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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Jun 18. 2019

47. 리마의 도둑은 바람처럼 빠르다

-페루 리마

대낮에 레스토랑에서 배낭을 도둑맞다  

   

프랑스 소설가 로맹 가리의 단편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는다’는 이렇게 시작된다. "세계의 끝, 페루의 외딴 바닷가로 새들이 날아와 죽는다. 때가 되면 새들은 죽기 위해 먼 길을 날아와 모래 위로 떨어진다. 세계의, 삶의, 절망의 끝…… "   리마의 아르마스 광장에 서 있는 내 심정이 바로 그랬다. 내가 페루에 와서 죽는 새들처럼 죽으려고 먼 길을 날아왔을까?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미라가 있는 대성당을 돌아보고 나오니 대통령 궁 앞에서 코스타리카 대통령 환영 사열식을 열리고 있었다.  사열식을 구경하다가 우리는 30대의 한국인 젊은 부부 한 쌍이 보였다. 너무나 반가웠다! 리마에서 한국인은 만나다니… 우리는 한국말에 배가 고픈 사람들이었다. 특히 영어가 서투른 아내가 더욱 그랬다.


코스타리카 대통령 환영식이 열리고 있는 리마 아르마스 광장


페루 대통령 궁과 리마 대성당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페루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디자인을 하여 지은 건물이다. 바둑판처럼 반듯하게 구획을 나눈 아르마스 광장에는 총독 관저와 관청, 대성당, 산 프란시스코 수녀원 등 페루의 정치, 문화 건물 등이 운집해 있다. 특히 대성당은 피사로가 직접 성당의 주춧돌을 놓았으며, 성당 안에 피사로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피사로가 1535년 잉카제국을 멸망시켰을 당시 잉카의 수도가 쿠스코에 위치하여 스페인으로의 물자 수송이나 연락이 용의치 않아 태평양 연안에 별도로 건설한 히마는 수페인 지배 당시 역사적인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조선총독부를 헐어버린 것과는 대조적이다. 리마의 아르마스 광장을 바라보며 중요한 역사적 유적을 헐어버린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우리는 역사를 청산한다고 ‘구조선 총독부’ 건물까지 허물어 버렸다. 총독부 건물을 파괴한다고 역사가 청산될까? 일제가 지은 건물은 총독부 말고 한국은행, 철도, 항만, 도로 등 엄청나게 많다. 그런 논리라면 이 모든 것들을 파괴해야 맞지 않는가. 파괴는 파괴를 불러온다.  오히려 그대로 두고 후세인들에게 역사의 교훈으로 깊이 새겨두는 게 더 낫지 않을까?     


L 군과 나는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인사를 나누고 보니 그들은 신혼여행으로 일 년 동안 세계일주 여행을 다니고 있는 간 큰 부부였다. 그들의 용기와 행동에 뜨거운 갈채를 보내주고 싶었다. 한 참 일할 나이, 미래를 걱정할 젊은 시기에,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무려 일 년 동안이나 세계일주 여행하다니… 그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치 피사로의 '이슬라 델 가요의 13인'처럼 용감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L 씨 부부는 우리보다 30년 먼저 세상을 살아가는 용기 있는 젊은이들이다!


리마 대성당을 배경으로(배낭을 도둑맞기 전이라 이때만 해도 좋았다)


화려한 팡파르가 울리는 사열식을 구경하다가 마침 점심때가 되어 우리는 그의 안내로 싸고 맛있다는 레스토랑으로 갔다. 아르마스 광장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있는 페루 전통 음식점이었다. 우리는 레스토랑 한가운데 젊은 부부와 마주 보며 자리를 잡았다. 어젯밤 민박집주인의 말이 생각나서 나는 내 배낭끈을 다리로 감아서 양다리 앞에 끼고 앉았다. 그리고 아내에게도 배낭을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런데 아내는 인슐린도 맞아야 하고 물도 마셔야 하므로 같은 테이블에 붙어 있는 바로 옆 의자에 배낭을 놓아두겠다고 했다. 


"설마 대낮에, 레스토랑 한가운데 있는 자리인데 무슨 일이 일어나겠어요?"

"그래도 조심해야 해요."


그러나 그 설마가 사람 잡는다. 

음식은 정말 값도 싸고 맛이 있었다. 우리는 그동안의 여행담을 주고받으며  맛있는 음식으로 주린 배를 채웠다. 뽀송뽀송한 냉동감자 츄노(Chuno)를 구워 페루의 특이한 소스를 넣어서 만든 감자요리 맛이 그만이었다. 아내는 일인분씩 더 시키자고 했다. 내가 음식을 시키는 찰나에 아내가 갑자기 “어머나, 내 배낭!” 하고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배낭에서 물을 꺼내 마시려고 하는데 금방까지 있었던 배낭이 없어지고 말았던 것. 이거야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배낭에 없어지다니…



‘리마의 도둑은 바람처럼 빠르다’란 말이 실감이 나는 순간이었다. 레스토랑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앉을 때 바짝 마른 사내가 우리 뒷좌석에 앉았던 기억이 났다. 그가 아내의 배낭을 훔쳐갔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는 처음부터 우리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눈을 비비고 주위를 찾아보아도 배낭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레스토랑 주인에게 배낭이 없어진 사실을 이야기했으나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며 시치미를 띠었다. 정말 설마가 삶 죽이네!


허지만 큰일이다! 아내의 배낭 속에는 돈 보다도 더 중요한 아내의 약들이 몽땅 들어 있었다. 3개월분의 인슐린, 300여 개나 되는 주삿바늘, 고혈압, 갑상선 약 등. 당뇨병을 앓고 있는 아내에게 인슐린은 생명과도 같았다. 신용카드나 현금카드는 크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여권과 항공권은 복대에 메고 있었으므로 도난을 막을 수가 있어 그나마 다행한 일이지만 약이 문제였다. 리마에서 약을 구하지 못하면 우리는 꼼짝없이 귀국을 해야 할 판이었다. 더욱이 매일 네 번이나 맞는 인슐린을 시급히 구해야 했다. 당시 인슐린 주사액은 펜슬로 된 것이 아직 생산되지 않아서 작은 유리병에 든 휴물린 주사액과 일회용 주사기를 처방해서 가지고 다녔다. 루푸스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아내는 췌장세포와 갑상선 저하증 등 내분비 계통의 장기가 파손되어 인슐린과 갑상선 호르몬이 한 방 울도 분비되지 않아 하루에 네 번의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했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로맹 가리의 소설처럼 영락없이 페루로 날아와 죽는 새들처럼 힘없이 주저앉아 고사할 위기에 처하고 있었다. 허지만 순간 나는 ‘이슬라 델 가요의 13인’ 이야기가 떠올랐다. 여기까지 먼 길을 와서 여행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우리보다 L 씨 부부가 더 안절부절못하며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가 가자고 해서 찾아온 레스토랑에서 도난을 맞았으니 L 씨는 자기 일처럼 걱정을 했다. 허지만 그의 잘못이 아니다. 이건 우리의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는 일단 페루의 관광경찰을 찾아가기로 했다. L 씨 부부가 동행을 했다. 이제부터는 관광이 아니라 잊었던 배낭을 찾거나, 약을 구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귀국을 해야 했다. 여행의 중단이냐, 아니면 귀국이냐 하는 기로에 서 있었다. '침착해지자. 마음을 진정하고 쿨 해져야 해.'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어떻게 할 것인가를 냉정하게 생각해보았다.  이유야 어떻든 경찰에 신고를 하고 배낭을 찾아야 했다. 배낭을 찾지 못하면 귀국을 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우선 공중전화 박스로 가서 카드 분실신고를 하기 위해 한국으로 전화를 했다. 그리고 아내가 도난당한 신용카드, 국제현금카드 분실신고를 했다. 분실신고를 무사히 마치고 우리는 아르마스 광장 바로 뒤편에 있는 리마의 관광 결찰 사무소로 갔다. 광장 건너편에 피사로의 미라가 누워있는 대성당이 우리를 가엾다는 듯 굽어보고 있었다.   

        

약과 새 안경, 새 배낭을 구하다    


관광경찰 사무소로 들어서니 검정 바지에 푸른 제복을 입은 젊고 멋있게 생긴 경찰이 친절하게 맞이해 주었다. 페루의 관광경찰 마르틴 올리바레스(Martin Olivares). 그가 우리 사건을 맡았다. 사건의 자초지종을 들은 그는 매우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정말로 미안합니다. 배낭을 찾는데 최선을 다하겠지만 아마 배낭을 찾기는 매우 어려울 겁니다.”

“그럼 잃어버린 약과 인슐린 등을 이곳에서 구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아무튼 저와 함께 병원과 약국으로 가서 알아봅시다.”

"약을 구하지 못하면 우리는 한국으로 급히 돌아가야 합니다."

"아마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에스파냐 혈통의 미남형에 친절함이 배어있는 그의 모습을 보니 다소 마음이 안정되고 믿음이 갔다. 그나마 서울을 떠날 때 영문 진단서와 처방전을 챙겨 온 것이 다행이었다. 우리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진단서와 처방전을 들고 약을 구하러 나섰다. 만약에 약을 구하지 못하면 신속하게 귀국을 해야 했다. 


마르틴은 이틀간이나 우리와 동행을 하며 거의 우리들의 사건을 해결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우선 음식점에 가서 현장 검증을 했다. 그리고 리마 경찰서로 가서 도난신고와 조서를 받는데 협조를 해 주었다. 경찰서에서 도난 신고 한참 하고 있는데 30대로 보이는 유럽인 부부가 얼굴이 파래 가지고 들어왔다. 젊은 부인은 거의 초주검이 된 몰골이었다. 그들의 사연을 들어보니 우리보다 심각했다.


그들은 리마의 다운타운에 있는 켄터키 프라이 치킨센터에서 정심을 먹다가 여권과 항공권, 돈이 든 배낭을 몽땅 도난을 당하였다고 했다. 맙소사! 우리와 똑같은 도난사건이었다. 혹시 우리 배낭을 훔친 같은 도둑의 소행이 아닐까? 그들은 폴란드에서 온 신혼부부였다. 그들도 시내 중심가 레스토랑 한가운데서 도난을 당하였다고 했다. 폴란드인은 수중에 돈이 한 푼이 없으니 대사관에 연락을 하기 위해 경찰서 전화를 쓸 수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형사는 경찰서 전화는 사용할 수 없다며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처지를 보니 여권과 돈을 도난당하지 않는 우리들의 신세가 훨씬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적인 비교지만 왠지 마음이 위안이 되었다. 전화도 걸 돈이 동전도 한 닢 없는 그들의 처지가 정말 딱해 보였다. 보다 못한 내가 주머니에서 잔돈을 꺼내어 그에게 건네주며 공중전화를 걸라고 했다. 그는 경찰서의 공중전화 박스로 가서 폴란드 대사관에 통화를 한참 동안이나 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뭘요. 저도 댁과 같은 딱한 처지랍니다." 


그는 폴란드 대사관으로 전화를 한 후 몇 번이나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 젊은 부부는 리마에서 비행기를 타고 쿠스코로 갔다가 부인이 고산증이 심해져 구토를 하는 등 견딜 수가 없어 그다음 날 다시 리마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리고 부인의 고산병이 생각보다 심각해서 그들은 폴란드로 귀국을 할 예정이었다. 리마에 도착한 그들은 겨우 안정이 되어 점심을 먹다가 그런 변을 당했다고 했다. 다음 날 폴란드로 가려고 했는데 여권과 항공권, 돈을 몽땅 잃어버렸으니… 정말 보기만 해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아무쪼록 일이 잘 되어 무사히 귀국을 하기를 기원하겠소.”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도 배낭을 찾아서 다시 여행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경찰서의 조서는 거의 형식적이었다. 도난 신고서를 접수시킨 우리는 그 젊은 부부에게 인사를 나누고 경찰서를 나왔다. 30대의 마르틴은 정말 친절한 경찰이었다.


“마르틴, 이거 너무 불안해서 당신네 나라를 여행할 수 있겠소?”

“우리도 골칫거리요. 그러나 워낙 가난한 나라이다 보니 도둑들이 많아 관광객이 조심을 하는 수밖에 없답니다.”


그의 안내로 우린 병원과 약국을 찾아 나섰다. 약을 구하지 못하면 한국으로 귀국을 해야 할 판이었다. 리마의 약국과 병원을 전전하며 우린 인슐린과 주사기, 이뇨제 등 중요한 약을 가까스로 구할 수 있었다. 인슐린 62 솔, 주사기 23 솔, 이뇨제 18 솔… 의외로 약값은 비싸지 않았다. 


“마르틴, 다음에는 아내의 안경과 배낭을 사야겠는데 어디로 가야 하지요?”

“차이나타운으로 갑시다. 거기에 가면 모든 걸 다 구할 수 있어요. 값도 싸고요.”


리마 차이나 타운


L 씨 부부가 함께 동행을 해 주었다. 차이나타운은 마치 작은 할리우드 거리를 연상케 했다. 바닥엔 페루 스타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우리는 차이나타운 어느 허름한 안경점에서 아내의 안경을 마쳤다. 할아버지처럼 생긴 안경사가 씩 웃으며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안경알을 손으로 자르고 다듬고 하는 방법이 모두가 재래식 방법이다. 눈의 안경 도수 검진은 가까운 안과에 가서 받았다.


안경을 만든 동안 가까운 가방가게에 가서 아내의 잃어버린 배낭을 샀다. 35 솔을 주고 산 가방 역시 허름하지만 그런대로 쓸 만했다. 새 배낭을 메고 새로 마친 안경을 낀 아내가 겸연쩍게 웃었다. 


“여보, 잘 보여요?”

“그런대로 볼만해요.”


약과 새 배낭을 사고 안경 도수를 검사하고 있는 아내


정말 친절했던 리마의 관광경찰 마르틴


“마르틴, 너무 고맙소. 이제 대충 구할 건 다 구한 것 같소.”

“미스터 초이, 그럼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겠군요. 하하.”

“하하하, 그렇소. 마르틴 덕분에… 대신 오늘 저녁은 내가 쏘리다. 그러니 마르틴이 음식점을 좀 소개해 주시지요?”

“좋아요. 차이나 타운 중국음식점으로 안내하지요.”


우린 유쾌하게 웃으며 기꺼이 허락을 했다. 우리는 마르틴의 안내로 L 씨 부부와 함께 어느 중국음식점으로 들어갔다. 마르틴은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우리들을 대해 주었다. 비록 배낭을 잃어버렸지만 페루 관광경찰 마르틴의 따뜻한 도움이 크게 위로가 되었다. 


“마르틴, 너무 고맙소. 당신의 친절을 잊지 않으리다.”

“천만에요. 즐거운 여행되시고 언제나 조심하세요.”

“정말로 고마워요.”


리마의 관광경찰 마르틴과 L 씨 부부와 함께(리마 차이나 타운)


마르틴과 헤어진 우리는 L 씨가 묵고 있는 게스트 하우스로 옮기기로 하고 L 씨 부부와 함께 한국인 민박집으로 갔다. 민박집에 도착하여 오늘 일어난 일을 말했더니, 리마의 도둑은 정말 바람처럼 빠르다고 했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갑과 배낭을 훔쳐간다고 했다. 


"배낭을 사타구니에 간수하거나 열쇠로 족쇄를 채워두어야 한다는 말을 잊어 먹었군요."

"네, 허지만 레스토랑 한가운데서 설마 그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어요."


이미 물 건너 간 일이었다. 일단 민박집주인이 위로 겸 차려준 한식을 맛있게 먹었다. 배낭은 잃어버렸지만 역시 페루에서 먹는 한국음식은 기가 차게 맛이 있었다. 민박집주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우린 L 씨가 묵고 있는 다운타운 가까운 게스트하우스로 숙소를 옮겼다. 하루 숙박료 7달러. 한국의 민박집보다 80달러보다 열 배나 더 쌌다. 7달러짜리 게스트 하우스로 옮긴 우리는 괜히 큰돈을 번 기분이 들었다. L 씨 부부는 페루에서 좀 더 머물겠다고 했다. 내일이면 그들 부부와도 헤어져야 한다. 여행업계에 근무하는 L 씨는  한국에 돌아가면 꼭 다시 만나자고 다짐을 했다. 


"미안합니다. 저희들 때문에 배낭을 도난당한 것 같아서요."

"천만에요. 배낭을 철저하게 간수하지 못한 우리 책임이 크지요. 남은 여행 잘하시고 한국에서 만나요."

"네, 귀국하여 자리를 잡으면 연락을 드릴게요."


그는 다니던 직장까지 사표를 내고 여행을 떠나왔다고 했다. 귀국하면 새로운 직장을 구할 거라고 하며 자리를 잡으면 연락을 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쿠스코로 떠나기 위해서 호스텔에서 짐을 꾸렸다. 리마는 관광 대신 도둑맞은 약을 사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아내는 리마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도둑으로 보인다고 한시라도 빨리 리마를 벗어나고 싶다고 했다. 짐을 꾸리다가 아내가 말했다. 


“여보, 새로 시작되는 여행길 같군요. 가방도 새 것이고, 안경도 새로 끼고… 호호.” 

"다음에도 배낭을 옆 자리에 놓을 건가요?"

"에고, 무슨 그런 말씀을… 앞으로는 배낭끈을 다리에 걸어서 꽁꽁 묶어 놓을 게요. 호호"

"좋아, 꼭 그대로 실천해야 해요."


새 배낭, 새 안경을 낀 아내를 바라보며 우린 유쾌하게 웃었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훌훌 털어버리자. 허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자. 어쨌든 여유를 되찾고 웃는 아내의 얼굴이 밉지는 않았다. 죽기 전에 세계 일주를 하고 싶다는 아내다웠다. 길을 가다가 죽어도 좋다는 아내의 용기는 정말 "이슬라 델 가요의 13인" 못지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선을 넘어서 우리는 다시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기로 했다.


리마를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우리는 아르마스 광장에 있는 관광 폴리스를 다시 한번 더 들려보기로 했다. 배낭을 훔친 도둑은 뒤져 보아야 주삿바늘과 약 밖에 없으니 도둑도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 먹지고 못하는 약과 주삿바늘을 보고 얼마나 허망했을까?  도둑도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약이 든 배낭을 돌려주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기대를 하며 관광경찰 사무소에 도착하니 마르틴이 웃으며 인사를 했다. 


“미안해요. 미스터 초이. 도둑맞은 배낭은 돌아오지 않아요. 기억을 지워버리고 나머지 여행이나 잘하시오.” 

“그래야겠지요. 마르틴, 하여튼 당신 때문에 우리 다시 여행을 하게 되었소. 이 고마움을 잊지 않겠소.” 


혹시나 하고 기대를 했지만, 역시나 나타날 도둑이 아니었다. 마르틴과 헤어진 우리는 쿠스코로 가는 버스표를 사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갔다. 아내는 어제 경찰서에서 고산병 때문에 고생을 한 폴란드 부부를 보더니 겁이 난 모양이었다. 그래서 아내는 비행기를 타지 말고 버스로 가자고 했다. 


"정말? 후회하지 않기야. 안데스 산맥을 버스를 타고 넘는 것도 장난이 아니라고 하는데."

"후회는요. 버스를 타고 서서히 고도 적응을 하면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구경도 하고 값도 싸고요."


크루즈 델 수르(Cruz Del Sur) 버스터미널은 여행자들로 붐비고 있었다. 나는 1인당 98 솔을 주고 쿠스코로 가는 버스표 두 장을 샀다. 리마-이카-나스카-쿠스코로 가는 장장 30시간이 넘는 버스 여행길이었다. 5000미터가 넘는 안데스 산맥들을 과연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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