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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Mar 06. 2019

35.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고향
클라겐푸르트

오스트리아-클라겐푸르트

벌써 11월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의 흐린 날씨는 말끔히 개이고 밝은 태양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태양은 다시 뜨고, 모든 만물의 움직임은 태양계와 우주의 기운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수첩을 잃어버렸던 것도 이미 지나간 과거였다. 


삶은 날씨와 같다. 비구름이 하늘을 덮어 흐린가 하면 어느새 개이고, 바람이 소리를 내어 윙윙 요란한 소리를 내다가 무덤 속처럼 적막해지기도 한다. 항상 무덤 속처럼 고요하다면 이 또 한 얼마나 지루한 삶이겠는가? 모든 것이 지은대로 돌아오며, 세상은 그 업(業)의 순리에 따라 돌아가게 되어있다. 그 순리에 따라 물처럼 흘러가는 것이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오늘은 꽤 먼 장거리 기차여행이 될 것 같다. 부다페스트 마르코 폴로 탑 호스텔에서 만난 한 여행자가 준 정보를 듣고 우리는 오스트리아의 알프스 티롤로 무작정 떠나기로 했다. 지금 알프스는 단풍으로 불타고 있으며 기차를 타고 알프스 티롤을 넘어가면 유럽에서 가장 멋진 풍경을 구경할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 여행자의 말 한마디에 알프스 티롤을 넘기로 결정했다. 


부다페스트에서 슬로바키아를 지나 비엔나로 가서 기차를 갈아타고 알프스 산맥을 넘어, 오스트리아 최남단에 있는 도시 클라겐푸르트까지 가는 긴 여정이었다. 클라겐푸르트는 슬로베니아 국경과 이탈리아로 가는 기점에 있는 작은 도시다. 


티켓부스의 여자 직원에게 기차표 좌석 예약을 하려고 했더니 그냥 타도된다고 했다. 기차에 오르니 좌석이 텅텅 비어있었다. 아침 9시 40분. 비엔나행 기차는 부다페스트 델리 역을 출발했다. 유럽여행 기차여행은 역시 묘미가 있다. 유로 버스나 다국적 패키지 코치도 타 보았지만 기차여행만큼 여행의 묘미를 주지는 못했다. 평행선으로 그어진 레일을 따라 일정한 리듬을 타며 달리는 기분은 상쾌하기 그지없다.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며 차창에 어린 풍경, 도시와 마을, 농부와 숲, 들판, 강, 산, 그리고 단풍…. 기차여행은 대자연이 보여주는 한 편의 오케스트라와 같다. 텅 빈 2등실 좌석에 팔베개를 하고 누워 지나가는 파란 가을 하늘을 보았다. 차창 밖으로 하늘도 가고 구름도 지나갔다. 기차가 나무 사이로 달려가자 달리는 기차가 일으킨 바람에 낙엽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기차는 짙은 안갯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러다가 평행선으로 달리는 철길 위에 안개가 걷히고 파란 벌판이 나타났다. 기차는 슬로바키아 국경을 지나 비엔나 역에 도착했다. 시계는 12시 30분을 가르치고 있었다. 비엔나에서 빌라치(Villach) 역으로 가는 기차를 갈아탔다. 빌라치행 기차는 오후 1시 4분에 출발을 했다. 



비엔나를 출발한 지 1시간여를 지나자 기차는 갑자기 속도가 느려지고 헉헉거렸다. 기차는 드디어 알프스 산맥을 오르고 있었다. 산 산 산, 터널 터널 터널, 다리 다리 다리, 단풍 단풍 단풍…. 알프스의 놀랍도록 아름다운 풍경에 아내와 나는 그저 와와! 하며 감탄사만 연발했다.

 

“비디오를 이쪽으로 돌려요.”

“저 풍경을 놓치지 말아요!”


아내의 주문에 따라 비디오를 돌리다 보니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진을 올리지 못한다. 가을에 유럽여행을 하고자 하는 여행자는 이 코스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부다페스트의 호스텔에서 정보를 준 여행자에게 감사를 드려야 했다. 기차는 오후 3시 5분에 브룩크(Bruck) 역에 도착했다. 한 무리의 학생들이 재잘거리며 기차에 올랐다. 긴 터널을 몇 개를 지나고 4시가 좀 지나가자 알프스는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단풍 길이었다. 


오후 5시 7분, 기차는 드디어 목적지인 클라겐푸르트에 도착했다. 우선 숙소를 정하기 위해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콜핑 게스트하우스(Kolping)로 걸어서 갔다. 생각보다 멀었다. 게스트하우스에 도착을 하니 방값을 1인당 26유로를 달라고 했다. 2인이면 52유로. 헉, 시골 방값이 왜 이리 비싼가? 좀 더 싼 게스트하우스는 없느냐고 했더니 몇 군데 이름을 대준다. 그곳은 1인당 15유로 정도면 될 거란다. 


“여기보다 22유로가 싸네? 여보, 그리로 가요?”


클라겐푸르트 골핑 게스트하우스


계산이 빠른 아내가 재촉을 했다. 그러나 우리는 허탕만 치고 다시 콜핑으로 돌아와야 했다. 싼 방은 이미 만원이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무슨 행사가 있어서 그렇단다. 울상을 짓고 있는 아내를 달래며 지친 다리를 끌고 콜핑으로 되돌아오니 여기도 조금만 늦었더라면 방이 없을 뻔했다. 


멤버십 카드로 6유로를 할인하고 일단 방을 정했다. 방은 화장실도 있고 샤워 실도 있었다. 유럽은 워낙 사람이 많이 끓는 곳이라 숙소에 신경을 써야 한다. 적어도 며칠 전에 방을 인터넷으로 예약하는 것이 고생을 덜 한다. 비싼 방이야 널려 있겠지만 장기 여행자들이 그런 비싼 방에서 자다가는 금방 여행비가 거덜 나고 말 것이다.     

“정말 정원 같은 도시군요.”

“꼭 퍼즐 조각으로 만든 예쁜 인형 같은 도시 같기도 해요.” 


클라겐푸르트 작은 도시처럼 예쁘고 깜직한 자동차


학교 건물과 딸려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우리는 새들의 울음소리에 잠을 깼다. 도시는 조용하고 평화스러웠다. 한 주의 수도라기보다는 우리나라 어느 군청 소재지를 연상케 하는 그런 고즈넉한 분위기였다. 클라겐푸르트는 브람스나 말러가 머물며 작곡에 몰두를 할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다. 브람스는 도시에 인접해 있는 뵈르터제(Worthersee) 호수에 머물며 ‘바이올린 협주곡 1번’ 등 유명한 음악을 작곡했다. 


숙소에서 나온 우리는 타운 홀 쪽으로 걸어 나갔다. 한가하게 보이는 거리는 깨끗하고 깔끔했다. 너무나 조용하여 다소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알프스 산맥의 줄기를 타고 내려온 구릉 아래 올망졸망하게 들어선 작고 앙증맞은 집들은 예쁘기보다는 차라리 귀엽다고 할까? 중세기에 지어진 집들은 수백 년 세월 동안 보수되거나 덫 칠을 한 흔적이 보였다. 거리의 사람들은 조급해 보이지 않고 여유로워 보였다. 


우리는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보행자 전용도로라고 하는 거리를 따라 구 시가지를 걸어갔다. 고작 3km 남짓한 구시가지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었다. 시청사, 교회, 궁전, 박물관, 시립극장, 예술인의 집, 광장, 영화관, 화랑, 레스토랑, 호텔, 서점, 주점, 음악학교, 카페, 시장, 기념품점…. 좁지만 여유로운 공간을 확보하며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이 쾌적하게 모여 있었다. 건물 사이사이에는 이 도시가 생겨난 역사를 담은 상징물들이 전설을 담은 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광장 앞에 있는 아이센터에서 도시의 지도와 여행 안내서를 받았다. 작은 도시 답지 않게 상세한 지도와 사진을 곁들여 꼼꼼히 챙겨 넣은 여행안내서가 딱 마음에 들었다. 입체 식으로 퍼즐처럼 짜 맞추어 표시된 안내서는 정말이지 찾기가 매우 쉽게 표시되어 있었다.    

  

클라겐푸르트는 ‘갯벌을 둘러싸고 탄식소리가 끊이지 않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도시와 인접해 있는 뵈르터제 호수에는 사람들을 먹어 삼키는 드래건을 닮은 괴물이 살고 있었는데, 영주는 그 괴물을 죽이는 자에게 호수의 땅을 주겠다는 방을 붙였다. 동네의 용감한 청년들이 마침내 그 괴물을 죽이고 그 땅을 하사 받아 그 자리에 세운 도시가 바로 ‘클라겐푸르트’이다. 

그 전설을 말해주는 석조로 만든 괴물 드래건이 신 광장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 맞은편에는 도시의 수호성인 ‘성 게오르그’가 방망이 하나를 들고 용을 내려칠 듯이 서 있었다. 그 용을 사이에 두고 시청 건물과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의 동상이 서 있었다. 


시청사 건너편에 있는 랜드 하우스로 들어가니 수백 개의 '코트어브암스(Coat-of-Arms:갑옷조각 같이 생긴 판에다 유명인들의 생애를 기록한 문장)가 실내를 황금색으로 장식하고 있었다. 이 건물은 중세기 캐른텐 주에 최초로 세워진 성인데, 캐른텐 주에 공을 세운 재산가, 정치가, 성직자들의 이름과 생애를 간단하게 기록한 665개의 암스(Arms)가 벽과 천장을 장식하고 있었다. 바둑판같은 바닥에 황금 퍼즐처럼 걸어놓은 조각판이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랜드 하우스  '코트어브암스(Coat-of-Arms:갑옷조각 같이 생긴 판에다 유명인들의 생애를 기록한 문장)


교회에서 12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평화로운 정오의 종소리다. 거리에는 앙증맞게 생긴 작은 자동차들이 인형처럼 서 있었다. 인형 같은 자동차는 장난감처럼 귀엽게 보였다. 우리는 마치 인형의 집들을 구경하듯 이곳저곳 기웃거리다가 어떤 서점에서 아이들에게 보낼 귀여운 엽서와 학용품을 샀다. 서점의 모퉁이에 앉아 엽서에 몇 자 적어 넣어 바로 옆에 있는 우체국으로 가서 부쳤다. 작은 선물을 동봉하여 엽서를 보내고 나니 마음이 뿌듯해졌다. 엽서를 부치고 신 광장에 있는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뵈르터제 호수로 가는 버스를 타자 머지않아 버스는 넓은 호수에 도착했다. 


“이곳이 그 괴물이 나온 뵈르터제 호수에요.”

“괴물이 나올 법도 한 호수군요.” 


전설을 담은 호수는 잔잔하지만 너무 조용해서인지 기괴한 분위기였다. 형형색색으로 물든 단풍나무들이 호수에 그대로 반영되어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했다. 구스타브 말러의 별장이 호수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호수 변에 자연스럽게 전시된 조각품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자연 갤러리를 연출하고 있었다. 분수와 장미정원, 바닥에 그려진 장기판이 곳곳에 있고 사람들이 한가로이 앉아 책을 읽거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새들에게 모이를 주거나 아이스크림을 먹기도 했다. 


뵈르터제 호수에서


하루만 머물기로 했던 이 도시에 반해서 우리는 하루를 더 연장하여 머물기로 했다. 다음날은 주변에 있는 성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크고 작은 성들이 나무에 둘러싸여 곳곳에 산재해있었다. 우선 먼저 찾아간 곳은 빅트링 수도원이었다. 숲으로 둘러싸인 수도원은 태고를 숨 쉬고 있는 듯 고요했다. 뮤직 스쿨인 짐내지엄이 수도원 내에 있어서인지 바이올린을 들고 다니는 학생들이 눈에 보였다.   

   

수도원 뜰을 거닐다가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신 광장으로 왔다. 이 도시의 문화행사 하이라이트는 오스트리아가 낳은 여류시인 잉게보르크 바하만(Ingeborg Bachmamn, 1926-1973 : 오스트리아 여류시인)의 문학상 시상식이다. 매년 6월 말에서 7월 초 사이에 열리는 이 행사에는 전 세계의 독문학자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이 초대되어, 미발표된 독일어 신작 작품들을 낭독하고, 열띤 평론과 토론을 거쳐 ‘바하만 문학상’을 결정한다. 


그녀의 집에서 뵈르터제 호수로 이르는 길은 그녀의 중편 시집 ‘호수로 가는 세 갈래길’의 배경 무대로 삼았던 길이라고 해서 ‘바하만의 길’이라고 부르고 있다.  바하만의 '30세'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마지막 부분이었다. 


'내 그대에게 말하노니, 일어서서 걸어라그대의 뼈는 결코 부러지지 않았으니'  서른이라는 나이는 쉽게 무너져 내릴 나약한 나이가 아니라는 것. 뜨거운 고뇌로 가득 찼던 스물을 보낸 후, 성숙한 삶 속으로 들어선 나이라는 것. 그것이 '30세'라는 무게일 것이다. 불행한 사람들, 병약한 사람들, 빈사의 사람들 곁을 떠나서 병실 문을 나갈 수 있기를 바라며 그녀는 외쳤다. 걸어라! 내 뼈는 아직 으스러지지 않았으니. 이 말은 지금 아내와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그렇다! 우린 죽는 날까지 일어서서 걸을 것이다. 스스로 땅을 딛고 걷지 못할 때 우리의 생은 죽어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잉게보르크 바하만

클라겐푸르트는 피곤하지 않는 도시다. 알프스의 바람들조차도 쉬어 가는 그런 도시라는 느낌이 든다. 바쁘지 않은 사람들, 꽃, 정원, 중세기 풍의 편한 건물,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난 골목에 늘어선 카페와 상점들…. 호수로 연결된 운하와 산책로를 걷다 보면 어느새 사색의 샘물로 빠져들어 가고 만다. 


지팡이를 짚고 중절모를 쓰고 여유롭게 걸어가는 노신사의 모습에서, 바이올린을 들고 걸어가는 소녀의 모습에서, 커피 잔을 기울이며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자전거를 타고 미소를 지으며 한가롭게 달려가는 주부의 모습에서, 손에 잡힐 듯 작은 인형 같은 자동차의 모습들 속에서… 나는 그저 고요함과 행복을 느꼈다. 이 도시를 걸으면 사람들이 귀하게 느껴지고,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내가 더욱 소중하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도시… 그런 도시에서 살아야 한다. 바흐만의 시와 말러의 음악이 흐르는 클라겐푸르트 같은 그런 도시에서 살고 싶다.


소음으로 득실거리는 서울의 도심과, 보다 큰 집, 큰 차, 강한 것, 복잡한 것, 스릴 넘치는 아슬아슬한 흥미를 추구하는 것, 지연과 학연, 부자와 가난한 자, 잘난 자와 못난 자, 너나없이 너무 바빠서 벽 하나 사이에 둔 이웃사람이 죽어간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매 마른 도시의 창에 발버둥 치며 도대체 왜 살아가야 하는가? 

     

★내 그대에게 말하노니-일어서서 걸어라! 그대의 뼈는 결코 부러지지 않았으니…-잉게보르크 바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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