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올드팅그리-라룽라-통라-니얄람-파곡하-장무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떠나던 아침, 고원은 여전히 말수가 적었다. 해발 5,200미터, 롱부크 사원 아래 펼쳐진 베이스캠프의 자갈밭은 밤새 얼었다가 풀린 숨결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초모랑마의 능선을 올려다보았다. 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미 충분히 많은 것을 건네준 얼굴이었다.
셔틀버스를 타고 통제소까지 내려온 뒤, 기다리고 있던 것은 깡파의 낡은 지프였다. 수많은 길을 기억하고 있는 차, 그리고 그 길을 닮은 운전사. 지프가 출발하자 차창 밖으로는 바람에 눕고 일어서는 타르초가 이어졌다. 이 길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고도를 하나씩 내려놓는 과정이었다.
초모랑마 공원을 벗어나 팡라 전망대로 향하는 길은 고원의 본색을 드러냈다. 흙빛 대지와 설산의 경계가 분명했고, 하늘은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 지프는 덜컹거리며 고갯마루로 올라섰고, 그 순간 히말라야의 파노라마가 한꺼번에 열렸다. 에베레스트와 로체, 마칼루의 윤곽이 겹겹이 이어졌고, 멀리 시샤팡마의 능선도 시야에 들어왔다.
지프는 다시 내리막으로 접어들었다. 길은 점점 거칠어졌고, 바람은 차창을 두드렸다. 야크 떼가 길을 가로막으면 깡파는 급히 서두르지 않았다. 이 땅에서는 인간이 양보해야 할 차례가 분명했다. 우리는 야크의 검은 눈동자를 잠시 마주친 뒤, 다시 천천히 움직였다.
한참을 달리다 지프가 멈췄다. 고원의 초원 한가운데였다. 보닛을 연 깡파의 얼굴이 잠시 굳었다. 팬벨트가 끊어진 것이다. 사방에는 바람과 풀 소리뿐,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운 장소였다. 우리는 말없이 기다렸다. 이 길에서는 조급함이 오히려 위험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먼지 기둥을 일으키며 지프 한 대가 다가왔다. 낯선 운전사는 묻지 않았고, 설명도 필요 없었다. 자신의 차에서 팬벨트를 꺼내 깡파의 손에 건넸다. 그들은 말보다 손으로 인사를 나눴다. 고원에서의 연대는 언제나 이렇게 짧고 정확했다. 차가 다시 살아나자, 깡파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동을 걸었다. 이 길에서 고장은 사건이 아니라 일상이었다.
첫 기착지인 올드 팅그리(Old Tingri)의 황량한 평원에서 바라본 시샤팡마는 고독한 성자와 같았다. 마을 어귀의 낡은 티베트 가옥들 너머로 보이는 8,027m의 설벽은, 우리가 정복했다고 믿었던 자연이 사실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경외의 대상임을 침묵으로 일깨워주었다. 아내와 나는 흙먼지 날리는 길가에 서서, 갈색 대지와 대비되는 그 눈부신 설백색의 자태를 한참 동안 눈에 담았다.
올드 팅그리에서 우리는 늦은 점심을 먹었다. 감자와 흰 죽, 라이스가 전부였지만 몸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당구대 앞에서 포켓볼을 치던 아이들의 눈빛은 놀라울 만큼 진지했다. 공은 잘 굴러가지 않았지만, 그들은 수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 마을에서 시간은 경쟁하지 않았다.
올드 팅그리를 뒤로하고 지프는 우리를 싣고 네팔 국경을 향한 긴 하산길에 올랐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길은 단순한 도로가 아니었다. 라싸와 카트만두를 잇는 이른바 '우정공로(Friendship Highway)'라 불리는 이 길은, 고대부터 구법승들과 사신들이 오갔던 히말라야의 실크로드, ‘번니고도(蕃尼古道)’의 숨결이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길이었다.
번니고도는 네팔의 부리쿠티 공주가 토번의 왕 송첸캄포에게 시집을 갈 때, 걸어온 역사적인 길이다. 송첸캄포 왕이 망역(芒域)이라는 곳까지 사람을 보내 공주를 맞이하게 하였다. 이 망역이라는 지역이 현재의 지롱거우 근처로 이곳까지 사람을 친히 보낸 것이다.
지프가 고도를 높여 라룽라(Lalung La, 5,050m)와 통라(Tong La, 5,150m) 고개에 올라섰을 때, 시샤팡마는 비로소 그 거대한 파노라마를 온전히 허락했다. 바람에 거칠게 펄럭이는 오색 타르초 사이로 보이는 시샤팡마의 주봉은, 가장 낮은 14좌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만큼 장엄했다. 이곳에서 산은 위가 아니라 옆에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고도에서 마주한 그 산은, 순례자에게 '더 높이 가라'고 채찍질하는 대신 '지금 여기서 잠시 멈추라'고 다독이는 듯했다.
시샤팡마(Shishapangma, 8,027m)는 티베트어로 '풀밭 위의 산' 혹은 '일기변화가 극심한 곳'이라 불리는 산으로, 8,000m급 거봉 14좌 중 막내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만큼 압도적인 고독을 두르고 있었다. 지프차 문을 열고 내려선 길 위에는 작은 돌탑들이 듬성듬성 놓여 있었다. 누군가 이곳을 지나며 하나씩 얹어두고 간 돌들, 저 설산을 향해 던진 무언의 기도들이었다. 아내와 나는 그들 곁에 서서 말없이 시선을 멀리 두었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세상의 끝 같으면서도, 동시에 모든 길이 다시 시작되는 자리처럼 느껴졌다.
아내의 손을 잡고 그 광활한 정적을 함께 나누던 그 순간, 우리는 깨달았다. 인생이라는 순례길 또한 이 고원처럼 때로는 황량하고 메마를지라도, 저 멀리 묵묵히 서 있는 시샤팡마 같은 희망이 있다면 다시 걸을 수 있다는 것을. 가장 낮은 8,000m 산이 가르쳐준 것은 결국 겸손이었다. 내가 산을 오른 것이 아니라, 산이 잠시 곁을 내어주었음에 감사하는 마음 말이다
발밑의 땅은 비 한 방울 머금지 못한 채 바스러질 듯 메말라 있었지만, 그 끝에 맞닿은 시샤팡마의 능선은 눈부시게 하얬다. 구름이 산허리를 감싸며 흐를 때마다, 설산은 보일 듯 말 듯 모습을 바꾸었다. 그것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유혹이라기보다, 낮은 곳에서 묵묵히 걷는 이들을 가만히 내려다보는 성자의 시선에 가까웠다.
순례자에게 이 황량함은 결핍이 아니라 비움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갈색의 고원이기에, 저 멀리 빛나는 만년설의 존재는 더욱 또렷한 구원이 된다. 아내는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한참 동안 그 풍경을 눈에 담았다.
“우리가 걸어온 길도, 멀리서 보면 저렇게 아름다운 선일까요?”
나는 대답 대신 그녀의 손을 더 꼭 잡았다. 이 길이 아름다웠는지 아닌지는, 언젠가 더 낮은 곳에 내려가서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운전석의 깡파도 익숙한 이 장면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이 길을 수없이 오갔을 그에게도, 오늘의 하늘과 산은 매번 다른 얼굴로 다가오는 모양이었다. 엔진 소리와 바람 소리가 희미해지고, 잠시 완전한 정적이 찾아왔다. 그 고요 속에서 시샤팡마는 말없이 전하고 있었다. 인생이라는 긴 순례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높은 곳에 올랐는지가 아니라, 이 황량한 대지 위에서도 꺾이지 않고 서로를 의지하며 걷는 그 마음이라고.
우리는 길가에 흩어진 돌 하나를 주워 기존의 돌탑 위에 가만히 얹었다. 무사히 이곳까지 왔다는 감사이자, 남은 생의 길목마다 이 설산의 순백 같은 평정이 함께하기를 바라는 작은 서원이었다. 다시 지프에 올라타며 고개를 돌렸을 때, 먼지 너머로 보이던 그 하얀 능선은 이미 풍경이 아니라 기억이 되어, 마음속 깊은 곳에 지워지지 않을 성소로 자리 잡고 있었다.
지프의 엔진 소리가 다시 적막을 깨웠지만, 우리 마음속에 새겨진 시샤팡마의 하얀 선은 지워지지 않을 이정표가 되었다. 국경을 지나면 우리는 곧 네팔의 번잡한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이 황량한 고원에서 마주했던 그 고귀한 침묵만큼은 오래도록 우리 부부의 삶을 지탱해 줄 것이다.
통 라(5,150미터)를 넘자 길은 곧바로 무너졌다. 고도는 급강하했고 지프는 마치 낭떠러지로 떨어지듯 내리막을 탔다. 3,800미터 니얄람. 그리고 2,300미터로 떨어지는 파곡하 계곡. 숫자는 단순했지만 은 그 변화를 고스란히 겪어야 했다. 귀가 먹먹해지고 심장은 제 박자를 찾지 못한 채 속도를 바꾸었다.
깡파는 여유를 부리며 휘파람을 불었다. 이따금 노래를 바꾸고, 갑자기 디스코 음악을 틀었다. 그의 여유는 기술이 아니라 삶의 태도였다. 니얄람을 지나자 세상은 갑자기 젖어들었다. 고원은 끝났고 파곡하 계곡의 밀림이 시작되었다.
밀라레파는 이 계곡을 지옥의 문이라 불렀다. 고원에서 단숨에 떨어지는 길, 숨이 빚처럼 따라붙는 급강하의 끝. 하늘은 멀어지고, 땅은 갑자기 가까워진다. 인간의 몸이 다시 인간의 높이를 찾는 자리다. 파곡하 계곡에 들어서면 풍경이 바뀐다. 바람 대신 물소리가 먼저 말을 건다. 돌은 젖고, 숲은 숨을 쉬며, 꽃은 계절을 앞당긴다.
천당 같은 고원에서 내려와 살아도 되는 세계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밀라레파에게 이곳은 내려놓음의 시험장이었을 것이다. 극한을 지나야 욕망이 벗겨지고, 낮아져야 비로소 길이 열린다는 뜻에서 그는 이곳을 지옥이라 불렀다. 그러나 중생의 눈으로 보면 다르다. 파곡하 계곡은 중생인 나의 눈에는 지옥의 문이 아니라 인간이 살기에 좋은 낙원의 문이다. 이 계곡은 처벌의 문이 아니라 회복의 문이다. 메마른 숨이 다시 젖고, 긴장이 풀리며, 몸이 자기 자리로 돌아오는 곳. 지옥이라 불렸던 문 앞에서 나는 비로소 숨을 얻었다.
그래서 안다.
때로 지옥은
사람을 살려 돌려보내는 문이라는 것을.
"이제 숨쉬기가 훨씬 편해졌네요."
"휴우~ 비로소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 내려왔네요."
차창 너머에는 낭떠러지가 이어졌다. 보호 난간은 성의 없었고, 바위벽은 차체에 바짝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급커브마다 지프는 몸을 기울였고, 아래로는 끝을 알 수 없는 계곡이 검은 입을 벌리고 있었다.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차 안의 공기가 함께 움츠러들었다. 말수 많던 깡파도 이 구간에서는 침묵했다. 엔진 소리와 자갈 밟히는 소리만이 길 위를 채웠다.
그때 나는 아내의 손을 느꼈다. 무의식적으로 힘이 들어갔다 풀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숨은 여전히 얕았지만, 커브를 하나 넘길 때마다 조금씩 길어졌다. 계곡 아래에서 올라오는 습기 섞인 공기가 차 안으로 스며들자, 가슴의 떨림이 잦아들었다. 낭떠러지는 계속되었지만, 몸은 서서히 이 높이에 적응하고 있었다.
숲의 밀도가 짙어질수록 공기는 무거워졌고, 산소는 풍부해졌다. 아내는 창밖의 나무들을 한참 바라보다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 숨은 더 이상 끊기지 않았다. 어깨가 내려가고, 손에 들어갔던 힘이 빠졌다. 낭떠러지의 끝에서, 비로소 숨이 완전히 돌아왔다. 우리는 그렇게 내려왔다. 두려움이 먼저 닿는 길을 지나, 숨이 살아나는 자리로.
낭떠러지가 끝나자 길은 뜻밖에도 넓어졌다. 지프는 마지막 급커브를 돌며 계곡을 벗어났고, 그 순간 세계의 온도가 달라졌다. 숲은 갑자기 뒤로 물러나고, 소리가 앞서 다가왔다. 트럭의 경적, 사람들의 목소리, 금속이 부딪히는 소음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국경 도시 장무에 들어섰다.
방금 전까지 절벽과 침묵뿐이던 길 위에는 삶의 기척이 넘쳐흘렀다. 네팔로 향하는 화물 트럭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길가 상점에서는 라디오 음악이 흘러나왔다. 먼지와 습기, 땀 냄새가 뒤섞인 공기 속에서 사람들은 분주하게 오갔다. 고원의 고요가 한순간에 밀려나고, 대신 인간의 소란이 자리를 차지했다.
아내는 창문을 조금 더 내렸다. 바람과 함께 들어온 소음 속에서도, 그녀의 숨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낭떠러지에서 몸을 움츠리던 사람이, 이제는 이 혼잡한 거리의 리듬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고 있었다. 살아 있는 세계는 늘 이렇게 시끄럽고 무질서했지만, 그 소란 덕분에 우리가 여기에 돌아왔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했다.
지프는 장무의 중심을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우리는 더 이상 높은 곳을 그리워하지 않았다. 이 소란과 냄새, 사람의 체온이야말로 지금의 우리에게 허락된 자리였다. 신들의 침묵을 지나, 인간의 소음 속으로. 그렇게 티베트의 길은 끝나고, 다음 세계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