낯설고, 둘째 모금은 익숙해지고, 셋째 모금에는 마음이 풀렸다. 차는 목을 적시고, 미소는 마음을 적신다. 순례 중에 받는 이 한 잔은 축복의 다른 이름이었다. 차를 마시고 나자 스님은 가부좌를 틀고 앉으면서 우리 부부도 그런 자세로 편하게 앉으라고 눈짓을 했다. 아내와 나는 스님의 손짓에 이끌려서 잔디밭에 반가부좌 자세로 가볍게 앉았다.



노승은 가르치지 않았다 - 다만 자신의 숨을 내게 건네주었다.


노승은 우리를 오래 바라보았다. 말을 고르듯이, 아니 어쩌면 말을 버리듯이. 그의 눈빛은 깊었지만 무겁지 않았고, 연륜이 느껴졌으나 위엄을 앞세우지 않았다. 마치 이미 모든 질문을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대답하지 않기로 한 사람의 눈이었다.


스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천천히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손바닥은 하늘을 향해 열려 있었고 손가락에는 힘이 없었다. 가르치려는 손이 아니라 내려놓는 손이었다. 그가 고개를 아주 조금 끄덕였다. “이렇게 하라”는 지시가 아니라 “이제 괜찮다”는 허락처럼 보였다.



그 순간, 드레풍 사원의 공기가 달라졌다. 사방을 둘러싼 돌벽은 말이 없었고, 낡은 계단 위에는 수많은 발자국의 기억이 가만히 쌓여 있었다. 멀리서 승려들의 낮은 독경 소리가 바람에 섞여 희미하게 들려왔고, 버터등의 냄새와 오래된 돌의 냄새가 숨을 쉬는 공간을 만들고 있었다. 노승은 그 공간 한가운데에 앉아 숨으로 법문을 시작했다.


“옴—”


소리는 낮았고, 거의 바닥을 기듯 흘렀다. 그 소리가 그의 가슴에서 나와 배를 지나 땅으로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다. 이어지는 손짓은 더 느렸다. 마치 시간을 늘려 잡아당기듯 그는 숨을 들이마셨고, 그다음—


“마니 반메 훔—”


낮게 소리 내며 숨을 길게, 아주 길게 내쉬었다. 날숨은 끝을 서두르지 않았다. 마치 이 사원의 지난 세월을 한 번에 토해내는 것처럼 천천히, 그러나 망설임 없이 흘러나왔다. 우리 부부는 그 앞에 앉아 스님의 몸짓을 그대로 따라 했다. 그러나 내 숨은 아직 세속의 속도를 벗지 못했다. 들이쉬는 숨은 짧았고, 내쉬는 숨은 중간에서 자주 끊겼다. 소리는 마음을 따라오지 못했고 마음은 숨보다 앞서 나갔다.


노승은 그런 나를 보며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다. 다만 다시 한번 눈으로만, 아주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한 번의 눈짓이 꾸짖음도 교정도 아닌 기다림이라는 것을 나는 그제야 알았다. 몇 차례 호흡이 오가자 변화는 설명 없이 찾아왔다.


내가 숨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숨이 나를 데리고 가고 있었다. 들이쉬는 숨은 점점 깊어져 복부 아래로 내려가 땅과 이어지는 것 같았고, 내쉬는 숨은 생각과 피로와 말이 되지 못한 감정들을 데리고 하늘로 풀려갔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이것은 수행법을 배우는 시간이 아니라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숨의 방향을 건네는 순간이라는 것을.


노승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 침묵은 이 사원에서 가장 오래된 가르침처럼 분명하게 울리고 있었다. 그날 드레풍 사원에서, 나는 호흡을 배운 것이 아니라 숨이 어떻게 사람을 구하는지를 보았다. 그렇게 반시간정도를 스님과 함께 지냈다. 스님은 미소를 지으며 슬며시 일어났다. 나와 아내도 일어서서 스님께 삼배의 예를 올렸다. 스님은 내려왔던 계단으로 천천히 사라져 갔다. 나는 전생에 이 스님과 어떤 인연을 지었을까? 그때 그 노승의 자취가 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각인되어 있다. 나는 자금도 스님께서 전수해 주신 호흡을 틈틈이 수행하고 있다.


우리는 다시 길을 걸었다.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노승이 탑을 돌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힘겨워 보였지만, 그 발걸음에는 서두름이 없었다. 주름진 얼굴과 닳은 지팡이에는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얹혀 있었다. 수행은 젊음의 특권이 아니라, 끝까지 걷는 용기임을 그 노승은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사원 꼭대기에서는 태양열 주전자가 물을 끓이고 있었다. 어린 스님은 끓은 물을 내리고, 새 주전자를 올려놓는다. 스위치 하나로 물이 쏟아지는 문명사회와 달리, 이곳에서는 햇볕과 물의 고마움이 동시에 느껴진다. 무공해의 불, 무공해의 물. 수행은 이렇게 삶의 방식으로 이어진다. 수행승들의 표정은 맑은 물 같았고, 하늘 같았다. 멀리 눈 덮인 봉우리가 그 뒤를 받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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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의 구멍을 향한 집중력 테스트


사원 꼭대기에서 천천히 내려오는데 불현듯 벽 하나가 사람을 붙든다. 장엄한 법당도, 금빛 불상도 아닌—그저 오래된 돌벽. 벽에는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만한 작은 구멍이 나 있다. 규칙은 간단하다. 다섯 걸음 뒤로 물러서서 눈을 감고 걸어가, 그 구멍에 손가락을 넣을 것. 넣으면 행운이 따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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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사람들은 망설임이 없다. 눈을 감고, 곧장, 한 번에. 검지손가락은 정확히 구멍을 찾는다. 구멍 둘레가 반질반질한 이유를 그제야 알았다. 수많은 손이 스쳤고, 수많은 마음이 지나갔기 때문이다.


나도 시도를 해본다. 보기엔 쉬워 보였다. 그러나 결과는 번번이 빗나간다. 한 미터는 족히 어긋난다—거리보다 긴 것은 마음이었다. 사람들이 손뼉 치며 격려한다. 한 번, 두 번, 세 번.... 힘을 주면 줄수록 더 멀어진다. 문득, 골프의 퍼팅이 떠오른다. 라인을 읽었으면 주저 없이 스트로크. 그때 공은 들어간다. 하지만 ‘꼭 넣어야지’라는 부담이 끼어들면 생각은 늘어나고, 손목은 굳는다. 결과는 빗나감—늘 그렇다.


웃으며 시범을 보이는 티베트의 남자와 여자는 웃음 속에서도, 다시 한번에 성공한다. 그때 비로소 깨닫는다. 이 시험은 집중력이 아니라 집착을 비우는 연습이라는 것을. ‘꼭 넣어야지’라는 마음이 앞서면 몸은 먼저 흔들린다. 아무 생각 없이—그저 똑바로— 그 말이 전부였다. 고도가 높아 중심을 잡기 어려운 탓도 있겠지만, 사실 더 무거운 것은 마음의 짐이다. 성공하려는 욕심, 실패할까 하는 두려움—그것들이 발끝을 먼저 흔든다. 구멍은 작고, 길은 곧은데, 우리는 늘 마음을 덧붙인다. 드레풍의 벽은 말이 없다. 다만 이렇게 남긴다.


"비우면 닿고, 붙들면 어긋난다."


나는 문득 로마의 ‘진실의 입’을 떠올렸다. 거짓된 마음으로 손을 넣으면 물어 잘라버린다는 전설. 드레풍의 이 작은 구멍과 로마의 그 입—둘 다 진실 게임이다. 정직한 마음, 비워진 마음에게만 길을 내주는 시험. 목에 흰 천을 두른 순례자들이 도인처럼 보였다. 그들은 시험을 ‘이기려’ 하지 않았다. 그저 지나갔을 뿐이다. 그래서 정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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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는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실패한 채로 얻은 가르침이 있었다. 집중은 힘이 아니라 방향이라는 것. 그리고 방향은 언제나, 비워질 때 곧아진다는 것. 다섯 걸음. 눈을 감고. 벽을 향해. 손가락이 아니라, 마음을 넣는 시험— 그날 드레풍은 그렇게 나를 웃으며 돌려보냈다.



반특이를 떠올리게 하는 벙어리 청소부


버터차의 온기가 아직 손에 남아 있을 때, 우리는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때였다. 말없이, 소리 없이—한 여인이 계단을 쓸고 있었다. 수건으로 입을 가린 채, 고개를 깊이 숙이고 빗자루를 움직인다. 한 번, 또 한 번.

먼지는 계단 아래로 밀려 내려가고, 그녀의 몸은 더 낮아진다.


알고 보니 그녀는 벙어리였다. 말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그제야 사람들이 눈치챈 듯했다. 순례자들은 그녀 앞에 몇 푼의 돈을 놓고 지나간다. 동정인지, 감사인지, 혹은 습관인지—그 마음의 결은 제각각일 것이다. 아내도 조용히 돈을 놓는다.


여인은 돈을 받자마자 다시 빗자루를 든다. 고맙다는 몸짓도, 미소도 없다. 그저 쓸 뿐이다. 그 모습 앞에서, 나는 오래된 이야기 하나를 떠올렸다. 부처님 당시, 마당을 쓸던 비구 반특이. 게송 한 줄 외우지 못해 비웃음의 대상이었으나, 부처님은 그에게 “쓸라, 닦아라”라는 한 수행만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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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특이는 말 대신 행으로 수행했고, 그 행은 마침내 그의 마음을 열어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렀다. 지금 내 눈앞의 이 여인. 말이 없고, 가르침도 없고, 설법도 없다. 그러나 그녀의 빗자루는 하루도 쉬지 않고 사원의 바닥을 닦는다. 누가 보든 말든, 비웃든 말든.


더러운 것을 쓸어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로 빗자루를 드는 사람은 적다. 사진 속에서 그녀는 늘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러나 그 자세는 비굴하지 않다. 오히려 단단하다. 몸을 낮춘 것이지, 삶을 낮춘 것이 아니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여인도 반특이처럼, 이미 도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 많이 아는 사람보다, 많이 말하는 사람보다, 조용히 행하는 사람이 먼저 도착하는 길이 분명히 있다.


드레풍에서 내가 받은 가장 깊은 가르침은 법당 안의 불상도, 경전의 문장도 아니었다. 그날의 법문은 빗자루 소리였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수행, 설명하지 않아도 드러나는 진실. 그 벙어리 여인의 뒷모습은 오래도록 내 마음의 마당을 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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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야크호텔로 돌아오는 길, 그날 만난 얼굴들이 계속 떠올랐다. 소녀의 미소, 계단을 쓸던 여인의 등, 버터차를 내밀던 스님의 손, 함께 웃던 어린 승려들. 소녀의 미소 속에서는 관세음보살을 보았고, 벙어리 여인에게서는 반특이의 행을 보았으며, 어린 스님들 속에서는 진리를 찾아 길을 떠나는 선재동자의 뒷모습이 겹쳐졌다.


그것은 히말라야의 신이 우리에게 내려준 하루치의 축복이었다. 몸은 고단했지만, 마음은 오래도록 맑았다. 그리고 그 맑음은, 지금까지도 내 안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다.

월,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