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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Dec 25. 2018

7. 솔베이지 노래 흐르는 베르겐

▶노르웨이 베르겐

드디어… 기차는 북유럽의 서쪽 끝 노르웨이 베르겐에 도착했다. 밤새 기차를 타고 오니 하루가 또 지났다. 베르겐은 ‘산과 산 사이’라는 뜻을 가진 이 도시다. 베르겐에 진입을 하면서 몇 개의 터널을 지나서 왔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미로 속을 헤매다 들어온 기분이다. 

  

베르겐은 인구 25만의 노르웨이서 두 번째로 큰 도시다. 1070년 노르웨이 왕족인 울라프 퀴레에 의해 세워진 이 도시는 11세기가 되면서 노르웨이 수도로 발전한다. 13~15세기에는 한자 동맹의 일원으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했던 곳이다.


베르겐은 사람의 마음을 빼앗아 가는 마력의 도시다. 북유럽을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시 찾고 싶은 낭만이 그득 찬 공간이다. 지친 여행자의 심신을 치유하는 힘을 가진 곳, 깎아지른 피오르드의 장엄함에 넋을 잃고 마는 곳, 베르겐은 노르웨이 전형적인 숲과 바다가 어우러져 동화 속 주인공이 오랜 세월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드는 그런 매력적인 도시다.


그러나 베르겐 역에 내리니 점점 더 억수같이 내렸다. 항구도시 베르겐은 멕시코 만류의 영향으로 연평균 275일이나 비가 내린다. 하늘에 먹구름이 가려 아침 7시인데도 컴컴했다. “베르겐에 5일간 머무는 동안 비가 왔던 기억밖에 나지 않아요.” 암스테르담에서 만났던 미찌꼬의 말이 떠올랐다.      


▲연중 275일 이상 비가 내리는 베르겐


아침 일찍 이어서인지 역사 근처에는 버스도 보이지 않았다.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배낭을 멘 채로 비를 철철 맞으며 걸어갈 수도 없었다. 할 수없이 택시를 타고 몬태나 유스호스텔로 가자고 했다. 짧은 거리인데도 택시요금이 140 크로네가 나왔다.    

  

몬태나 유스호스텔은 산등성이에 위치하고 있었다. 베르겐 시내가 한눈이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었다. 안개에 싸인 항구의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림 같은 풍경이 안개 베일 속에 가렸다가 나타나곤 했다. 정말 한 폭의 풍경화 같은 도시다.      


베르겐은 ‘피오르드의 수도’라고 불릴 만큼 북유럽 피오르드 관광의 관문이다.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는 노르웨이의 피오르드를 관광하려면 반드시 들려야 하는 항구이다. 일곱 개의 산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항구 베르겐은 그 자체로도 너무 아름답다. 산기슭에 알록달록한 색칠을 한 집들이 동화 속에 나는 풍경처럼 보인다. 오목조목 뻗어 나온 해안선이 활처럼 휘어져 부두를 아늑하게 감싸고 있다.    


▲베르겐은 오목조목 뻗어 나온 해안선이 활처럼 휘어져 부두를 아늑하게 감싸고 있다.

  

“음악가 그리그가 이곳에 머문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솔베이지의 노래를 작곡한 음악가 말인가요?”

“응, 당신도 이 노래를 좋아하지 않소?”

“솔베이지의 노래는 누구나 좋아하지요.”     


솔베이지의 노래는 그리움의 노래다. 이 노래를 듣다 보면 누구나 가슴속에 묻어둔 추억 한 토막 정도는 떠오를 것이다. 나는 솔베이지의 노래를 들으면 중학교 시절 피아노를 치며 ‘솔베이지의 노래’를 들려주던 음악 선생이 생각난다. 대학을 갓 졸업한 여선생님은 이 노래를 유독 좋아했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는 바다가 바라 앞에 바라보이는 목포 유달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목포항은 어찌 보면 베르겐의 지형을 좀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솔베이지를 버리고 어디론가 떠나버린 페르귄트, 그러나 솔베이지는 바람둥이 페르귄트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늙어서 거지꼴이 되어 돌아온 탕아 페르귄트를 따뜻하게 감싸준다. 그녀는 단순한 여자가 아닌 성녀였다. '그 겨울이 지나 또 봄은 가고 또 봄은 가고/그 여름날이 가면 더 세월이 간다/ 세월이 간다/아! 그러나 그대는 내 님일세/ 내 님일세/ 아! 나는 그리워라/ 널 찾아가노라/널 찾아가노라.'


▲솔베이지의 노래를 작곡한 그리그의 집

게스트 하우스에 짐을 풀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우리는 솔베이지의 노래를 작곡한 그리그의 집으로 갔다. 에드바르드 그리그(E. H Grieg)의 집은 베르겐 시 교외에 트롤드하우겐이란 언덕에 자리 잡고 있었다. ‘트롤’은 보는 사람에 따라서 선인과 악인으로 변하는 ‘숲 속의 요정’이다. ‘하우겐’은 ‘집’이란 뜻이니 트롤드하우겐은 요정이 사는 집이란 뜻이다. 그리그의 오두막은 온통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안개가 서린 협만을 내려다보고 서 있다. 그리고 맞은편 바위에는 그리그와 부인 니나가 함께 묻혀 피오르드를 내려다보고 있다. 오두막 안에는 그가 작곡을 할 때 썼던 피아노 한 대가 주인을 잃고 홀로 놓여 있다. 그리그의 집을 맴도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내내 ‘솔베이지의 노래’가 감돌았다.      


“전원주택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요.”

“이번 여행에서 귀국을 하면 이 보다 더 멋진 전원주택을 지어주겠소.”

“기대해 보아야겠군요. 호호호.”    

 

아내는 내가 말하는 의미를 알고 있었고, 나는 아내가 웃는 의미를 알고 있었다. 여행지마다 아내가 좋다고 하는 전원주택을 찜해서 지어주곤 했으니까. 나는 아내가 좋다고 하는 집을 모구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내 카메라에 담긴 사진은 집으로 돌아가면 우리들의 추억의 전원주택이 되어주곤 했다.   

   

그리그의 집에서 어시장으로 돌아온 우리는 오슬로 행 기차에서 바니가 일러준 대로 어느 해물 요리점에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어시장 건너편에는 울긋불긋한 ‘브뤼겐(Bryggen)’ 목조건물들이 바라보였다. 항구의 좁은 길가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브리겐은 14세기 한 때 ‘한자동맹’과 더불어 400년간 영화를 누렸던 중심지였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이 낡은 목조건물들은 지금도 그대로 이용되고 있다.    


▲베르겐 울긋불긋한 ‘브뤼겐(Bryggen)’ 전통 목조건물


보겐 항을 마주하고 촘촘히 벽을 쌓은 것처럼 보이는 부뤼겐의 목조 가옥들이 손짓을 한다. 투박한 질감과 원색의 삼각지붕이 오랜 역사와 향기를 안고 조용히 숨 쉬고 있다. 점심을 먹고 밖으로 나오니 하늘은 온통 짙은 잿빛이다. 비가 오락가락 내렸다. 목조 가옥을 끼고 보겐 항을 따라 터벅터벅 걸어본다. 낭만이 가득한 항구도시를 걷는 기분은 마냥 좋다. 


북구의 짧은 해가 지기 전에 우리는 플뢰엔 산에 오르기로 했다.  푸니쿨라를 타고 플뢰엔 산 정상에 올랐으나 안개가 잔뜩 끼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비가 세차게 쏟아지고 바람마저 강하게 불었다. 산 정상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렸다. 


몇 년 전 네팔의 나가르 곶에서 안개가 잔뜩 낀 히말라야를 바라보며 "기다리면 보여준다!"라고 말했던 이근후 교수님의 생각이 났다. 카트만두에서 새벽 일찍 히말라야에서 솟아오르는 일출을 감상하기 위해 밤잠을 설치고 어렵게 올라갔는데 히말라야는커녕 바로 앞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 교수의 말대로 나가르 곶 정상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기다리자 안개가 감쪽같이 걷히고 장장 200km에 달하는 히말라야의 장관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잠시 얼굴을 내민 히말라야는 이내 다시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지금 플뢰엔 정상의 사정이 그때와 비슷했다. 아니나 다를까?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운 안개가 삽시간에 걷히고 베르겐의 아름다운 피오르드 해안이 한눈에 들어왔다.     


“정말 한 장의 엽서 그대로군요!”     


▲플뢰엔 산에서 바라본 베르겐 항구 전경


아내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감격에 겨운 듯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병풍처럼 둘러싸인 산줄기에 'U"자형으로 빠져나간 해안은 형형색색의 목조건물들과 어울려 멋진 절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음, 바로 저 순간에 아내의 몸에 엔도르핀이 솟아나고 다이놀핀이 솟구치는 거겠지’ 사람은 아름다운 풍경에 압도되어 감동을 받을 때 엔도르핀의 몇 천 배에 달하는 다이놀핀이 솟아난다고 한다. 제발 그렇게 해서라도 아내의 병이 싹 떨어져 나갔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베르겐은 정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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