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 최고의 전망대, 팡 라

-신들의 정원, 초모랑마로 가는 길

by 찰라


쉐가르(New Tingri)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묵고 나니, 하늘이 티 없이 맑다. 티베트의 하늘은 유난히 청명하다. 진한 잉크를 풀어놓은 듯한 하늘은 너무도 투명해 눈이 부실 지경이다. 바다처럼 짙푸른 하늘이 눈부시게 빛난다. 아마도 내 생애 가장 푸른색을 보는 순간이 아닐까.

티베트인들은 이 눈부신 태양과 맑은 하늘 때문에 시각장애인이 많다고 말한다. 독일 출신 시각장애인 사브리예 텐베르겐이 쓴 『타쉬, 영혼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티베트 소년』을 읽어보면, 티베트 아이들 가운데 시각장애가 많은 이유가 바로 이 투명한 하늘과 강렬한 햇빛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서 티베트를 여행할 때는 선글라스와 선크림, 마스크가 필수다.

푸르디푸른 하늘

그것은 넓은 바다

까마득한 옛날

히말라야는 바다였다네

— 쉐가르에서



초모랑마로 가는 길


아침 9시, 우리는 다시 깡파의 고물 지프를 타고 초모랑마로 출발했다. 오늘따라 운전사 깡파는 중절모를 눌러쓰고 다소 긴장한 자세로 지프를 몰았다. 에베레스트로 가는 길에는 공안원의 검문이 잦았고, 여러 차례 검문소를 통과해야 했다. 운전석 위 백미러에는 불경이 적힌 타르초와 신의 축복을 상징하는 카타가 걸려 있었다. 티베트인들의 일상에서 신은 언제나 가까이 있다. 지프는 넓은 벌판을 가로질러 초모랑마 공원을 향해 경쾌하게 달려갔다.

초모랑마 입장원 매표소


티베트를 여행하는 이들에게 마지막 로망은 성산 카일라스(수미산)와 에베레스트다. 수미산에 오를 수 없었던 아내와 나는 이번 티베트 여행의 대미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로 정했다. 세상에 태어나 인생은 할 일이 너무 많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을 모두 다 하기에는 인생은 너무 짧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저것 손을 대기보다, 이미 시작한 한 가지를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지금 우리가 선택한 일은 단 하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오르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모험을 즐기는 여행가라 해도 에베레스트는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신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 더구나 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내와 함께 해발 5,000미터가 넘는 베이스캠프에 오른다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몸이 불편한 아내는 나보다 고산증세가 덜했다. 사람의 몸이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초모랑마의 여신이 아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이미 중국 차마고도와 쓰촨성, 간쑤성 등 해발 3,000~5,000미터의 고지를 육로로 이동하며 순례길을 이어왔다. 고산에 천천히 적응하며, 겸허하게 신의 허락을 기다려온 시간이었다. 노력을 가상히 여겨 초모랑마 여신은 우리를 받아들여주고 있는 것일까? "오, 히말라야의 신이여, 감사합니다."


신들의 정원, 초모랑마

히말라야는 ‘눈의 집’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지만, 내 눈에 비친 히말라야는 ‘신들의 정원’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티베트인들은 늘 신들과 함께 산다. 그들에게 신은 먼 하늘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마을 뒤에 우뚝 서 있는 설산, 그 자체다. 살기 좋은 기후와 낮은 지대에 사는 우리는 신을 잊기 쉽다. 그러나 척박한 설원 고원에 사는 티베트인들에게 신의 존재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아무리 신을 부정하는 무신론자라 할지라도, 만년설로 덮인 히말라야 앞에 서면 저절로 신성의식을 갖게 된다.

쉐가르를 출발한 지프는 적갈색 산야를 가로질러 달렸다. 풀 한 포기 없는 산과 들판. 우리는 마치 외계의 어느 혹성에 불시착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작은 강이 나타났다. 노노하 강이다. 깡파는 강변에 있는 공원 입장권 매표소에서 표를 사야 한다고 했다. 빠이 빠(Bai Ba) 마을에 위치한 초모랑마 서비스 센터에서 우리는 차량 한 대당 405위안, 1인당 입장권 65위안을 지불했다.


초모랑마 검문소

그곳에서 좌회전해 다시 6킬로미터를 달리자 검문소가 나왔다. 여권과 중국 비자, 여행 허가증을 검사받았다. 다시 좌회전해 4킬로미터쯤 더 가자 초모랑마 공원 입구가 나타났다. 검표원은 운전자와 승객 모두를 내리게 하고 입장권과 인원을 일일이 확인했다. 검사가 끝나는 동안 우리는 공원 게이트 앞에서 잠시 기념사진을 찍었다. 황량한 벌판 한가운데, 작은 성처럼 쌓아 올린 회색 벽의 티베트식 건물. 꼭대기에는 진한 밤색이 칠해져 있었다.


오래전부터 티베트에서는 에베레스트를 ‘초모랑마(Chomolangma)’라 불러왔다. 티벳어로 ‘대지의 여신’이라는 뜻이다. ‘초모(Chomo)’는 '여신', ‘랑마(Lungma)’는 산과 지역, 경지를 의미한다. 네팔에서는 에베레스트를 ‘사가르마타(Sagarmatha)’, 곧 ‘세계의 정상’이라 부른다. 중국'에서는 ‘주무랑마(珠穆朗瑪)’라 불러왔다.


영국 측량국장 조지 에베레스트의 이름을 딴 ‘에베레스트’라는 명칭은 어쩌면 이 산에 어울리지 않는 이름인지도 모른다. 차라리 ‘대지의 여신’ 초모랑마, 혹은 ‘세계의 어머니’ 사가르마타라는 이름을 돌려주는 것이 옳지 않을까. 이번 여행이 티베트 땅을 걷는 여정이기에, 나는 이 산을 에베레스트가 아니라 초모랑마로 부르기로 했다.


에베레스트 최고의 전망대 팡 라(Pang-la, 5,120m)

트레킹 마니아들은 렌터카 대신 걸어서, 혹은 자전거로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까지 향한다. 어떤 이들은 조랑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가기도 한다. 공원 입구에는 화려하게 치장한 마차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고, 인근 작은 티베트 마을의 아이들은 지나가는 여행자들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베이스캠프로 가는 마차

공원 입구를 지나자 지프는 뱀처럼 꼬불꼬불한 언덕길을 지그재그로 오르기 시작했다. 차량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비포장 오르막길을 지프는 끙끙거리며 기어올랐다. 마침내 고개 정상에 이르자, 초모랑마의 장대한 파노라마가 한순간에 펼쳐졌다.


“초이, 저기가 초모랑마야!”

“와아, 에베레스트다!”


모두가 동시에 탄성을 질렀다. 지프는 팡 라(Pang-la, 5,120m) 전망대에서 잠시 멈췄다. 깡파는 이곳이 초모랑마를 조망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고 했다. 대지의 여신 초모랑마를 중심으로, 좌우에는 초오 유(8,201m), 로체(8,516m), 마칼루(8,463m) 등 8,000미터급 설산들이 본색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

“초이, 유 베리 러키! 투데이 베리 클린.”

“오, 에베레스트!”


깡파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우리가 정말 운이 좋다고 했다. 이렇게 맑고 투명하게 초모랑마를 바라볼 수 있는 날은 1년 중 손에 꼽힌다고 한다.

홀라당 벗은 대지의 여신, 초모랑마

눈의 집 히말라야 중심에 서서

우리를 반겨주시네.

아아, 초모랑마여.

이곳에서 무릎 꿇고 감사드리나이다.

— 팡 라 전망대에서


팡라 전망대(5,2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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