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서울~홍콩~암스테르담
"아빠, 오늘은 공항까지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
"나중에 혼자 돌아갈 때 힘들 텐데……."
"괜찮아요. 이번 여행은 좀 길잖아요. 오랫동안 뵙지 못하는데……."
굳이 말리는데도 둘째 딸 경이가 자동차에 시동을 건다. 큰 아이 영이는 오늘이 일요일이라 교회에 가고 없다. 공항에 나오는 대신 교회에 가서 아빠 엄마의 무사 여행을 기도하겠단다. 영이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영이가 교회를 나가기 시작한 후 아직까지 한 번도 일요일 예배를 거른 것을 본 적이 없다.
우리 내 식구는 각자가 개성이 뚜렷하고 종교도 다르다. 그러다 보니 서로 충돌하는 일도 많지만 그래서 또 균형을 서로 이루고 사는지도 모른다. 종교의 자유, 개성의 자유……. 우리는 그렇게 산다. 허지만 오늘만은 우린 점심을 함께 했다. 아이들이 성장하다 보니 각자 하는 일이 달라서 때맞추어 함께 식사를 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우리 집의 주요 행사는 모두 가을철에 모여 있다. 9월 22일 영이의 생일, 11월 7일 경이의 생일, 11 월 11일은 우리의 결혼기념일....... 그래서 우린 오늘 점심때에 세 가지의 축하파티를 동시에 열었다. 내가 점심을 샀고, 경이가 하트 모양의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샀다.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 대낮에 때 아닌 촛불을 켰다. 만 원짜리 케이크 하나로 두 아이의 생일파티와 우리 부부의 결혼 30주년 기념 파티를 앞당기고 뒤 당겨 동시다발로 진행하게 된 것.
“아빠, 엄마 잘 돌봐 드리고, 엄마는 아빠 말 잘 경청해야 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첫째도 건강, 둘째도 건강.......”
“오냐, 잘 알았다. 너희들도 잘 지내야 한다.”
"밥들 잘 챙겨 먹어라. 김치도 담가 놓았으니 잘 먹고……."
"엄마, 또 그 밥 타령. 저희들 걱정 붙들어 매세요. 엄마나 맛있는 것 많이 사 드세요. 비싸다고 괜히 영양실조에 걸리지 마시고……."
“그래, 잘 알았다. 그리고 이건 서랍에 넣어 두었다가 만약에 아빠와 엄마가 여행 중 어떤 비상사태에 직면했을 때만 꺼내 보거라. 이건 말이야, 만약을 위한 거야.”
“네, 아빠.”
둘만 떠나는 배낭여행. 짐은 각자 큰 배낭 하나, 작은 배낭 하나가 전부다. 장기간 세계일주 여행을 떠나는 여행자는 무엇보다도 짐이 가벼워야 한다. 배낭의 무게가 10kg을 넘어가면 배낭여행은 어려워진다. 꼭 필요한 것만 챙기고 부족한 것은 현지에서 조달하여 사용하면 된다. 허지만 아내의 배낭은 좀 복잡하다. 인슐린 주사기 500개, 인슐린 10개, 혈압약, 갑상선 저하증 약, 이뇨제 등 약만 작은 배낭에 다 채우고도 공간이 부족할 정도다. 사실 아내는 움직이는 종합병원 같은 존재다. 언제 어디서 돌발 상황이 일어나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로 갈 줄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다.
허지만, 아내는 이상하게도 여행을 떠나면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집에 있으면 수시로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가거나 병원에 입원을 하는 사태가 자주 일어나는데, 여행만 떠나면 내가 언제 아팠냐는 듯 멀쩡해진다. 도대체 그 이유를 나는 확실히 모른다. 다만, 여행은 아내를 치유하는 기적 같은 명약이라는 것만은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선다. 응급실로 실려 가거나 병원에 입원해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여행을 떠나는 편이 나로서도 좋기 때문이다.
여행비용은 마지막 남아있는 집 한 채를 점점 줄여가며 기둥뿌리를 하나씩 헐어가면서 조달하고 있다. 강남에서 강북으로, 강북에서 경기도로, 경기도에서 시골로.... 이렇게 여행을 떠나면 떠날수록 우리들의 거쳐는 서울 도심에서 점점 멀어지고, 크기도 점점 작아져 간다. 그러나 얻는 것도 있다. 서울 도심에서 멀어질수록 공기는 점점 맑아지고 생활은 단순해져서 마음은 더 편하다.
마지막으로 나는 108 염주와 금강경, 그리고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함께 찍은 빛바랜 사진 한 장을 작은 배낭 속에 부적처럼 소중하게 챙겨 넣었다. 어쩌면 이 부적들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건네주는 것은 유서가 든 봉투를 건네주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여행을 떠날 때에는 유서를 남기고 떠난다. 그래야 마음이 홀가분하다. 아이들도 처음에는 유서를 받는 것을 꺼림칙하게 생각을 하다가 자주 여행을 떠나다 보니 이제는 익숙해졌다.
원월드(Oneworld) 세계일주 항공권으로 떠나는 이번 세계일주 여행은 공교롭게도 108일간으로 일정이 짜여졌다. 중복 여행지를 빼고 여행루트를 짜 보니 4대륙에 30여 개국이 되었다. 원월드 세계일주 항공권은 어느 방향으로든 순방향으로 지구를 한 바퀴 돌게 되어 있다. 나는 노르웨이 최북단 북극권으로 가서 하늘의 쇼인 오로라를 보고, 지구의 최 서단 포르투갈의 로가 곶으로 가서 대서양을 건너 남미의 최남단 우수아이아를 돌아 호주 대륙으로 돌아오는 세계일주 루트를 지도 위에 그렸다. 그리고 항공루트도 그렇게 예약을 했다.
인류 최초로 세계일주 항해를 한 마젤란은 5척의 선박과 승무원 270명을 이끌고 스페인 세비야를 출발하여 세계일주 항해에 나섰다. 그러나 그는 불행하게도 필리핀 막탄 섬에서 원주민 들의 공격을 받고 비참하게 살해되었고, 최후의 생존자 18명만이 스페인 세비야에 도착하여 인류 최초의 세계일주에 성공하였다.
어쨌든 나는 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내와 단 둘이서 '108일간의 세계일주'를 떠나고 있었다. 그 어떤 누구도 우리를 돌보아 줄 사람은 없다. 내 손에는 세계일주 지도 한 장과 여행안내서인 '론니플래닛' 한 권이 전부다. 물론 우리가 여행을 떠날 당시에는 스마트 폰은 고사하고 핸드폰도 없었다. 인터넷을 이용하기도 그리 쉽지가 않았다. 게스트 하우스나 호스텔의 컴퓨터는 안질이 날 정도로 느리고 그것도 차례를 기다려야만 겨우 이용을 할 수 있었다. 앞으로 우리들에게는 어떠한 위험이 닥쳐올지도 모른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우리는 용기 하나로 세계일주의 닻을 올렸다.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쓴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은 실제로 여행을 떠나지도 않고 공상 속에서 소설을 썼지 않았는가? 나는 아내와 단 둘이서 배낭을 메고 세계일주를 다녀온 후 나만의 세계일주 여행기를 써보고도 싶었다.
공항이다. 공항은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이별의 냄새가 더 짙게 풍기는 곳이다. 인천공항 터미널에 도착하여 핸들을 잡고 있는 아이의 볼에 이별의 키스를 했다. 경이는 나의 품에 안겨 한 동한 그렇게 있었다. 아내도 목이 메어 말을 잘 못한다. 공항의 이별.......
이별은 언제나 찡하고 코끝이 시큰 거린다. 가슴도 괜스레 아지랑이가 가물거리듯 울렁거린다. 우리가 무거운 배낭을 걸머지고 공항 문을 들어설 때까지 경이는 손을 흔들며 이별을 아쉬워한다. 나는 새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 다는데……. 빨리 들어가자. 그래도 고개가 저절로 뒤로 돌아간다. 바이 바이…….
탁탁. 마치 로봇 인간처럼 무표정한 출국심사대의 직원이 여권에 출국 확인 스탬프를 찍어주었다. 9월 28일 오후 7시 55분, 홍콩행 케세이패시픽 항공 CX 419 점보기는 요란한 굉음을 내며 창공으로 솟아올랐다.
“드디어… 가는군요!”
비행기가 하늘로 솟아오르자 비로소 아내는 이제야 여행을 떠나는 실감이 나는 모양이다.
“당신이 그렇게도 하고 싶었던 세계 일주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어떻소?”
“나는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솟아올라가는 순간 무한한 해방감을 느껴요! 이건 기적과도 같아요. 마치 비행접시를 타고 붕~ 하고 날아가는 것 같아요!”
“저런!”
마지막 탑승 수속인 출국심사대를 빠져나오는 순간 아내는 무한한 해방감을 느낀다고 한다. 공항터미널 전체가 마치 비행접시처럼 붕~ 뜰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한다. 그리고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 로마의 콜로세움 같은 원형 경기장이 휭~ 하고 우주를 향해 날아가는 기분이 든다고 한다. 얼마나 여행이 좋으면 그런 기분이 들까? 아내는 꿈 많은 소녀처럼 이미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런 당신 기분은 어떤가요?”
“흠… 난, 이미 한 마리 새가 되어 창공을 훨훨 날아가고 있어요.”
그랬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 나는 언제나 한 마리 새가 되어 하늘로 훨훨 날아가는 기분이 들곤 한다. 날갯짓을 하며 창공으로 힘껏 솟아오르는 자유! 어린 시절, 나의 꿈은 한 마리 새가 되어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것이었다.
마침내 허공에 우리 둘만 남는다. 그 ‘몇 초 사이’에 우리는 모든 것을 잊어버린 채 해방감에 젖는다. 불과 ‘몇 초 사이에…’ 비행기가 이륙을 할 때에는 짜릿한 쾌감과 더불어 이 순간이 새로운 출발점임을 상기시켜 준다. 하늘로 치솟아 오른 비행기는 우리 두 사람을 지상의 모든 것들로부터 분리시켜 버리고 완벽한 해방감을 느끼게 해 준다. 이 순간보다 더 큰 해방감을 주는 시간은 없다.
나를 옭아매었던 모든 사소한 것들이 생선 비늘처럼 툴툴 떨어져 내린다. 텔레비전, 신문, 전화, 핸드폰, 인터넷, 자동차의 소음과 매연, 각종 고지서, 청첩장 등과 연결된 잡다한 코드가 내 몸에서 싹 뽑혀 떨어져 나가며 일종의 카타르시스적인 오르가슴까지 느끼게 된다. 그리고 육상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어떤 야릇한 영감들이 스크린처럼 점점이 스쳐 지나간다. 그것은 하나의 기적 같은 일이다.
“마침내 … 우리 둘만 남았군요!”
"그렇군!"
드디어 우리는 ‘둘만 떠나는 여행’ 길에 들어선 것이다. 하늘에 떠다니는 비행기만 보아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낀다는 아내. 부부의 인연을 맺은 날부터, 아니 그 훨씬 이전의 전생부터 우리는 ‘둘만 떠나는 여행’을 시작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들은 “희망여행”의 돛을 올렸다. 나를 만나 반세기 동안을 줄기차게 일만 하며 치열하게 살아온 아내에게는 적어도 그럴만한 권리가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니 영종도의 활주로엔 눈부시게 아름다운 노을이 지고 있다.
홍콩행 비행기 안에는 거의가 젊은 꽃띠 허니문 커플로 가득 차 있었다. 커플 티셔츠, 커플 가방, 커플 신발… 입고, 신고, 들고 있는 가방까지도 커플로 세트를 이루고 있는 신혼부부가 많다. 얼굴마저 쌍둥이처럼 닮아 보인다. 9월은 허니문 시즌이 아닌가!
“모두가 허니문 일색 이내! 우리가 가장 나이가 들어 보이는군요.”
“무슨 소릴. 우리도 이제 겨우 서른 살뿐인데.”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예요?”
“말이 되지. 우리도 오늘 결혼 30주년 허니문을 떠나는 날이 아닌가. 그러니 이제 서른 살이지. 당신은 그보다 더 예 띠게 보여. 마치 스무 살 처녀처럼. 그러니 우리는 영원한 꽃띠 허니문이 아니겠소?”
“아이고, 그만해요.”
아내의 귀 뿌리가 붉어지며 볼이 상기되었다. 여자란 이럴 때가 가장 아름답다. 여행 중에 만난 외국인들은 우리들의 나이를 실제로 삼십 대로밖에 보지 않는다. 서양인들은 대체로 동양 사람들의 나이를 적게 보는 경향이 있다. 특히 우리 한국 사람들의 나이는 더 적게 본다. 아마 사계절 싱싱한 김치를 먹은 덕분이 아닐까? 어쨌든 비행기를 타고 가는 지금 우리들의 나이는 30대다. 나이는 자기가 생각한 데로 먹는다. 열 살 먹은 아이가 어른 행동을 하면 애늙은이가 되고, 여든 살 먹은 노인이 생각을 젊게 하면 소년이 된다. 나이는 그 사람의 생각대로 먹게 된다. 단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 인생이 아닌가? 그러니 이왕지사 나는 영원한 꽃띠 허니문처럼 살고 싶다.
비행고도를 높여 항로를 찾은 비행기는 마침내 고요해졌다. 엔진 소리는 이미 시끄러운 소리가 아니다. 여행자들에게 그것은 자장가와 같은 소리다. 비행기가 날아가는 서쪽 하늘엔 어슴푸레 붉은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태양이 지고 난 다음 남아있는 황혼의 잔영. 그것은 붉은 적포도주 빛깔과도 같다. 저 포도주 빛깔을 마시며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어지는 분위기다. 붕 떠 있는 하늘 위를 날다 보면 마음은 이렇게 소년과 소녀처럼 순수해지고 만다.
“왓 카인드 업 드링크?(드링크는 무엇으로 하실까요?)”
“레드 와인 플리스(붉은 포도주로 주세요).”
때마침 여자 승무원이 정말로 하늘 빛깔과 같은 적포도주를 맑은 잔에 가득 부어주었다. 글라스에서 영롱하게 빛을 발하는 붉은 와인. 우리는 적포도주 잔을 들고 서로 마주 보았다. 여기저기서 와인 잔을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허니문의 꿈이 부딪치는 소리였다. 갑자기 기내에 사랑의 분위기가 가득 고조되었다. 붉은 포도주 잔을 부딪치는 모습이 마치 입술과 입술이 부딪치는 것처럼 보였다. 허니문을 떠나는 신랑 신부들은 포도주 잔을 기울인 다음 키스를 서슴없이 주고받았다. 역시 신세대는 달랐다. 감정표출이 거리낌이 없다. 바로 내 옆자리에 앉은 신혼부부도 포도주를 마신 후 진한 키스를 했다. 모두가 둘만 떠나는 여행의 자유로움을 그들은 만끽하고 있었다.
황혼을 뚫고 날아가는 비행기
붉은 포도주처럼 아름다운 하늘
아, 오늘 밤은 모든 걸 잊고
저 붉은 하늘을 마시고 싶다
취하고 싶다!
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주위를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 좋고 싫음의 표현을 여과 없이 대담하게 하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더 솔직하고 뒤 끝이 없는지도 모른다.
“자, 여보, 우리도 한 잔!”
“좋지요!”
“우리의 허니문을 위해 건배!”
“건배!”
아내와 나는 서로 마주 보며 잔을 부딪쳤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아픔도, 슬픔도, 삶의 고통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오직 와인 두 잔에 마음이 모아졌다.
“우리도 저들처럼 키스를 한번 해볼까?”
“애고! 제발 그만….”
“마음속으로는 키스를 하고 싶다 이거지?”
“이이가 정말.”
아내의 얼굴이 다시 붉어졌다. 이럴 때는 정말 소녀처럼 보인다. 포도주를 한잔 하고 잠시 눈을 붙였는데 벌써 홍콩 공항에 곧 착륙을 한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마음이 즐거우면 이렇게 시간이 짧아진다.
“여보, 내릴 준비를 해야 해요.”
“어? 벌써 다 왔나?”
비행기는 불빛이 반짝이는 홍콩의 빌딩 숲을 향해 하강을 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지구별. 우리가 탄 비행기는 지구로 떨어지는 별처럼 서서히 홍콩 비행장으로 하강했다. 현지시각 22시 30분.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비행기는 24시 5분에 있었다. 짐은 직접 암스테르담까지 가도록 붙였으니 비행기만 갈아타면 된다. 세계일주 항공권은 가격이 싼 대신 지정된 항공사 비행기로 갈아타야 한다. 노선을 따라 목적지를 한 방향으로 우회하여 가는 것이다. 유레일패스가 육지에서 기차를 타고 자유롭게 여행을 한다면, 세계일주 항공권은 하늘을 나는 스카이패스인 샘이다. 기차에서 노숙을 하듯이 오늘 밤은 하늘 길에서 별을 바라보며 노숙을 하게 되었다.
홍콩의 공항터미널은 복잡하고 부산하다. 홍콩은 비행기를 갈아타는 허브 역할을 한다. 섬 전체가 공항처럼 보인다. 공항은 비행기를 갈아타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천장에 줄줄이 매달린 모니터의 화면에서는 도착과 출발을 알리는 비행기의 스케줄이 태엽처럼 감겨간다.
여행자들은 천장에 매달린 모니터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자기가 탈 비행기의 시각과 탑승게이트가 확인되면 바퀴가가 달린 가방을 드르륵 드르륵 소리도 요란하게 끌고 부산하게 멀어져 갔다. 공항은 시끄러운 소음으로 가득 차 있지만 이상하게도 소음으로 들리지 않는다.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는 생각, 또 새로운 도착지에 대한 설렘은 시끄러운 소음이 마음속을 비집고 들어올 틈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모니터를 자세히 살펴보니 암스테르담행 CX271 비행기는 4번 게이트라는 표시가 보였다.
“몇 번 게이트인가요?”
“4번 게이트야.”
“그럼 저쪽이에요.”
게이트를 통과하여 탑승 대기실로 들어서니 마치 인종 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모습이 각기 다른 승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사람들은 절반은 누워있고, 절반은 앉아서 졸고 있거나 책을 보고 있었다. 홍콩은 한국보다 1시간 늦게 간다. 그러니 자정이 넘은 시간이다. 아내도 피곤한 모양이었다. 빈 의자를 발견하다니 아예 길게 누웠다.
“아니, 벌써부터 누우면 어떡하려고?”
“쉴 수 있을 때 편하게 쉬여야지요. 당신도 저기 빈 의자에 좀 누워요.”
떠나기 전의 긴장이 풀리니 피로가 몰려온 모양이었다. 아내는 여러 차례 여행으로 이미 '배낭여행자의 수칙'을 체득하고 있었다. 배낭여행장의 휴식 방법은 아무데서나 ‘쉴 수 있는 기회가 올 때 편히 쉬어라’이다. 세계일주 여행은 마치 마라톤 같기도 하고, 대하소설이나 장편소설을 지금 막 쓰려고 하는 작가의 심정 같기도 하다. 세계지도를 펴 놓고 여행 계획을 짤 때에는 여행을 떠난다는 생각으로 부풀어 올라 그저 신나기만 했었는데, 공항의 의자에 길게 누워있는 아내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갑자기 뒷골이 지근거렸다.
암스테르담행 CX 271 비행기는 만원이었다. 다른 색깔을 가진 얼굴을 가진 사람들의 입에서, 각기 다른 언어가 동시 다발적으로 불협화음을 내면서 귓전을 때렸다. 지금부터 우리는 지구촌을 떠도는 이방인 신세가 되는 거다.
“분위기가 너무 확 달라지는군요.”
“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들이 우리를 슬프게 만들어요.”
어찌하여 바벨탑은 무너지고 말았을까? 세상의 언어를 하나로 다시 통일할 수는 없을까? 성경에 의하면 니므롯 신의 지위와 동일시하는 바벨탑을 쌓으며 교만을 부리다가 하나님의 벌을 받았다고 한다. '야훼께서 온 세상의 말을 거기에서 뒤섞어놓아 사람들을 온 땅에 흩으셨다고 해서 그 도시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불렀다(-창세기 11장 9절). 하나님은 니므롯이 쌓아온 바벨탑을 허물어 버리고 그때까지 단 하나의 언어로 의사소통을 해 왔던 언어를 각 종족별로 언어를 다르게 해 버렸다. 성경대로라면 인류는 ‘니므롯의 교만’ 때문에 외국어에 시달리는 슬픔을 갖게 된 것이다.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비행기는 마치 무너진 바벨탑이 날아가기라도 하듯 온 세상에 흩어진 사람들이 다양한 언어로 뒤섞여 있었다. 무거운 배낭을 걸머지고 다니는 것 만해도 충분히 서러운데, 언어의 장벽은 우리의 여행길을 어렵게 한다. 무라카미 하루끼는 이를 ‘슬픈 외국어’라고 표현했다.
암스테르담까지는 12시간이 넘게 걸린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이럴 땐 와인을 한 잔 마시고 잠이나 푹 자두는 것이 상책이다. 때마침 여자 승무원이 와인 병을 들고 지나갔다. 투명한 플라스틱 컵에 적포도주를 가득 부어주며 “에니씽 엘스?” 하고 물었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자 그녀가 알아듣고 지나갔다. 그래, 슬픈 외국어로 굳이 말하지 않아도 돼. 바디랭귀지란 만국 공통어가 있으니까. 언어가 통하지 않은 나라에서는 아내가 이 만국 공통 언어를 더 잘 구사한다. 그럴 때 아내는 나의 통역사가 된다.
포도주를 한 잔 마시고 나니 모든 기억이 아득해지고 걱정도 사라졌다. 그런데 비행기가 갑자기 흔들렸다. 좌석 위에 있는 천장에 안전벨트 사인이 들어왔다. 평소 같으면 불안한 생각으로 걱정이 될 텐데 지금은 오히려 롤러코스트를 탄 듯 스릴이 넘치는 쾌감까지 느꼈다.
“이럴 땐 비행기도 꼭 취한 것 같아요.”
“불안해?”
“아니요. 전혀.”
흔들리는 비행기나 배를 탈 때에도 아내는 전혀 멀미를 하지 않는다. 아내는 아마 천성적으로 여행을 하기에 적합한 체질로 태어난 모양이다. 한동안 흔들리던 비행기가 다시 정상적으로 수평을 유지하자 아내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 잠을 자고 있는 아내의 얼굴이 평온해 보였다. 방안의 침대에서 잘 때 보다 더 편안한 모습이었다. 눈이 슬슬 감기고 나는 핑크빛 계단을 따라 어디론가 올라갔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고 있는 것일까?
얼마나 잤을까? 눈을 떠보니 하늘엔 여명의 빛이 밝아 오고 있었다. 비행기 화면에는 암스테르담에 거의 도착하고 있는 지도가 비추어지고 있었다. 현지시각 아침 6시 40분. 비행기는 지구로 떨어지는 별처럼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을 향해 부드럽게 하강을 했다.
암스테르담은 나를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이 번으로 유럽여행을 네 번째 오게 되는데 공교롭게도 네 번다 암스테르담을 경유하고 있으니 말이다. 무엇이 나를 잡아당기고 있는 것일까? 나는 여행 계획을 세울 때에 북유럽으로 가는 관문을 주저 없이 암스테르담으로 결정했다.
바다보다 낮은 땅, 자전거, 운하, 운하를 연결하는 다리, 정겨운 벽돌집, 튤립, 치즈, 히딩크, 그리고 빈센트 반 고흐와 렘브란트, 허용되는 마약, 하이네켄 맥주, 세계에서 가장 큰 홍등가… 암스테르담에 발을 내딛는 순간 나는 왠지 내 영혼이 자유로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곳에는 중압감을 주는 원형기둥이나, 베르사유 같은 거대한 궁전도 없다.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여유롭게 활보한다. 자유롭다. 아마 이 자유로움이 좋아서 암스테르담을 매번 들리는지도 모르겠다. 비행기에서 내려 통로를 빠져나오자 말자 젖소가 먼저 눈에 띄었다.
“아니, 공항에 웬 젖소가?”
“낙농 대국답군. 젖통에 우유가 가득 차 있어.”
네덜란드는 바다보다 낮은 땅을 기름진 땅으로 일구어 낙농업을 부흥시킨 위대한 나라이다. ‘신이 자연을 창조했다면, 네덜란드는 인간이 만들었다!’ 말처럼 네덜란드는 물과의 끓임없는 투쟁으로 바다를 개척해 국토를 만든 간척지의 대국이다. 국토의 절반 이상이 해수면보다 낮다.
우리는 세계일주의 첫 기착지인 스키폴 공항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비록 환영을 나온 사람은 없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역사적인 날이 아니겠는가. 배낭을 메고 밖으로 나오니 가을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었다.
배낭여행자가 낯선 여행지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숙소를 정하는 일이다. 낯선 도시에 도착한 첫날 무거운 배낭을 등에서 내려놓고 몸을 가볍게 해야 한다. 괜히 당황하여 두리번거리다가는 도둑이나 강도의 표적이 되기 쉽다. 최소한 첫날 머물 숙소는 미리 예약을 하거나 위치와 도착하는 방법 등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헤매지 말고 곧바로 도착할 수 있어야 한다.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을 해두었던 ‘스테이오케이 호스텔’은 다운타운의 복잡한 운하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기차를 타고 중앙역으로 가서 다시 트램이나 지하철을 타고 도착을 해야 한다. 중앙역으로 가는 기차에 오르니 열차 안은 한가했다. 가을비가 여전히 추적추적 차창을 때리고 있었다.
“어머, 저기 무지개를 좀 봐요!”
“어디?”
아내가 환성을 지르며 가르치는 동쪽 하늘에는 정말 아름다운 쌍무지개가 길게 걸려있었다. 여행 첫날 행운의 상징인 무지개를 바라보니 마음이 무척 경쾌해졌다. 참으로 이상했다. 5년 전 런던에서 도버해협을 지나 암스테르담으로 왔을 때에도 쌍무지게가 우리를 반겨주었는데, 오늘도 멋진 무지개가 마치 우리를 환영이라도 하듯 걸려 있었다.
무지개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통로이다. 천국으로 가는 다리. 북유럽의 신화에서는 세계의 종말이 올 때까지 ‘헤임달’이라는 신이 무지개다리를 지킨다고 하는데… 북유럽을 가는 우리들의 앞날에 어떤 행운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일까? 헤임달은 북유럽으로 가는 무지개다리를 우리들 앞에 놓아주고 있는 것일까?
기차는 무지개를 따라서 달려갔다. 중앙역에서 내려 트램을 탔다. 트램은 느리게 거북이처럼 천천히 출발했다. ‘암스텔’이라는 강을 ‘댐’으로 막아서 건설한 ‘암스테르담’은 수많은 운하와 다리가 부채꼴 모형으로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다.
“꼭 동화 속의 도시에 온 느낌이 들어요!”
“무지개가 다리를 타고 천국에 온 기분이 든다 이거지요?”
아내는 소녀처럼 볼이 상기되어 있었다. 이 순간에 심신의 병이 치유되고 있는 것이다. 거미줄처럼 얽힌 운하에는 작은 배들이 둥둥 떠다니고 운하와 운하 사이를 연결하는 수많은 다리 위로는 자전거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었다. 햇빛에 반짝이는 은륜 페달을 밟으며 젊은 남녀들이 싱싱 지나가는 거리는 활력이 넘쳐 보였다. 개인의 자유와 관용을 중요시하는 도시답게 마약에 관대한 암스테르담은 게이들의 천국이기도 하다.
암스테르담은 언제 와도 편한 도시다. 천국이 따로 없다. 내가 좋으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다. 천천히 달려가는 트램 위에 앉아있으니 거리의 표정이 확연하게 들어왔다. 연분홍 벽돌에 묘한 흰색의 모르타르를 붙여놓은 건물은 단순하고 정감이 갔다. 유럽의 다른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압감을 주는 원형기둥이나 대리석 건물도 보이질 않는다.
커튼도 없는 하얀 틀로 된 커다란 창문이 단조롭게 달려있고, 집집마다 대문 앞에는 자전거들이 한두 대씩 세워져 있다. 다리 밑 운하에는 작은 배들이 느리게 지나가고 다리 위로는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여유롭게 달려간다. 장식이 별로 없는 편한 벽돌 건물들은 수수하면서도 질서와 청결을 유지하고 있었다. 트램을 타고 가는데 커튼 없는 창문 속에 집 내부의 정경이 내다 보였다. 지나가는 관광객이 신기해서 집안을 들여다보아도 네덜란드인들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종교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죄를 짓지 않고 떳떳이 살아가는 자는 결코 창문을 가리지 말지어다. 숨길 것이 없다는 것을 당당히 보여주라!” 16세기 종교개혁가인 칼뱅의 영향을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는 것. 갈수록 담벼락을 높이고, 철조망을 치고, 도난 경보기까지 달아도 불안해하는 세상과는 퍽 대조적인 모습이다.
트램 운전수가 내려준 정류장에서 호스텔을 찾아가는 데, 비슷한 운하와 거리가 막 헷갈려 도통 감이 잡히질 않았다. 마침 한 떼의 젊은 들이 자기 키보다 큰 배낭을 걸머지고 운하를 건너오고 있었다. 분명히 호스텔에서 나온 반가운 배낭족들 이리라.
“혹 스테이오케이 호스텔에서 머물지 않았나요?”
“네, 그런데요?”
“그 호스텔이 어디쯤 있지요?”
“하하, 바로 이 앞 건물입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배낭족이 웃으며 가르친 쪽을 바라보니 바로 앞에 브라운 색 벽돌에 호스텔 마크가 콩알처럼 작게 붙어있었다. 이렇게 간판이 적으니 그 앞을 뱅뱅 돌면서도 발견을 못했던 것. 유럽의 간판들은 거의가 작다. 우리나라처럼 간판으로 도배를 한 도시는 없다.
“아니, 그렇게 공부를 많이 하고서도 호스텔을 찾는데 이처럼 더듬거려서야… 앞으로 고생문이 훤히 보이네요?”
“허허, 하지만 여긴 한국이 아니고 암스테르담이라오.”
“그래도 그렇지요. 당신의 그 엉뚱한 길눈이 첫날부터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고 있어요.”
“미안 미안. 난 원래 길치 아니요. 하하하.”
나는 원래 길눈이 어둡다. 자동차 운전을 할 때에도 길눈이 어두워 항상 아내에게 핀잔을 맞는다. 곧 잘 엉뚱한 길로 들어서기가 일쑤여서 아내로부터 쉴 새 없는 질책과 투정을 받는다. 아내의 투정이 없으면 좀 심심할 정도다. 그러나 아내의 말은 잔소리 같지만 다 옳은 소리다. 그래서 내비게이션에 나온 여자 말과 아내의 말을 들으면 손해가 없다는 말이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이 여행길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어눌한 영어 몇 마디와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다는 용기뿐이다. 이렇게 길눈이 어두운 나만을 믿고 긴 여행을 따라나선 아내는 내가 첫날부터 길을 헤매자 불안한 모양이었다. 나는 거꾸로 가나 앞으로 가나 서울만 가면 되지 않겠느냐는 식이다. 어쨌든 숙소를 찾았으니 말이다.
하얀 모르타르가 칠해진 문을 열고 들어가니 머리를 빡빡 깎은 종업원이 헤헤 웃으며 동양에서 온 이방인을 반겨주었다. 그런데 방은 20명이 함께 사용하는 도미토리룸 밖에 없다고 했다. 우리가 부부라고 하니 그나마 1층 침대와 2층 침대가 붙어 있는 성냥갑 같은 침대로 특별배정을 해준다고 하며 그는 씩 웃었다.
암스테르담의 호스텔은 언제나 만원이다. 아침 8시경인데도 여행자들은 층층이 쌓인 침대에 누에고치처럼 아직 단잠을 자고 있었다. 유럽의 호스텔은 거의 남녀 혼숙이다. 여기저기 남녀가 어지럽게 침대에 누워있었다. 이들을 깨워서는 안 될 일. 도대체 어젯밤에 무엇들을 하고 아직까지 늦잠을 자고 있지? 우리는 살금살금 걸어가 아내는 1층 침대에 나는 2층 침대에 짐을 풀었다.
♣여행은 기적을 낳는다! 깃털처럼 가볍게 떠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