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거기에 있기에 간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등정기

-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순례기

by 찰라

기적을 걷는 사람



에베레스트 배이스 캠프를 오르다!


해발 5,100미터, 롱부크 사원에서 에베레스트 정상을 바라보니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왔다. 문득 '산이 거기에 있기에 간다'는 말이 떠올랐다.


공기는 날카롭고 얇았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폐가 아니라 마음이 먼저 움찔했다. 산소는 부족했고, 생각은 짧아졌다. 눈앞에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까지 이어지는 8킬로미터의 황량한 길이 놓여 있었다. 그 길은 ‘거리’라기보다, 허락과 금지 사이에 놓인 한 줄의 심문처럼 보였다.

나는 아내의 눈을 보며 물었다.


“여보, 정말 저기까지 걸어갈 수 있겠소?”

아내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았다.


“기어코 가고 말 거예요.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


그 대답이 담담해서 오히려 더 무서웠다. 사실 나는 이미 한계에 와 있었다. 아내보다 건강한 내가 먼저 부서질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솔직해지지 못하고, 궁색한 변명을 꺼냈다.

“당신보다 내가 더 힘이 들어서 그래요.”

우리는 결국 조랑말 마차를 탔다. 이 선택은 포기가 아니라, 서로의 생을 지키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겸손이었다. 때로 인간은 걸어서 가야 할 길을, 살아서 가기 위해 타고 간다. 아내는 평생 병을 끌어안고 살아온 사람이다. 제1형 당뇨, 갑상선저하증, 고혈압, 그리고 이름조차 낯선 유사 루푸스. 하루에도 몇 번씩 인슐린 주삿바늘을 몸에 꽂아야 했고, 조금만 무리하면 응급실의 차가운 침대 위로 끌려가곤 했다. 세상은 그녀에게 ‘난치병’이라는 말을 붙였고, 때로는 ‘시한부’라는 잔인한 꼬리표까지 달았다.

그런 아내가 지금, 해발 오천을 넘는 티베트 고원을 건너고 있다. 이 장면은 이성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초모랑마 여신이 아내에게만 허락한 숨결이 있는가. 아니면 병마와 싸우며 다져진 아내의 영혼이, 에베레스트의 거친 숨결보다 더 강한 것인가.



땡그랑— 땡그랑— 조랑말 목에 달린 풍경이 고요를 깨우며 길을 흔들었다. 하늘은 유난히 투명했고, 푸르다는 말로는 다 담기지 않을 만큼 깊었다. 마부가 말했다.


“오늘은 정말 행운입니다. 에베레스트는 아무에게나 이렇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요.”


나는 아내에게 웃으며 말했다.


“여보, 당신의 간절함을 초모랑마가 들어주는 것 같소.”


저 멀리 정상에서는 바람이 눈가루를 뿌리고 있었다. 그것은 눈보라가 아니라, 정상에 꽂힌 흰 깃발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경외감이 몸 안에서 늦게, 깊게 퍼졌다.

롱부크 계곡은 이상한 풍경을 품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놓인, 세상에서 가장 깊은 바다. 아내는 재킷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그 뒷모습이 잠수부처럼 보여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 역시 비슷한 차림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고원 위가 아니라 태고의 바닷속을 여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늘은 바다보다 더 푸르고, 기암괴석들은 산호처럼 투명하게 빛났다. 에베레스트가 오래전 바다였다는 이야기들이, 전설이 아니라 감각으로 와닿았다.

계곡 깊숙이 들어서자 야크 떼가 길을 가로질렀다. 인간의 숨이 멎을 듯한 고산지대에서, 그들은 묵묵히 제 삶을 수행하듯 걸었다. 바위틈에는 산양들이 있었다. 도무지 생명이 살 수 없어 보이는 돌밭에서 그들은 풀을 뜯고 있었다. 생명은 왜 이런 곳에서 더 분명해지는가. 난치병을 안고도 이 길을 건너는 아내의 모습이 그들과 겹쳐 보였다. 생명이란, 완강하고도 위대했다.


영혼을 달래는 마부의 노랫소리

가파른 구간에 이르자 마부들은 마차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다. 키는 우리보다 작았지만 걸음은 평지처럼 경쾌했다. 그리고 노래가 흘러나왔다. 티베트 고산지대 특유의 높고 고운 음색. 가사의 뜻은 몰랐지만, 그 소리는 분명했다. 고통을 견디는 법, 삶을 계속하는 법을 노래하는 소리였다. 말들도 그 노래에 화답하듯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마부와 말의 영혼이 한 줄의 숨으로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침내 텐트 숙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초모랑마 호텔’, ‘호텔 캘리포니아’ 같은 이름을 달고, 텐트들이 마을처럼 줄지어 있었다. 그 뒤, 베이스캠프. 이 지점부터 조랑말은 더 이상 갈 수 없었다.

우리는 마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손을 잡았다.

이제 남은 거리는 불과 50미터 남짓. 그러나 그 50미터는 5킬로미터처럼 멀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고, 발걸음 하나가 몸 전체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몇 걸음 걷고 멈춰 숨을 고르고, 다시 몇 걸음 나아가 또 멈췄다. 적막한 고원에는 거친 숨소리와 심장소리만이 울렸다.

나는 티베트 사람들처럼 속으로 주문을 되뇌었다.


옴 마니 반메 훔.


그 소리 없는 염불이, 흔들리는 발밑을 간신히 고정시켜 주는 것 같았다.

아내가 비틀거리면 내가 잡았고, 내가 휘청거리면 아내가 나를 붙들었다. 내가 아내를 이끄는지, 아내가 나를 이끄는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하나였다. 우리는 서로를 오르게 하고 있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이런 순간에 몸이 되어 남는다.

그리고 마침내, 해발 5,200미터.

우리는 베이스캠프에 섰다.

울음 같은 감동이 목울대까지 차올랐다. 나는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오, 에베레스트여!”



정상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우리에게 이곳은 그 어떤 정복보다 더 높은 자리였다.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아내에게, 그리고 끝내 함께 서 있는 우리에게,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절을 올렸다.

타르초가 거센 바람에 수평으로 휘날리는 곳에서 우리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근처에는 조지 말로리와 앤드류 어빙을 기리는 추모비가 있었다. 그 위에 새겨진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Because it is there(산이 거기에 있기에 간다). -조지 말러리-


조지 말러리 추모비


그 문장은 이 자리에서 다르게 읽혔다.

산이 거기에 있어서가 아니라, 삶이 거기에 있어서 간다.

그리고 사랑이 거기에 있어서, 끝내 함께 선다.

석양 무렵, 우리는 다시 롱부크 사원으로 내려왔다. 사원에서 마주한 에베레스트의 일몰은 환상적이었다. 거대한 산정이 황금빛으로 타오르듯 변해갔고, 정상의 눈 깃발이 그 빛을 머금고 춤추다, 산은 서서히 어둠 속으로 잠겨 들어갔다. 티베트의 성자 밀라레파가 떠올랐다. 그는 이런 풍경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산정은 황금빛을 반사하네.

흘러가는 구름송이 지붕처럼 덮인 곳,

그 위로 무지개는 아름답게 빛나네.”

말은 언제나 풍경을 따라가지 못한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빛을 바라보았다.

밤, 숙소는 열악했고 냉기는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난방 장치 하나 없는 방에서 우리는 부둥켜안고 서로의 체온에 의지해 추위를 견뎠다. 산소가 부족해 누웠다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빴다. 몸을 옆으로 돌리는 사소한 동작에도 숨이 턱턱 막혔다. 보이지 않는 그물이 온몸을 옥죄는 듯한 고산병의 압박 속에서, 우리는 새벽녘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에베레스트는 결코 아무나 쉽게 품어주는 곳이 아니었다.


이른 아침, 추위에 눈이 떠졌다. 밖으로 나가니 에베레스트의 정상은 구름과 맞닿아 있었다. 아침노을이 산줄기를 보석처럼 빛나게 했다. 텐트에서 밤을 지새운 서양인 여행자들이 “원더풀”을 외쳤다. 그 한 단어가 이곳에서는 과장이 아니었다.

우리는 티베트 라면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오전 8시 30분경 초모랑마 공원 셔틀버스에 몸을 실었다. 창밖으로 에베레스트가 점점 멀어졌다. 그러나 산은 멀어져도, 아내의 뒷모습은 오래 남았다. 아픈 몸을 이끌고 끝내 이 거대한 성소에 발을 디딘 사람. 그 사람과 함께 이 길을 건넌 나.

우리는 그렇게 초모랑마 여신의 축복을 가슴에 품고 하산길에 올랐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기적은 산이 아니라,

산 앞에서 끝내 포기하지 않는 한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을.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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