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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Mar 03. 2019

32. 한 생명을 구한자는
전 세계를 구한 것이다!

폴란드-크라쿠프


소금광산에서 다시 만난 일본인 나카무라     


다음날 아침 일찍 우리는 크라쿠프 근교에 있는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으로 갔다.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은 지하 125m까지 내려가 소금을 캐냈던 광산이다. 소금광산 지하에는 성 킹카 지하성당이 있다. 소금광산의 수호성인으로 받들었던 킹카 공주를 기념하기 위하여 지어진 지하성당이다.


비엘리치카 소금광산 입구


헝가리의 출신의 킹카 공주는 폴란드 왕자와 결혼을 할 당시 마르마로쉬 소금광산의 일부를 결혼 지참금으로 받았다고 한다. 그녀는 헝가리를 떠날 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소금광산의 수직 통로에 자신의 약혼반지를 던졌다. 그리고 크라쿠프로 가던 도중 비엘리치카에서 행렬을 멈추고 그곳에 우물을 파보라고 명령했다. 놀랍게도 우물에서는 소금이 나왔고, 맨 처음 캐낸 암영 덩어리에서 그녀의 약혼반지가 나왔다. 그 후 킹카 공주는 소금광산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소금광산에서는 그녀의 이름을 딴 각종 소금 제품이 인기리에 팔리고 있었다. 


"아이고 캄캄해! 마치 지옥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기분이군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굉도로 빠져 들어가는 기분은 마치 지옥으로 끌려가는 것 같았다. 소금광산 내부에는 180개 이상의 갱이 있고, 갱도의 길이는 총 300km에 이른다. 125m의 지하 갱도에는 우체국과, 카페, 예배당도 있었다. 지하갱도의 우체국에서 영이와 경이에게 엽서를 썼다. 지하에서 엽서를 쓰는 기분이 묘했다.


비엘리치카 소금광산


가장 눈길을 끄는 공간은 지하 100m 지점에 있는 ‘축복받은 킹가 예배당’이다. 마을의 수호신처럼 숭배되는 킹가 공주를 위한 공간은 길이 55m, 폭 18m, 높이 12m로 여느 지상의 예배당과 다를 것이 없다. 제단과 촛대는 물론, 성서의 중요 장면들을 묘사한 부조와 기독교 성인들의 조각상까지 갖추고 있다.    

 

지하 기념품점에서는 아직도 소금을 판다. 이곳 소금은 특히 피부와 발 보호에 탁월한 효능이 있다고 한다. 빨강, 파랑, 노랑, 주황 갖가지 빛깔의 소금을 용기에 담아 팔고 있었다. 목욕물에 타서 쓰거나 손바닥에 녹여 얼굴에 바르고 30초 동안 세안을 하면 다음날 아침 부드러운 피부를 만 질 수 있단다. 보라색 레기스 소금은 골다공증에 좋고, 초록색 살비타 소금은 고혈압, 파란색 살비타는 심장병 환자에게 좋다고 했다. 


"고혈압, 심장병, 피부미용에 좋다니 기념으로 몇 개 사볼까?"

"설마 그럴까요?"

"골다공증에 좋다는 보라색 레기스와 고혈압과 심장병에 좋다는 파란색 살비타가 당신에게 좋겠어요."


어떤 병에 특효약이 아니더라도 여행 중에는 소금이 필요하다. 우리는 보라색과 초록색으로 된 작은 소금을 몇 봉지를 샀다. 갱도를 빠져나온 우리는 소금광산 입구에서 여행 초기에 암스테르담의 호스텔에서 만났던 일본인 여행자 나카무라를 만났다. 그가 먼저 나를 알아보고 손을 번쩍 들며 "미스터 초이!"하고 소리를 질렀다. 


“미스터 나카무라, 반가워요. 이렇게 다시 만나다니.”

“하이, 미스터 초이! 우리 다시 만났네요.”


50을 훌쩍 넘은 나이에 홀로 배낭여행을 다니고 있는 그는 마치 소금장수처럼 보이기도 했다. 쭈그러진 배낭을 메고 엿장수들이 쓰는 허름한 모자를 쓴 그는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일본인이다. 아우슈비츠에서 참회하는 독일인과 뻔뻔한 일본인을 상상해보며 치를 떨었던 나는 나카무라가 갑자기 달리 보이기도 했다. 사람은 한순간의 생각에 따라 마음이 이렇게 변한다.


“나카무라 씨, 여기서 다시 만나다니 반갑습니다.”

“오, 미스터 초이, 반가워요.”

“그런데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다녀오셨나요?”

“내일 가려고 합니다.”

“아, 그래요. 우리는 어제 다녀왔어요.” 

“그렇군요. 아우슈비츠까지 어떻게 가셨지요?” 

“크라쿠프 중앙역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오시비엥침 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다녀왔습니다.”

“아, 그래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저도 기차를 타야겠네요.”

“네, 기차요금도 저렴하고 접근을 하기도 편하더군요. 그럼 잘 다녀오세요.”

“미스터 초이, 감사합니다. 우리 인연이 있으면 어디선가 다시 만나겠지요?”


나카무라는 인연을 강조했다. 인연이 있으면 어디선가 나카무라를 다시 또 만나겠지. 악연이든 선연이든 인연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허지만 나는 일본인 나카무라를 미워할 수 없었다. 그는 우리와 같은 여행자다. 과거를 용서하고 증오는 지워야 하나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지 않았던가? 지하 소금 갱도에서 소금에 절여져 나온 우리는 마치 오장육부를 말끔히 소독을 한 사람들처럼 유쾌하게 악수를 하며 헤어졌다.     



한 생명을 구한자는 전 세계를 구한 것이다!


소금광산에서 나카무라와 헤어진 뒤 우리는 다시 크라쿠프로 돌아왔다. 가을비에 촉촉이 젖어드는 거리의 모습이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영화 쉰들러 시스트에 회자된 공포의 도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폴란드의 수도가 바르샤바로 옮겨지기 전까지 크라쿠프는 500여 년간 폴란드의 정치, 문화, 종교의 중심지였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배경 도시 크라쿠프


크라쿠프는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배경으로 우리들에게 익히 알려져 있는 도시다. 쉰들러 리스트는 죽어가는 유대인의 생명을 구해낸 세기의 리스트다. 영화 속의 주인공 쉰들러는 영화 초반 부패한 기회주의자다. 그는 폴란드계 유대인이 경영하는 그릇 공장을 인수하기 위해 나치 당원이 되고, SS나치 대원에게 뇌물을 바치며 온갖 수단을 동원해 돈 한 푼 안 들이고 유대인의 노동력을 이용해 공장을 운영하며 이윤을 추구한다. 


그러나 쉰들러는 변한다. 유대인 학살 현장에서 쉰들러는 독일군을 피해 도망가는 빨간색 원피스의 어린 소녀를 보게 된다. 흑백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색채를 입힌 이 장면은 감독 스필버그의 메시지가 담긴 듯하다. 쉰들러는 시체 소각장에서 빨간색 원피스를 입은 그 소녀가 수레에 실려 버려지는 장면을 보게 된다. 이 어린 소녀의 주검은 쉰들러가 모든 재산을 털어 쉰들러 리스트를 작성하는 계기가 된다. 


너무나 참혹한 현실을 직시한 쉰들러는 유대인 회계사 스턴의 충고를 받아 유대인을 강제 노동 수용소로부터 구해내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는 노동수용소 장교에게 뇌물을 주고 유대인을 구해내기로 계획을 한다. 그는 그들을 독일군 점령지인 크라쿠프로부터 탈출시켜 쉰들러의 고향으로 옮길 계획을 하고, 스턴과 함께 유태인 명단을 만들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1,100명의 유대인 리스트를 만들어 그들을 구해내게 된다. 그는 뇌물로 유대인의 노동력을 이용해 벌어들였던 돈을 유대인 1,100명을 구해내는 뇌물로 모두 사용한다.


비 내리는 크라쿠프


전쟁이 끝난 뒤 유대인들은 전범으로 몰릴 쉰들러를 염려해 자신들의 금이빨을 뽑아 만든 반지와 모두의 서명이 된 진정서를 써서 쉰들러에게 전한다. 그들이 준 반지에는 ‘한 생명을 구한 자는 전 세계를 구한 것이다’라는 탈무드의 글귀가 새겨져 있다. 전범으로 쫓기는 신세가 된 쉰들러! 그는 탈무드의 글귀가 새겨진 반지와 모든 직원들이 서명한 신분증명서를 받아 들고 "한 명은 더 빼올 수 있었어..."라고 울먹이며 더 많은 유대인을 구해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부패한 기업가에서 뒤늦게 깨달은 휴머니즘으로 소중한 생명을 구해내는 영웅으로 탈바꿈하는 대목이다. 


제작과 연출을 맡은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나치의 광기에 희생당한 유대인들의 학살 내용을 크라쿠프를 배경으로 매우 객관적이며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출연자 모두가 폴란드와 이스라엘의 무명 배우들로, 장소도 실화의 현장인 크라쿠프에서 유대인 학살 당시 실제 사용을 했던 공장을 배경으로 촬영했다.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구시가지


바르샤바가 독일의 무차별 폭격으로 도시 전체가 파괴된 것에 비해 크라쿠프는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진지가 주둔하고 있어서 폭격을 피해 갈 수 있었다. 크라쿠프는 중세의 문화유산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 덕분에 1978년에는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 12대 유적지로 선정되었으며, 2000년에는 ‘유럽의 문화 도시’로 선정된 바 있다. 


“성당이 너무나 평화롭게 보여요!”

“이렇게 평화로운 곳이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배경이라니 믿어지지 않아요.” 


아내의 말대로 중앙광장 북쪽에 우뚝 서 있는 ‘성 마리아 성당’이 평화 상징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중앙광장은 다양한 장식과 조각이 화려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깊게 웅크린 도시 크라쿠프는 광장의 도시다. 왕들이 대관식을 거쳤던 플로리안스카 거리를 스쳐 지나면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구시가 광장이 모습이 넓게 모습을 드러낸다. 노천카페에서 쇼팽의 선율에 취해 차를 마시는 여행자들의 모습이 저절로 발길을 멈추게 했다.   


성 마리아 성당

   

12시가 되자 성 마리아 성당 첨탑에서 아름다운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우리는 멜로디를 따라 성당으로 들어갔다. ‘헤이나우’라고 불리는 이 멜로디는 매시간 첨탑에서 흘러나오는데 탑 꼭대기에서 나팔수가 직접 분다. 타타르 족의 침입이 잦았던 시대, 성모 마리아 첨탑은 파수병이 경계를 보던 망루 역할을 했다. 어느 날 타타르족이 침입해와 이를 먼저 안 파수병이 나팔로 헤이나우를 연주하여 시민들에게 알리던 중에 적의 화살이 날아와 파수병의 목을 관통하여 갑자기 연주가 멈추어지게 되었다. 이 사건을 기념하게 위하여 성 마리아 성당 첨탑에서는 매시간 헤이나우가 연주되는데, 파수병이 화살을 맞아 멈춘 소절까지만 연주된다고 한다. 


광장 중앙에는 수세기 동안 상업 중심지였던 중앙시장이 있다. 각종 기념품이 진열되어있는 상가에 오자 아내는 그만 아이쇼핑에 몰두하고 만다. 그런 아내를 숍에 두고 아는 2층 미술관으로 올라갔다. 폴란드 최고 미술가들의 회화가 전시되어있다. 아내는 내가 2층에서 내려올 때까지 기념품점을 돌고 있었다. 나는 다시 광장의 조각들이 서 있는 곳으로 갔다. 광장의 조각품들이 무척 이채롭다. 팔만, 다리만, 얼굴만, 몸통만 있는 조각들이 따로따로 서 있다. ‘저걸 다 모으면 완전한 사람이 되나?’ 나는 광장에서 시장으로 들어가 아직도 아이쇼핑에 몰두하고 있는 아내를 만났다.     



크라쿠프 구시가지 광장에 전시된 조각품들

 

“그래, 뭘 좀 골랐소?”

“이 팔걸이요.”

“지금까지 겨우 그거 하나 골랐어요.”

“근데 이게 상당히 비싸요.” 


숍의 주인에게 값을 물어보니 95 PLN(약 28,000원)이다. 돈을 지불하고 좋아하는 아내의 등을 밀고 나왔다. 비가 오는 구시가지 거리는 한 폭의 고풍스러운 수채화와 같았다. 그림 같은 거리를 아내와 단 둘이서 작은 우산을 받쳐 들고 숨바꼭질하듯 걸어 다녔다. 골목엔 멋진 카페들이 많았다. 야마 미할리카(Jama Michalika)라고 표시된 카페로 들어가 뜨거운 커피를 주문했다. 커피 향이 좋았다. 카페의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더욱 커피 맛을 돋워주고 있었다. 알고 보니 이 카페는 매우 유명한 카페였다. 1895년 개업한 이래 크라쿠프의 예술가와 문인들이 즐겨 찾던 곳이란다. 커피색처럼 어두운 조명 아래 오래된 예술품들이 가득해서 마치 어느 박물관에서 차를 마시는 기분이었다. 


중앙시장 숍


폴란드 민족의 상징인 바벨 성은 비스와 강변 석회암 언덕에 위치하고 있었다. 11세기부터 건축되기 시작해 16세기까지 증개축을 계속해온 바벨성은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 중세기 모든 건축 양식들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있다.


“성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아요!”

“정말 평화로운 광경이야!” 


그중에서 대성당 건물은 과히 압권이다. 부속 예배당으로 둘러싸인 대성당은 브와디스와브 난쟁이 왕으로부터 시작하여 거의 모든 폴란드 왕들의 대관식과 장례식이 거행된 장소다. 지하에는 왕들의 유해와 민족 영웅들이 유골이 안치되어 있었다. 


“저기 동굴 안으로 사람들이 들어가는군요.”

“무슨 동굴일까?”


바벨성에서 비스와 강변 쪽 끝에는 ‘용의 동굴’이 있었다. 동굴은 나선형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데 어찌나 가파른지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어두운 굴을 한참을 걸어가니 용이 불을 내뿜는 형상을 하고 있는 비스와 강변의 조각상 앞으로 나왔다. 


바벨성 노천카페에서


아주 오래전 옛날, 비스와 강의 동굴에 살던 용은 아름다운 소녀를 잡아먹곤 했다. 평화롭던 도시가 그 용 때문에 요란해지자 크라크 왕은 용을 잡는 자에게 큰 상을 내리겠다고 발표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구두 수선공이 용 사냥에 나섰다. 구두 수선공은 여장을 하고 동굴로 가서 용에게 타르와 유황을 바른 양가죽을 먹였다. 이것을 먹은 용은 심각한 갈증 때문에 강물을 정신없이 마셔댔다. 그러자 뱃속에 들어간 유황이 끓어오르며 용은 그만 산산조각이 나서 죽고 말았다고 한다. 그리고 구두 수선공은 마침내 공주와 결혼을 하여 행복하게 살았다. 


크라쿠프 시가지 풍경


“하하, 크라쿠프에도 우리나라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전설이 있네.” 

"어두운 동굴을 빠져나오니 살 것만 같아요."

"내가 바로 당신을 구출한 구두수선공 아니요."

"호호, 그런 샘인가요. 구두수선공님 배가 고파요."

"여기,  빵과 우유를 대령하였나이다. 공주님."


용의 동굴을 빠져나온 우리는 비스와 강변에 앉아 배낭에서 빵과 우유를 꺼내어 먹었다. 눈앞에는 비스와 강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전쟁과 평화가 공존했던 크라쿠프, 비스와 강은 그 슬픈 역사를 알고 있으리라.                                          

★ 한 생명을 구한 자는 전 세계를 구한 것이다 -탈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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