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찰라 Mar 04. 2019

33. 부다페스트로 가는 기차

헝가리-부다페스트

크라쿠프 중앙역에서 카토비체로 가는 기차를 탔다. 1시간 후에 우리는 카토비체(Gatowice) 역에서 내려 부다페스트로 가는 기차를 기다렸다. 중간에 기차를 갈아탈 때는 바짝 긴장해야 한다. 졸고 있거나 아차 하면 기차를 놓치기 때문이다. 


플랫폼에서 배낭을 옆에 두고 의자에 앉아 있는 아내의 표정이 다소 지쳐 보였다. 그래도... 긴 여정을 잘 견디어 주는 아내가 고맙기만 했다. 오늘로 서울을 떠나온 지 한 달이 넘었다. 앞으로 더 긴 여정이 남아 있다. 우리는 이곳 동유럽에서 유럽의 땅 끝 포르투갈을 거쳐 남미로 갈 예정이다. 환송객들이 꽃을 들고 나와 떠나는 사람에게 주었다. 꽃을 주는 마음, 받는 마음은 언제나 신성하게 보인다. 


곧 부다페스트로 가는 기차가 도착했다. 낑낑거리며 배낭을 메고 부다페스트로 가는 기차로 옮겨 탔다. 역무원이 유레일패스에 체크를 했다. 유레일패스는 본인이 먼저 출발하는 날짜를 기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페널티를 물어야 한다. 내가 사용하는 패스는 동유럽 플랙시 패스다. 즉 날짜를 지정해서 사용할 수 있는 패스다. 


폴란드 카토비체 역에서 부다페스트로 가는 기차를 갈아탔다.

    

기차가 출발을 하며 소리 없이 미끄러져 간다. 기차를 타면 곧 생각의 산파가 열린다. 여행자에게 기차는 생각의 산파와 같다. 차창에 지나가는 풍경, 리드미컬하게 들리는 기차 바퀴소리,  이런 것들이 무한한 사유의 세계로 이끌어 준다. 내가 지나온 인생 전체가 차창에 점멸되며 흘러가기도 한다. 


철로 옆에 숲이 우거지고 나목들이 통로를 만들어주며 양쪽에 도열해 있다. 기차는 평행선으로 이어진 철길을 달리다 역에 도착하면 승객들을 내려주고 또 다른 승객들을 태워준다. 여행자들의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이어주는 기차는 다시 달려간다. 이 철로는 아마 헝가리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임레 케르테스가 15세 때 부다페스트에서 아우슈비츠로 끌려온 길이 아닐까?  


기차는 슬로바키아를 관통해서 끝없는 초원을 달려가더니 오후 6시 14분에 부다페스트 켈레티(Keleti pu) 동역에 도착했다. 역에 내리니 어둠이 주위를 덮고 있었다. 플랫폼으로 나가니 호객꾼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을 무시하고 지하철 매표소로 갔다. 오늘 밤 묵기로 한 숙소는 ‘호스텔 마르코 폴로(Hostel Marco Polo)’인데 블라하 루이자(Blaha Lujza ter) 역 근처에 있었다. 지도를 보니 켈레티 역에서 블라하 역까지는 불과 한정거장 사이다. 


부다페스트로 가는 기차에서


그러나 우리는 블라하 역에서 내려 마르코 폴로 탑 호스텔을 지척에 바로 두고 뱅뱅 돌며 한 참을 헤맸다.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도 도대체 제대로 대답을 해준 사람이 없었다. 무려 한 시간 반 동안을 헤매다가 호스텔 근처 골목에서 한 아가씨를 만났다. 마침 그녀는 마르코 호스텔에 머물고 있는 호주에서 온 여행자라고 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장시간을 헤맨 탓에 아내와 나는 거의 녹초가 되어 있었다. 호텔에 도착하니 도미토리는 만원이고 트윈 룸밖에 없다고 했다. 트윈 룸은 하루 밤에 방값이 60달러나 되었다. 배낭 여행자에게는 매우 비싼 방이다. 호스텔 종업원은 이 방도 시간이 지나가면 차지하기가 힘들 거라고 했다.


아내가 비싼 방값에 고개를 저으며 다른 곳으로 가자고 했지만 너무 지쳐서 다른 데로 갈 힘도 없었다. 나는 방값을 지불하고 오랜만에 욕실이 딸린 방에 여장을 풀었다. 여장을 풀고 욕실에 샤워하니 물이 무척 부드럽고 좋은 느낌을 주었다. 목욕을 하고 카페에서 간단한 요기를 하고 나니  눈이 가물가물 감겨왔다. 


아내도 인슐린 주사를 맞더니 건너편 침대에 벌렁 누워 곧 꿈나라로 빠져 들어갔다. 하루에 네 번이나 맞아야 하는 인슐린 주사다. 발병 초기에는 내가 주사를 놓아주었지만 지금은 아내 스스로 해결한다. 가여운 아내를 바라보다가 나 역시 곧 깊은 잠의 늪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흐흐흐… 여기는 ‘동유럽의 장미’ 부다페스트인가?     


★기차를 타면 생각의 산파가 열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32. 한 생명을 구한자는 전 세계를 구한 것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