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 리프트 벨리를 넘어서...
아침 8시, 쥴리에트가 운전하는 사파리 전용차를 타고 나이로비 ‘애프터 40호텔’에서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으로 출발했다. 나이로비에서 마사이마라 국립공원까지는 7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하늘에 구름에 끼고 잔뜩 흐려 있다. 그러나 건기인지라 비올 확률은 거의 없다.
나는 운전사 쥴리에트 옆 좌석에 앉아 그와 가끔 이야기를 나누며 창밖에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구리 빛 얼굴에 럭비공처럼 생기도 하고 또 잘 익은 대추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굳게 다문 입술이 과묵하면서도 퍽 믿음직스럽게 보였다. 건장한 체격에 쌍꺼풀이 진 눈매가 어찌 보면 아주 미남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의 목소리는 굵은 바리톤 음성으로 매우 따스한 입김이 베여 있다.
“쥴리에 트, 사파리 차를 운전한 지 얼마나 되었지요?”
“아주 오래되었어요, 올해로 40년 정도 됩니다.”
“와우~ 그렇게 오랫동안이나! 도대체 몇 살 때부터 운전을 시작했길래?”
“스무 살 때부터 운전을 했지요.”
“그럼 올해 쥴리에트 나이가 얼마나 되지요?”
“아주 많아요. 올해로 60세랍니다.”
“60세이면 아직 한창나이인데 하하하.”
하긴, 아프리카 나이로 60세이면 적은 나이는 아니다. 최근 통계를 보면 케냐의 평균 수명은 57세 정도밖에 안 됩니다. 잠비아나 모잠비크는 40세 전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쥴리에트가 아주 많다는 표현이 틀린 것은 아니다.
쥴리에트는 씩 웃더니 내 나이를 물었다. 내가 그보다 12년이나 많다고 하자 그는 눈을 크게 뜨더니 “오, 마이 빅 브라더!”하고 외쳤다. 서양인들이나 흑인들은 동양인의 나이를 생각보다 적게 본다. 그는 내가 자기보다 나이가 훨씬 적은 줄 알았다며 나를 힐끗 쳐다보며 씩 웃었다. 그 뒤부터 그는 나를 줄 곳 빅 브라더라고 불렀고, 나는 그를 영거 브라더라고 불렀다.
아들 둘, 딸 둘을 둔 그는 퍽 다정다감해 보였다. 케냐인들은 보통 아내를 2명 이상을 둔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서, 그에게 몇 명의 아내를 두었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단 한 명의 아내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아름다운 여인을 한 명 소개를 해주면 자기도 케냐의 아름다운 아가씨를 소개해 주겠다며 농담을 건넸다. 아프리카도 이제 1부 1 처제로 변화되어가고 있는 추세인 것 같다.
사파리 차량에는 또 한 사람의 케냐인이 타고 있었는데 그는 마사이마라 국립공원 텐트에서 우리에게 요리를 해줄 요리사 ‘서니’다. 늘 눈가에 웃음을 짓고 있는 그도 덩달아서 나를 빅 브라더라고 불렀다. 졸지에 나는 케냐에 두 동생을 두게 되었다. 사람의 마음은 어디를 가나 이심전심으로 통하게 되어있다.
쥴리에트에게 마사이 부족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키쿠유족이라고 말했다. 키쿠유 족은 43개 부족이 공존하는 케냐의 인구 2천5백만 명 중 약 25%를 차지할 정도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케냐 중앙부 일대에 걸쳐 살고 있는 그들은 주로 농경민으로 역사적으로는 마사이족과 대립관계에 있어왔다. 키쿠유 족은 ‘마우마우’란 독립운동 단체를 조직하여 영국의 침략에 결사적으로 대항을 했던 용감한 부족이다.
나이로비에서 약 1시간 반을 달려 우리가 잠시 쉬어 간 곳은 ‘그레이트 리프트 벨리(Great Rift Valley)'라는 언덕이다. 그레이트 리프트 벨리는 이스라엘에서 모잠비크까지 관통하는 장장 9,600km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대지구대 협곡으로 그 웅장함 덕분에 ' 신이 아프리카를 동서로 떼어놓으려다 실패한 결과물‘이라고도 묘사가 되고 있다.
대지구대는 화산활동과 지구의 판구조 운동으로 지각의 단층이 함몰되어 생겨나는 지형이다. 이 지구대를 중심으로 호수와 강이 생겨나고 아프리카의 고대 문명이 발달하였다. 리프트 벨리는 강우량이 많아 초원지대가 형성되어 소를 방목하기에 아주 좋은 장소다.
그레이트 리프트 벨리 전망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우리는 다시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으로 출발했다. 간간히 마사이 목동들이 손에 은구디라는 막대기를 들고 소를 모고 가는 모습이 보였다. 옥수수 밭과 밀밭이 끝없이 이어지기도 했다. 도로가에는 현지에서 직접 생산을 한 농산물을 파는 노점상들이 간간히 보였다. 토마토와 감자를 파는 소녀를 있는 곳에서 쥴리에트가 차를 잠시 멈추었다. 요리사 서니가 멈추라고 신호를 보냈기 때문이다. 토마토를 든 소녀의 모습이 퍽 순진해 보였다. 요리사 서니는 그 소녀에게서 우리들에게 요리를 해줄 재료인 토마토와 감자를 샀다. 나이로비의 시장보다 값이 많이 싸다고 한다. 이렇게 직접 농사를 지은 것을 길가에서 팔기 때문에 가격이 저렴하다고 한다.
12시경 우리는 마 사마라 국립공원으로 가는 거점인 나록(narok)이라는 도시에서 점심을 먹었다. 마사이로 가는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이곳에서 점심을 먹는 모양이다. 뷔페식 점심인데 배가 고파서인지 밥맛이 꿀맛이다.
나록을 지나자 이제 본격적으로 비포장도로가 나타났다. 먼지를 풀풀 날리며 덜컹거리는 사파리 차를 타고 가는 기분은 그리 나쁘지는 않았지만 길이 점점 험해지더니 자동차가 널뛰기를 했다. 사파리 차는 점점 숲이 우거진 좁은 길로 들어갔다. 우리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차 안에서 출렁거렸다. 마사이 목동들이 소떼나 양 떼를 몰고 가는 모습이 종종 나타났다.
마사이는 소젖과 소피를 주식으로 삼고, 소가죽으로 의복과 생활용품을 만들어 쓰고, 소똥으로 집을 짓거나 연료로 사용하고 있어 그들의 의식주를 모두 소를 통해서 해결하고 있는 셈이다. 마사들에게 소는 가장 중요한 교환가치일 뿐 아니라 부의 상징이기도 하다. 마을마다 좀 차이는 있지만 남자들이 장가를 가는데 보통 소 10마리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마사이는 소를 재산으로 여기지 소고기를 먹는 일은 매우 드물다고 한다. 소를 잡는 경우는 큰 축제나 잔치를 할 때인데 소를 잡을 때는 미혼여성의 옷을 소머리에 둘러 씌워 소를 질식시킨 다음, 목덜미 흠을 내어 피를 받아 우유와 벌꿀을 섞어서 소 잡는 사람끼리 먼저 나누어 마시고,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소가죽을 칼로 벗겨내어 고기는 여자들끼리 골고루 나누어 먹는다고 한다.
좁은 길을 지쳐 가는 데 다시 소떼가 길을 막았요. 그러나 쥴리에트는 소가 다 지나갈 때까지 인내심을 발휘하며 조용히 기다렸다. 그만큼 소를 중요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소들은 자동차에 아랑곳하지 않고 느릿느릿 걸어갔다.
가끔가다가 원주민들이 길을 긴 나무토막으로 막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쥴리에트는 돈을 꺼내어 통행료를 지불했다. 아주 원시적인 톨게이트라고 할까? 길을 막는 곳을 자세히 살펴보니 홍수로 도로가 유실되거나 홈이 파여 자동차가 지나갈 수 없는 지형을 지역 주민들이 울력으로 보수를 하여 자동차의 통행을 원활하게 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지역 주민들은 원시적인 도로공사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 대가로 통행료를 받는 모양이다.
한 번 통과할 때마다 얼마씩 주느냐고 쥴리에트에게 물었더니 2천 실링(약 2달러)을 지불한다고 한다. 그러나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반갑게 서로 인사를 주고받으며 매우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보기에 좋았다.
아직 본격적인 사파리를 할 수 있는 초원은 보이지 않지만 간혹 얼룩말도 보이고 톰슨가젤도 모습을 나타났다. 드물게는 목이 긴 기린도 보이고 코끼리도 모습을 나타내곤 했다. 그럴 때마다 사파리 차 안에 탄 여행자들은 카메라를 들이대며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막막한 초원에는 손에 보따리를 들고 하염없이 걸어가는 여인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초원에 선 장에 주로 물물교환을 하러 가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오후 3시, 마침내 우리는 마사이마라 국립공원 캠프 지역에 도착을 했다. 국립공원 인근 오로라이무텍(Ololaimutiek) 지역에는 텐트를 치고 잠을 자거나 오지 형태의 숙소들이 몰려 있다. 우리가 묵을 숙소는 마을에서 다소 외진 지역에 떨어져 있었다. 갑자기 어떤 소년이 앞에 나타나더니 따라오라고 손짓을 하며 자동차 앞으로 달려갔다. 험한 길을 달리는 속도가 매우 빨라 자동차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해발 2000m를 전후한 초원지대인데도 소년은 마치 마라톤 선수처럼 껑충껑충 뛰어갔다. 케냐가 세계적으로 마라톤 선수들이 많이 나오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로지에 도착을 하니 현관에서 물수건을 든 마사이 남자 두 명이 웃으며 환영을 했다. 우리는 로지 안에 마련된 레스토랑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방 배정을 받았다. 나는 병용 아우와 함께 한 방을 쓰기로 했는데, 레스토랑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언덕에 방갈로처럼 띄엄띄엄 마련되어 있었다. 텐트에서 잠을 자는 것보다는 훨씬 환경이 좋아 보였다. 침대도 넓고 침대 위에는 흰 모기장이 둘러져 있었다.
나는 아프리카로 떠날 때 말라리아 약을 먹지 않았다. 15년 전 남미 아마존 여행을 갈 때 말라리아 약을 먹고 나니 소화도 잘 안 되고 후유증이 그리 좋지를 않았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간 기능이 약한 나에게는 독한 말라리아 약은 몸 전체에 별로 좋을 것지 같지 않아 이번에는 말라리아 약을 먹지 않고 왔다. 운이 나쁘면 말라리아 약을 복용해도 말라리아에 걸린다고 한다. 다행히 건기에는 모기도 적고 방에는 모기장까지 둘러져 있어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숙소 앞 테라스에는 초원을 바라볼 수 있는 의자도 놓여 있어 풍경이 제법 운치가 있어 보였다. 사바나의 건기 철은 밤에 제법 날씨가 쌀쌀하다. 이런 날씨에는 텐트보다는 방갈로가 훨씬 좋을 것 같다. 텐트촌이 만원이어서 이 숙소를 택했다고 하는데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우리는 오후 4시에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으로 사파리를 가기로 되어 있어 짐을 풀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리셉션 건물 앞으로 갔다.
쥴리에트가 사파리 차의 선루프를 열고 기다리고 있었다. 사파리 차에 오른 일행들은 'V'자를 그으며 ‘빅 5(Big5-사자, 코끼리, 표범, 코뿔소, 버펄로)’ 등 초원의 동물왕국에 거는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쥴리에트, 빅 5를 볼 수 있을까?"
"하쿠나 마타타!"
그는 빅 5를 볼 수 있느냐 없느냐는 순전히 우리들의 운에 달려있다고 하며 씩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