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을 초월하여 만난 밀라레파
티베트의 고원을 걷고 히말라야의 거대한 그림자 아래 설 때마다, 내 영혼은 오래된 두 성자의 이름 앞에 멈춰 서곤 한다. 파드마삼바바, 그리고 밀라레파.
한때 나는 파드마삼바바가 남긴 『티벳 사자의 서』, 그 서늘한 문장들 사이에 맺힌 숨결을 좇았다. 다질링과 시킴, 그리고 부탄의 가파른 언덕을 넘으며 내가 물었던 것은 '죽음 이후의 길'이었다. 그것은 생의 소멸이 아니라, 육신이라는 허물을 벗어던진 뒤에도 면면히 이어질 의식의 향방을 찾는 ‘바르도 퇴돌(Bardo Thodol:확정되 않는 무든 경계의 시간에 듣는 것만으로 해탈에 이르게 하는 가르침)'의 여정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 곁에는 밀라레파의 시간이 흐른다. 서재 한구석, 손때 묻은 『십만송』(Doha, 밀라레파가 노래로 전한 진리)을 펼칠 때마다 전해지는 기운은 노래처럼 감미롭지만 그 속은 서슬 퍼런 칼날 같다. 수행자의 언어는 언제나 다정한 위로보다 먼저 뼈아픈 진실을 건네며, 잠든 영혼을 거칠게 깨운다.
나는 지금 밀라레파의 유년이 깃든 기룽의 산맥을, 그가 숨 쉬었던 히말라야의 살결을 실제로 밟고 있다. 고난과 복수, 방황의 끝에서 스승 마르파를 향해 엎드렸던 그의 절박한 생애가 이 길 위에서 환영처럼 겹쳐진다.
설산의 동굴에서 홀로 견뎌낸 그 고독한 수행의 흔적이, 지금 내가 향하는 산 ‘초모랑마’의 거대한 등허리 위로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나는 그 거룩한 침묵 앞에 몸을 낮춰 엎드렸다. 산은 아무런 말이 없었으나, 가장 깊은 응답은 언제나 침묵을 뚫고 내 안으로 되돌아왔다.
티베트의 태곳적 신화는 말한다. 초모랑마는 다섯 여신 중 가장 깊은 마음을 가진 맏언니라고. 태초에 히말라야가 푸른 바다였을 적, 바람과 파도가 빚어낸 거품이 쌓여 대지가 되었을 때, 여신들은 스스로 산이 되어 이 땅을 지키기로 했다. 동쪽의 울창한 숲과 서쪽의 풍요로운 들판, 남쪽의 향기로운 꽃들과 북쪽의 광활한 목장. 그 중심에서 초모랑마는 대지의 어머니가 되어 우뚝 솟았다.
팡라 고개를 넘어 초모랑마 베이스캠프로 향하는 90킬로미터의 길. 그러나 이 높은 땅에서 숫자로 된 거리는 무의미하다. 거리보다 먼저 말을 거는 것은 희박해진 공기 사이로 힘겹게 터져 나오는 나의 호흡이다. 숨 한 번에 산은 한 걸음 멀어지고, 숨 한 번에 생은 조금 더 간절해진다.
“바로 저곳이 에베레스트라니, 정말 믿기지 않아요.”
아내의 떨리는 음성이 희박한 공기 속으로 흩어진다. 흉곽을 파고드는 시린 바람에 폐부는 서늘해지고, 조금만 움직여도 심장은 터질 듯 요동친다. 우리는 초모랑마를 배경으로 찰나의 순간을 담았다. 사진 속에서 내 왼손이 그린 V자는 공교롭게도 산의 정수리에 가닿아 있었다. 그제야 ‘대지의 여신’이라는 그 숭고한 이름이 관념을 넘어 온몸의 감각으로 스며들었다.
“거기에 산이 있으므로 오른다”던 조지 멀러리의 외침을 기억한다. 하지만 오늘 우리의 걸음은 발로 오르는 정복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의 가장 깊은 곳으로 침잠하는 입산(入山)이다. 고갯마루에 걸린 오색 타르초와 룽다가 여신의 치맛자락처럼 허공을 유영한다. 불경의 구절을 실은 깃발들이 파닥일 때마다, 초모랑마의 정상은 수줍은 듯 잠깐씩 그 얼굴을 보여주었다. 진실을 보여주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다는 듯이.
밀라레파는 『십만송』에서 그의 누이를 향해 애틋하게 노래했다. 라쁘찌 간, 그 성스러운 에베레스트로 함께 가자고. 태어난 것은 반드시 지게 마련이고 죽음의 시각은 누구도 알 수 없으니, 찰나의 욕망에 머물 시간이 없다고. 누이여, 세속의 끈을 놓고 저 찬란한 행복의 태양이 뜨는 곳으로 나아가자고.
지금 초모랑마의 품으로 걸어 들어가는 우리의 마음이 바로 그러하다. 세상과 연결된 모든 소란스러운 코드들을 잠시 내려놓는다. 이 길은 단절이 아니라, 비로소 나의 본질과 재회하는 통로다. 밀라레파가 노래했던 ‘쩨링마 여신’과 다섯 신녀는 저기 보이는 쿰부 히말의 봉우리들이 되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 속에 밀라레파는 쐐기풀로 연명하며 아홉 해를 이 거친 동굴에서 견뎠다. 열반을 앞둔 그는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속삭였다. 얻은 것은 사라지고 쌓은 것은 무너지며,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는다는 이 지엄한 이치를. 그러니 일찌감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진리를 구하라고. 그것이 인간이 걸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
나는 차가운 바람 속에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 생애의 진정한 스승은 누구였던가. 나는 그 스승을 만나기 위해 나의 에고를 얼마나 치열하게 비워냈던가.
시공을 가로질러 나는 지금 밀라레파와 조우한다. 구름 위의 성자가 아니라, 자신의 고통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끝내 마주했던 한 고독한 인간으로서의 그를 만난다. 길은 실타래처럼 엉켜 높은 산을 휘감고, 우리는 천 년 전 그가 짚팡이 하나에 의지해 넘었을 그 길을 지프를 타고 지난다.
탈것은 달라졌으나 질문의 무게는 다르지 않다. 나는 지금 무엇을 비워내고, 이 거대한 침묵의 산으로 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