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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Feb 15. 2019

27. 프라하로 가는 기차

드레스덴-츠빙거 궁전-프라하

불멸의 존재,  '시스티나의 마돈나'


오후 5시 47분, 베를린 오스탄호프 역에서 드레스덴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초역에서 출발하는 티켓을 구입을 했는데 숙소로 돌아오며 오스탄호프 역 안내센터에 물으니 이곳에도 정차를 하여 탑승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시간을 벌고 다리를 쉴 수 있었다. 기차여행은 언제나 추억을 만든다. 스르르 레일 위를 미끄러져 출발한 기차는 옛 동독의 땅을 쏜살같이 달려갔다. 


정들었던 베꼽 민박집의 젊은 주인아주머니의 서운한 표정이 클로즈업되어 차창에 어렸다. 냉전시대 우리나라와 함께 철의 장막에 가리어졌던 베를린은 나에게 특별한 무엇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베를린 장벽, 브란덴부르크의 문, 카이저 빌헬름 교회, 체크포인트 찰리, 그리고 알렉산더 되블린의 소설 무대가 된 동독의 알렉산더 광장.... 그리고 그 광장에 내동댕이쳐진 주인공 막장 노동자 비버코프의 비운의 삶. 그는 신념을 가지고 악마 같은 친구들에게 헌신하였지만 돌아오는 것은 배신과 가혹한 저주뿐인 불행한 삶을 살아가야만 했다. 그러나 지금도 알렉산더 광장에는 비버코프 같은 노동자들이 여전히 방황을 하고 있었다. 


드레스덴으로 가는 기차(베를린 오스탄호프 역)


당초 우리는 폴란드 바르샤바로 가려다가 기수를 반대방향으로 돌려 드레스덴으로 가기로 했다. 우리가 드레스덴으로 가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그것은 라파엘로의 그림 '시스티나의 마돈나' 한 점을 보기 위해서였다. 


드레스덴은 베를린에서 기차로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엘베 강변에 자리 잡은 옛 작센 왕국의 영화가 피어났던 인구 50여 만 명의 드레스덴은 유서 깊은 문화와 예술의 도시다. 우리나라 경주에 해당하는 도시랄까? 이탈리아 예술가들이 지은 바로크 양식의 화려한 건물이 많아한 때 ‘엘베 강의 피렌체’라고 불릴 만큼 명성을 날렸던 도시다. 그러나 드레스덴은 1945년 2월 13일, 연합군 전투기 1,000여 대가 무차별 폭격을 가하여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해버린 비극의 도시이기도 하다. 원자폭탄만 아니었지 그 참상은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의 피해만큼 참혹했다고 한다. 드레스덴에서는 매년 이날, 당시 숨진 무고한 시민을 추모하기 위한 행사가 열린다. 연합군이든 나치든 폭력과 전쟁은 비극을 초래한다. 


  

2차대전 당시 연합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부서진 거리풍경과 재건을 하고 있는 교회

   

드레스덴에 도착한 날 밤, 유스호스텔에서 뜻하지 않게 두 명의 남녀 한국인 배낭 여행자를 만났다. 여행 중에 한국인을 만나는 것은 언제나 내 고향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반갑다. 두 사람 다 홀로 여행을 다니는 용감한 젊은이들이었다. 저녁 식사를 한 후 그들을 우리 방으로 초청하여 차 한 잔을 나누기로 했다. 커피와 약간의 과자를 테이블에 준비하고 있는데 그들이 들어왔다. M군과 K양은 두 사람 다 대학생이었다. 오랜만에 한국인들과 함께 진한 커피 향을 맡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방안은 온기로 가득 찼다. 


“M군은 상당히 오랫동안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무슨 특별한 목적이라도 있나요?”

“뭐, 특별한 목적이라기보다는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면해보고자 시작한 여행입니다.”

“멋진 생각이군요. 부모 곁을 떠나 홀로 여행을 하고 있는 느낌은 어떤가요?”

“우선, 우리나라가 부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부모에게 효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느껴집니다.”

“흐음, 집을 떠나면 효자가 되고, 고국을 떠나면 모두가 애국자가 된다더니…. M군이 바로 그렇군요.”

“맞는 말입니다. 여행 중에 두 분을 만나니 부보님 생각이 더욱 간절합니다. 앞으로 취직을 해서 돈을 벌면 부모님 여행을 제일 먼저 보내 드릴 겁니다.”

“꼭 그렇게 하세요.”


조국을 떠나면 애국자가 되고, 부모 곁을 떠나오면 효자가 된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훤칠한 키에 미남형으로 생긴 M군의 말을 들으면서 한국의 젊은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뿌듯했다. 그는 내일 아침 프라하로 떠난다고 했다.      


역사를 전공한다는 K양은 90일간의 여정이 거의 다 끝나간다고 했다. 


“말로만 듣던 선진 유럽의 역사 현장을 체험하며 저 역시 많은 것을 느꼈어요. 유럽에도 곳곳에 한국의 자동차, 전자제품 등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이 팔려나가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우리나라 제품을 볼 때마다 한국에 살고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 역시 동감이요. 한국의 수출기업체들이 자랑스러워요.”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제발 정치하시는 어르신들이 싸우지 말고 잘 좀 했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허구한 날 반대를 위한 반대만을 일삼고 싸우고만 있으니 참으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치인들에 비해 한국의 기업인들은 정말 애국자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품 하나를 팔기 위하여 경쟁이 치열한 해외시장에서 이렇게 고군분투를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맞는 말이요. 우리도 러시아를 여행하면서 버스에 붙어있는 있는 ‘LG’와 'SAMSUNG' 광고 마크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어요.”


드레스덴 호스텔에서 만난 K군과 M양. 홀로 배낭여행을 하고 있는 한국의 젊은이들은 애국심과 효심이 지극했다. 


K군은 다소 흥분한 어조로 한국의 정치인들이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다고 열변을 토했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정치인들이 국회에서 싸우고 있는 동안에 우리나라 기업의 샐러리맨들은 신발이 달토록 해외시장 개척에 분투노력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선생님 나이에… 두 분이서 이렇게 세계일주 배낭여행을 다니다니 정말 멋져요! 저도 나중에 결혼을 하면 선생님 부부처럼 세계일주 여행을 하는 게 꿈이에요.”

“저희 부부도 오십 전에는 일만 죽어라고 했지 해외여행 한 번 가보지 못했어요. 그렇게 살아오다가 어느 날 아내가 갑자기 난치병으로 크게 아프게 생사를 헤매게 되자 인생관이 변했지요. 난 오히려 젊은 나이에 이렇게 용감하게 배낭여행을 다니는 두 분이 더 부러워요. K양의 꿈은 분명히 이루어질 거예요. 인생의 가치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그렇게 생각을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다음 날 아침 M군은 프라하로 떠났다. 우린 K양과 함께 드레스덴 시가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따지고 보면 내 아들과 딸 같은 학생들이었다. 젊은 나이에 홀로 배낭여행을 다니는 것도 용감했지만 나라와 부모를 생각하는 애국심과 효심이 우리를 감동시켰다.


우리는 K양과 함께 츠빙거( Zwinger Palace)] 궁전으로 갔다. 크라운 왕관을 쓰고 있는 것 같은 츠빙거 궁전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츠빙거 궁전을 둘러싸고 있는 성곽과 조각은 거무스름한 회색 일색이었다. 이는 유럽의 대리석이 물러서 눌어붙은 때라고 했다. 

드레스덴 츠빙거 궁전


우리는 성곽으로 올라가 조각을 감상하며 산책을 했다. 성곽에는 벌거벗은 아이들의 조각상이 독특했다. 거리에는 2차 대전 당시 폭격으로 부서진 교회와 건물을 복원하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에 있었다. 엘베 강의 석조 도시 드레스덴은 강둑이 좁다. 그러나 도시구조가 여러 가지로 베네치아를 연상케 한다. 작센 왕국의 통치자 아우구스트 2세는 “엘베 강이 베네치아보다 못할 게 뭐 있어.”라고 말하며 또 하나의 베네치아를 가꾸고자 했다고 한다. 그는 보석처럼 빛나는 츠빙거 궁전을 건축하고 그곳에 거장들의 작품을 가득 채우고자 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라파엘로의 작품 ‘시스티나의 마돈나’였다.  


츠빙거 궁전의 조각상


우리는 '시스티나의 마돈나'가 전시되고 있는 드레스덴 미술관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내가 가장 보고 싶었던  라파엘로의 명작 '시스티나의 마돈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그림 하나로 온전히 하나의 세계, 예술가가 만들어낸 지극히 완전한 세계가 이루어졌으니, 이 그림을 창조한 사람은 이것 말고 더 그린 것이 없더라도, 이 그림 하나만으로도 필히 불멸의 존재가 되리라." 라파엘로의 '시스티나의 마돈나'를 감상한 후 괴테가 쏟아 놓은 찬사이다. 


라파엘로의 '시스티나의 마돈나'


고리가 달린 막대에 달려있는 커튼은 방금 젖힌 것처럼 보인다. 커튼을 젖히자 천상의 광경이 들어오고, 무수히 많은 얼굴로 표현한 천상의 구름이 마돈나를 감싸고 있다. 그림의 중심은 아기 예수를 받쳐 안고 펼쳐진 구름을 사뿐히 밟고 나오는 마돈나이다. 마돈나와 아이는 신의 영역인 천상에 속해 있다. 마돈나의 오른편과 왼편에는 무릎을 꿇은 성인 식스투스 1세(115~125 순교자이자 성인)와 바르바라이다. 펼쳐진 뭉게구름을 딛고 있는 두 성인은 사바세계에 하느님의 계시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구름 속에 몸을 반쯤 내밀고 있는 날개를 단 두 푸토(putto-유아라는 뜻)는 불안해하면서도 매우 호기심이 가득한 시선을 던져주고 있다. 그러나 성모의 시선은 일체의 세속을 넘어, 내면의 온유한 지혜를 드러낸다.  어디선가 심술궂은 바람이 입김을 불어서 마리아의 두건과 옷자락을 잡아챈다. 아기 예수의 머리카락도 바람에 헝클어진다. 옷깃을 잡아채는 바람은 그림에 생기를 불어넣는 수법이라고 한다.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손짓과 몸짓, 펄럭이는 옷자락도 그림에 생기를 불어넣는 수단이다. 만약에 마리아가 차렷 자세로 서 있고, 교황과 성녀가 단정히 무릎을 꿇고 마리아를 올려보고 있다면 이 그림은 전혀 생기가 없을 것이다.


순진무구한  아기천사 푸토


무엇보다도 내 눈에 띄는 것은 구름 속에 천진난만하게 세상을 내다보는 두 푸토의 모습이다. 턱을 괴고 위를 쳐다보는 아기천사들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림 한 점이 주는 시사점은 이렇게 의미가 깊다. 박물관에서 파는 그림엽서는 아기천사만 따로 구분을 하여 팔고 있는 엽서가 더 많았다. 알 듯 말 듯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기천사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이 그림 한 점을 보는 것만으로도 드레스덴에 온 것은 대 만족이었다.  이 시스티나의 마돈나는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명화 1001점(스티븐 외 8인 저, 마로니에북스)'으로 지목을 받고 있다. 

    

시스티나의 마돈나는 아무리 바라보아도 싫증이 나질 않는다. 클래식 명곡이 여러 번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듯, 한 편의 명화는 아무리 보아도 또 보고 싶어 졌다. 명화란 그런 것이다.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도 파괴되지 않는 작품이 신통할 뿐이다. 아니 감사할 따름이다.     


“날개를 단 저 아기천사들의 모습이 너무 귀엽군요.”

“너무나 천진무구하게 보여요.”


아내와 K양은 그림 속의 아기천사에게 매료된 듯 말했다.



하루 한 끼만 먹고 여행을 다니다니! 


시스티나의 마돈나에 매료되어 한동안 넋을 잃고 있다가 츠빙거 궁전을 나오니 거리엔 눈발이 내리고 있었다. 오늘 밤 기차를 타고 우린 프라하로 떠나야 한다. 프라하! 춥고 긴 장막에서 마치 봄의 서곡처럼 울려 퍼지는 감동을 주는 도시 프라하는 가장 가고 싶은 도시 중의 하나다.


우리는 츠빙거 궁전에서 나와 복원공사를 한참 진행하고 있는 드레스덴 성모 교회를 돌아보았다. 전쟁의 참상은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었다. 정오가 지나고 있었다. 빵 한 조각으로 아침을 때우고 나온 우리는 갑자기 배가 고팠다. 당료를 앓고 있는 아내는 제때에 식사를 하지 않으면 혈당이 급격히 떨어지므로 일정한 시간에 밥을 먹어야 한다. 


“배가 고프네요. 저어기 햄버거 집으로 들어가 점심을 먹어요.”

“그래요. K양도 함께 가요.”

“전... 별로 생각이 없어요. 요즈음 소화가 잘 되지 않아서요.”

“그래도 요기를 좀 해야지요?”


K양은 여행경비가 거의 바닥이 났다고 했다. 앞으로 남은 15일을 버티기 위하여 하루에 한 끼만을 먹으며 바닥 직전에 있는 여행비를 아끼고 있었다. 부모님께 여비를 보내달라고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닌 것 같았다. 여행 중에 경비가 바닥이 나면 배 고품도 참는 경우가 종종 있다. K양의 경우가 그랬다.


“K양, 오후는 불식이라, 하루 한 끼만 먹으며 도를 닦는 것도 좋지만 아무튼 일단 우리와 함께 들어가 다리를 좀 쉬어가요.”


아내는 K양을 끌다시피 하며 햄버거집 안으로 들어갔다. K양은 엉거주춤하면서 아내에게 떠밀려 햄버거 집으로 함께 들어갔다. 나는 무조건 햄버거를 세 개를 시켜 테이블로 들고 왔다. 


“저는 물만 먹을래요.”

“아이고, 그러지 말고 같이 먹어요.”


과부 속은 과부가 안다. 오전 내내 걸어 다녔으니 어찌 배가 고프지 않겠는가. 아내가 호스텔에서 포트에 타 온 뜨거운 커피를 컵에 삼등분하여 따랐다. 커피에 햄버거를 조금씩 적셔 먹는 맛이 꿀맛이었다. K양도 맛있게 먹었다. 빵 한 조각, 커피 한잔이 추위와 굶주림을 녹여주고 있었다. 나는 빵 한 조각으로 굶주린 배를 채우며 다시 알프레드 되블린의 소설 속 주인공 비보코프를 떠올렸다. 굶주릴 때 따뜻한 커피 한잔과 빵 한 조각은 기적을 일으킨다. 우리 세 사람은 빵 한 조각으로 다시 기운을 차렸다. 


눈발이 점점 거세지면서 거리엔 흰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점심을 먹은 뒤 우리는 K양과 헤어졌다. K양은 유서 깊은 드레스덴의 역사 유적지를 하루정도 더 둘러보겠다고 했다.


“선생님 고마워요! 남은 여행기간 동안 건강하시고 즐거운 여행되시기를 기도할게요.”

“고맙소. K양도 남은 여행 잘하세요. 우리 또 만난 날이 있겠지요?”     


홀로 여행을 하다 보니 진실로 부모님께 고마움을 느끼고, 제발 정치인들이 정신을 차려 조국이 부강한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M군, 선진제국의 견문을 넓히기 위해 하루에 한 끼만 먹고 여행을 다는 K양! 이 두 젊은이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프라하의 봄

    

K양과 헤어진 뒤 우리는 프라하로 가는 기차를 탔다. 늦가을, 프라하로 가는 드레스덴 역. 기차역에 들어서면 어디론가 훌쩍 떠나간다는 설렘과 흥분이 언제나 나를 들뜨게 한다. 10월 23일, 오후 5시 55분.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지는 드레스덴 역에서 프라하로 가는 기차를 탔다.

 

기차를 타면 어쩐지 로맨틱한 기류가 흐른다. 프라하로 달리는 기차 속에서 나는 문득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이를 영화화 한 ‘프라하의 봄’을 떠올랐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소설을 읽은 지는 무척 오래 전의 일이었다. 쿤데라 특유의 들쭉날쭉 한 생각의 편린들이 횡설수설하는 식으로 난해하게 이어지는 소설의 줄거리는 피카소의 추상화처럼 난해하여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소설의 내용보다는 ‘프라하의 봄’이란 영화가 오히려 또렷이 기억이 남아있다. 


영화 '프라하의 봄'.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영화화 한 작품이다.


깡마르고 호리호리 하지만 여자를 홀리기에는 충분히 섹시한 외과의사 토마스, 금방 익은 딸기처럼 싱싱하게 다가오는 테레사의 순진한 표정, 그리고 모든 남성들을 포근하게 감싸 줄 것 같으면서도 장미처럼 변덕스러운 사비나의 요염한 자태가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있다.


나는 세 극 중 인물 중에서도 배반의 장미처럼 강열하면서도 프리마돈나처럼 따스하게 다가오는 사비나를 좋아한다. 그녀는 아버지의 뜻을 배반하고, 공산주의를 배반하며, 형편없는 건달 배우와 결혼을 한다. 그러다가 다시 남편을 배반하고 바람둥이 토마스와 같은 유부남과 불륜의 사랑을 맺는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자기 부인을 배반하게 하고, 또한 그들의 부인들이 남편들을 배반하게 만든다. 그녀의 배반은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되찾는 해방의 수단이다.


작가 밀란 쿤데라는 말한다. 오늘날 인간은 사랑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 그러므로 사랑한다고 함은 자신을 속이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이라고.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에 대한 배반이거나 아니면 실제에 대한 배반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인간은 오히려 배반에 충실해야 한다는 배반 옹호론을 펼친다. 

     

오늘 밤 프라하로 가는 열차에서 나는 반쯤은 테레사를 닮고, 반쯤은 사비나를 닮은 여인을 바로 앞자리에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들은 대부분 아름다운 여인을 바라보노라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파도를 친다. 프라하로 가는 기차에서 우연히 니키라는 아가씨를 만났다. 풋풋한 사과처럼 싱그러운 볼, 이지적인 눈동자에 잘 어울리는 매끈한 콧날, 그녀는 영화 속의 테레사보다는 사비나를 더 닮은 모습이었다. 



프라하로 가는 기차에서 만난 '니키'


여행에 지친 나그네에게 사비나와 같은 프라하의 미인을 만나는 것은 횡재 중의 횡재다. 남자라면 딱 한 번만이라도 사랑을 하고 싶어지는 아름다운 아가씨가 바로 내 앞에서 책을 읽고 있으니 말이다. 그녀의 미소는 사비나의 미소처럼 매우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말없이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왠지 그냥 말을 걸고 싶어 졌다.


프라하로 가는 기치에서 만난 미키

“저어, 어디까지 가시나요?”

“프라하까지요.”

“아, 그래요? 저희와 목적지가 같군요. 저는 한국에서 온 초이라고 하고요, 이쪽은 제 아내입니다.”

“아, 그러세요? 저는 니키라고 해요.”

“니키, 이름이 참 예쁘군요. 니키 양은 드레스덴에 살고 있나요?”

“아니요, 프라하에 사는데 드레스덴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지요.” 


그녀의 이름은 니키 니콜리나. 니키라는 이름도 얼굴만큼이나 예쁘다. 거기에다 예술을 전공한다니 더욱 매력이 풍겨 나왔다. 시각 디자인을 전공한다는 니키는 프라하에서 일을 하면서 드레스덴에서 디자인 공부를 한다고 했다. 나는 처음부터 그녀가 독일 여자 스타일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여행 중에 다른 여자와 대화를 할 때에는 아내가 함께 있는 것이 오히려 큰 도움을 줄 때가 있다. 홀로 여행을 다니는 낯선 남자가 불쑥 말을 걸을 때보다는 아내가 옆에 있는 경우 상대방은 경계심을 풀고 훨씬 부드럽게 받아준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는 둘리 자매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나타샤가, 그리고 오늘 프라하로 가는 기차에서는 니키가 그랬다. 만일 내가 홀로였다면 니키가 이렇게 선뜻 내 말을 받아 줄 수 있었을까?


“프라하엔 초행인가요?”

“네, 허지만 영화 ‘프라하의 봄’을 아주 감명 깊게 보아서인지 프라하는 왠지 낯설지가 않게 느껴져요."

“아, 그 영화요! 멋진 영화지요. 허지만 프라하의 밤길은 위험하니 조심하여야 합니다.” 


프라하에는 도둑도 많고, 소매치기도 많다고 했다. 니키는 말했다. 라하에선 우수에 찬 푸른 눈의 매력적인 여인을 조심하고, 바바리코트 깃을 세우고 친절하게 다가서는  멋진 남자를 조심하라고 귀띔을 해주었다. 그들은 십중팔구 소매치기이거나 사기꾼이라는 것.


니키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어느새 프라하 중앙역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울렸다. 이럴 때는 종착역이 좀 더 길어도 좋으련만… 나는 아내와 니키를 나란히 앉혀놓고 기념촬영을 했다. 중앙역에서 버스를 타러 오는 길은 어두웠다. 니키는 이 길이 때로는 강도가 출몰하는 매우 위험한 길이라고 하며 함께 동행까지 해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프라하로 가는 기차에서 만난 니키와 아내

“여기서 5번 트램을 타고 시티 센터에서 내리면 찾고자 하는 숙소가 매우 가까워요.”

“니키, 당신은 너무나 친절하시군요.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행운을 빌어요!"


니키는 우리가 트램을 탈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마침내 5번 트램이 프라하의 뒷골목에서 으르렁거리며 다가왔다. 우리가 트램에 오를 때까지 니키는 말없이 서 있다가 트램이 출발하자 어두운 가로등 밑에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가로등 밑에 서 있는 그녀가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니키! 안녕!”

“굿 러키 미스터 초이!” 


니키! 사비나처럼 촉촉한 눈빛과 테레사처럼 풋풋한 느낌을 가진 매력적인 프라하의 아가씨가 어둠 속으로 총총히 사라져 갔다. 니키가 일러준 대로 시티센터에서 내린 우리는 가물거리는 가로등 불을 따라 오늘 밤 묵을 우리들의 보금자리인 여행자 숙소를 찾아갔다. 아내의 손은 따뜻했다. 호스텔로 들어가니 안내 데스크엔 머리를 박박 깎고 수염을 기른 젊은 남자 직원이 빙그레 웃으며 우리를 맞이했다. 방은 형편없는데 방값은 녹녹치 않게 비쌌다. 미처 예약을 하지 못한 데다 밤늦게 도착해서 우리는 다른 숙소를 찾아 나서기도 어려웠다.


"방값이 너무 비싸군요?"

"그래도 다른 데보다는 쌉니다. 프라하엔 도대체 빈방이 없어요. 어떻게 하실 거죠?"


이 밤중에 다른 선택이 없었다. 방값을 지불하고 배정된 방을 찾아갔다. 삐걱 거리는 어두운 계단을 올라갔다. 철장으로 둘러쳐진 5층 방으로 들어가니 야전용 침대 같은 작은 침대 네 개가 놓여 있었다. 침대 위에는 마치 누에가 허물을 벗은 듯 배낭여행자들의 침낭과 옷가지들이 어지러이 널려져 있었다. 뚜껑이 열린 배낭들이 아무렇게나 팽개쳐져 있었다. 모두가 프라하의 밤을 즐기러 갔는지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맨 마지막 구석에 남아있는 침대 곁에 아내의 짐을 받아 놓았다.


“여보, 이 방에서 잘 수 있겠어?”

“휴우~ 정말 엉망진창이군요. 허지만 이 늦은 밤에 다른 선택 없잖아요.”

“분위기가 너무 험악해서 그래요.”

“어차피 등 대고 하루 밤 자기는 마찬가지예요.”


아내는 이미 이런 여행자 숙소에 익숙해져 있었다. 보헤미아 왕국의 수도로 천년 동안 영화를 누렸던 중세의 고도 프라하의 밤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우리는 이미 지구촌을 떠도는 보헤미안이 되어 있었다.      



★"이 그림 하나로 온전히 하나의 세계, 예술가가 만들어낸 지극히 완전한 세계가 이루어졌으니, 이 그림을 창조한 사람은 이것 말고 더 그린 것이 없더라도, 이 그림 하나만으로도 필히 불멸의 존재가 되리라." -라파엘로의 '시스티나의 마돈나'를 감상한 후 괴테가 쏟아 놓은 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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