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로 세운 우주, 숨으로 걷는
포탈라궁 순례기

— 라싸에 도착하면 포탈라궁은 맨 나중에 올라가라

by 찰라


포탈라궁은 어떻게 완성되었는가?

-송첸감포 결심의 씨앗과 문성공주의 간절한 서원으로 시작


라싸의 붉은 산 마르포라 위에 우뚝 솟은 포탈라궁은 역사이자 영혼이며, 돌로 세운 기도의 집이다. 해발 3,700미터의 언덕 위에 자리한 궁전은 그 자체로 이미 하늘 가까이에 있다. 건물의 높이는 120미터에 불과하지만, 계곡 바닥에서 올려다보면 그 위용은 300미터를 훌쩍 넘는다.


포탈라궁은 한 번에 지어지지 않았다. 송첸감포의 결심이 씨앗이 되었고, 문성공주의 간절한 서원이 흙이 되었으며, 티베트인들의 수백 년 기도가 바람처럼 덮였다. 모든 자재은 사람의 어깨와 야크 등으로 옮겨왔다. 돌은 마르포라 언덕 인근에서 채취한 채석으로, 흙은 점토와 모래를 섞어 압착을 하고, 목재는 멀리서 운반해 왔다.


포탈라궁의 벽은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얇아지고, 중력과 바람을 계산 직관의 과학으로 지어졌다. 벽 안에는 짚, 나무, 야크 털을 섞어 지진과 혹한을 견디는 고원의 지혜로 채워졌다. 외벽은 석회에 우유와 설탕을 섞어 발랐으며, 실용성과 신성함을 동시에 노려 지금도 햇빛 아래서 살아 있는 피부처럼 숨을 쉰다.


현재 우리가 보는 거대한 포탈라궁은 5대 달라이 라마 시대(17세기)에 대대적으로 확장하여 왕의 궁전에서 법왕의 성산으로 변모하였다. 포탈라(Potala)는 관세음보살이 머문다는 전설 속의 산 이름이다. 티베트인들에게는 포탈라궁은 관세음보살의 현현이며, 자비가 돌로 굳어진 형상으로, 라싸의 심장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순례자들은 "포탈라궁을 도는 것은 한 생의 업을 한 바퀴 덜어내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포탈라궁은 웅장하지만, 거만하지 않으며, 높지만 내려다보지 않고, 붉지만 분노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날 포탈라궁은 권력은 사라져도 기도는 남는다. 몸은 무너져도 서원은 남는다.


대지에서 솟아 우주로 이어지는 축—그 장엄한 실루엣 앞에서 사람의 숨은 저절로 멈춘다. 따라서 라싸에 도착한 날, 곧장 포탈라궁을 오르는 일은 금기처럼 여겨진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준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며칠 동안 코라를 돌며 걷고, 숨을 고르고, 기도로 고도를 낮춘 뒤에야 비로소 그곳에 오를 자격이 생긴다.


우리도 그랬다. 라싸에 머무는 동안 매일같이 순례자들의 물결 속에 섞여 코라를 돌았다. 말 대신 숨으로, 발걸음 대신 염송으로 몸과 마음을 이 고원의 리듬에 맞췄다. 그렇게 며칠을 산처럼 머문 뒤에야 우리는 비로소 포탈라궁의 계단 앞에 섰다. 그날의 오름은 관광이 아니라, 허락받은 방문에 가까웠다.


대지의 자궁 토지신을 달래는 지신밟기

-대지를 밟으며, 땅을 깨우는 티베트 여인들의 합창


포탈라궁을 오르던 날, 보수 공사가 한창이었다. 발아래는 먼지와 돌가루가 섞여 옛날과 오늘이 뒤엉켜 있었다. 그때 열 명 남짓한 여인들이 긴 막대를 가지런히 들고 한 줄로 섰다. 한 여인이 낮고 길게 선창 하면, 나머지 여인들이 한 박자 늦춰 합창으로 받았다. 계단을 오르다 숨이 찬 아내와 나는 숨을 고르며 한동안 티베트 여인들의 지신밟기를 바라보았다. 구슬프면서도 마음을 안정시키는 묘한 장면과 소리였다.


막대는 땅을 내리치지만 폭력이 아니라 리듬이었고, 노래는 위로 날아가지만 방향은 분명히 아래였다. 그들은 땅을 밟고 있었지만 실은 땅의 마음을 다독이고 있었다. 그들이 부르던 노래는 글로 기록된 성가가 아니라 세대를 건너 몸으로 전해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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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에서 지신(地神)은 밟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먼저 깨워야 할 존재다. 고원은 얇고, 땅은 쉽게 상처 입으며, 한 번 노하면 오랫동안 회복되지 않는다. 그래서 집을 짓거나 큰 건축을 보수할 때는 반드시 먼저 여인들이 나선다. 여인은 생명을 낳는 존재이기에 대지의 자궁과 통한다고 믿는다.


긴 막대는 무기를 닮았지만 실은 태아의 심장박동을 재는 도구와 같다. 땅을 두드리는 박자는 심장이 뛰는 속도, 숨이 들고 나는 간격이다. 지신은 그 리듬을 듣고 “아, 인간이 아직 자연의 박자를 잊지 않았구나” 하고 마음을 놓는다고 전해진다.


왜 여인들의 합창인가. 여인 혼자 부르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신은 한 사람의 목소리를 믿지 않는다. 여럿이 같은 박자로 숨 쉬는지를 본다. 선창은 길을 열고, 합창은 책임을 나눕니다.


“이 집에 문제가 생기면 이 노래를 부른 우리 모두의 몫이다.”


그래서 그들은 일꾼이 아니라 증인이다. 포탈라궁은 권력의 상징이었지만 동시에 수많은 중생의 기도가 쌓인 무게이다. 그 무게를 돌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보수할 때마다 땅에게 다시 묻는다.


“우리가 아직 이곳에 머물 자격이 있는가.”


여인들의 노래는 그 질문을 대신 전한다. 지신밟기가 지금도 계속되는 겸손의 기술이다. 기계보다 먼저 노래가 땅을 다지고, 망치보다 먼저 목소리가 허락을 구한다. 그래서 포탈라궁은 무너지지 않는다. 돌이 단단해서가 아니라 땅과 아직 대화를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여인들이 노래를 멈추면 그제야 공사가 시작된다. 그 순서를 지키는 한, 하늘에 가장 가까운 궁전은 땅에게도 여전히 예의를 잃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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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티베트에서 전해오는 Sa bdag(땅의 주인, 토지의 수호자, 지신地神을 뜻함) 신앙에 따른 지신밟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 마– 사–––

사– 마– 사–––

(잠들어 있던 땅이여, 이제 숨을 고르라.)


야– 네– 랑– 소

야– 네– 랑– 소

(우리는 해치러 온 것이 아니라 함께 머물기 위해 왔다.)


아– 마– 치–

아– 마– 치–

(어머니의 대지여)


라– 소– 라– 소–––

(이제 괜찮습니다. 우리는 조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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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신밟기는 노래라기보다 집단 호흡에 가깝다. 이는 마치 우리나라 토착 신앙인 “비나이다 비나이다 토진신께 비나이다”와 유사하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는 넋을 잃고 지신밟기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숨을 고르며 한 계단 한 계단 숨을 고르며 올라갔다.


포탈라궁의 돌계단은 숫자를 세게 하지 않는다. 숨을 세게 한다. 한 계단, 한 계단—돌은 차갑고 공기는 얇아진다. 나는 아내의 손을 조금 더 단단히 잡는다. 말이 필요 없다. 이곳에서 대화는 숨으로 한다. 들이마실 때는 살아온 날들이, 내쉴 때는 내려놓을 것들이 지나간다. 돌계단은 오르는 길이 아니라 벗어나는 길이다.



돌로 세운 우주, 숨으로 걷는 포탈라궁 순례

-백궁과 홍궁, 영묘, 달라이라마의 방을 순례하며...


입구의 문턱은 낮다. 궁전의 입구치고는 지나치게 겸손하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허리를 굽힌다. 포탈라는 처음부터 분명히 말한다. “높아지려면, 먼저 낮아져라.” 아내의 어깨가 문턱을 스친다. 나는 그 작은 스침이 기도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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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흰 궁(白宮)으로 들어간다. 흰 궁은 밝지 않다. 대신 정리되어 있다. 달라이라마가 살았던 방들, 행정의 복도들—권력의 흔적은 희미하고, 질서만 남아 있다. 생활과 정치, 일상의 리듬이 머물던 행정의 공간이다. 아내는 창가에 잠시 선다. 빛이 얼굴을 스치자, 나는 문득 안도한다.


“여기는 삶을 다루던 곳이네요.”


흰 궁 안은 살림처럼, 호흡처럼—지나치지 않고 검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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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궁(紅宮)을 들어간다. 붉은 궁으로 들어서면 공기가 달라진다. 색이 아니라 밀도가 바뀐다. 붉음은 열정이 아니라 침묵이다. 의식과 수행의 공간, 기도의 핵—길은 갑자기 복잡해지고, 방향감각은 사라진다. 길이 복잡하고 미러처럼 연결되어 있어 방향감각을 잃는다. 아내가 내 소매를 잡는다. 우리는 길을 잃는다. 아니, 길을 잃도록 허락받는다.


가까스로 길을 찾아 영묘 안으로 들어간다. 황금빛 초르텐(사리탑)들이 서 있다. 역대 달라이라마의 육신이 잠든 자리. 빛은 화려하지만, 분위기는 조용하다. 여기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자리 이동처럼 보인다. 아내는 오래 머문다. 나는 말없이 기다린다. 기도는 기다림의 다른 이름이니까.


영묘를 지나 역대 달라이라마의 방으로 들어갔다. 작다. 생각보다 훨씬 작다. 침상, 탁자, 창—최서한 필요한 것만 남아 있다. 권력의 상징이 아닌 절제의 상징처럼 보인다. 나는 갑자기 부끄러워진다. 우리가 살아오며 쌓아온 것들, 붙잡아온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거의 사용하지 않는 것들도 나는 붙들고 살아왔다, 아내는 방을 한 바퀴 돌고, 고개를 끄덕인다.


“이 정도면 충분했겠네.”


그 말이 오래 남는다. 달라이라마의 작은 방을 지나 회랑으로 들어간다. 회랑은 포탈라궁의 혈관이다. 백궁과 홍궁, 방과 방을 잇고, 시대와 시대를 잇는다. 발소리가 낮아지고, 말소리는 사라진다. 사람들은 자연히 한 방향으로 걷는다. 밀지 않고, 서두르지 않는다. 나는 병실에서의 복도를 떠올린다. 그곳에서도 우리는 이렇게 걸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걷는 속도가 수행의 일부가 되는 공간이다.


어둠 속에서 벽화가 빛을 발한다. 빛이 없어서 더 선명하다. 부처의 생애, 수행자의 여정, 우주의 질서—그림은 설명하지 않는다. 기억하게 한다. 아내는 한 벽화 앞에서 멈춘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간다. 말없이도 같은 장면을 보고 있음을 안다. 그 순간, 포탈라는 궁전이 아니라 거대한 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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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탈라궁은 백궁에서 삶을 다루고, 홍궁에서 마음을 다듬으며, 영묘에서 죽음을 받아들이고, 회랑과 벽화에서 인간의 시간을 천천히 걷게 한다.


밖으로 나오자 다시 하늘이다. 안으로 들어갈 때는 숨이 짧아졌고, 밖으로 나올 때는 숨이 깊어진다. 포탈라궁은 안에 들어갈수록 우주가 되고, 나올수록 사람을 남긴다.


테라스에 서니 라싸가 한눈에 펼쳐진다. 도시는 낮게 엎드려 있고, 그 뒤로 히말라야가 구름을 어깨에 걸친 채 말없이 서 있다. 산은 늘 그렇듯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얼마나 작은 지를 친절하게 알려줄 뿐이다. 난간 너머로 몇 사람이 서서 산을 본다. 말은 없고, 시선만 길다. 이곳에서는 누구나 잠시 자기 삶의 높이를 재어 보게 된다. 그 재는 자는 돌이 아니라 숨이다.



아내의 손은 여전히 따뜻하다. 궁전의 돌은 차갑고, 기도의 시간은 뜨겁다. 우리는 그 사이를 건너왔다. 돌계단을 오를 때마다 여인들의 노래가 떠올랐고, 땅에게 먼저 말을 걸던 그 오래된 예의가 이곳의 기초였음을 이제야 안다. 나는 확신한다. 궁전은 돌로 세울 수 있지만, 순례는 사람과 사람이 함께 지을 때 완성된다. 손을 놓지 않는 것, 속도를 낮추는 것, 그리고 끝에서 다시 하늘을 보는 것.


라싸는 아래에서 숨 쉬고, 히말라야는 위에서 침묵한다. 그 사이, 테라스 위에 선 우리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채 가장 많은 것을 받아 들고 있다. 숨 하나, 손 하나, 그리고 돌아갈 길 하나. 오늘도 하늘은 열려 있다. 문은 없고, 난간만 있다. 넘지 말라는 표식이 아니라 머물다 가라는 초대처럼.


하지만 포탈라궁 앞에 서면 먼저 침묵이 온다. 웅장함 때문이 아니라, 말로 다 할 수 없는 상실의 무게 때문이다. 이 궁은 더 이상 티베트인들의 손으로 열리고 닫히지 않는다. 국가의 깃발이 바뀌었고, 행정의 언어가 바뀌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역사의 전환이라 부르지만, 이 땅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몸에서 떼어낸 기억에 가깝다.


나는 순례자다. 판결을 내리러 오지 않았다. 다만 묻고 싶었다. 잃어버린 땅은 어디로 가는가. 티베트인들이 느낀 상처는 영토의 상실만이 아니다. 그보다 깊은 곳에 존재가 설명되어야 하는 삶의 고통이 있다. 사원은 박물관이 되었고, 기도는 전통공연의 시간표 안으로 들어갔다. 신앙은 관리 대상이 되었고, 침묵은 생존의 기술이 되었다. 그럼에도 포탈라궁은 무너지지 않았다. 돌은 빼앗길 수 있어도 의미는 빼앗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 궁은 증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포탈라궁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더 ‘성지’가 되었다. 통제 속에서 순례는 더 느려졌고, 느려진 걸음은 더 깊어졌다. 티베트인들은 크게 말하지 않는다. 대신, 더 낮아진다. 오체투지는 정치가 아니라 존재의 자세가 되었다.


나는 그제야 이해했다. 성지는 보호받을 때보다 위협받을 때 더 또렷해진다는 것을. 티베트의 신앙은 복수를 가르치지 않는다. 되찾음을 말하되, 칼을 들지 않는다. 관세음보살은 울음소리를 듣는 존재다. 명령하지 않고, 심판하지 않으며, 다만 함께 머문다. 그래서 포탈라궁은 정복의 기념물이 아니라 인내의 몸이 되었다.


역사는 힘의 언어로 움직여 왔고, 힘은 언제나 예측을 배반한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티베트가 다시 설 날이 온다면 그것은 무력으로 빼앗은 것을 무력으로 되돌려 받는 날이 아닐 것이다.


그날은 아마, 문화가 살아남았음을 세계가 인정하는 날, 신앙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시간이 증명하는 날일 것이다. 땅은 국경으로 나뉘어도 영혼은 점령되지 않는다. 나는 포탈라궁 앞에서 정치적 해답을 얻지 못했다. 대신, 방향을 얻었다.


잃어버린 것은 언젠가 형태를 바꿔 돌아온다. 강제로 빼앗긴 것은 서원 속에서 더 단단해진다. 그래서 오늘도 티베트인들은 걷는다. 조용히, 끈질기게, 자비의 속도로. 나는 그들 곁에서 같은 방향으로 한 바퀴를 돌았다. 코라가 끝났을 때 이 생각이 남았다.


포탈라궁은 빼앗긴 성이 아니라, 아직도 자라고 있는 기도다. 그리고 기도는—시간을 이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티베트인들은 자유와 신앙, 문화를 강탈당하고 있다. 기도만으로 충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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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포탈라궁 테라스에서 달라이라마가 망명의 길을 떠났을 히말라야를 바라본다. 내 나라, 내 조국, 내 백성을 남겨두고 걸어서 눈 덮인 히말라야를 넘어 망명의 길을 떠났던 달라리라마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달라이라마는 1959년 3월 17일 밤 라싸를 탈출하여 14일 동안 히말라야를 걸어서 넘었던 망명의 길을 “ My Land and My People”에 기록했다. 그의 망명 여정은 라싸 포탈라궁-야를룽창포강-촘비 계곡-히말라야 산맥-타왕 사원-인도로 이어진다. 이 책은 ‘티벳, 나의 조국이여’란 타이틀로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책으로 나왔다.


다음 장에서는 말라이라마의 망명의 길을 좀 더 자세히 다루고자 한다. 그리고 우리는 달라이라마의 망명 루트를 따라 네팔로 넘어갈 예정이다.


*참고 : 포탈라궁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이 장면은 순례 당시 기억과 기록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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