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여 안녕!

국경의 숨결 장무에서 — 아내와 함께한 순례자의 작별 인사

by 찰라

국경의 숨결, 티베트의 긴 순례가 끝나는 자리,

그리고 또 다른 길이 숨을 고르는 곳—장무에서


세계의 지붕 티베트 고원에서 해발의 숫자가 높아질수록

말은 줄었고, 호흡은 기도가 되었다.

길은 늘 낭떠러지와 고원을 번갈아 내주었고,

티베트는 나에게 언제나 같은 질문만을 건넸다.


"얼마나 내려놓을 수 있는가."


아내의 손을 잡고 걷는 동안

순례는 속도가 아니라 동행의 윤리라는 것을 배웠다.

아픈 몸은 자주 멈추었고,

그 멈춤이 우리를 더 멀리 데려갔다.

기도는 입술보다 발걸음에 먼저 깃들었고,

희망은 결과가 아니라 오늘을 견디는 태도였다.


나는 이 땅에서

사원보다 사람의 얼굴을 더 오래 바라보았다.

묵묵히 버터차를 내미는 손,

바람에 흩날리는 타르초,

경전처럼 반복되는 하루의 노동.

종교는 장식이 아니라 삶의 골격이었고,

신앙은 명령이 아니라 자비의 습관이었다.


그래서 나는 기도한다.

티베트의 독립을,

그리고 이 고원의 숨결처럼 오래 이어질

종교·문화의 자유를.

사원이 말하게 두고, 노래가 다시 길을 찾게 하며,

아이들이 자기 말로 하늘을 부를 수 있기를.


긴 여정의 끝에서

우리는 국경을 건넜지만,

티베트는 우리 안으로 들어왔다.

아내의 느린 걸음 속에,

밤마다 고르는 숨 속에,

다음 길을 앞두고도 서두르지 않는 마음속에.


티베트여, 안녕.

안녕은 떠남의 말이 아니라

다시 만날 약속의 형식임을 나는 안다.



장무 파곡하계곡




티베트의 고원이 끝나는 곳, 그리고 네팔의 숲이 시작되는 곳. 그 경계에 장무가 있다. 이 도시는 지도로 보면 점 하나에 불과하지만, 사람의 감각으로는 한 세계가 접히고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주름’ 같은 장소다.


라싸에서 시작된 긴 여정은 여기서 비로소 숨을 고른다. 해발은 낮아지고, 공기는 갑자기 부드러워진다. 고원의 건조한 침묵 대신 습한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마치 몸이 먼저 알아차리는 변화처럼, 마음도 자연스레 긴장을 풀어놓는다. 장무는 그렇게 몸이 먼저 국경을 통과하는 도시다.


도시의 골목은 좁고 가파르다. 산비탈에 매달린 집들은 서로의 등을 기대며 살아간다. 붉은 중국식 간판과 네팔풍 상점들이 한 골목에서 어깨를 부딪친다. 상인들의 언어는 여러 갈래로 흘러가고, 화폐와 표정은 자연스럽게 섞인다. 이곳에서는 ‘국경’이 선이 아니라 생활의 리듬이다.


시장에 들어서면 삶의 온도가 더 분명해진다. 말린 과일, 향신료, 네팔 차, 중국 과자, 그리고 여행자들의 급한 숨결. 흥정은 치열하지만 웃음은 쉽게 나온다. 고원에서 내려온 사람과 저지에서 올라온 사람이 같은 가격표 앞에 선다. 장무는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 교환되는 장터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다리다. 네팔로 이어지는 그 다리는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다. 한쪽 발을 내딛는 순간, 종교의 억양이 바뀌고, 거리의 색이 달라진다. 그러나 두려움은 없다. 장무는 사람에게 말한다.


“넘어도 괜찮다. 여기서는 넘어가는 법을 이미 배웠다.”


해 질 녘, 안개가 계곡을 채우면 도시는 잠시 사라진다. 그때 비로소 알게 된다. 장무는 보여주기보다 숨기며 가르치는 곳이라는 것을. 높음에서 낮음으로, 긴장에서 이완으로, 수행에서 일상으로—이 모든 전환을 조용히 연습시키는 도시다.


나는 이곳에서 거창한 깨달음을 얻지 않았다. 대신 작은 확신 하나를 얻었다. 경계는 나를 막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바꾸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 장무는 그 사실을 소란 없이 증명한다. 그래서 이 도시는 떠나고 나서야 오래 남는다.


티베트 네팔 국경도시 장무



장무를 지나 네팔로 향하는 길


마침내,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라싸에서 출발해 고원을 가로지르고, 바람과 검문소와 설산을 지나 이 골짜기에 내려앉았다. 그 길의 대부분을 함께한 사람, 운전사 깡파가 있었다. 말수는 적었고, 핸들은 단단했다. 험한 길 앞에서는 늘 한 박자 늦게 브레이크를 밟았고, 고개를 넘을 때마다 백미러에 매단 카타가 먼저 흔들렸다. 그 흔들림이 우리를 지켜주는 부적처럼 느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장무의 작은 공터에서 차가 멈췄다. 엔진이 꺼지자, 고원의 시간도 함께 멈춘 듯했다. 깡파는 말없이 트렁크를 열어 배낭을 내려주었다. 오래 달린 차에서 풍겨오는 먼지와 기름 냄새가 유난히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악수를 나누는 대신, 우리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많은 말을 건너온 사이에는, 적은 말이 더 정확하다.


"미스터 깡파, 타시 델렉."

"초이, 타시 델렉."


우리는 그 한마디에 지난 수천 킬로미터가 접혔다.


"미스터 깡파, 툽체제."

"초이, 툽체제."



이별은 늘 짧다. 그러나 짧을수록 깊다. 깡파의 얼굴에는 고원의 주름이 있었다. 그 주름 속에는 수많은 여행자들의 시작과 끝이 포개져 있을 것이다. 그는 다시 운전석에 앉아, 또 다른 누군가의 길을 책임질 것이다. 차가 천천히 멀어질 때, 우리는 손을 흔들지 않았다. 이별을 과장하지 않는 것이 이 땅의 예의이기 때문이다.


내일 우리의 발걸음은 네팔 국경을 향한다.

우정의 다리를 건너면 네팔의 숲이 열린다. 공기는 더 따뜻해지고, 색은 갑자기 많아진다. 사람들의 걸음이 빨라지고, 웃음의 음계가 바뀐다. 고원의 침묵을 등에 업은 채, 우리는 낮은 땅의 소란 속으로 들어간다. 그 소란이 반갑다. 순례는 고요에서만 자라지 않는다. 때로는 시장의 소음 속에서 더 단단해진다.


그리고 마음은 이미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신의 나라 네팔, 그리고 인도로... 카트만두를 지나, 갠지스의 물소리를 향해—인도로 이어질 또 하나의 순례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먼저 움직인다. 인도는 늘 질문이 많은 땅이다. 신과 인간의 거리가 가장 가깝고, 삶과 죽음이 같은 골목을 공유하는 곳.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무엇을 내려놓고, 무엇을 더 안게 될까.


장무의 안개가 계곡을 채운다. 뒤돌아보면 티베트는 이미 흐릿하다. 그러나 흐릿해질수록 더 선명해지는 것이 있다. 함께 건너온 길의 무게, 무사함에 대한 감사, 그리고 다음 걸음을 향한 설렘. 이별은 끝이 아니다. 이별은 다음 순례를 가능하게 하는 숨이다.


깡파와 헤어진 자리에서, 나는 조용히 합장한다. 고원을 건너게 해 준 손에 감사하고, 낮은 땅으로 이끄는 길에 마음을 연다. 장무에서 하룻밤을 묵고 내일 아침 우리는 다시 새로운 순례길을 떠난다. 설렘을 배낭에 넣고, 다음 세계로. 티베트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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