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찰라 Jan 10. 2019

17. 정말 심심해서
자살을 할까?

스웨덴-스톡홀름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 사람들이 왜 자살을 많이 할까?


스톡홀름은 과연 세계 제일의 복지 국가답게 모든 시스템이 인간 중심으로 되어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도 너무 깔끔하고 깨끗하다. 도로, 건물, 보도블록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마치 칼로 잘라 조각을 해 놓은 듯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도시 전체가 너무 깨끗하고 완벽해요.”

“정말 깔끔하군요!”     


아내와 나는 중앙역에서 트램을 타고 세르겔 지구로 가면서 너무도 깔끔하고 아름다운 도시에 감탄을 했다. 스톡홀름의 중심가 세르겔 지구는 현대적인 감각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세르겔 광장의 기하학적인 바닥 무늬가 매우 독특하게 돋보였다. 또한 지하에서 투명한 유리 구멍을 통해 바라보이는 하늘과 분수의 모습은 공학적인 도시건축설계를 다시 한번 느끼게 했다. 


▲스톡홀름 세르겔 지구

     

그러나 이렇게 살기 좋고 완벽한 복지제도 때문에 자살률이 오히려 높다니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스웨덴에서 태어나는 아이들 3명 중 1명은 미혼모로부터 태어난다고 한다. 더욱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것은 이 미혼모들에게 경제적인 복지혜택을 더 많이 준다는 사회보장제도다. 미혼모 수당, 육아수당, 아파트 보조금을 주는가 하면, 미혼모들은 냉대와 비난의 대상이 아닌, 당당한 하나의 가족 형태로 받아들여져 각종 복지 서비스가 제공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보살펴주는 완벽한 복지제도를 갖춘 스웨덴도 자살률은 의외로 높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보살펴 주는 것이 스웨덴의 복지제도다. 스웨덴뿐만 아니라 행복지수가 높은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스위스 등도 자살률은 의외로 높게 나타나 있다. 행복하다고 자살률이 낮은 것은 아닌 것 같다. 아무리 완벽한 복지제도도 인간을 결코 행복하게만 해주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완벽한 사회보장 시스템의 가동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나태함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된다고 한다는 것.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하여 바동거릴 필요가 없다. 아이들은 낳기만 하면 국가에서 먹여주고, 길러주고, 가르쳐 주니 사람들은 할 일이 별로 없어 드디어 심심 해고 만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북구의 긴 밤은 사람들을 고독하고 외롭게 만들어 자살을 생각하게 만드는 우울증을 발생시킨다고 한다. 이런 자살 병은 정말 심심해서 생기는 그야말로 고급 병이다. 하루 동냥을 하여 그 날 하루를 살아가는 인도의 거지들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다. 인도의 뭄바이에서 보았던 거지들은 그래도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곳 거리에서 본 파란 눈의 부자들은 어쩐지 우수에 젖어있는 모습이다. 인간의 행복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반면,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6.5명(2015년 기준)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어 심각한 사회문제도 대두되고 있다. 자살의 원인으로는 사회불안, 경제난, 가정불화, 외로움과 고독에서 오는 우울증, 인격장애 등에서 오는 정신질환을 꼽고 있다. 


스웨덴은 범죄율이 제로에 가까워 경찰이 별로 할 일이 없다. 경찰서를 폐쇄한다는 정부의 통보에 경찰들이 오히려 범죄를 저질러 경찰서 폐쇄를 극력 저지하는 웃지 못할 코미디 같은 영화까지 있다. 바로 ‘깝스(Kops)’라는 영화가 그런 영화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살률은 높게 나타나고 있다. 스웨덴 사람들은 정말로 심심해서 자살을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요람에서 무덤까지'란 제도는 결코 언제나 좋은 제도만은 아닌 듯싶다.    

  

▲스톡홀름 시청사 앞의 동상

그런 아이러니컬한 의심 덩어리를 안은 채 우린 세르겔 광장 지하의 어느 멋진 카페에서 깔끔한 맛이 풍기는 커피를 한잔씩 마시고 시청사로 발길을 돌렸다. 웃통을 벗어젖히고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맥주를 마시고 있는 두 사나이들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우리도 손을 흔들어주며 시청사로 가는 호수 쪽으로 걸어갔다. 파란 물이 넘실대는 호숫가에는 한 쌍의 나체 동상이 장미꽃을 들고 이었다.


스톡홀름 시청사는 시간대별로 안내원의 엄격한 통제 하에서만 들어갈 수 있다. 청사 내부로 들어가니 '황금의 방'은 화려하다 못해 으리으리해서 발을 내 딛기가 매우 조심스러울 정도다. 하마터면 미끄러져 넘어질 뻔하다가 아내를 붙들고 겨우 지탱할 수 있었다. 18만 6,000개의 금박 모자이크로 치장한 황금의 방은 스웨덴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 황금의 방에서는 노벨상 수상식 직후 세계 최고의 피로연과 무도회가 열린다고 한다.


거대한 크리스털 샹들리에와 프랑스 로코코 양식의 내부 인테리어가 매우 돋보였다. 역대 국왕과 여왕의 왕관이 진열된 ‘보물의 방’에는 700여 개의 다이아몬드와 에메랄드가 박힌 에릭 14세의 왕관이 보관되어 있다. 평화를 상징하는 북유럽의 국가들 중에서 이렇게 막강한 왕실이 있었다니 놀랍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노벨이 평화상을 제정한 것도 아이러니하다.    


▲스톡홀름 시청사

  

오늘따라 기가 막히게 좋은 날씨라서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마랄렌 호수는 푸르다 못해 옥처럼 흰 은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바닷가에 웃통을 벗어 재끼고 햇볕을 받아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스톡홀름은 아주 은밀한 요새처럼 섬들 속에 둥지를 틀고 있다. 또한 이 작은 섬들은 으스스한 발트해에서 스웨덴을 지켜주는 방패 노릇을 해왔다.      


공짜 초콜릿을 실컷 먹었던 스톡홀름의 초콜릿 축제


보트를 타고 호수를 건너 유르고르덴 섬을 한 바퀴 돌아본 뒤, 우리는 감라스텐 지구에서 47번 버스를 타고 우리는 유르고르덴 섬의 북방민족 박물관 앞에서 내렸다. 워낙 숲이 있는 공원을 좋아하는지라 오늘 오후는 스칸센 공원을 산책하며 보내기로 했다. ‘박물관의 섬’으로 불리기도 한 유르고르덴 섬은 스칸센 야외 박물관, 바사호 박물관, 북방민족 박물관과 티볼리 파크 등이 있다.    

  

“웬 사람들이 저렇게 많이 줄을 서 있을까?”

“글쎄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모양인데요?”     


줄을 서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박물관 안에서 초콜릿 축제를 하고 있다고 한다. 아내는 당뇨병 때문에 초콜릿을 먹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일단 입이 함박처럼 벌어졌다. 르네상스 양식으로 궁전을 방불케 하는 북방민족 박물관은 바이킹의 풍속과 다양한 북방민족의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구스타브 바사 국왕의 거대한 동상과 스웨덴 인들이 과거에 사용했던 가구와 집기들을 전시하고 있다.   


▲스톡홀름 초콜릿 축제


▲초콜릿으로 만든 갖가지 모형들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니 우선 이집트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가 눈에 확 들어왔다. 사람들이 발을 디딜 틈도 없이 꽉 차있었다. 특히 초콜릿을 좋아하는 어린이들과 젊은 아가씨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치 시장터를 방불하게 할 정도로 초콜릿을 제조하는 회사들이 자판을 벌려 놓고 자기 회사의 초콜릿을 자랑하고 있었다. 진열된 초콜릿을 모두 공짜로 시음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거, 웬 떡인가! 여행 중에 이런 횡재를 할 수 있는 축제를 자주 만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초콜릿도 공짜로 먹고, 눈요기 도 하고…….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여보, 저 멋진 초콜릿을 먹지 않고는 도저히 지나갈 수가 없군요!”

“그럼! 맛은 보아야지. 여행 중에 이런 횡재를 만나다니!”

“와! 저 멋진 모양을 좀 봐요! 이럴 때 영양보충을 좀 해야 하지 않겠어요.”

“당신도 인슐린을 좀 더 높여 맞더라도 이 기가 막힌 초콜릿 맛을 놓치지 말아요.”  

    

여러 가지 모양으로 근사하게 만들어진 초콜릿 맛 또한 기가 막혔다. 우리는 진열대에 전시된 다양한 모양의 초콜릿을 맛보면서 초콜릿 축제를 구경하였다. 나는 피노키오 코를 달고 있는 어느 뚱뚱한 초콜릿 제조사의 직원과 인터뷰를 했다. 한국에 이 이색적인 축제를 소개를 하고 싶다고 하자 그는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매년 열리는 스톡홀름 초콜릿 축제는 그 해의 초콜릿 제조회사들의 초콜릿을 선보이고, 그중에서 가장 멋지고 맛있는 초콜릿을 만든 사람에게 초콜릿 그랑프리를 선정 발표하지요.”     


그는 피노키오 코를 흔들면서 유쾌하게 말을 하는 그의 모습을 보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무대에서는 오늘의 초콜릿 그랑프리 대상자들을 한 줄로 세워놓고 사회자가 인터뷰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수상대상자들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여기저기서 괴성과 환호가 터졌다. 마침내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그랑프리 수상자가 선정되자 장내는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와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열기와 환호로 가득 찬 고궁의 초콜릿 축제는 특별한 행사였다.      


초콜릿을 실컷 먹고 나서 우리는 낙엽이 휘날리는 길을 걸었다. 인생이란 무엇일까? 낙엽 쌓인 길을 걷다 보니 문득 잠재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는 화두가 되어 가슴으로 날아들었다. 낙엽을 밟으며 아내와 나는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푸른 바다로 둘러싸인 유르고르덴 섬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스칸센 야외공원’과 넘실거리는 운하 사이로 그림처럼 비추이는 단풍나무들! 아, 바람이 불면 가지가지 색깔의 낙엽들이 거울 같은 운하 위로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유르고르덴 섬


문득 우리네 인생도 저 낙엽처럼 힘들지 않게 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낙엽은 자신의 길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봄에 싹이 났다가, 여름내 탄소동화작용으로 겨울 동안 살아갈 양식을 나무에 저장하고, 가을이 오면 추호의 미련도 없이 몸체에서 떨어져 내린다.


“우리네 인생도 저 낙엽과 같은 거야.”

“새삼스럽게 그런 말을…”

“우리 인생의 끝도 저 낙엽처럼 가볍게 고통 없이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허지만 아직은 그런 생각을 하기엔 이르지 않은가요?"

“그러나 언젠가는 그때가 오지 않겠소? 죽음은 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영혼으로 다시 태어나는 시발점이라 하지 않소.”

“그렇긴 하지만…”

“하하, 너무 심각한 이야기를 했나요? 자, 우리 다시 운하를 따라 걸어볼까?”     


우리는 운하를 따라 걸어갔다. 걷다가 다리가 아프면 운하의 둑에 앉아 쉬거나 바닷가에 보트를 매어두는 나무 턱에 걸터앉아 먼 바다를 바라보았다. 오전에 보트를 타고 한 번 지나쳤던 길이었지만, 그때와 걸어가고 있을 때의 감정은 사뭇 달랐다. 


바람이 불자 낙엽은 우수수 춤을 추며 떨어졌다. 그리고 길 위에 떨어진 낙엽들은 바람결에 도미노처럼 또르르 굴러가며 파노라마를 연출했다. 떨어지는 낙엽도, 구르는 낙엽도 어쩌면 저리도 아름다울까? 정말 내 인생도 마지막에는 저렇게 자연스럽게 졌으면 하는 생각이 다시 스쳐 지나갔다.   

   

“여행의 묘미는 바로 이런 게 아닐까요?”

“무슨 묘미?”

“여행은 꽉 찬 마음을 비우게 해 주고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는 것…….”

"정답이네!"      


정말 그렇다. 여행이란 결국 떠난 자의 마음을 가볍게 비워주고 새로운 활력소로 재충전을 시켜준다. 지금 이 시간들이 우리들에게 그런 메시지를 강하게 던져주고 있었다. 아름다운 것들은 아름답게 보아주어야 한다는 것. 평화로운 것은 평화롭게 느껴야 한다는 것. 유르고르덴 섬의 아름다운 풍경은 쉼표와 느낌표를 동시에 찍어주고 있었다. 적어도 이 순간 아내는 전혀 아픈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풍요롭고 행복하게만 보였다. 아름다운 풍경이 아내를 치유하고 있는 것이다.    

  

낙엽이 떨어진 길을 달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더욱 평화롭게 보였다. 흰머리를 휘날리며 부인의 손을 잡고 느리고 여유 있게 걸어가는 은발의 신사, 토끼처럼 날 세게 뛰어가는 금발머리의 미녀, 개를 앞장 세우고 휘파람을 불고 가는 중년 남자… 모든 풍경이 평화롭게만 느껴졌다.  

    

“저기, 바이킹호가 보이네요!”

“저 배가 바로 오늘 밤 우리가 타고 발트해를 건너 헬싱키로 갈 바이킹 호야.”

"아하! 그렇군요."     


멀리 단풍 사이로 바이킹호가 그림처럼 보였다. 우린 오늘 밤 이 배를 타고 핀란드의 헬싱키로 떠날 예정이다. 


♣아무리 완벽한 사회보장제도라 할지라도 인간을 완전히 행복하게 해 줄 수는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16. 스톡홀름 신드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