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슬로~릴리함메르~보되
비가 오락가락 내렸다. 방황하는 나그네에게 비는 때로는 깊은 사색을 하게도 하지만, 배낭을 걸머진 여행객에게는 그리 반가운 존재는 아니다. 게다가 오늘 비는 오락가락 종잡을 수 없이 내려 방랑객을 더욱 곤혹스럽게 한다. 올 테면 왕창 오던지, 아니면 활짝 개어버리던지 하였으면 좋겠는데, 오락가락하니 숙소에 처박혀 있을 수도 없고, 무작정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
다행히 비가 잠시 멎어 우리는 아케르스후스 성으로 향했다. 그곳은 오슬로에서 가장 오래된 고성으로 왕가의 주거지와 요새로 사용되어 온 곳이다. 우리가 그 성으로 가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아케르스후스 고성 언덕 위에서 아름다운 오슬로 항구를 내려다보기 위한 것이고, 그 두 번째는 나치에 저항하여 레지스탕스 운동을 벌였던 노르웨이 저항운동 박물관을 관람하기 위한 것이다.
성으로 올라가는 언덕에는 붉게 물든 나무들이 고성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고성은 한 폭의 진한 수채화처럼 다가왔다. 휘날리는 낙엽을 밟으며 고성으로 걸어가는 분위기는 마치 먼 옛날 '에다'의 신화에 나오는 미지의 성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성문 앞에는 중세기의 기사처럼 보초병이 부동자세로 성문을 지키고 있었다.
성곽에는 사진작가처럼 보이는 털보 아저씨가 삼각대를 받치고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었다. 오슬로 항구를 내려다보기에 멋진 장소였다. 나는 그 털보 옆에서 항구를 향해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그가 나를 보고 싱긋 웃었다. 나도 그를 보며 살짝 윙크를 던져 주었다. 털보는 사진을 찍어달라고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이심전심 마음으로 통했는지 내 카메라를 달라는 손짓을 했다. 그가 찍어준 사진 한 장! 이 사진은 오슬로를 추억하는 모든 것이 다 담겨 있다. 성곽의 길과 성채, 그리고 반쯤 열려 보이는 오슬로 항구. 역시 전문가다운 구도였다.
노르웨이 저항운동 박물관은 바로 이 성안에 있었다. 성곽 위에 터널식으로 되어 있는 박물관은 1940년부터 1945년까지 나치에 저항했던 레지스탕스 운동 상황이 글과 사진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안내책자에 마지막에 새겨진 “Never Again!"이란 글이 깊은 인상을 주었다.
아케르스후스 성에서 내려온 우리는 콘덴스 거리로 걸어 나갔다. 다시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였다. 칼 요한 거리까지 걸어 나오니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팠다. 오늘 밤 우리는 북극으로 가는 기차를 타야 한다. 그러나 밤 11시 5분에 출발하는 기차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큰 배낭을 오슬로 중앙역 라커에 맡기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중앙역 밖으로 나오니 맥도널드 점 간판에 ‘빅 맥 1세트 13 크로네’라는 광고판이 눈에 들어왔다. 비는 오고, 배도 고프고 하니 저녁을 먹으며 쉴 곳이 필요했다. 맥도널드에서 커피 두 잔과 13 크로네(약 2천 원) 짜리 빅 맥을 시켜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그러나 그곳에 마냥 있을 수도 없고 하여 다시 중앙역으로 온 나는 PC방을 찾았다. 아내는 피곤하다며 그냥 플랫폼의 의자에 앉아 있겠다고 하였다.
지금까지 찍은 사진도 서버로 전송도 하고, 메일도 체크할 겸, 나는 PC방을 찾아갔다. 오슬로의 역사는 매우 크다. PC방은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몇 번을 물어 겨우 찾은 PC방은 아내가 앉아있는 바로 2층에 있었는데, 엉뚱하게 다른 곳을 찾아 헤매다니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생각났다.
PC방으로 올라가며 내려다보니 아내는 의자에 그대로 누워 있었다. 아내에게 2층 PC방으로 간다는 것을 알리려고 하다가 바로 밑에 있으니 별일 없겠지 생각하고 그냥 올라갔다. 그런데 나중에 그게 큰 화근이 될 줄이야! 젊은 PC방 주인은 서버로 사진을 전송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도와주었다. 오랜만에 사진을 전송하게 된 나는 마침 잘 되었다 싶어 지금까지 찍은 사진들을 전송하였다. 그런데 전송 속도가 너무나 느렸다. 우리나라처럼 속도가 빠른 인터넷을 아직까지 찾아본 적이 없다. 하여간 빠른 데는 우리나라를 딸아 올 나라가 없는 것 같다. IT산업이 꽤 발전한 노르웨이인데도 인터넷 속도가 너무나 느려 눈에서 안질이 날 것만 같았다.
열차시간 출발 20분 전까지 겨우 전송을 마치고 아내가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20분이면 같은 역사 건물에 있는 라커로 가서 배낭을 찾아와 충분히 차를 탈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있어야 할 아내는 자리에 없었다.
"어? 큰일 났네. 짐도 찾아야 하는데…."
이곳저곳을 찾아 헤매도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아내는 아이쇼핑을 좋아하므로 혹 가까운 기념품 가게에 있나 하고 뛰어다니며 가게들을 뒤져 보아도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이럴수록 침착해야지. 음… 처음 아내가 누워있던 장소에서 기다려 보자."
그렇게 생각을 하고 아내가 누워 있었던 의자로 가서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건너편에서 아내가 두리번거리며 놀란 토끼처럼 오고 있었다. 벽에 걸린 시계는 밤 10시 5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열차는 11시 5분에 출발한다. 출발시각 10분 전이다.
“여보, 여기야!”
내가 큰 소리로 아내를 부르자 아내는 나를 보더니 그만 울음보를 터트리고 말았다. 그러나 아내의 울음을 달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거의 뛰다시피 하여 라커로 달려간 우리는 허겁지겁 열쇠로 라커를 열었다. 그런데 이럴 땐 또 왜 그렇게 열쇠가 잘 열리지 않는지….
큰 배낭을 꺼내 등에 매고 플랫폼을 찾아 뛰었다. 플랫폼에 도착을 하니 우리가 타고 갈 트론드헤임으로 가는 기차는 이미 정차해 있었다. 기차가 바로 출발하기 직전이었다. 열차에 오르자 한숨을 돌릴 사이도 없이 기차는 바로 출발했다. 아내는 아직도 말없이 눈물을 훌쩍거리고 있었다. 얼마나 놀랬을까?
“여보, 미안하오. 난 당신이 그 자리에 그냥 그대로 있을 줄 알고….”
“…….”
아내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내가 PC방 장소를 가르쳐 주기만 했더라도 피를 말리는 이런 해프닝은 없었을 것이 아닌가. 아내는 열차시간 30분 전부터 나를 찾아다녔다고 하는데, 그만 서로 길을 엇갈렸던 것이다. 오슬로 역은 매우 크고 국제 간의 열차가 다니므로 혼잡하다. 앞으로 러시아와 동유럽도 계속 기차여행을 해야 할 텐데, 정신 바짝 차리자. 여차하면 이역만리타국에서 국제미아가 되어 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아내여, 눈물을 거두어 다오! 모든 게 다 내 탓이오.’ 여행을 출발한 후 나는 아내에게 <최초의 눈물방울>을 흘리게 하고 말았다. 군나르 롤드크밤의 시 <마지막 한 방울>이란 시가 다시 떠올랐다. 용감한 아내는 나 때문에 이번 여행 중 첫 번째 눈물방울을 헛되이 흘리고 있었다. 아픔을 잊어버리기 위해 떠난 여행길에서 아내로 하여금 다시는 눈물을 흘리게 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 물방울은 아내에게 건강과 행복의 기쁨을 맛보게 하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해야지.
기차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둠 속을 뚫고 계속 북으로 북으로 달려만 가고 있었다. 오늘 밤은 아주 긴 기차 여정이다. 오슬로에서 보되(BodΦ)까지 18시간 정도 걸리는 장거리 기차 여행이다. 중간에 트론헤임 역에서 보되로 가는 기차를 갈아타야한다. 노르웨이는 남북의 직선거리가 북극의 겨울만큼 길다. 국토의 삼분의 일이 북극권에 들어있는 노르웨이는 여름은 해가 지지 않는 백야가 지속되고, 가을을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그리고 긴긴 북극의 겨울이 시작된다. 지금은 겨울로 가는 문턱인 10월이다.
우리가 노르웨이의 북쪽으로 가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그것은 오직 <오로라>를 위해서다. 당신은 이제 눈물을 거두어들여야 한다. 북극권 보되에 가면 오로라가 당신을 기쁘게 해 줄 터이니까.
오로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
아내는 훌쩍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아내여! 이제 그만 울음을 멈추어다오. 적어도 나는 솔베이지를 울리는 페르귄트는 되지 않을 터이니까… 잠시 상념에 젖어 있다가 나도 깜박 잠이 들었다. "당신은 나를 버리고 어디론가 가 버렸어요..." 꿈결 속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외침 소리에 잠을 깨고 보니 기차가 멈추어 서 있었다. 밖을 내다보니 'Lillehammer'란 역명이 보였다.
릴리함메르는 ‘입센(Hennik Ibsen:1826~1906))’의 희곡인 '페르귄트'의 무대가 아닌가! 릴리함메르! 어두운 밤이라 보이지는 않지만 노르웨이 사람들은 이곳을 "계곡의 여왕"이라고 부를 만큼 웅장하고 수려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다.
북구의 카사노바, 페르귄트는 실존인물이다. 입센은 이 지역의 페르귄트를 그의 희곡 무대로 불러들인다. 입센은 "인형의 집"으로 세상에 더 알려졌지만, 실제로 이곳 노르웨이에서는 페르귄트가 훨씬 인기가 있다. 그래서 노르웨이 오슬로 축제는 페르귄트의 무대에서부터 시작되어 페르귄트로 막을 내린다.
페르귄트는 어머니의 절실한 소원을 뿌리치고 공상에만 빠져있다가 애인 솔베이지를 버리고 산속 마왕의 딸과 결탁하여 혼을 팔아넘기고 돈과 권력을 찾아 세계여행을 떠난다. 미국과 아프리카에서는 노예상을 하여 큰돈을 벌기도 한다. 그리고 추장의 딸 아니트라를 농락하며 거드름을 피우다가 배신당하고 정신이상자로 몰려 입원을 강요당하기도 한다. 마침내 그는 고향이 그리워 배를 타고 귀국길에 오르지만 배마저 난파하여 무일푼이 되어 탕아처럼 고향으로 돌아온다. 고향 땅에서 늙은 마왕으로부터 빚 독촉을 받으나 최후까지 혼을 팔아넘기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 남아 백발이 되도록 기다리는 애인 솔베이지의 팔에 안겨 죽는다.
입센의 희곡 페르귄트는 권력과 부의 추구에서 오는 정신의 황폐, 인간의 과대망상과 야망의 덧없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자기를 버리고 방탕한 연인을 백발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여인 솔베이지의 청순 무구함을 대조하여 최후의 구원을 받게 하는 극적인 전환을 보여준다. 그러나 현대의 시선으로 보면 이는 모순덩어리다. 지구 상에 솔베이지 같은 여인은 그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 허지만 남자들의 가슴엔 누구나 페르귄트 같은 기질을 담고 있다. '남자는 여자의 첫사랑이길 원하고 여자는 남자의 마지막 사랑이길 원한다.’는 오스카 와일드의 명언처럼 남자의 심리는 명예의 권력, 부를 추구하는 허영과 허구가 많다.
릴리함메르 역에 정차했던 기차는 다시 슬슬 움직였다. 북으로 북으로 가는 3등 열차…. 꿈결처럼 들려오는 솔베이지의 노래 속에 잠시 잠이 들었던 나는 새벽녘에 다시 눈을 떴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어두운 차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내는 여전히 차창에 기대어 잠이 들어 있었다. 아내는 마치 솔베이지처럼 오직 이 남자 한 사람만을 믿고 잠을 자고 있었다. 어둠 속을 뚫고 다시 어디선가 솔베이지의 노래가 들여오는 것 같았다.
'그 겨울이 지나 또 봄은 가고 또 봄은 가고/그 여름날이 가면 더 세월이 간다 세월이 간다/아! 그러나 그대는 내 님일세 내 님일세/내 정성을 다하여 늘 고대 하노라 늘 고대 하노라/아! 그 풍성한 복을 참 많이 받고 참 많이 받고/오! 우리 하느님 늘 보호하소서 늘 보호하소서/쓸쓸하게 홀로 늘 고대함 그 몇 해인가/아! 나는 그리워라 널 찾아가노라 널 찾아가노라'
우수의 찬 바람이 우우~ 창가에 스며들고 있었다. 입센의 무대도, 난봉꾼 페르귄트의 무대도, 찬 바람소리를 따라 멀어져 가고 있었다. 기차는 차가운 밤공기를 가르며 북으로 북으로 달련만 갔다.
♣남자는 여자의 첫사랑이길 원하고 여자는 남자의 마지막 사랑이길 원한다. -오스카 와일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