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5220m 가쵸라 고개를 넘어며.....가쵸라고개-라체-쉐가르
티베트 고원은 사람의 의지를 시험하는 높이에서 멈춘다.
숨이 먼저 느려지고,
생각은 그다음에 천천히 따라온다.
시가체를 떠나 라체–쉐가르(뉴 팅그리)로 향하던 날,
우리의 중고 지프는 해발 5,220미터
갸쵸 라 고개를 넘고 있었다.
강물을 거슬러,
에베레스트 방향으로.
회오리바람이 몰아치며
자갈과 모래를 들어 올렸다.
고원 전체가 숨을 몰아쉬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전사 깡파는 낙천적이었다.
떠꺼머리에 네모난 선글라스,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 위에서도
카세트테이프를 틀어 놓고
티베트 노래를 불렀다.
"룰랄라—"
이 황량한 고원에서
가장 어울리지 않는 소리,
그러나 이상하게도
가장 잘 어울리는 소리였다.
그러다 지프가 멈췄다.
툭, 하고.
라싸를 떠날 때부터 말썽이던 차였다.
“베리 뉴 카”라던 여행사의 말은
이미 고원 바람에 쓸려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다.
깡파는 말했다.
“노 프로블램.”
그 말은 설명이 아니라
주문에 가까웠다.
몇 시간을 멈춰 서 있어도,
오가는 차 한 대 없는 오지에서도
그의 대답은 늘 같았다.
노 프로블램.
본넷을 열고
지프 위에 올라타
엔진을 들여다보는 그의 뒷모습을
우리는 몇 번이나 보았을까.
지금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쿡 웃음이 난다.
두려움은 늘
웃음 뒤에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차가 완전히 멈추면
대책은 없다.
고원은 구조를 약속하지 않는다.
오직 버티는 자에게만
다음을 허락한다.
깡파는 주유 호스를 입으로 빨고
다시 시동을 걸었다.
부르릉— 하다 멈추고,
다시 부르릉—
몇 번을 반복한 끝에
기적처럼 시동이 살아났다.
“당신은 마술사군요.”
“그건 나도 몰라요. 자동차가 알지.”
그의 말이 맞다.
아니, 어쩌면
자동차의 신이 알고 있을 것이다.
깡파는 운전석에 앉으며
낮은 소리로 주문을 외웠다.
“옴 마니 반메 훔.”
나도 따라 외웠다.
이 고원에서는
논리보다 주문이,
설명보다 믿음이
먼저 작동한다.
잠시 뒤,
몰려오던 먹구름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흩어졌다.
티베트의 하늘은 늘 그렇다.
한 치 앞을 허락하지 않다가
문득 길을 내준다.
샤카에 들르려던 계획은 접고
우리는 라체(4,050m)에 잠시 멈췄다.
저녁은 야크누들 한 그릇.
10위안짜리 식사였지만
그날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음식이었다.
배는 고팠다.
그러나 정신은
이상할 만큼 맑았다.
수행은 늘 배고픔에서 시작된다.
배가 부르면 사람은
잠들거나 헛생각을 한다.
나는 문득
밀라레파를 떠올렸다.
쐐기풀로 연명하며 수행했던 사람.
그는 배를 채우지 않았기에
마음을 비울 수 있었다.
라체는 서부 티베트 아리와
카일라스로 이어지는 갈림길이다.
수미산 순례는 허가 문제와
너무 험한 여정 탓에
‘다음’으로 미뤘다.
그러나 여행자에게
다음은 자주 오지 않는다.
그다음은,
아직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했다.
수미산 대신
에베레스트.
해발 5,220미터,
갸쵸 라 고개에서
석양이 고원을 덮었다.
찬란한 빛이
설원의 능선을 따라 가라앉았다.
나는 그 빛을
'희망'이라 불렀다.
고개를 넘자
내리막 끝에서
설산의 파노라마가 펼쳐졌다.
먹구름 아래, 어둠의 장막 속에서
설산은 놀랍도록
맑고 투명했다.
“저기… 에베레스트!”
“와아—!”
우리는 동시에 소리쳤다.
깡파는 어둠 속에서도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다시 노래를 불렀다.
뜻은 몰랐지만
마음은 통했다.
말 밖의 소통,
이심전심, 교외별전.
드디어 쉐가르(뉴 팅그리).
에베레스트로 들어가는
마지막 마을.
초모랑마로 향하는
문턱이다.
창문이 덜컹거리는
허름한 게스트하우스는
춥고, 어둡고, 조용했다.
그러나 나는 생각했다.
지붕이 있고,
몸을 눕힐 자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총인가를.
아내도 나도
이상하게 피곤하지 않았다.
에베레스트의 기가
이미 우리에게
닿아 있었던 걸까.
쉐가르에 도착했을 때
이미 밤이었다.
지프의 엔진 소리가 멎자
고원은 그제야
자기 숨소리를 들려주었다.
춥다는 생각보다
조용하다는 느낌이 먼저 왔다.
도시의 밤은 소음이 가라앉지만,
이곳의 밤은
존재 자체가 멈춘 듯 고요했다.
방은 허름했다.
창문은 바람에 덜컹거렸고,
벽은 낮 동안의 햇빛을
이미 다 써버린 얼굴이었다.
침대는 딱딱했고,
담요는 얇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불평은 나오지 않았다.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만으로
몸과 마음이
이미 충분히 설득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나는 가만히 앉아
숨을 세어 보았다.
고원에서는
숨이 먼저 말을 건다.
‘괜찮아?’
‘아직 버틸 수 있어?’
숨이 대답했다.
조금 빠르지만,
아직 괜찮다고.
낮 동안
지프가 멈췄던 순간들이
문득 떠올랐다.
고원이 우리를
한 번 더 시험하던 장면들.
창밖으로는
고원의 밤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별은 많지 않았지만
하늘은 깊었다.
이 깊이는
사람을 작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불필요한 것들을
조용히 내려놓게 했다.
나는 생각했다.
우리가 왜 여기까지 왔을까.
에베레스트를 보기 위해서?
아니다.
그건 이유의 절반이다.
아마도 우리는
아직 살아 있다는 감각을
확인하러 온 것인지도 모른다.
병원과 집,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는
쉽게 흐려지는 그 감각을.
쉐가르의 밤은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는다.
내일의 날씨도,
길의 상태도,
몸의 컨디션도.
다만
지금 이 순간,
숨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만을
조용히 증명해 줄 뿐이다.
나는 담요를 끌어당기고
눈을 감았다.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마치 오래전
수학여행 전날 밤처럼.
설렘이라기보다
긴장에 가까운 마음.
그러나 그 긴장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기대였다.
내일,
우리는 에베레스트로 간다.
아니,
에베레스트가
우리 쪽으로
조금 내려올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자
입가에
작은 미소가 남았다.
쉐가르의 밤은
춥고, 어둡고, 조용했지만
나는 그 밤을 안다.
이 밤이 지나야만
다음 날의 빛이
제자리를 찾는다는 것을.
그 밤,
쉐가르에서
나는 처음으로
에베레스트를
마음으로 먼저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