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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Mar 07. 2019

36. 알프스 티롤을 넘다

알프스-티롤-인스브루크

오스트리아가 낳은 자연주의 등반가 오이겐 귀도 라머(Eugen Guido Lammer, 1863~1945, 오스트리아 출신 자연주의 등반가. 저서로 ‘청춘의 샘’이 있다)가 젊은 시절,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높은 산인 그로스글로크너산(3,798m)을 등반하고 티롤의 아름다움을 아래와 같이 노래했다.     

 

"이 세상의 것이라고는 믿어지지도 않을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우리의 가슴은 한 없이 부풀어 오른다저 목장 언저리에서그리고 그로스글로크너의 정상에서 눈발을 지나는 바람이 풍금소리를 울려주는 것을 들을 수 있지 않은가!"     


티롤이 얼마나 아름답기에 그는 ‘이 세상의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노래했을까? ㄱ귀도 라머는 낙석과 같은 위험도 등반의 일부라고 여겼으며, 산장을 포함한 모든 인공적인 구조물의 철거를 주장할 정도로 자연주의를 신봉하는 등반가이다. 그는 최대의 고통을 겪은 다음에 비로소 최고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것이었기에 산에 오른다고 말한다.


오스트리아는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 말러 등 수많은 천재 음악가들을 배출한 음악의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여행자들에게는 국토의 3분의 2가 알프스 산맥에 걸쳐 있는 산악국가로서의 그 명성이 더 높다.  오스트리아는 3천 미터가 넘는 만년설이 수백 개나 있고, 천 개가 넘는 아름다운 호수가 있는 나라다.


흔히 알프스 하면 스위스를 연상하지만, 알프스의 심장에 해당하는 티롤이 오스트리아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세계적인 등반가들을 수없이 배출한 곳도 오스트리아다. ‘티베트에서 7년'이란 책을 저술한 하인리히 하러를 비롯해서 수많은 등반가들이 오스트리아에서 배출되었다. 그들은 이 티롤 지방에서 산악인의 꿈을 키워왔다.  

    

아침 9시 36분, 클라겐푸르트에서 출발하는 독일 도르트문트행 기차에 올랐다. 동유럽 유레일 플랙시 패스를 마지막으로 쓰는 날이었다. 승무원이 11월 5일이라고 기록한 날짜에 마지막 스탬프를 찍었다. 우리는 이 기차로 알프스의 티롤을 넘어 잘츠부르크로 간 다음, 그곳에서 오늘 여행의 종착지인 인스브루크로 가는 기차로 갈아타야 한다. 알프스의 티롤 지방을 원을 그리며 동유럽의 기차여행을 대미를 장식하는 여행이다. 


기차는 환상적인 운무가 깔려있는 뵈르터제 호수를 지나갔다. 그 운무도 잠깐, 쏜살같이 달려가는 기차는 10시 8분에 필라흐(Villach) 역에 첫 정차를 했다. 필라흐 역은 이탈리아, 슬로베니아, 독일로 가는 삼각주 역할을 하는 교통의 중심지다. 그래서인지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필라흐에서 다시 1시간여를 달려가니 긴 터널이 나타났다. 스위스의 몽블랑 터널에 버금가는 긴 터널이었다. 터널을 지나가는 시간을 재보니 15분 정도 걸렸다. 


우리는 지금 알프스에서 가장 험악하다는 호에 타우에른(Hohe Taunern) 산맥을 넘고 있었다. 열차 내의 스피커에서는 '아름다운 스위스 아가씨'라는 요들송이 흘러나오고, 산 아래 초원 위에는 점점이 이어지는 마을이 목가적인 풍경을 띠며 그림처럼 다가왔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한 장면 같다고 할까? 말과 글로는 표현을 할 수 없는 알프스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산상에 펼쳐지고 있었다. 


“저기 산들 좀 봐요. 정상에는 하얀 눈으로 덮여있고, 중턱에는 울긋불긋한 단풍이 물들어 있군요. 그리고 계곡은 푸른 잔디가 갈려있어요!”

“참으로 절묘한 조화네! 푸른 하늘 만년설 아래 몇 겹의 색깔이 펼쳐지고 있으니….” 

“늦가을인데도 계곡의 잔디들이 이리도 푸를까?”

“오,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오!”


알프스 티롤


알프스는 저지대에서부터 해발 1,500m에 이르는 지점까지는 푸른 잔디가 계곡 사이사이에 깔려있고, 너도밤나무와 자작나무 같은 낙엽교목이 자라고 있다. 중간지대인 해발 1,800m에는 가문비나무, 소나무, 전나무 등의 침엽수가 자란다. 풀과 꽃, 관목을 볼 수 있는 고산초원은 해발 2,400m에 있다. 가장 높은 3,000m 이상의 고산지대에는 식물이 자라지 않으며, 암석과 만년설로 덮여 있다. 이러한 식물군의 띠는 여러 가지 색깔로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11시 44분, 기차는 알프스를 넘어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 배경지인 잘츠부르크 역에 도착했다. 잘츠부르크 역에서 햄버거에 커피를 마시며 출발하는 인스브루크행 기차를 기다렸다. 안내판을 보니 인스브루크행 기차는 오후 1시 4분에 있었다. 


“5년 전에 이곳을 여행했던 생각이 나요.” 

“그러네!” 

“멕시코의 신시아, 호주의 조앤과 함께 여행을 했던 그 시절이 그립군요.” 

“추억은 언제나 아름다운 것 아니겠소!”


우리는 6년 전 여행의 추억에 잠겨 있다가 인스브루크행 기차에 오른다는 것이 그만 뮌헨행 기차에 잘 못 오르고 말았다. 기차에 올라 아무래도 이상한 느낌이 들어 마침 지나가는 역무원에게 인스브루크행이 맞느냐고 물었더니 이 기차는 뮌헨으로 가는 기차라고 했다. "아차! 큰 일 날 뻔했네!" 황급히 기차에서 내린 우리는 인스브루크행 기차로 갈아탔다. 자칫 잘못했으면 엉뚱한 방향으로 갈 뻔했다. 유레일패스는 갈아타는 역에서 반드시 기차의 목적지를 확인해야 한다. 기차는 묻지 않는다. 어디로 가느냐고. 시간이 되면 출발한다. 


인스브루크로 가는 기차에 오르며


잘츠부르크와 인스브루크 구간은 풍광이 뛰어나 외국인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기차여행 코스다. 이 구간은 두 개의 기차 노선이 있는데, 그 하나는 독일을 경유하는 시간이 짧은 노선과 다른 하나는 오스트리아 알프스를 만끽할 수 있는 국내노선이 있다. 시간이 급한 사람은 독일 노선을 택하겠지만, 알프스 기차여행 진수를 맛보려면 물론 오스트리아 국내선(OBB 기차)을 타야 한다. 


우리가 탄 기차는 오스트리아 국내선 완행열차다. 잘츠부르크를 출발한 기차는 한쪽엔 호수와 강, 그리고 다른 한쪽엔 만년설을 끼고 달려갔다. 이 노선은 오스트리아에서도 가장 험준한 알프스인 호에 타우에른(Hohe Tauren Mt.)을 넘는다. '높은 산에 있는 길'을 의미하는 호에타우에른은 오스트리아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등산과 스키의 메카로 각광을 받는 곳이다. 


험준한 산맥을 넘자 거대한 호수가 시야에 나타났다. 겨울엔 스키를 즐기고, 여름엔 보트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첼암제(Zell am See) 호수다. '호수 옆 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첼암제는 인구 1만여 명의 작은 호수마을이다. 알프스의 눈과 빙하가 녹아서 만들어진 호수인 첼암제는 한 폭의 그림이다. 다음에 유럽에 오면 꼭 한 번 머물고 싶은 마을이다. 


"오우, 한 폭의 그림이네요!"

"그러게! 다음에 오스트리아에 오면 꼭 이 호수마을에서 머물며 산책을 하고 싶군."


첼암제(Zell am See) 호수(사진자료:Wikipedia)


첼암제를 지나니 'Tirol'이라는 표시가 나왔다. 잘츠부르크 주를 벗어나 티롤 주에 들어선 것이다. 기차는 인 강(Inn River)을 끼고 서서히 미끄러지다가 마침내 오후 4시 35분 인스브루크 중앙역에 도착했다. 긴 기차여행을 끝내고 마침내 알프스의 장미라고 일컬어지는 티롤 지방의 주도 인스브루크에 도착했다. 인스브루크는 티롤 주의 주도이다.  


스키의 천국 인스브루크는 두 차례의 걸쳐 동계 올림픽을 개최한 알프스의 심장이다. 인스브루크는 남자의 우람한 가슴처럼 떡 벌어진 만년설 봉우리들을 바라보며, 여성의 아늑한 골짜기처럼 인 강(Inn river)이 부드럽게 감싸고 있다. 인스브루크는 120개의 스키장, 1,100개의 리프트, 총연장 3,500km의 슬로프가 있는 겨울 스포츠의 천국이다. 


스키의 천국 인스브루크


우리는 인 강 바로 옆에 있는 인스브루크 호스텔에 여장을 풀었다. 이곳 호스텔은 규정이 다소 까다로워 오후 5시 이후에 체크인을 하고, 남녀가 분리된 도미토리만 있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불가피하게 이산가족이 되었다. 아내는 건물 1층에, 나는 2층으로 숙소를 정했다. 여장을 푼 우리는 호스텔 바로 앞에 있는 인 강 산책에 나섰다. 강변을 산책을 하다가 카페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데 ‘트라팔가'마크를 단 관광버스가 눈에 띄었다. 


“여보, 저기 트라팔가 여행사 버스 아닌가요?”

“맞아요.”

“몇 년 전에 우리가 탔던 버스와 똑같아요. 여기서 만나니 정감이 가는군요.” 


5년 전 우리는 다국적 여행사인 트라팔가 여행사 버스를 타고 첫 유럽여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여기서 다시 그 버스를 보게 되니 반가웠다. 트라팔가 여행사 가이드가 미소를 지으며 눈인사를 했다. 그들은 식사를 한 후에 알파인 쇼를 보러 간다고 했다. 알파인 쇼는 바로 옆에 있는 건물의 레스토랑에서 공연을 했다. 


“저녁에 심심한데 우리도 알파인 쇼나 좀 볼까?”

“그거 참 좋은 생각이네요?”

“이곳 알파인 쇼에서 태극기를 꽂은 일이 있었거든.”

“태극기를 꽂다니요?”

"가보면 알아요.”


나는 1983년 홀로 유럽 여행 시 인스브루크에서 멋진 알파인 쇼를 관람한 기억이 있어 아내에게도 정통 티롤 알파인 쇼를 보여주고 싶었다. 공연장으로 들어가 가격을 물어보니 1인당 20유로였다. 아내는 너무 비싸다고 그냥 가자고 했지만 나는 티켓을 샀다. 공연장을 가득 매운 홀에 동양인은 우리 둘 뿐이었다. 


막이 올라가고, 남자들은 알프스 목동 같은 옷차림을, 여자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마리아 같은 치마를 입고 흥겹게 춤을 추며 요들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아코디언, 하모니카, 지터, 카우 벨, 망치, 톱 등 갖가지 악기들이 등장하며 알프스 목동들의 삶을 보여주며 경쾌하게 들려주는 멜로디가 청량제처럼 시원했다.


인스브루크 군돌프(Gundolf) 요들송 공연장


“아니요 레리요, 아니요 레이요, 요리 요리 요리~~~.” 


요들송은 새나 짐승들의 소리를 내며, 흩어진 양 떼를 불러 모으거나, 눈사태가 많은 알프스에 재앙을 물리치는 주술적인 목적이 있다. 또한 산에 대한 인간의 존경심을 나타내거나, 위험을 알리는 통신 수단 등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요들의 본 고장은 스위스이지만 이를 발전시키고 세계에 널리 알린 나라는 음악의 나라 오스트리아다. 그중에서도 티롤 지방의 요들송은 세계화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각 나라의 대표 민요를 연주하는 것이다. 무대에서 각 국가의 국기를 들고 그 나라의 민요를 연주를 하기 시작하면 그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은 모두 일어서서 합창을 했다. 드디어 한국의 태극기가 무대에서 휘날리고 아리랑이 연주되었다. 아내와 나는 벌떡 일어나서 아리랑을 큰 소리로 열창했다. 아리랑을 부르는 순간 괜히 가슴에 뜨거운 전류가 흐르듯 찡해졌다. 노래가 끝나자 우레와 같은 갈채가 터졌다. 동양인은 우리 둘 뿐이어서 그런지 관중들의 박수갈채가 더 뜨거웠다.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다!


“여보, 기분이 어때요?”

“너무 좋아요!”

“알프스의 하이디라도 된 느낌이 들지 않소?”

“호호, 이 나이에 어찌 하이디 같은 소녀가 될 수 있겠어요?”

“나이가 무슨 상관이요. 오늘 밤 당신은 하이디 소녀처럼 아름답게만 보이는데. 하하.”


요들송 관람으로 한껏 기분이 고조된 우리는 호스텔로 돌아왔다. 오늘따라 더욱 사랑스럽게 보이는 아내를 안아주고 싶지만 우리는 층이 다른 각자의 방으로 이산가족이 되어 헤어져야 했다. 


“하이디 소녀를 품에 안고 자고 싶은데 오늘 밤은 남녀칠세부동석 신세네.”

“호호, 당신도… 2층 침대에서 떨어지지 말고 잘 자요.”

                                                      

나는 높은 2층 침대로 조심스럽게 올라가 잠을 청했다. 포도주를 몇 잔 마셔서 그런지 곧 잠이 들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다음 날 새벽 요기가 있어 화장실을 가려고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나는 그만 발을 헛디뎌 2층 침대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아이쿠, 요리요리요리~, 저리저리저리~, 아니요 레이요, 아니요 레이요, 이거 이 층 침대가 사람 잡네!"


인스부르크 군돌프 요들송 공연장에서


★호사마다라고 했던가? 2층 침대에서 잠을 잘 때는 헛발을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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