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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Mar 07. 2019

37.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인스브루크- 뮌헨

아침에 케이블카를 타고 하펠레칼슈피츠(Hafelekarspitz) 꼭대기를 올라가려고 했으나 오늘따라 케이블카가 운행하지 않는다고 안내센터 직원이 말했다. 그런데다 새벽에 2층 침대에서 떨어져 다친 허리가 욱신거리며 아팠다. 딱히 할 일도 없어 우리는 하루 밤 더 머물기로 했던 인스브루크를 떠나기로 했다. 호스텔에서 미리 지불한 하루분의 방값을 환불을 받고, 인스브루크 역으로 갔다. 뮌헨행 열차는 10시 34분에 있었다. 

역사로 가는 도중에 잠시 인스브루크 구시가지에 있는 황금지붕과 헬블링하우스, 왕궁들을 돌아보았다. 동판에 금을 입힌 황금지붕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구시가지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아치형으로 생긴 쇼핑가다. 이 쇼핑가를 거닐다 보면 마치 중세기의 어느 시장에 와 있는 느낌이 든다. 


잠시 구시가지를 어슬렁거리다  뮌헨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중앙역으로 갔다. 티켓 부스에 문의하니 좌석은 여유가 있었다. 51유로를 지불하고 두 장의 티켓을 챙긴 뒤 플렛트 홈으로 나가서 기차를 기다리는데, 뼈만 앙상히 남은 중년의 어떤 남자가 두 여인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걸어왔다. 바람이 훅 불면 검불처럼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가냘픈 몸이다. 

우리가 앉아 있던 벤치를 그에게 양보하자 그는 앉기도 힘이 든 듯 두 여인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앉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는 주머니를 뒤지더니 담배를 꺼내 들고 성냥불을 그어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지 않는가? 담배연기를 한 모금 깊숙이 들어 마신 그는 파란 허공을 응시하더니 한숨과 함께 길게 담배 연기를 품어냈다. 허지만 그는 담배연기를 토해내며 몸이 널뛰기를 하듯 심한 기침을 했다. 


저렇게 심한 기침을 해대면서도 담배를 피우다니! 허지만 그를 부축했던 두 여인은 담배 피우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 세상의 삶을 초월한 듯 한 그의 표정과 담배 피우기를 말리는 것을 체념한 듯 한 두 여인의 시선이 묘하게 교차되어 왔다. 내일 죽더라도 담배를 피우는 것이 유일한 낙이라면 말릴 수 없는 것일까? 인생은 허공에 흩어지는 담배연기 같은 것일까? 그들과 헤어져 기차가 출발하자 아내가 의아스러운 모습을 지으며 말했다.


“아까 역에서 만난 그 사람 말이에요.” 

“담배를 피우던 그 환자?” 

“네, 몸이 퍽 안 좋아 보이던데 어쩌면 그렇게 담배를 피울 수 있지요?” 

“음… 그게 그러니까....  당신이 그 아픈 몸으로 여행을 죽도록 좋아하는 것과 같은 이치 아닐까?” 

“아무렴, 허지만… 그렇게 심한 기침을 하면서까지 담배를 피워대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워 보였어요.” 

“사람이란, 각자의 가는 길이 다르듯이 죽도록 좋아하는 것들도 다르지 않겠소.” 

“아무리 그렇기는 하지만…” 


뮌헨행 열차는 총알처럼 벌판을 달려갔다. 흘러가는 늦가을 풍경을 바라보며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가다가 죽어도 좋으니 여행을 떠나자는 아내와 담배를 피우다가 죽어도 좋다는 표정을 짓던 그 깡마른 사나이의 얼굴이 차창에 겹쳐서 교차되어 왔다.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는 있다. 우리들에게는 인생이 다 할 때까지 아직도 험한 산을 넘어야 할 힘든 일들이 첩첩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시련이 다가올 때마다 어린 시절 읽었던 헬런 켈러 여사의 ‘만약 내가 3일 간만 볼 수 있다면’이란 이야기를 떠올리곤 한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나는 다시 헬렌 켈러 여사의 이야기를 상기해 보았다. 


‘3일 간만 볼 수 있다면 설리번 선생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산으로 가서 아름다운 꽃과 풀과 빛나는 노을을 보고, 다음 날 새벽에 일찍 일어나 먼동이 터오는 모습을 보고, 저녁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하늘의 별을 보고, 마지막 날에는 아침 일찍 큰길로 나아가 부지런히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을 보고, 점심때는 아름다운 영화를 구경하고, 저녁에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쇼윈도를 구경하고, 집에 돌아와 3일간 눈을 뜨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다’


그녀의 소망은 지극히 소박한 것들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매일 누리며 사는 지극히 평범한 것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지극히 평범한 행복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아내의 유일한 소망은 여행이다. 그렇다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물론 나도 여행을 매우 좋아한다. 헬렌 켈러처럼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고 살아가는 것이 자장 바람직한 삶이 아닐까?  


하지만 금생에 단 한 번 사는 인생! 내가 정말 하고자 하는 일들을 실행에 옮기며 살아가는 삶이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미국의 소설가이자 탁월한 여행가였던 마크  트웨인은 말했다.  “20년이 지난 후에는 당신이 했던 것보다 하지 못했던  일들 때문에 더 많은 후회를 하게 된다. 그러니 당장 밧줄을 벗어던져라. 안전한 항구에서 멀리 벗어나라. 무역풍을 받으며 항해하라. 탐험하라.  꿈꾸라. 그리고 발견하라.”라고.  우리는 지금 안전한  항구에서 멀리 벗어나 무역풍을 받으며 위태로운 항해를 하고 있다. 이는 시련을 이겨 낼 수 있는 우리들의 어떤 방법, 시련의 아픔을 잊어버릴  정도로 좋아하는 어떤 것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시련의 시간들은 지나가고 말 것이다. 우리는 지금 다른 모든 것을 접어버리고 ‘용기’ 하나로  버티며 이 힘든 세계일주의 항해를 강행하고 있다. 


가다가 길 위에서 쓰러져 죽어도 좋다는 난치병 아내와 함께 이렇게 여행을 할 수 있는 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큰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 그러니 오늘 하루도 살아 숨 쉬며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차창에 어린 풍경을 바라며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어느덧 기차가 뮌헨 역에 도착했다. 


우리는 내친김에 퓌센에 있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가기로 했다. 퓌센은 뮌헨 역에서 불과 2시간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뮌헨 역의 시계 바늘은 12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퓌센으로 가는 기차는 12시 51분에 있었다. 라커 박스에 큰 배낭을 맡기고 허겁지겁 뛰어가서 겨우 퓌센 행 기차를 겨우 탔다.


★금생에 단 한 번 사는 인생! 내가 정말 하고자 하는 일들을 실행에 옮기며 살아가는 삶이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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