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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Jan 01. 2019

13. 오직, 오로라를 위하여!

▶노르웨이 보되(BodΦ) 항구

찬바람이 우우 거리며 창가에 스며들었다. 기차는 계속 북으로 달려갔다. 아침 6시. 동이 트는 하늘엔 북극성이 하늘의 이정표처럼 산봉우리에 걸려 있었다. 여명의 아침이 서서히 북극의 모습을 들추어내고 있었다. 산과 계곡, 피오르드, 단풍……. 기차는 그런 풍경 속으로 점점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멕시코 만류의 영향으로 날씨는 생각보다 춥지 않다.

      

기차는 소리 없이 달린다.

북으로 북으로

텅 빈 열차

침묵하는 공간

기차는 바람을 가르며

북극의 가을을 달린다.

먼동이 터 오르는 하늘

하늘에 걸려있는 북극성

기차는 북극성을 이정표 삼아

북으로 북으로 달려간다.   

  

오전 6시 18분. 스토렌(Storen) 역에 도착하자 앞에 있는 두 부부가 내렸다. 손을 흔들며 멀어져 가는 노르웨이의 중년부부. 그 해맑은 웃음에 평화가 깃들어 있었다. 기차는 다시 출발했다. 산허리에 검은 구름이 이상한 모습을 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스토렌 역에서 1시간 정도를 달려가니 기차는 종착역인 트론헤임(Trondhiem) 역에 도착했다. 우리는 여기서 보되(BodΦ)로 가는 기차로 갈아타야 한다. 보도로 가는 기차가 7시 42분에 출발한다는 표지판이 보였다. 보되행 기차는 벌써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단 3칸뿐인 열차는 장난감 열차처럼 보였다. 7시 42분 정각에 기차는 출발했다. 기차는 마치 꽁지 빠진 말처럼 덜커덕거리며 서서히 북으로 달려갔다. 산 위에 걸려 있는 낮은 구름, 노란 자작나무에 내린 하얀 눈, 상고대 같기도 하다. 북극권의 풍경은 지금까지 보아온 풍경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나는 점점 북구의 풍경에 푹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차창에 서린 풍경은 말과 글로서는 이루 표현을 할 수가 없다. 잔디는 파란데, 나무들의 색깔은 단풍으로 물들고 그 위에 눈서리가 내려앉은 모습은 이상한 나라를 연상케 했다. 아내도 잠에서 깨어나 점점 풍경 취해가며 연발 감탄사를 발했다. 사람은 풍경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고 했던가!     


▲노르웨이 북극으로 가는 기차에서 바라본 풍경


"저 눈 내린 풍경, 그리고 단풍이 너무 아름다워요!"     


아내는 새로운 풍경 속에서 다시 피어나고 있었다. 그렇다! 사람은 풍경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변화하는 풍경, 새로운 풍경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과거를 잊게 하고, 미래를 걱정하지 않게 한다. 거기엔 오직 아름다운 풍경만이 있을 뿐이다.      


꽁지 빠진 말처럼 달려가던 기차가 갑자기 멎어버렸다. 간이역인가 했는데 그도  아니었다. 기차도 풍경에 취했을까? 기차는 언덕에서 힘에 부친 듯 더 이상 올라가지를 못하고 헉헉대고 있었다. 힘에 부친 기차는 뒤로 후진을 했다. 그리고 힘을 받아 다시 앞으로 나아갔지만, 역시 기차는 그 언덕에서 앞으로 더 나가지 못하고 다시 후진을 했다. 기차는 몇 번을 헉헉 대며 후진과 전진을 반복하더니 겨우 언덕을 올라갔다. 괜히 내가 숨이 가쁘다. 

    

달려가는 창 밖에 다시 새로운 풍경들이 펼쳐졌다. 구름, 산, 피오르드, 빨갛고, 파랗고, 하얀, 이상한 풍경들……. 빨강머리, 파란 머리, 하얀 머리……. 그 풍경들이 피오르드의 잔잔한 물결 위에 반영되어 더욱 신비하게 보였다.  눈에 덮인 크리스마스 츄리 같은 나무들이 동화 속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츄리처럼 도령해 있는 나무들


"여보, 저기 순록이 보여요!"

“어, 정말이네!”     


산타할아버지의 썰매를 끌고 가는 그림에서나 보아왔던 순록이 눈 덮인 산에서 뛰놀고 있었다. 저런 풍경위에 오로라가 펼쳐지면 얼마나 멋질까? 기차는 어느 듯 보되에 도착을 했다. 우리는 보되(BodΦ) 역에 붙어있는 유스호스텔에 여장을 풀었다. 그리고 오로라를 보기 위해 보되항으로 나갔다. 호스텔 직원의 말로는 항구에서 바라보는 오로라가 기가 막히게 멋지다고 했기 때문이다. 걸어서 보되 항구로 가는 게 차가운 바닷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했다. 항구는 조용하고 한산했다.    

  

노르웨이 철도가 끝나는 종착역인 보되는 솔트 피오르드 입구에 있는 북위 68도에 근접해 있는 북부 관광의 주요 거점 도시다. ‘바위로 된 섬들의 녹지’란 뜻을 가진 이 도시는 인구 4만 6천 명의 상업도시로 노르웨이 남북을 연결하는 요충지다. 6월 5일부터 7월 9일 사이에는 한밤중에도 지지 않는 백야현상을 구경하기 위해 관광객이 몰리고, 겨울철에는 오로라를 관람하기에 많은 여행자들이 찾아오는 도시다.


▲노르웨이 보되항

  

우리가 그 머나먼 길을 힘들여 북극권으로 찾아온 것은 오직 오로라를 보기 위하여서였다. 그러나 보도의 하늘엔 아직 오로라가 출현하지 않고, 둥근 달만 훤하게 떠 있었다. 하늘을 향해 고개를 90도로 젖히고 혹기 갑자기 출현할지도 모르는 오로라를 보기 위해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지만 둥근 달만 휘영청 떠 있을 뿐 오로라는 보여줄 기미가 없었다.    

   

“여보, 추워요! 이제 그만 들어가지요.”

“조금만 더 기다려 봐요.”

“아이고, 조금만 조금만 하다가 얼어 죽겠어요.”     


밤이 되니 기온이 뚝 떨어져 날씨가 몹시 추워졌다. 오로라를 보기 위해 보되 항구의 확 트인 공간에서 목이 빠지게 오로라를 기다렸지만 오로라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역무원의 말도, 호스텔 종업원의 말도, 보도의 거리에서 만난 어느 아가씨의 말도 오늘 밤에 분명 오로라를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오로라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여보, 저기 카페에 들어가 커피 한잔 마시고 잠시만 더 기다려 보지요.”

“커피는 조금 전에도 마셨는데….”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그냥 포기를 할 순 없잖소.”  

   

밤이 깊어지자 항구에는 사람들도 뜸해졌다. 버스정류소에 붙어있는 카페로 가보니 카페 문은 이미 닫혀 있었다. 출렁이는 파도에 불빛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일렁이는 항구의 밤은 고요했다. 하는 수 없이 아내와 나는 쓸쓸한 거리를 걸어서 다시 역전에 있는 유스호스텔로 돌아왔다. 종일 기차를 타고 온 아내는 피곤한지 샤워를 한 후 잠을 자겠다며 공동 샤워장으로 들어갔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 디지털카메라와 캠코더를 메고 밖으로 나갔다. 거리엔 사람은커녕 개미 한 마리도 없었다. 추위에 덜덜 떨며 자정이 넘도록 고개를 뒤로 젖히고 하늘을 쳐다보았지만 결국 허사였다.   

  

“10월 이후에 오로라는 이 지역의 어느 곳에나 자주 출현합니다. 때로는 여름밤에도 노던 라이트(Northen Light)가 나타나기도 하지요. 전혀 나타나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런 날은 억세게 운이 없는 날이 되겠지요. 그럴 땐 여기보다 더 북쪽에 있는 로포텐 (Lofoten) 제도나 트롬 쇠(Tromse)로 올라가 보세요. 허지만 재수가 없으면 그곳에서도 오로라를 전혀 보지 못할 수도 있어요. 어떤 때에는 12월이나 1월에도 한 달, 아니 두 달을 기다려도 오로라를 보지 못하는 수도 있으니까요. 그만큼 하늘의 쇼는 아무에게나 보여 주지 않고 심술을 부리기도 한답니다. 그러니 오로라를 볼 수 있는 것은 누구에게나 큰 행운이지요.”  


보되로 오는 열차에서 역무원이 나에게 귀 띰을 해주었던 말이 생각났다. 호스텔 종업원은 다른 곳으로 갈 필요도 없이 바로 호스텔 밖에서 보면 수시로 그 신비한 빛을 볼 수 있다고까지 했다. 어쨌든, 아직 오로라의 신은 나타나지 않고 나를 애타게 하고 있었다.   

   

아직 잠자리에 들어서는 안 된다. 

잠의 여신이 당신을 덮치더라도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별을 벗 삼아 

달빛에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밤하늘에 펼쳐지는

환희의 쇼 오로라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좀 더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     


오로라! 오로라가 도대체 무엇이 길래 우리는 이처럼 북구의 하늘에서 서성거리고 있는가? 그저 사진만 바라보아도 오르가슴이 느껴질 것만 같은 오로라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오로라(Aurora)는 라틴어로‘새벽’이란 뜻의 라틴어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여명의 신 ‘아우로라 (Aurora)’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아우로라는 태양의 신인 아폴로의 누이동생이다. 오로라의 공식 명칭은 북반구에 나타나는 ‘오로라 보레알리스(여명의 신을 닮은 북녘의 빛)’, 남반구에 나타나는 ‘오로라 오스트랄리스(여명을 닮은 남녘의 빛)’이다. 극광(極光)이라고 부르는 오로라는 북반구에서는 흔히 노던 라이트(Northern Light, 북극광)라고 부른다.   

   

오로라는 왜 나타날까? 오로라는 태양 표면에서 날아온 전기를 띤 입자가 지구 자기장의 상호작용에 의해 극지방 상층 대기에서 일어나는 대규모의 방전 현상이다. 지구는 거대한 자석으로 남북으로 자기장을 만든다. 태양은 양성자와 전자로 이루어진 입자(이온화 가스)를 방출한다. 입자는 자기장을 따라 북극과 남극으로 하강하는데, 주로 고도 100~500km 상공에서 대기와 충돌하면서 기체(원자와 분자)를 이온화하는 과정에서 가시광선과 자외선 및 적외선 빛을 낸다. 사람들은 바로 이 가시광선 영역에서 오로라를 볼 수 있다.  오로라의 빛깔은 황록색·붉은색·황색·오렌지색·푸른색·보라색·흰색 등 다양하다. 오로라는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신비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기상 현상이다.


▲여명의 신 아우로라 이름을 따서 붙여진 오로라(사진:위키백과 참조)


그러나 오늘 밤 오로라는 끝내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나는 하늘을 향해 오로라의 신에게 기도를 했다. 여명의 신이시여, 그만 잠에서 깨어나 나에게 당신의 빛을 보여주소서! 오로라는 무한한 감동을 주어서 모든 고통을 잊어버릴 수도 있다고 하는데…. 혹 아는가? 하늘의 쇼 오로라가 나타나 아내에게 큰 감동을 주는 동안 심신의 모든 고통을 잊어버리고 아내의 난치병이 나아버리는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을지. 사실 그런 일말의 기대를 저버리지 못하고 우리는 이곳 머나먼 북구의 땅까지 왔다.  

   

나는 오로라 대신 차가운 하늘에 덩그렇게 떠 있는 달만 추위에 덜덜 떨며 바라보다가 자정이 넘어서야 호스텔로 돌아왔다. 고개가 아팠다. 목을 뒤로 젖히고 오랫동안 하늘을 눈이 빠져라 쳐다보았기 때문이었다. 잠자리에 들었지만 못내 아쉬운 마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나는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겨우 눈을 붙일 수가 있었다. ‘여명의 신’ 아우로라는 심술을 부리며 아직 우리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있었다. 

     

강 건너 산 아래에 휘황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것은 초록, 분홍, 파랑, 그리고 연보라색이 한데 버무려진 휘장 같은 구름이었다. 무수한 환희가 쏟아지는 하늘! 구름은 소용돌이를 치며 하늘을 덮었다. 오로라였다! 마치 손에 잡힐 듯 오로라가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오로라의 휘장을 걷어 올리고 그 너머의 세계로 건너갔다. 그곳은 비단결 같은 천국이었고, 도솔천 같은 극락세계였다. 백설 공주처럼 하얀 여인이 무지개를 타고 오더니 양팔을 벌리며 나에게 손짓을 하고 있었다. 하얀 미소를 짓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황홀했다. '확실히 저건 여명의 신 오로라야, 지금 오로라의 신이 날 부르고 있어.' 나는 오로라의 휘장을 걷어내고 휘장 건너편 사바세계에 있는 아내를 바라보았다. 아내는 가지 말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표정 속엔 여인들에게서만이 느낄 수 있는 어떤 질투 같은 것이 엿보였다.    

 

“오로라를 좀 더 가까이 보려면 당신도 이곳으로 건너와요."

“싫어요. 오로라는 여기서도 잘 보이는데요.”

“허지만 가까이 가서 보는 게 더 좋지 않겠소.”

“전 여기에 있겠어요.”

“아니, 어찌 나 혼자 간단 말이요? 함께 가야지.”     


나는 아내의 손을 붙잡고 오로라의 강을 건너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아내의 힘이 어찌나 센 지 한 걸음도 앞으로 나 갈 수 없었다. 여명의 신은 여전히 하얀 미소를 지으며 그런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가자, 가지 말자, 가자, 가자 말자. 나는 아내와 한 동안 실랑이를 벌이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오로라의 휘장 밑에 있는 차가운 물에 빠지고 말았다. 앗, 차가워! 고함을 지르고 눈을 떠 보니 꿈이었다.   

  

“당신, 아침부터 웬 소리를 그렇게 질러대요.”

“응… 꿈에 오로라를 봤지 않겠소.”

“오로라, 오로라, 오로라! 오직 오로라 뿐이니 당신은 오로라에 미친 사람 같아요.”

“그런가 보오. 꿈속에서라도 보았으니 다행으로 생각해야지."     


여명의 여신은 아직 우리에게 오로라를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어찌 단 한 번만의 방문으로 신이 펼치는 하늘의 쇼를 쉽게 보기를 원 한단 말인가? 다음을 기약하며 아내와 보되에서 북쪽으로 300km 떨어진 나르빅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짐을 챙겼다. 혹시 아는가? 그곳에서 오로라의 신이 우리를 맞이해줄지.


오직, 오로라를 위하여      


당신은 아직

여명의 신오로라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어요

     

당신은 아직 

이 벅찬 환희의 빛을 감당하기엔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어요.    

 

밤하늘에 펼쳐지는 오로라 쇼는 

그렇게 아무나 쉽게  수 있는 게 아니라오.     

허지만 , ‘여명의 신’ 오로라는

당신이 다시 오기를 기다리겠소.   

  

북극이던 남극이던 

당신이 다시 찾아오는 날     

밤하늘에 별들과 함께

그대의 창가를 비추어 주리라.   

  

여명의 신이시여!

경솔한 나를 마음껏 꾸짖어 주소서.     

나는 아직 그대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를 않았소이다.     

정화수로 몸을 씻고

천일의 기도를 한 후에

다시 그대여명의 신을 찾아오리다.  

   

오로라

오직오로라를 위하여!  


♣사람은 풍경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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