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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Jan 09. 2019

16. 스톡홀름 신드롬

스웨덴-키루나~스톡홀름

키루나 역 오후 6시 51분. 스톡홀름행 급행열차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둠이 짙어가는 키루나가 멀어져 간다. 스웨덴의 최북단 키루나에서 스톡홀름까지는 무려 16시간이 넘게 걸린다. 큰 배낭 두 개를 하나의 쇠줄로 묶어서 열쇠를 채운 다음 포터 칸에 집어놓고 좌석을 찾아갔다.     

 

물론 좌석은 배정되어 있지만 침대차가 아니어서 1인당 두 개의 빈 좌석이 있다면 그나마 새우잠이라도 잘 수 있다. 그런데 오늘따라 보따리 장사처럼 보이는 흑인들이 열차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2등실, 18 열차, 83번, 84번 지정좌석을 찾아갔더니 마침 앞  좌석이 비어 있었다. 오늘 밤은 넓은 자리에서 좀 편하게 잘 수 있으려나 보다. 우리는 빈 좌석에 마주 앉아 편하게 휴식을 취할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다음 역에서 그 꿈을 접어야 했다. 덩치가 큰 젊은 청년 두 사람이 그들의 자리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두 젊은이는 북유럽의 신화에 나오는 서리의 거인처럼 덩치도 크고 키도 컸다. 그런데 두 거인은 우리가 앉아 있는 좌석 앞에 잠 간 서 있더니 그냥 씩 웃었다. 술 냄새가 확 풍겨왔다. 내가 아내가 있는 좌석으로 옮기려고 하자 곱슬머리를 한 거인이 말했다.   

  

“그 냥 앉아 계세요. 우리들은 잠깐 다녀올 때가 있으니.”     


배낭을 선반 위에 얹어 놓고 두 거인은 어디론가 성큼성큼 걸어갔다. 기차가 한 시간 정도를 달려갔는데도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내는 오늘 키루나에서 산 트롤 인형을 손에 들고 어느새 잠이 들어 있었다. 그런 아내를 바라보다가 나도 깜빡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거인들한테 시달리는 악몽을 꾸다가 일어나 보니 자정이 넘은 듯했다. 그때까지도 두 거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머지않아 이윽고 술 취한 두 거인들이 문을 열고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손에 보드카 술병을 각자 한 병씩 들고 있었다. 그들은 흔들거리는 열차 안에서 병 채로 보드카를 홀짝홀짝 마셔댔다. 아내는 여전히 의자에 누워 자고 있었다. 나는 얼른 일어서서 자리를 그들에게 양보를 했다.      


“미안합니다.”

“노노, 그냥 앉아 있어도 돼요. 우린 다른 자리로 갈 테니. 히히.”     


손에 든 보드카를 홀짝거리며 그들은 여전히 이상한 소리로 웃어댔다. 그리고 우리들을 마치 어린아이 보듯 재미있어라 하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마 체구가 작은 동양인을 보는 것이 재미있었는지도 모른다. 동양인은 우리 둘 밖에 없었으니까. 술 취한 두 거인의 모습은 마치 꿈에서 본 서리의 거인 같기도 하고 어리석은 트롤처럼 보이기도 했다.   

   

“당신들은 어디서 왔어요?”

“코리아에서 왔어요….”

“와우! 코리아! 아이 라이크 코리언 풋볼!”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정말 2002년 월드컵의 위력은 대단했다. 스웨덴도 축구에 대한 열기는 뜨겁다. 월드컵 덕분에 한국의 위상은 한층 올라간 듯했다. 월드컵을 화제에 올리면 모두 즐거워하니 말이다. 외모와는 달리 그들은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거나 의심을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비틀거리면서 보드카를 꿀꺽꿀꺽 들이켰다. “친구, 우리 함께 술 한 잔 해요?”체구가 조금 적은 젊은이가 보드카 병을 내밀며 나에게 술을 권한다.  

    

“고맙소. 그러나 지금 난 감기에 걸려서 술을 마실 수가 없습니다. 미안해요.”

“오~ 예! 노 프로블램! 히히.”    

 

그들은 선채로 보드카를 병 채로 나발을 불며 다시 다른 칸으로 사라져 갔다. 독한 보드카 한 잔을 마시고도 싶었지만 사실 나는 키루나에서부터 감기 기운이 있었다. 나는 아스피린 두 알을 먹고 다시 잠이 들었었다. 나는 다시 거인들이 눈을 부라리는 꿈을 꾸다가 잠을 깼다. 아스피린 효과에다가 그놈의 꿈 때문에 내 몸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아내가 기지개를 켜며 눈을 떴다.     

 

“으으, 지금 몇 시지요?”

“새벽 1시가 지나가고 있어요.”

“이제 겨우 1시예요?” 

    

아직도 13시간을 넘게 기차를 더 타야 했다. 아내의 손에 든 트롤이 앙증맞게 보였다. 아무리 보아도 이상하게 생긴 인형이다. 트롤은 거대한 서리의 거인 모습을 한 것도 있고, 요술쟁이 같은 난쟁이도 있다고 한다. 긴 코를 가지고 있으며, 등에는 혹처럼 거대한 살덩이를 지고 있는 괴물 같은 모습도 있다.     


▲키루나에서 산 트롤 인형

 

트롤은 재생능력이 뛰어나 상처를 입어도 곧 회복되며, 잘려나간 몸도 곧 달라붙는다고 한다. 마법을 부려 몸의 크기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도 있고, 불사신처럼 강한 재생력을 가진 것도 있다. 입센의 서사시 ‘페르귄트’에서 트롤은 몽상가적 존재로 등장한다. 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에서는 어두운 숲 속에서 겁 없이 살인을 하며 살아가는 멍청하고 무서운 괴물 같은 존재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 괴물 트롤은 햇빛을 받으면 돌로 변해버리는 약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트롤에 대해서는 허무맹랑한 전설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아담과 이브에게 어느 날 하느님이 찾아왔다. 이브는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자식들을 하느님에게 선보이게 되었다. 그런데 이브에게는 부끄러운 아이들(이브가 외도하여 낳은 자식이란 말도 있다)이 몇 명 더 있었다.   

  

하느님이 이브에게 눈앞에 있는 아이들이 전부냐고 묻자, 이브는 그렇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 이브가 숨겨놓은 아이들을 모를 리가 없었다. 하느님은 에덴동산에서 사과를 훔쳐 먹은 이브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거짓 행실을 하고 있는 그녀를 꾸짖으면서 숨겨놓은 아이들을 언덕이나 바위 속에서 숨어 살게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트롤은 바위 색깔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인형들의 몸뚱이도 한결같이 가무잡잡한 바위 색갈이다. 어쨌든 트롤은 신의 혈통을 받은 신성한 자손이면서도 하느님을 증오해, 십자가나 교회를 보면 갖은 욕설과 험담으로 엄청난 증오를 퍼붓는다고 한다. 저주를 받은 트롤은 이 땅에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시골의 마녀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한다. 따라서 서리의 거인들도 몰락하여 보잘것없는 트롤로 전락되고 말았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트롤은 이브의 감춘자식들이라는 설이 떠돌기 시작했다고 한다.  

    

키루나를 출발한 기차는 다음날 오후 4시에 스톡홀름 역에 도착했다. 스칸 레일 패스를 마지막으로 사용한 긴 기차여행이었다. 플랫폼에 내리니 술 취한 그 두 거인들이 역무원과 뭔가 다투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손을 들어 이별의 인사를 건 냈다. 그들은 역무원과 승강이를 벌이다가도 우리를 보고는 금방 "히히"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참 싱거운 친구들이었다.     


아직도 그들에게서는 술 냄새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허지만 어쩐지 트롤처럼 호감이 가는 친구들이다. 역무원과 다투고 있는 그들을 뒤로하고 우리는 휘황찬란한 스톡홀름 중앙역 대합실로 걸어 나왔다. 16시간 넘게 긴 기차여행을 하고 나니 몸의 중심이 흔들리고 도대체 방향감각이 없었다. 


▲스톡홀름 중앙역


기차에서 내려 역사 안에 있는 여행자 안내센터로 갔다. 오늘 밤 묵을 숙소를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배낭족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안내센터에서 한참을 기다려 게스트 하우스나 유스호스텔의 방을 물었지만 호텔 말고는 모두 만원이라고 한다. 이런 낭패가 다 있나? 사전에 예약을 하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되었다. 


안내원에게 스톡홀름 패스를 사면서 다시 한번 알아달라고 하니, 아직 정식 오픈이 안 된 호스텔이 있는데 가겠느냐고 물었다. 잠을 잘 수 있는 곳이면 상관이 없으니 방을 잡아달라고 했다. 안내원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방이 있다고 했다. 방값은 하루 밤에 195 크로네라고 했다.      


“컴퓨터와 부엌은 있나요?”

“No PC, No Kitchen, No TV, No Phone!”     


그거라도 가겠다고 하니, 예약비를 50 크로네를 달라고 했다. 북유럽은 물가가 비싸기도 하지만 공짜가 없다. 그 방도 조금 늦으면 곧 방이 없어진단다. 과연 북유럽의 베니스답게 스톡홀름은 여행자들이 많이 몰리는 모양이다. 걸어서 갈 수 있다는 안내원의 말에 중앙역에서 나와 공항버스 정거장을 지나 쿵스 홀멘 섬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다리를 건너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안내원이 일러준 게스트하우스는 정말 찾기가 힘들었다. 석양 노을이 지는 도시 풍경을 바라보며 몇 번이나 물어물어 겨우 그 집을 찾았다. 호스텔은 지하에 창고 같은 곳을 개조해서 방을 만들어 놓는 곳인데, 겨우 한 사람이나 들어갈 수 있는 회전식 계단은  큰 가방을 메고 내려가기에 매우 힘이 들었다. 나보다 몸이 비대한 아내는 낑낑대며 겨우 난간을 빠져 내려갔다.   

   

“뭐 이렇게 좁은 통로가 다 있어요. 사람 잡네요!”

“미안 하우. 낸들 이렇게까지 될 줄 알았겠소이까?”  

   

뺑뺑이 계단을 겨우 빠져내려 와 룸으로 들어가니 핸드폰을 든 어떤 남자가 나타났다. 그가 주인이라고 했다. 마침 현찰이 없어 카드결제를 하겠다고 했더니 현금만 받는다고 했다. 이거야 정말! 짐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가 ATM 기계에서 현금을 찾아와서 380 크로네를 지불하니 방을 배정해 주었다.  

    

“연락하실 일이 있으면 이 전화번호로 연락하세요. 밖으로 나가 오른쪽에 있는 세븐 일레븐으로 가면 공중전화가 있습니다. 그리고 문의 암호는 이 번호입니다. 암호를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그는 휭 나가 버렸다. 밤이 되면 종업원도 없는 무인 호스텔이 된단다. 아직 완공이 덜 된 게스트 하우스인데 방 한쪽만 20여 명이 잘 수 있는 누에고치 침대가 층층이 놓여 있었다. 남녀 혼성으로 사용하고 있는 침대에는 헝클어진 배낭들이 여기저기 널려져 있었다. 어쨌든 여기가 오늘 밤 우리 집이다. 아내는 아래 침대에 나는 위 침대에 자리를 잡았다.    

  

스톡홀름은 북유럽 도시 중 가장 아름다울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가고 싶은 도시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멋진 도시다. 완벽한 복지제도, 인간 중심의 도시환경, 스톡홀름의 상징인 시청사와 조약돌이 깔려 있는 구시가의 명소들, 그리고 돛단배가 미끄러져 들어가는 황혼 녘 항구의 아름다운 풍경은 과연 ‘북유럽의 베니스’라고 불릴 만도 하다.   

  

발트해와 마라렌 호수가 만나는 곳에 열네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스톡홀름은 섬과 물로 이루어진 도시다. 때문에 '물 위의 아름다움'이란 이름이 늘 따라다닌다. 자연환경이 깨끗해서 도시 한가운데서도 수영을 하고 낚시를 즐길 수 있으며, 주변에는 2만 4천 개나 되는 아름다운 섬들이 있다.    

  

북유럽의 초겨울 밤은 길다. 저녁을 먹고 들어와 누에코치처럼 게스트 하우스 2층 침대에서 잠을 청했으나 눈이 감기지 않고 자꾸만 잡념이 몰려왔다. 완벽한 복지제도가 갖추어진 나라에 와서 지하실의 어두운 호스텔에 갇혀 있다니…. 그것도 남녀 20여 명이 헝클어져 뒹구는 방에 누워있으니 자꾸만 이상한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더벅머리에 구레나룻 수염을 기른 영국에서 온 청년은 험상궂은 범죄자처럼 보였다. 조그마한 전등을 켜고 책을 아까부터 책을 읽고 있는 이태리 아가씨는 인형처럼 예뻤다. 저 털보가 인형처럼 생긴 저 아가씨를 덮쳐 인질로 잡는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터프한 털보와 책을 읽는 인형 같은 아가씨를 보자 문득 1970년대에 이곳 스톡홀름으로부터 전파되었던 ‘스톡홀름 신드롬’이란 신조어가 섬뜩 스치고 지나갔다. 1973년 8월 28일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은행에서 강도사건이 발생한다. 131시간 동안 인질로 잡혀 있던 여직원들은 은행을 포위한 경찰에 대하여는 공포와 적의를 품는 반면, 인질범에 대해서는 동정과 애정을 느낀다. 범죄학자이자 심리학자인 닐스 베예로트가 뉴스 방송 중에 이 현상을 설명하면서 ‘스톡홀름 신드롬’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썼다.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 처하면 나름대로 그 상황에 적응하려는 반사작용이 발생한다. 인질로 잡히는 것은 매우 갑작스럽고 강력한 스트레스다. 게다가 인질이나 경찰은 그 상황을 통제할 만한 힘도 없다. 그런 스트레스 상황에서 인질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첫째, 인질들은 자신들의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극한 상황에서 인질범들이 자신을 해치지 않는 것을 고마워하고 오히려 그들에게 온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둘째, 인질들은 자칫 잘못하면 더욱 극한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들을 구출하려고 시도하는 경찰들에게 오히려 반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셋째, 인질범들도 그들의 인질에게 동질적인 감정을 느낀다. 결국 인질과 인질범들은 모두 함께 고립되어 두려움을 같이 하는 ‘우리’라는 공감대가 형성된다. 이것이 이른바 ‘스톡홀름 증후군’을 형성되는 과정이다. 


한국에도 대표적인 스톡홀름 신드롬 사건이 있었다. 지강헌이란 이름은 몰라도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란 말은 들어 보았으리라! 1988년 10월, 올림픽의 열기가 한창이던 때다. 교도소 이감 중 탈주한 12명의 탈주범이 9일간이나 서울 전역을 누비다가 북가좌동 한 가정집에서 가족을 인질로 삼고, 경찰과 대치하게 되는 사건이 있었다. 지강헌이란 인물이 이 인질범들의 두목이었다고 한다. 그는 자살 직전에 팝그룹 비지스의 ‘Holiday'를 틀어달라고 청하고는 비지스의 노래를 들으면서 권총 자살로 죽어간다. 그가 죽어가며 목이 메도록 소리친 외마디!


“유전무죄 무전유죄(돈 있으면 죄가 없고, 돈 없으면 죄가 있다)!”


후에 이 사건은 MBC 수사반장을 통해서 생생하게 재현시켰다. 한 때 시인 지망생이기도 했던 그는 우연히 대마초에 손을 댄 것이 계기가 되어 범죄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고, 형량이 10년에서 20년으로 늘어나자 탈주를 결심하게 된다. 지강헌에게 잡혀 있었던 인질들은 그에 대해 차츰 인간적인 연민과 매력을 느꼈다고 실토했다. 이게 바로 한국판 ‘스톡홀름 신드롬’의 일종이다.


♣지금은 세상은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공공연하다! 세상이 정말 공평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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