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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Dec 30. 2018

11. 첫 번째 물방울이
가장 용감하다네!

▶오슬로 시청사~바이킹박물관

오슬로의 심벌인 시청사는 붉은 벽돌 건물과 두 개의 사각기둥 탑이 강한 인상을 주며 바닷가에 우뚝 서 있었다. 청사 안으로 들어가니 우선 거대한 벽화와 바닥 모자이크가 눈에 띄었다. 입장을 할 때 가이드를 부탁했더니 검정 투피스를 입은 키가 큰 푸른 눈의 미인이 싱글싱글 웃으며 우리들 곁으로 왔다.  

    

그녀는 노벨 평화상 시상식과 거대한 벽화와 북유럽의 신화 '에다'에 대해서 차례로 설명을 해주었다. 북유럽의 신화 ‘에다’를 그린 조각 그림도 매우 흥미로웠다. 16개의 나무 조각에 북유럽의 신화 ‘에다(Edda)’의 창조신화를 묘사해 놓은 그림은 매우 특이했다. 특히 석류나무 밑에서 벌거벗은 두 여인이 꽃나무에 생명의 물을 주고 있는 모습은 퍽 인상적이었다. 안내원은 에다의 신화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노르웨이 신화 에다에 따르면 천지창조는 '물방울'에서 시작된다. 북쪽 서리 나라에 강물이 얼자, 남쪽의 불꽃 나라에서 불덩이들이 날아와 얼음을 녹인다. 최초의 물방울이 용감하게 떨어지기 시작했고, 마지막 물방울은 생명을 띠워 태초의 거인 '위미르'가 탄생한다. 최초의 물방울과 마지막 물방울이 주는 의미는 다르다. 


2000년도에 김대중 대통령이 오슬로에서 노벨평화상을 수상할 때에 노벨상 위원회 '군나르 베르게' 위원장은 발표문에서 노르웨이의 시인 '군나르 롤드크밤'의 '마지막 한 방울'이란 시를 인용하였다.   

   

옛날 옛적에

물 두 방울이 있었다네.

하나는 첫 방울이고

다른 것은 마지막 방울

첫 방울은 가장 용감했네.

나는 마지막 방울이 되도록 꿈꿀 수 있었네

만사를 뛰어넘어서 우리가 우리의 

자유를 되찾는 그 방울이라네.

그렇다면 누가

첫 방울이기를 바라겠는가? -군나르 롤드크밤-     


군나르 베르게 위원장은 이 시를 인용한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냉전의 빙하 시대는 끝났습니다. 세계는 햇볕정책이 한반도의 마지막 냉전 잔재를 녹이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시작되었으며, 오늘 상을 받는 김대중 씨보다 더 많은 기여를 한 사람은 없습니다. 시인의 말처럼 첫 번째 떨어지는 물방울이 가장 용감하였노라.”  

 

'첫 번째 떨어지는 물방울이 가장 용감 하노라' 아,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어떤 일이든지 첫발을 내딛는 것이 가장 어렵다. 누가 첫 방울이기를 바라겠는가? 그것은 희생이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바친 위대한 첫 물방울이었다. 그는 반세기를 투옥, 가택연금, 망명생활, 사형선고를 받는 인고의 세월을 보내면서도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건 용감한 첫 물방울이었다. 그리고 그는 대한민국 민주화의 마지막 물방울이 되었다.     

▲노벨평화상이 시상되는 오슬로 시청

우리들의 여행은 그 첫 물방울인 시작점에 머물고 있었다.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세계일주를 무사히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 우리는 건강을 되찾은 마지막 방울이 되리라. 2층에서 내려다보니 아무도 없는 텅 빈 홀의 모자이크 바닥에 서 있는 아내가 마지막 물방울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누군가를 위하여 과연 첫 번째 물방울이 될 수 있을까? 아내를 위해? 나 자신을 위해? 허지만 나는 죽기 전에 세계 일주를 하고 싶다는 아픈 아내의 소원을 핑계 삼아 세계를 여행하는 기회주의자 인지도 모른다. 


2층 남쪽 벽에는 헨릭 쇠렌센(Herik Sorensen:1882~1962)이 그린 '노동, 행정, 축제(Arbeid, administrasjon, fest)'라는 제목이 붙은 대형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안내원은 이 벽화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가로 42m, 세로 13m의 나무판에 그린 유화는 여러 계층의 인간들이 살면서 겪게 되는 다양한 활동을 묘사하고 있다. 가장 아래층은 불타는 주택들이 그려져 있고, 사람들은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간다. 2층에는 외출복을 입은 남녀들이 어울리고 있다. 3층과 4층에는 황금빛 공간에는 아마 신의 영역을 그린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린 지금 어느 영역에 있을까?


▲헨릭 쇠렌센(Herik Sorensen:1882~1962) '노동, 행정, 축제(Arbeid, administrasjon, fest) 대형 벽화


시청사를 빠져나와 다시 카를 요한스의 거리로 걸어가는데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빗방울! 누구를 위한 빗방울인가? 비를 피해 잠시 쇼핑상가로 들어갔는데 건물 안에서 유모차를 끌고 나오는 아줌마 부대를 만났다. 모두가 유모차를 밀고 나오는데 아줌마 부대의 줄이 끝없이 나오고 있었다.    

  

"웬 아줌마들이 이렇게나 많이 나올까?"

"아마 쇼핑을 하고 나오는 아줌마들이 아닐까요?"

"그래도 저렇게 떼거지로 몰려나오지는 않을 텐데?"     


유모차를 밀고 나오는 아주머니들은 모두가 늘씬한 북유럽의 미녀들처럼 보였다. 극장에서 나온 아주머니들은 모두 유모차를 몰고 버스정류장으로 가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진기한 풍경이었다. 궁금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니 멀티영화관이 그곳에 있었다. 극장 앞에는 아기들을 맡아서 돌보아주는 베이비시터가 있었다. 아기들을 베이비시터한테 맡겨두고 영화를 관람하고 나오는 아주머니들이었다.  

    

북해 유전 개발로 거부가 된 노르웨이는 생활도 풍족하고 사회복지가 매우 잘 보장되어 있는 나라다. 그들이 자가용이 없어서 유모차를 끌고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집에서 유모차를 밀고 나와 버스를 타고 영화를 보는 마음의 여유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다.  

    

우리는 바이킹 박물관으로 가는 버스를 찾아 나섰다. 어느 아주머니에게 박물관으로 가는 버스를 물어보았더니, 우리를 정류장까지 데려다주며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었다. 그녀는 우리들에게 길을 안내해 주고는 다시 오던 길로 총총히 걸어갔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북유럽 사람들의 친절은 어디를 가나 알아주어야 한다.      


노르웨이의 역사는 탐험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이킹의 시대로부터 시작하여 북극을 탐험한 난센, 세계 최초로 남극을 탐험한 아문젠, 콘티키 호를 타고 페루에서 폴리네시아까지 항해한 혜예르달에 이르기까지…. 이들을 기념하는 박물관들이 바닷가에 인접한 뷔그되이 지구에 운집해 있다. 하얀 백색의 벽이 교회를 연상시키는 바이킹 박물관 내부로 들어가니, 둥근 막사처럼 생긴 전시실이 나오고, 영화에서나 보았던 아름다운 곡선을 가진 바이킹의 선체가 하얀 벽과 대조적인 암갈색으로 놓여있었다.   

   

▲바이킹들이 탔던 중세시대의 배 오세베르크 호


"이건 여왕 전용 배라는 군."

"배의 곡선이 너무 아름다워요!”     


입구에 전시된 오세베르크 호는 800년대부터 50년간 여왕 전용으로 사용해오다가 여왕이 사망하자 여왕의 무덤으로 수장했던 것을 1904년에 발굴했다고 한다. 전시되어 있는 세척의 선박 중 가장 우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선체의 곡선이 매우 아름다운 고크스타드 호와 배의 밑창만 남아있는 투네 호의 모습도 특이했다. 피오르드에서 건져낸 이 선박들은 한 때 대서양을 횡단하여 미국까지 건너갔던 쾌속선들이다. 지금이라도 우람하게 생긴 바이킹들이 함성을 지르며 선실로 뛰쳐나올 것만 같았다.    


▲바이킹박물관에 전시된 배

 

바이킹 박물관에서 나온 우리는 콘티키 박물관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단풍이 막 들기 시작한 숲 속은 너무 아름다웠다. 날씨 또한 북유럽에서는 매우 보기 힘들 정도로 쾌청하여 걷기에 아주 좋은 날이었다. 베르겐에 머무는 동안에는 내내 비속에 갇혀 있었는데 모처럼 햇빛을 보니 걷고 싶었다.   

   

북유럽 인들이 햇빛을 보면 옷을 벗는 이유를 이제야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은 어디서나 햇빛만 만나면 보기가 민망스러울 정도로 옷을 홀랑 벗어젖힌다. 공원의 잔디밭이나 해변을 거닐다 보면 반나체 혹은 완전 나체로 자유롭게 뒹구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곳에서도 햇빛이 나자 그들은 자연스럽게 윗도리를 벗고 반나체로 행보를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제 그런 모습을 보더라도 별로 이상하게 생각이 되지 않는다.      

콘티키 박물관까지 걸어가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곳에는 콘티키 박물관을 비롯하여 프람호 박물관, 노르웨이 해양박물관이 줄줄이 모여 있었다. 


▲콘티키 박물관에 전시된 모아이상

“와, 저게 수수께끼의 모아이 상이로군요!” 

“흠, 꼭 제주도의 돌하르방과 비슷하게 생겼군요.” 

“정말 저 갈대배를 타고 이스터 섬까지 갔을까요?"

"글쎄,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아요."     


아내는 콘티키 박물관에 전시된 갈대배와 모아이상이 매우 신기한 듯 요리 저리 훑어보았다. 우리들의 세계일주 여정은 수수께끼의 모아이상이 있는 이스터 섬까지 계획하고 있었다. 아내는 갈대로 만든 배를 바라보며 남태평양 한가운데 외로이 떠 있는 이스터 섬까지 갈 수 있을 것인지 믿어지지가 않는 모양이었다.      


노르웨이의 인류학자 토르 헤예르달은 남미대륙에서 이스터 섬까지 파피루스로 만든 배를 이용하여 항해를 한 탐험가이다. 그는 전설적인 인디오의 항해를 입증하기 위해 1947년 6명의 승무원을 콘티키(Kon-Tiki)호에 태우고 페루를 출발했다. 콘티키는 폴리네시아 어로 ‘태양의 아들’이라는 의미다. 그는 파피루스로 만든 콘티키 호를 타고 피라미드와 잉카 문명의 공통점을 밝히기 위해 101일 동안 8,000킬로미터를 항해하며 표류하다가 폴리네시아의 투아모투 섬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콘티키 호 박물관은 헤예르달의 전설적인 항해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워진 박물관이다. 


▲혜예르달이 101동안 8,000km를 남미 페루에서 이스터 섬으로 항해를 했던 갈대배


“우리가 과연 저 먼 이스터 섬까지 갈 수 있을까요?” 

“신이 우리를 보호한다면 그곳까지 무사히 도착할 거요.”     


모든 탐험은 하나의 가설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지구의 최북단 노르웨이에서 남태평양의 망망대해에 한 점처럼 떠 있는 이스터 섬까지 가려고 마음을 먹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하나의 가설일지도 모른다. 단지 헤예르달 갈대배가 아닌 비행기로 날아간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몸이 성치 않는 아내와 단 둘이서 지구를 돌아 남태평양의 이스터 섬까지 간다는 것은 어쩌면 헤예르달의 모험보다 더 무모하고 위험할지도 모른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갑자기 골치가 지근거리기 시작하였다. 길눈이 어두운 어눌한 나를 믿고 세계 일주를 따라나선 아내의 위험한 용기를 나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과연 사선(死線)을 넘나들었던 사람의 용기는 가상하다. ‘죽느냐 사느냐?’의 고비까지 갔다 왔던 아내는 세상을 사는데 겁이 없다. 아내보다 오히려 내가 겁이 더 많다. 그래,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나는 지금 노르웨이 있으니 용감한 바이킹이 아닌가!  나는 용기 하나로 아픈 아내와 단 둘이서 세계일주를 감행하는 첫 번째 물방울이 되리라. 


난센과 아문센의 북극과 남극 탐험 사를 한눈에 불 수 있게 전시된 거대한 프람호의 위용은 대단했다. ‘앞으로’란 뜻을 지닌 프람호(Fram)는 항아리 모양의 독특한 설계 때문에 빙하로 가득한 북극과 남극을 안전하게 항해하여 정복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나는 거대한 프람호의 키를 잡고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이 프람호를 몰고 안전하게 항해를 할 테니 걱정 말아요."

"호호호, 정말 당신이 선장처럼 보이는군요. 멋져요!" 


▲노르웨이 탐험가 난센이 북극을 탐험했던 프람호


모험이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우리들의 여행도 큰 모험이다. "20년 후 당신은, 했던 일보다 하지 않았던 일들로 인해 더 실망할 것이다. 돛 줄을 풀어라. 안전한 항구를 떠나 항해하라, 당신의 돛에 무역풍을 가득 담아라. 탐험하라. 꿈꾸라. 발견하라!" 나는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명언을 상기시키며 푸람호 박물관을 나왔다. 나는 안전한 항구를 떠나 아내와 단 둘이서 무역풍을 따라 탐험에 나서고 있었다. 

 

프람호 박물관에서 나온 우리는 노르웨이 민속박물관으로 들어가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들여 마셨다. 우리 는 12세기 목조 교회인 스타브 교회 앞에서 어린애들처럼 뛰어다녔다. 오래된 전통가옥들 사이를 산책을 하다 보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노르웨이의 과거 속으로 여행을 떠나고 있는 것 같았다.


♣'첫 번째 떨어지는 물방울이 가장 용감 하노라' 나는 용기 하나로 아픈 아내와 단 둘이서 세계일주를 떠나는 첫 번째 물방울이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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