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찰라 Dec 24. 2018

6. 기차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코펜하겐-오슬로-베르겐으로 가는 기차여행


우리는 오로라가 보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북구의 하늘 밑으로 달려가 하늘을 휘황찬란하게 수를 놓는 오로라를 바라보고 싶었다. 그러나 정보에 의하면 오로라는 한 겨울에 출현할 가능성이 훨씬 더 많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여행자는 9월이나 10월에도 오로라를 보았다고 했다. 그러니 운이 좋으면 한여름에도 오로라를 볼 수 있다는 것. 반면에 재수가 없으면 한겨울인 12월이나 1월에도 오로라를 전혀 보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한다. 어쨌든 우리는 하늘이 펼쳐지는 멋진 쇼 오로라를 보고 싶었다. 그래서 오로라 출현 확률이 조금이라도 많은 날을 맞이하기 위해 북극권으로 가는 날짜를 늦추기로 했다. 


아침 일찍 베르겐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호스텔을 나서는데 호스텔 앞 정원에는 빨간 열매가 흐드러지게 달려 있었다. 코펜하겐의 국철인 ‘S-TOG’는 기관사가 없다. 역에도 역무원이 없는 곳이 대부분이고 승차권 검표도 하지 않는다. 거기에다가 흡연차량이 전체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때문에 아내와 나는 흡연 칸을 피하느라 애를 먹어야 했다. 기차에서 출퇴근을 하면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덴마크는 과연 애연가들의 천국이라고 할만도 하다.


▲공룡의 등뼈를 연상케 하는 코펜하겐 중앙역


기관사가 없는 국철은 홀로 멈추고 출발했다.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이 기차를 몰고 있는 느낌이랄까? 깃발을 흔들어주고 호루라기를 불던 정겨운 풍경은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기계의 노예가 되어가는 현실이 너무 삭막하게만 느껴졌다. 전차는 천장이 앙상하고 거대한 공룡의 등뼈처럼 둥글게 아치를 세운 중악 역사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역사에는 여전히 담배연기가 자욱했다. 여왕이 담배 골초이니 국민들도 끽연을 즐기는 것일까? 눈을 씻고 보아도 금연표시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한편으로는 마음대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사람들이 자유스럽게 보이기도 했다. 어떤 제지도 받지 않고 담배를 마음대로 피울 수 있으니 말이다.


오늘은 북유럽 철도 패스를 처음으로 사용하는 날이다. 코펜하겐에서 오슬로를 거쳐 베르겐까지 가는 긴 여정이다. 철도 패스는 먼 거리를 가는 경우에만 사용을 하기로 했다. 역무원에게 스칸 레일 패스 사용신고를 했다. 안경을 쓴 여자 역무원이 만면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철도 패스와 패스포트를 건네받았다. 하얀 얼굴에 보조개가 돋보이는 북구의 미인이었다. 그녀는 철도 패스 개시 날자와 패스포트 넘버를 스칸 레일 패스에 기입을 하여 창구로 내밀었다.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당초 우리는 렌터카를 이용하여 북유럽을 여행하려고 계획했었다.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고 북유럽의 자연경관을 마음껏 누비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헬싱키를 거쳐 러시아로 넘어가기로 여행코스를 정하고 나니 사정이 달라졌다. 렌터카를 이용할 경우 리턴 비용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그래서 렌터카 여행을 포기하고 사용날짜를 골라서 이용할 수 있는 유로 레일 페스의 일종인 플렉시 패스를 서울에서 구입했다.

 

선택적 패스를 이용할 경우에는 사용일자를 여행자가 스스로 기입을 해야 한다. 플렉스 패스는 19:00 이후에 이용할 경우 다음날 24:00까지 아무리 먼 곳이라도 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여행자들은 이동수단 겸 숙소로 유레일 페스를 이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유럽의 야간열차는 숙박비를 아끼려는 배낭여행자들로 홍수를 이루게 된다.      


"LINX 2000, 490번 열차, SPOR NO.4, 제3열차 68번, 72번"  

    

우리가 탈 스칸레일 패스의 열차다. LINX 2000 기차, 490번 열차, 4번 플랫 홈에서 3호 열차 68번, 72번 좌석이란 내용이다. 역사의 벽에 매달려 있는 모니터를 몇 번이나 확인을 하고 4번 플랫폼으로 내려갔는데도 아내는 불안한 모양이었다. 길눈이 어두운 내가 미덥지 않았던 것. 하기야 서울에서 지하철을 탈 때에도 나는 곧잘 반대방향으로 가는 차를 타기 일쑤다. 그런 길치인 내가 국제 간 이동하는 기차를 제대로 탈 수 있을 것인지 아내가 내심 불안해하는 눈치다.


오후 1시 36분. 드디어 우리는 오슬로 행 특급열차에 올랐다. 승객들로 꽉 찬 열차는 빈자리가 없었다. 예약을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룡의 몸통 같은 코펜하겐 중앙 역을 빠져나온 기차는 매듭 소리도 없었다. 기차는 눈 깜짝할 사이에 해저터널로 들어갔다가 다시 바다 위로 솟아 나왔다. 순식간에 기차는 오레선드 다리를 무서운 속력으로 질주했다. 과학의 발달과 문명의 이기는 유럽과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오레선드라는 쌍립 다리로 연결해 놓고 있었다. 


유레일패스 한 장이면 거미줄처럼 연결된 철도를 이용하여 유럽의 어디든지 갈 수가 있다. 오레선드 다리 1층에는 기차가 달려가고 2층에는 자동차들이 마치 공중을 날아가듯 달려가고 있었다. 2000년 7월 1일 개통한 오레선드 다리는 유럽 대륙과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기차여행처럼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여행은 없다. 기차를 타면 아무리 굳게 닫혔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마음을 활짝 열고 사색의 창문을 열게 된다. 바퀴들이 철로에 부딪히며 일정한 박자와 리듬 소리를 내는 동안 마음의 창문이 저절로 열리게 된다. 언덕을 넘고, 평야를 지나는 동안 생각은 아무런 제한도 받지 않는다. 기차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철로 옆의 나무들이 스트라이프가 되어 스쳐 지나가면 마치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는 것 같다. 미워하는 사람, 번뇌, 불신관계에 있는 사람들도 풍경 속으로 사라져 간다. 


생각은 창밖의 풍경을 따라 흐르고 마음의 번뇌도 풍경을 따라 사라져 간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을 기차를 타고 가다 보면 어려움을 풀어주는 새로운 생각들이 형성되어 모든 일들이 꼬여진 실타래가 풀리듯 술술 풀려나가기도 한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지나고 보면 별것이 아니지 않던가.


다리의 난간 사이로 발트해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 난간들 사이로 과거의 삶이 살짝살짝 비치고 있었다. 파도에 부서지는 은빛 포말, 가늘게 들려오는 매듭의 리듬, 생각은 정적을 깨고 그 풍경 사이로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그 풍경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만나고 있었다.      


기차는 덴마크와 스웨덴을 잇는 환상의 발트해를 달려간다. 속도가 어찌나 빠르던지 싱싱 하모니카 소리를 낸다. 기차는 해저터널을 들어가더니 어느새 솟아 나와 작은 섬을 관통하여 바다와 하늘 위에 놓여있는 환상의 오레선드 다리를 무서운 속력으로 달려간다. 도도히 흘러가는 발트해, 파도에 부서지는 은빛 포말, 바다는 평화롭다.


집에 틀어박혀 있으면 가구들과 아파트의 창문, 부엌의 그릇들, 냉장고, 세탁기, TV와 전화기들은 편리를 제공하며 자신들이 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를 매너리즘에 젖게 한다. 1년 365일 변하지 않는 가정환경은 우리를 일상의 생활 속에 계속 묶어두려고 한다. 집안의 침대에서는 잘 되지 않는 부부간의 사랑이 낯선 모텔의 작은 방에서는 잘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사랑의 대상은 똑같은데 말이다. 환경의 변화는 이처럼 우리 정신에 민감하게 반응을 한다.


오레선드 다리가 끝나는 지점에서 기차는 갑자기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엇? 기차가 해저 도시로 들어가나? 오레선드 다리는 바다 한가운데 인공 섬을 만들어 해저터널을 뚫어놓은 독특한 공법을 이용하여 건설되었다. 범선을 타고 바다를 건너는 낭만은 이제 사라져 버리고 없다. 오레선드 다리를 건너가니 이윽고 스웨덴 말뫼 역이다. 말뫼 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렸다. 


“휴우, 일단 담배연기가 없어서 숨쉬기가 좋군요!”


스웨덴으로 넘어오니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창밖에는 평화로운 초원이 펼쳐졌다. 기차가 헬싱보리 역에 도착을 하자 더 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렸다. 이 역은 스톡홀름 방향과 오슬로 방향으로 가는 기점이다. 기차는 여전히 빈 좌석이 없었다. 우리 옆 좌석에는 헬싱보리에서 탄 젊은 청년이 앉았다. ‘바니’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오슬로 대학에 다닌다고 했다. 바니는 앉자마자 책을 꺼내 읽으며 무언가를 열심히 메모를 했다. 그가 읽는 책 타이틀을 슬쩍 훔쳐보니 ‘Life, Work and Learning'이란 제목이었다. 제목만 보아도 많은 것을 생각게 하는 책이었다. 


우리 좌석 옆 건너편에는 중년으로 보이는 두 여인이 앉더니 바로 책을 꺼내어 독서삼매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그녀들의 앞좌석에는 구레나룻을 기른 40대의 남자가 노트북 자판을 두들기며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그는 자판에서 잠시 눈을 떼어 창밖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기다가 다시 자판을 두들기곤 했다. 소설을 쓰는 것일까? 아니면 기사를 쓰는 것일까?


총알같이 달려가는 기차 분위기는 마치 어떤 연구실이나 도서관 같은 분위기였다. 달리는 기차 도서관? 나는 배낭에서 베르나르의 ‘나무’를 꺼내 들었고, 아내는 아니 에르노의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라는 책을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매듭 소리도 들리지 않는 기차는 마치 달리는 도서관을 방불케 했다. 그러나 나는 곧 책을 덮고 말았다. 인천공항에서 출국을 할 때 공항 서점에서 사 온 책인데 너무 공상적이어서 흥미가 없었다. 아내도 곧 하품을 하더니 책을 덮었다. 


▲아이들에게 엽서를 쓰는 아내

아내와 나는 책을 읽는 대신 코펜하겐과 암스테르담에서 사 온 엽서를 꺼내어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영이와 경이, 조카들, 처남들과 처남 아이들, 친구들… 기차에서 우리는 무려 12장의 엽서를 썼다. 여행을 하면서 그리운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큰 즐거움 중의 하나다. 요즈음은 IT세대로 대부분 인터넷이나 전화로 소식을 전하지만 그래도 육필로 편지를 쓰는 것에 비교하겠는가? 엽서를 고르는 즐거움, 편지를 쓰는 즐거움, 땀 냄새가 베여있는 엽서를 받아보는 즐거움은 가상공간에서 받아보는 인터넷 메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을 준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아내의 친구 경숙 씨에게 남미에서 엽서를 써서 부친 일이 있었다. 항상 아픈 아내를 친 자매처럼 돌보아 주는 고마운 친구였다. 나는 다소 장난기가 동하여 멋진 사진을 배경으로 된 엽서에 일부러 영어로 편지를 썼다. 그런데 그 엽서 한 장으로 경숙 씨와는 두고두고 즐거운 에피소드 한 토막을 간직하게 되었다. 


해외에서 배달된 내 편지를 받고 그녀가 들려준 이야기는 이러했다. 어느 날 갑자기 엽서 한 장이 배달되었는데, 발신처가 영어로 된 엽서더라는 것. 해외에서 편지를 받아 본적이 거의 없는 그녀는 혹시 잘 못 배달된 편지가 아닌가 하고 눈을 씻고 다시 읽어 보았다는 것. 그런데 수신자는 분명히 한글로 자기 이름이 쓰여 있었다. "나에게 영어로 편지를 쓴 사람이 누굴까? 더구나 발신처가 남미라니…” 그녀는 괜히 가슴이 쿵쿵거려 편지를 들고 화장실에 들어가 남편 몰래 엽서를 자세히 읽어보았다고 했다. 


“……경숙 씨, 보고 싶어요.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엽서에는 그녀를 사랑한다는 내용이 절절히 담겨있었다. 편지를 읽는 동안 가슴이 쿵쿵거리고 흥분이 되어 몸이 온몸이 달아올랐다고 한다. “혹시 오래전 나를 짝사랑했던 사람이 보낸 편지가 아닐까?" 발신자 이름이 영어로 쓰여 있어 처음에는 누구인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내용을 자세히 읽고 나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친구의 남편인 내가 보낸 편지라는 것을 알고 그만 박장대소를 하고 말았다는 것. 편지란 이렇게 받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간단한 엽서 한 장이 두고두고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고 있으니 말이다. 


오후 3시 40분. 기차는 함스타드라는 역에 정거를 했다. 옆 좌석에 앉았던 금발의 소녀가 웃으면서 손을 흔들며 멀어져 갔다. 함스타드 역을 출발한 기차는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초원을 달려갔다. 우리는 어느새 스웨덴 국경을 넘어 노르웨이로 진입을 하고 있었다. 북유럽은 거의 국경을 느끼지 못한다. 인터 시티  급행열차는 북유럽의 주요 도시를 아무런 검사나 제한 없이 자유롭게 드나들기 때문이다.


오후 5시 4분. 기차는 고테보리 역에 정차를 했다. 몸집이 매우 큰 두 여인이 올라오더니 옆 좌석에 앉았다. 어머니와 딸 사이로 보이는 이 두 여인은 각각 강아지 두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를 안고 올라왔다. 고양이는 새장처럼 생긴 우리에 가두어 두고 강아지와 함께 합석을 했다. 두 여인은 자리에 앉자마자 강아지에게 키스 세례를 연거푸 퍼부었다. 마치 자기 자식을 대하듯 어르고 달래며 강아지에게 입맞춤을 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가관이었다. 


"으음, 허엉, 오 마이 베이비~."


그러자 강아지는 "끼기잉, 끼잉~"하며 맞장구를 쳤다. 유럽 사람들의 반려동물에 대한 사랑은 각별하다. 강아지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두 여인은 반려동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두 여인과 강아지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언어로 서로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 안에 있는 고양이에게도 가끔 이상한 소리로 신호를 보냈다. 그러면 고양이는 문을 말똥말똥 뜨고 주인에게 "야옹~" 하고 응답을 했다. 그 모습이 기이하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했다. 


북유럽의 기차는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들에게도 매우 세심한 배려를 해준다. 애완동물 동반 전용차량, 어린이 동반 전용차량, 자전거 반입 허용차량 등 여러 가지 특별 차량이 있다. 열차 곳곳에 승객들의 다양한 욕구를 만족시켜주려는 철도 당국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이 차량은 알고 보니 애완동물 동반이 허용되는 열차 칸이었다.


저녁 7시. 창밖에는 이미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코펜하겐 슈퍼마켓에서 사 온 빵과 우유로 간단한 저녁 식사를 했다. 그래도 입이 개운치가 않아 열차 안 카페로 갔다. 에스프레소의 진향 향기가 미각을 강하게 자극했다. 그 향에 끌려 나는 에스프레소 두 잔을 주문했다. 마음씨가 좋아 보이는 카페의 마담이 웃으며 위스키 잔처럼 작은 잔에다 에스프레소를 따라서 건네주었다.


▲오슬로 행 열차 카페


"와우, 양이 이렇게 적어요?"

"이 에스프레소는 원래 그렇습니다."


맛을 보니 무진장 쓰고 독했다. 오리지널 에스프레소인 모양이었다. 


“어휴, 너무 독해서 마시지 못하겠어요.”


내가 벌레 씹는 표정으로 뜨거운 물을 좀 더 달라고 했더니, 마담은 내 표정을 보고 폭소를 터트리면서 순한 네스커피 한 잔을 공짜로 주었다. 한 잔에 30 크로네(약 6000원)나 하는 비싼 에스프레소를 시켰다가 망신만 당한 꼴이었다. 맛을 모르면 이렇게 비싼 대가를 치르고서야 알게 된다. 


에스프레소와 네스커피를 들고 와 아내에게 에스프레소 맛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옆 좌석에 있는 바니가 빙긋이 웃었다. 바니는 베르겐이 고향인데 오슬로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우리가 베르겐까지 간다고 하니 바니는 베르겐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을 해 주었다. 


그는 "플뢰엔 산에 올라가 베르겐 시 전체를 조망해 볼 것, 그리그의 여름 별장 트롤드하우겐을 놓치지 말 것, 어시장에서 해물요리 한 가지 정도는 꼭 맛을 볼 것. 그리고 오슬로에 오거든 뭉크 미술관과 바이킹 박물관을 꼭 관람할 것"을 권했다. 우리는 생생한 여행 정보를 공짜로 얻게 된 샘이었다. 바니가 서둘러 가방을 챙겼다. 기차가 오슬로 역에 도착하고 있었다.


베르겐으로 가는 기차


밤 9시 45분. 기차는 오슬로 역에 정차를 했다. 우리도 바니와 함께 오슬로 역에서 내렸다. 베르겐으로 가는 기차로 갈아타야 하기 때문이었다. 모니터를 보니 베르겐행 기차는 23시 11분으로 아직 2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오슬로 역은 코펜하겐 역보다 훨씬 크고 화려했다.


지정된 좌석으로 가니 열차는 십 대의 젊은이들로 초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베르겐으로 가는 기차는 매우 혼잡했다.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생들처럼 보였는데 어찌나 떠들어 대든 지 귀가 따가울 정도였다. 독서실 분위기를 연상케 했던 코펜하겐-오슬로 간 급행열차와는 영 딴판이었다. 


시끄러운 어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왁자지껄하여 혼을 빼놓을 정도였다. 어제부터 컨디션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 아내는 잠을 좀 자야겠다고 하는데 이런 상황이라면 잠은커녕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울 지경이었다. 암스테르담에서 장거리 버스를 타고 온 데다 이어지는 야간 기차여행이 아무래도 너무 무리가 되는 갓 같았다. 


“여기 잠시만 앉아 있어요.”

“어딜 가세요?”

“역무원을 좀 만나고 와야겠어.”

“아니 왜요?”

“그건 이따 이야기할게요.”


나는 어렵사리 콧수염을 기른 역무원을 만났다. 그에게 쿠셋 좌석이 여유가 있느냐고 물으니 몇 자리가 비어 있다고 했다. 쿠셋 추가 요금 1인당 125 크로네를 지불하고 좌석을 배정받아 아내에게로 갔다. 


“자, 짐을 챙기고 따라와요.”

“어디로 가는데요?”

“가보면 알아요.”


아내에게 미리 말을 하면 분명히 돈이 더 들어가는 좌석을 사지 못하게 할 것이 뻔했다. 3등 열차를 타고 여행을 다니는 것만으로도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아내다. 


“아니, 여긴 침대칸이네요?”

“응, 침대칸이야.” 

“침대는 엄청 비쌀 텐데요?”

“차장에게 사정을 하고 부탁을 했더니 마침 빈자리가 있어 특별히 배려를 해주더군.”

“정말이요?”

“정말이고말고.”

“거짓말 말아요. 당신의 얼굴에 이미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쓰여 있어요.”


사실 나는 거짓말을 잘하지 못한다. 아내에게 실토를 했다. 오늘 밤만은 달리는 침대에서 잠을 한번 자 보는 것도 좋지 않겠냐고 하며. 나는 비싼 침대칸을 보고 눈이 휘둥그렇게 뜨고 있는 아내를 달랬다. 쿠셋 칸으로 옮기니 너무나 조용했다. 쿠셋은 좁은 공간이지만 마치 오피스텔을 방불케 할 정도로 거의 모든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1층과 2층으로 나누어진 침대, 세면대, 비누, 헤어 쉘, 우유 두 봉지, 종이컵, 담요, 그리고 열쇠 2개가 벽에 걸려 있었다. 달리는 원룸이다. 세수를 하고, 발을 씻고 나니 피로가 좀 풀렸다. 


▲작은 오피스텔을 연상케 하는 쿠셋 1층과 2층 내부


“여보, 기분이 어때요? 우린 오늘 밤 기차를 타고 결혼 30주년 기념 허니문을 떠나는 거요.”


“기분이야 좋지만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잖아요.”

“하하, 올 해가 결혼 30주년인데 최소한 이 정도는 누릴 권리가 있지 않겠소?”

                                                      

아내는 비싼 건 질색이다. 누구나 편한 것을 싫어하겠는가? 그러나 3등 열차를 타고 여행을 다니는 것 자체도 축복이고, 사치스럽다는 생각을 한다. 그저 길바닥에 누워도 여행만 많이 다니면 좋다는 여인이다. 허지만 오늘 밤만은 좀 편하게 자자. 이 어눌한 여행 가이드의 강권 발동으로... 아내의 얼굴에 가볍게 키스를 하고 2층 침대로 올라갔다. 기차 바퀴가 들려주는 리드미컬한 자장가 소리를 들으며 깊은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오슬로에서 베르겐으로 가는 기차

리드미컬한 바퀴의 리듬을 자장가 삼아

편안하게 휴식을 취한다.


레일위를 달리는 기차

차창밖에는 생각의 산파가 열린다.


가는 곳이 내 고향이고

눕는 곳이 내 집이다.


오늘은 달리는 기차가

내 고향이요

내 집이다.



♣기차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기차여행을 떠나면 마음의 문이 열리고 모든 것이 가볍게 지나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