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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Jan 03. 2019

14. 오로라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노르웨이 보되~나르빅~키루나

판타지의 세계 속으로!


보되(BodΦ) 버스터미널에서 나르비크(Narvik)로 가는 버스를 탔다. 보되에서 북쪽으로 180km 떨어진 나르비크까지는 거리상으로 그리 멀지는 않지만 들쑥날쑥한 피오르드 협만을 건너가야 하고, 대중교통 수단인 버스를 타고 가야 하므로 하루 종일 가야 할 것 같다. 내가 나르비크로 가는 이유는 그곳에서 다시 더 북쪽에 있는 트롬쇠 쪽으로 올라가 오로라를 볼 수 없을까 해서였다. 하지만 오로라를 감상하기 위해 한 달간이나 북극권에 머물렀다는 여행자도 오로라를 보지 못했다고 하는데, 한겨울인 아닌 10월에 트롬쇠까지 간다고 해도 오로라를 볼 수 있는 있다는 보장은 없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에 여러 번 피오르드를 건너야 했다. 그때마다 페리는 사람과 버스를 함께 싣고 갔다. 페리는 버스를 뒤에서 먹어치우고 앞으로 토해 냈다. 입을 쩍 벌리고 버스를 먹어치우는 배가 괴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버스와 배를 번갈아 타고 피오르드와 험한 산악지대를 달리는 절경은 북유럽 특유의 판타지 세계를 나타내고 있었다. 잔뜩 흐린 날씨,  하늘과 맞닿아 있는 눈 덮인 설산, 톱니바퀴처럼 들쑥날쑥한 피오르드, 설산에 떼 지어 뛰노는 순록의 무리들… 눈발이 휘날리는가 하면, 어느 순간에 비가 내려 종을 잡을 수 없을 만큼 묘한 날씨를 연출하고 있었다. 나는 점점 북극권 펼쳐지는 판타지 세계로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여긴,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같은 곳이야. 뉴질랜드의 밀포드 사운드, 스코틀랜드의 인버네스, 그리고 지금 여행하고 있는 이 북유럽은 풍경 그 자체가 판타지의 세계다. 길고 긴 낮과 밤, 어두운 동굴 속 같은 기나긴 겨울을 견디기 위해서는  판타지의 세계로라도 몰입하지 않고서는 배겨 나기 어려우리라.


▲버스와 페리를 번갈아 타고 갔다.


버스는 오후 2시쯤 어느 이름 모를 휴게소에서 잠시 정차했다. 운전사는 이 휴게소에서 커피를 한잔 할 수 있는 브레이크 타임을 준다고 코멘트를 했다.  우리는 휴게소에서 커핀 한잔을 사들고 휴게소 앞에 이상하게 생긴 동상 앞으로 갔다. 마치 북유럽의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모습 같기도 하고, 숲 속의 요정인 트롤(Troll) 같기도 하다. 코가 긴 남자와 키가 작은 여인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우스꽝스러웠다. 형태는 다른지만 우리나라 장승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 인형 앞에서 커피를 마시는 아내의 모습이 판타지의 세계처럼 야릇하게 보였다.  


▲라플란다 지역 어느 휴게소


▲휴게소에 세워진 이상한 인형들


그 옆에는 공룡을 타고 뿔이 달린 모자를 쓴 난쟁이 여인이 모자와 작은 몽둥이를 들고 있는데, 눈은 올빼미처럼 컸다. 뭔가 동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런 모습인데, 동화 속 인물 같기도 했다. 이 지역은 '닐스의 신기한 여행'에 나오는 스칸디나비아 북극권에 해당하는 라플란다 지역이다. 스웨덴의 동화작가 셀마 라게를뢰프는 라플란다를 중심으로 하는 '닐스의 신기한 여행'이란 동화를 집필했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우리 식구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아침에 TV에서 방영되는 ‘닐스의 모험’이란 만화를 보는 데 여념이 없었다. 추운 겨울로 기억이 되는데 , 온 식구가 함께 이불속에 엎드려 우리는 그 만화를 보았다. 장난꾸러기 닐스는 가축들을 괴롭히다가 요정 톰테에게 잡혀 톰테의 마법에 걸려 난쟁이가 되고 만다. 난쟁이가 된 닐스는 동물들의 말을 이해하게 되지만 평소 닐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가축들은 키가 작아진 닐스의 모습을 보면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닐스에게 복수를 가하게 된다. 지금 우리가 보도에서 버스를 타고 나르비크로 가는 자연환경이 꼭 그 동화책에 나오는 풍경처럼 보였다. 


"커피 맛 하나는 죽여주네요!"

“하하, 인형 뒤에 선 당신이 북유럽의 신화에 나오는 요정처럼 보이네!”

“예궁, 어찌 그런 거짓말을…”


버스에서 내린 승객들은 모두들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었다. 따뜻한 커피 한잔에 피로가 확 풀렸다. 손에 잡힐 듯 낮은 구름이 비를 뿌려대기 시작했다. 북유럽의 신이 뿌리는 눈물 같기도 하고, 심술궂은 숲 속의 요정이 흘리는 물방울 같기도 했다. 


피오르드를 둘러싸고 있는 산들의 모습이 황소의 뿔을 단 것처럼 뾰쪽하게 보였다. 마치 중생대의 공룡이 곧 나타날 것만 같은 그런 으스스한 날씨다. 갑자기 밤인지 낮인지 분간을 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날씨가 어두워졌다. 우리는 버스와 배를 번갈아  타며 오후 3시경 나르비크에 도착했다. 나르비크에 도착하자 느닷없이 햇볕이 쨍쨍 내리쬐기 시작하였다. 북유럽의 날씨는 정말로 가늠하기 어려운 변덕쟁이 날씨다. 여우가 시집을 가는지, 호랑이가 장가를 가는지 통 분간을 하기 어려운 날씨다.     


트롬쇠로 갈까키루나로 갈까?     


나르비크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아내와 나는 다음 행선지에 대하여 다소 의견이 엇갈렸다. 나는 트롬쇠까지 가서 오로라를 기어코 보자는 의견이고, 아내는 한 겨울에도 한 달 동안 오로라를 볼 수 없는 경우도 있다는데 그냥 스톡홀름으로 가자고 했다. 


“내 생각으로는 오로라를 보기가 힘들 것 같은데… 스톡홀름으로 방향을 트는 게 어떻겠어요.”

“오로라를 감상하기 위해서 여기까지 그 힘든 길을 왔는데 그냥 포기를 한다는 것이 너무 억울하지 않소?”

“그런데 이상해요. 이번 여행에서는 오로라를 만날 수가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드니 말이에요.”

“후회하지 않겠소? 여기까지 와서 오로라를 포기하다니. 오로라의 신이 당신의 아픔 곳을 치료해줄 텐데.”

“후회는요. 저는 그런 건 믿지도 않고요, 솔직히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만족해요. 우리가 앞으로 갈 길도 아득한데 확률적으로 한겨울에도 아무나 쉽게 볼 수 없는 오로라를 위해 시간을 너무 투자하고 싶지 않아요. 더구나 지금은 10월이지 않아요.”

“그건 당신 말이 맞기도 해요. 그럼 이렇게 합시다.”

“어떻게요?”

“트롬쇠를 가지 못하는 대신, 스웨덴의 키루나까지 가서 거기서 하루 밤을 지내고 그다음 날 스톡홀름으로 가는 거요. 키루나도 오로라가 자주 출현하는 곳이래요. 세계 유일의 얼음호텔인 아이스 호텔이 있는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고.”

“아직도 오로라에 미련이 있는 거죠? 좋아요. 그것까지 반대를 할 수는 없군요.”


이렇게 해서 우린 트롬쇠로 가려던 방향을 틀어 키루나로 가기로 했다. 트롬쇠는 오로라 관측소까지 있는 곳이다. 그리고 북극의 파리라고 일컬을 정도로 아름답다는 도시다. 또한 이 근처의 로프턴 제도는 아름다운 섬과 빼어난 바다의 풍경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갈 길이 먼 우리는 아쉬움을 남긴 채 방향을 동쪽으로 틀어야 했다. 


버스터미널에서 기차역으로 가는 길은 가파른 언덕이었다. 택시를 타는 것을 참고 우린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낑낑거리며 언덕길을 올라갔다. 택시비를 아껴야 했다. 아무리 힘이 들더라도. 다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숨을 헐떡거리며 언덕 위에서 잠시 뒤를 돌아보니 나르비크 항구가 한눈에 들어왔다. 피오르드 깊숙이 자리한 나르비크는 천혜의 요새처럼 보였다. 나르비크는 1940년 독일군이 철광석 확보를 위해 눈보라 속에 침공을 했다가 영국 함대에 의해 격침을 당했던 그 유명한 ‘나르비크 해전’의 격전지다. 


나르비크 역에 도착을 하여 키루나로 가는 시간표를 물어보니 오후 4시 5분에 출발하는 기차가 있었다. 키루나까지는 2시간 40분 정도 걸린다고 했다. 나는 트롬쇠를 가지 못하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키루나행 열차표 두 장을 284 크로네를 지불하고 샀다. 스칸레일 패스는 이제 하루가 남았는데, 이 티켓은 키루나에서 스톡홀름으로 가는 먼 길을 갈 때에 사용하기로 했다. 


▲나르비크 기차역


아직 출발 시간이 남아있어 잠시 플랫폼 의자에 앉아있는데 문 쪽에서 동양인 부부가 들어오며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들은 우리가 일본인 줄 알고 일본말로 말을 걸어왔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말하자. 부인이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하며 허리를 구부리고 인사를 했다. 


“어디서 오는 길이지요?”

“저희들은 키루나에서 오는 중이에요.”

“호오, 그래요. 우리는 지금 키루나로 갈려는 참인데. 그럼 다음 행선지는 어디신가요?”

“트롬쇠로요. 저희들은 오직 오로라를 보기 위해서 북유럽 여행을 왔거든요. 그래서 트롬쇠로 가려고 해요. 그리고 트롬쇠에서 오로라를 보지 못하면 더 북쪽으로 갈 예정입니다.”

"오직, 오로라를 위해서? 더 북쪽으로!"

"네, 오직 오로라를 위해서요."

“키루나에서는 오로라를 보지 못했던가요?”

“네. 스웨덴에서는 키루나가 가장 오로라를 잘 볼 수 있는 도시라고 하여서 일주일 동안이나 머물며 고개가 떨어져라 밤하늘을 쳐다보았는데, 오로라는 끝 내 나타나지 않았어요.”


맙소사! 일주일씩이나 기다렸다는데. 그럼 우리도 키루나에서 오로라를 관찰하기는 이미 틀린 것이란 말인가.

 

“사실 저희들도 여기까지 온 건 오직 오로라를 보기 위해서인데. 아직 오로라를 보지 못했거든요."

“그럼 저희들과 함께 트롬쇠로 가요.”

“우린 이미 키루나로 가는 기차표를 샀는데요?”

“기차표는 무르면 돼요. 여기까지 와서 오로라를 포기하시려나요?”

“그런 건 아니지만….”


▲나르비크에서 키루나로 가는 기차에 오르며


 일본인 부부의 오로라에 대한 집념은 대단했다. 오직 오로라를 위해서 북으로 북으로 갈 예정이라고 했다. 오로라를 볼 때까지... 그들의 짐은 우리들 짐보다 두 배 정도는 더 많아 보였다. 웬 짐이 그리 많으냐고 물어보았더니 남편이 서양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해 일본에서 음식재료와 취사도구까지 챙겨서 가져오다 기다 보니 그렇게 짐이 많아졌다고 했다. 더구나 남편은 술을 좋아해서 술안주까지 준비를 하다 보니 짐이 더 무거워졌다고 했다. 남편은 영어를 전혀 못하는지 아내 옆에서 그저 웃기만 했다.  


“참, 멋진 여행을 하시네요. 술을 마시며 아내와 함께 떠나는 오로라 여행을 하시다니.” 

“아유, 말도 말아요. 저는 남편 안주 챙길라 술 챙길라 죽을 지경이랍니다.”


북극의 차가운 날씨는 따끈한 정종이나 화끈한 보드카 한 잔이 여행의 피로를 달랠 수도 있으리라. 그들은 무거운 짐을 지고 오로라를 보기 위해 앞으로만 돌진해 가는 마치 가미가제 특공대처럼 보였다. 일본인 부부가 트롬쇠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멀어져 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나를 위로라도 하듯 아내가 말했다.


“아마 저 일본인 부부가 트롬쇠로 가도 아마 오로라를 보지 못할걸요.”

“글쎄… 그럴까?”

아내여, 나를 위로할 생각을 하지 말아 다오. 나 역시 당신과 함께 이렇게 걸으면서 세계를 여행하는 것만으로도 과분하니까. 그렇지만 나는 자꾸만 트롬쇠로 가는 일본인 부부가 떠올랐다. 오로지 오로라를 위하여 탱크처럼 북으로 북으로 떠나는 그들이 부럽기까지 했다.     


오로라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 스웨덴 땅이다. 스웨덴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아바 그룹이다. 1970년대와 80년대 전 세계의 음악 펜들을 매료시켰던 아바! 나는 아바의 음악을 좋아한다. 부담이 없고 평온한 그들의 노래는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나르비크는 스웨덴에서 기차로 갈 수 있는 노르웨이 북부에 위치한 도시다. 멕시코 만류의 영향으로 나르비크는 얼음이 얼지 않는 부동항(不冬港)으로 키루나의 철광석을 실어 나르는 스웨덴을 위항 항구 역할을 하고 있다. 오래된 기차들을 전시해 놓은 것이 이색적이었다. 


드디어 기차는 키루나를 향하여 출발했다. 곧 기차는 스웨덴 국경을 통과했다. 노르웨이여, 안녕! 그렇지만 오로라를 위해서 언젠가는 다시 오고 말리라. 기차는 설경과 호수가 어우러진 스웨덴의 북극 산악지방을 느리게 달려갔다. 산이 워낙 가파르고 위험해서인지 기차는 제 속력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슬아슬한 천 길 낭떠러지, 깊게 펼쳐진 협곡, 눈 덮인 설경…. 10월인데도 북극의 산악지방은 눈과 얼음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키루나에 가면 얼음 호텔에서 하루 밤을 잘까?”

“아유, 추워서 어떻게 얼음 속에서 잘 수 있겠어요?”

“북유럽의 신화처럼 얼음 속에서 하루 밤 꿈을 꾸며 다시 태어나는 기분도 특별한 경험이 되지 않겠소.”

“얼어 죽지 않을까요?”

“당신이 옆에 있으면 춥지 않을 걸. 더구나 얼음 속에서는 모든 균들이 꼼짝도 못 한데요.”

“호호, 그럼 우리도 얼음 인간이 되겠네요?”

“몇 달간 얼음 속에서 잠을 자고 나면 우리 몸속의 모든 세포가 깨끗하게 청소가 되지 않을까?”


얼음호텔에서 하루 밤을 지낸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아이스 침대의 하루 밤을……. 얼음침대는 과연 추울까? 더울까?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동안 기차는 정확히 18시 46분에 키루나 역에 도착했다. 어두워진 밤거리. 키루나에 도착한 우린 유스호스텔을 찾기에 급급했다.  

   

키루나는 스웨덴 최북단에 위치한 도시다. 도시면적이 스위스 면적의 절반에 해당할 만큼 넓다. 면적에 있어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라고 하는데, 인구는 고작 2만 6,000명.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은 도시가 인구는 채 3만 명도 되지 않는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도시다. 


키루나 주변에는 6,000여 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아름다운 호수가 있다. 이 중 토르네트라스크 호수가 가장 큰 호수로  호수들이 모여 있는 지역은 ‘유럽의 마지막 야생지’라고 불릴 만큼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다. 그래서 키루나는 북유럽의 휴양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키루나 인근에는 스웨덴에서 가장 높은 케브네카이즈 산이 있어 등산, 스키, 카누, 래프팅 등 겨울 스포츠와 다양한 레포츠를 즐기기에 적합하여 젊은이들이 끊임없이 몰려드는 곳이기도 하다. 매년 1월에는 이곳에서 스웨덴의 눈 조각 축제가 열리고, 7월에는 민속 페스티벌이 열린다. 3, 4월경에 열리는 개썰매 대회는 유럽에서 가장 큰 대회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키루나는 개들의 숫자가 인구수보다 많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키루나를 찾은 이유는 따로 있다. 첫 번째는 혹시 오로라를 볼 수 있을까 하는 미련이고, 두 번째는 세계 유일의 얼음호텔이 그것이다. 우리가 이곳을 방문한 첫 번째 목적은 물론 오로라를 보는 것이다. 그다음에는 키루나에 있는 "유카스 야르비"로 가서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얼음호텔을 체험해 보는 것이다.


키루나 기차역에서 내가 찜해 놓은 ‘유스호스텔 키루나’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그러나 호스텔에 도착을 하니 문이 잠겨 있었다.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었다. 호스텔 바로 옆에는 중국요리 집 간판이 보였다. 우리는 먼저 중국요리 집에 가서 요기를 하기로 했다. 마침 동양인이 경영하는 중국음식점이었다. 오랜만에 동양 사람을 맞나니 고향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그 역시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반가워요! 저희들은 한국에서 왔답니다."

"아, 반갑습니다. 두 분만 여행을 오신 건가요?

"네."

"참 대단하십니다. 그 나이에... 배낭여행이라니... 저는 마이클 장이라고 합니다."

"하하, 저는 오케이 초이라고 해요."


주문을 하면서 호스텔이 문이 잠겨있다고 했더니 저녁 6시 이후에는 주인이 퇴근을 한다고 했다. 그는 친절하게도 주인집으로 전화를 걸더니 뭔가 간단하게 통화를 했다. 전화를 끊은 그는 30분 후면 주인이 올 거라고 했다. 마이클 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당초에 상해의 어떤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이곳에 왔다가 키루나가 좋아 눌러앉게 되었다고 했다. 키루나의 자연환경에 반해 그만 이곳에 머물기로 결정했다는 것. 그의 용기가 부러웠다. 용기가 있으면 이 세상 어디에서나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세상 어느 곳에서나 순간순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정말 대단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저녁을 다 먹을 즈음 마이클 장의 말처럼 30여분 후에 호스텔 주인이 왔다. 콧수염을 기른 그는 말이 많은 수다쟁이였다. 주인은 숙박비 320 크로네를 받더니 룸 열쇠와 현관문의 암호, 그리고 호스텔 사용방법 등을 알려주더니 수다를 한바탕 장황하게  떨고는 나에게 말했다. 


“혹시 질문 있나요?”


아내와 내가 그의 수다에 얼이 빠져 콧수염을 빤히 쳐다보았다. 


“침묵은 질문이 없다는 것이니 그럼 질문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저는 이만 물러갑니다. 애로사항이 있으면 이 번호를 전화를 해주세요.”


그는 손을 흔들며 유유히 사라져 버렸다. 


“하하, 참 재미있는 친구네요!” 


자기 방식대로 일을 하는 그가 왠지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철학과 시간과 생활을 갖는 그가 멋있지 않은가? 키루나가 좋아서 눌러앉게 되었다는 마이클 장과 자기 방식대로 호스텔을 운영하는 콧수염을 기른 바이킹의 후예!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가치관대로 살아가는 그들이 부러웠다.


호스텔에 짐을 풀어놓고 나는 밖으로 나왔다. 혹시 오로라가 출현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였다. 아내는 피곤하다며 쉬겠다고 했다. 북구의 밤은 춥다. 그러나 1시간 동안을 밖에서 덜덜 떨며 기다려도 하늘엔 반쯤 이지러진 달만 빛나고 있을 뿐, 오로라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키루나의 시가지를 배회하며 무작정 걸었다. 그냥 서있기만 하기에는 너무 추웠기 때문이었다. 인적이 드문 키루나의 거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1시간이 넘게 거리를 걸어 다녔지만 사람을 만난 것은 딱 두 번 정도였다. 


오늘 밤에도 오로라는 끝내 나타나질 않을 모양이었다. 깊어가는 키루나의 밤. 나는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호스텔은 암호를 눌러야 문이 열린다. 나는 수수께끼라도 풀 듯 "열려라 참깨!"라고 중얼거리며 키보드의 숫자를 눌렀더니 다행히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지 않으면 곤히 잠자고 있는 아내만 깨우고 말 것이다. 


아내는 정말 깊이 잠이 들어 있었다. 나는 아내가 깨지 않도록 슬그머니 침대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그러나 눈만 말똥말똥하고 통 잠이 오질 않았다. 오로라 때문이었다. 아마 아내의 말대로 오로라는 나타나지 않을 갓 같았다. 아니 끝내 오로라는 나타나지 않았다. 자, 이제 오로라는깨끗이 포기하고 잠이나 자자.


♣포기할 것은 깨끗이 포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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