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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Jun 21. 2019

48.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로 가는 길

리마-쿠스코

토하고 또 토하다  

    

리마 사람들이 모두 도둑처럼 보인다고 하면서 아내는 빨리 리마를 떠나자고 했다.  도둑을 맞은 입장에서는 리마의 사람들이 모두 도둑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그것도 백주의 대낮에 아르마스 광장 레스토랑  한가운데서 도둑을 맞았으니 아내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사람의 마음이란 자기가 처한 입장에 따라 수시로 바뀐다. 우리는 리마에 3일 동안 머무는 동안 구경은커녕 도난당한 약을 구하고, 배낭과 안경을 맞추는데 몽땅 허비해버렸다. 그래, 나쁜 기억은 빨리 지워버리자. 나는 아내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오후 2시 15분. 리마의 크루즈 델 수르(Cruz del Sur)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크루즈 델 수르 버스는 장거리 이동에 적합한 버스다.  터미널에는 장거리 여행을 떠난 여행자들로 붐비고 있었다. 버스는 화장실이 달려 있는 꽤 멋진  2층 버스다. 드디어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리마의 거리에는 인디오의 후예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저들도 우리와 피를 나눈 형제다. 허지만 우리에게 리마는 다시 오고 싶지 않은 도시다. 


장거리를 달리는 페루의 크르즈 델 수르 2층 버스


리마를 출발한 버스는 판 아메리칸 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려갔다. 도로의 오른쪽은 태평양으로 뻗은 해변이, 왼쪽에는 황량한 사막이 아스라이 펼쳐져 있다. 버스는 이카(Ica)와, 나스카(Nazca)까지는 곧게 뻗은 팬 아메리칸 하이웨이를 기분 좋게 달렸다. 팬 아메리칸 하이 웨이는 알래스카 페어뱅크에서 시작하여 캐나다-미국-멕시코-중앙아메리카-남아메리카 각국을 연결하여 남미의 최남단 푸에고 섬에 이르는 총연장 7만 8800km의 국제 도로다. 리마에서 나스카까지는 447km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길보다 더 멀다. 거침없이 달려간 버스는 나스카에서 멈추어 잠시 숨을 골랐다. 


팬 아메리칸 하이 웨이는 알래스카 페어뱅크에서 시작하여 캐나다-미국-멕시코-중앙아메리카-남아메리카 각국을 연결하여 남미의 최남단 푸에고 섬에 이르는 총연장 7만 8800km의 국제


나스카는 수수께끼의 ‘지상 그림’으로 유명 한 곳이다. 당초 계획으로는 나스카 사막 위에 그려진 수수께끼의 그림을 보려고 했지만 우리는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나스카 지상 그림은 팜파 인 헤니오 사막 위에 수 킬로미터나 곧게 뻗어 있는 괴상한 그림들이다. 540개의 다리를 가진 도마뱀, 270개의 다리가 달린 원숭이, 날개폭이 628km인 것도 있다. 나스카의 직물이나 도자기에서도 똑 같이 발견되는 이 그림들은 약 2,000~3,000년 전 바위를 옮기거나 표면의 흙을 퍼내는 방식으로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그림들은 너무 거대해서 하늘에서만 감상이 가능하다. 하늘에서만 보이는 이 거대한 그림을 누가, 무엇 때문에 그렸을까? 약간은 황당하지만 에리히 폰 다니켄은 그의 저서 '신들의 전차'에서 외계인이 착륙을 했던 자리로 우주비행사들이 이 그림을 그렸다고 주장한다. 농사를 짓기 위한 우주 달력, 신에게 보내는 메시지설 등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아직까지 나스카 그림의 수수께끼는 완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다니켄의 주장처럼 나스카의 그림들은 외계인들이 그렸을까? 아무튼 상상은 자유다. 호기심이 많은 나는 그 수수께끼의 그림을 보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버스는 나스카를 출발하여 드디어 안데스 산맥을 향해 올라갔다. 나스카를 출발하면서부터 버스 차장이 멀미용 비닐봉지를 추가로 배급했다. 멀미용 비닐봉지를 추가 배급하는 것으로 보아 이제 본격적으로 험한 길을 간다는 뜻이다.  날도 어두워지고 길은 점점 험해졌다. 나스카에서 쿠스코까지는 약 16시간 이상이 걸린다. 일기와 도로 사정에 따라 하루가 걸리기도 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길이다. 


버스 차장은 지루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처음엔 빙고 게임을 하기도 했다. 나스카를 출발하여 30여분이 지나자 곧 안데스의 고산지대로 접어들었다. 숨 쉬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고산증세 점점 심하게 느껴졌다. 버스는 해발 3,500미터에서 3,800미터를 넘나들며 안데스의 고산길을 쉬지 않고 달려갔다. 버스는 커브가 많은 구불구불한 길을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했다. 흔들리는 버스에서 승객들은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비포장도로를 달릴 때에는 버스는 마치 기관지 천식환자처럼 헐떡거렸다. 


“여보, 너무 어지러워요.”

“나도 그래요. 우리 조금만 더 참아요.”


좀체 멀미를 하지 않던 아내가 드디어 토하기 시작했다. 아내뿐 아니다. 나도 곧 토할 것만 같았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숨을 길게 들이쉬고 내쉬는 복식호흡을 했다. 고산증세는 산소의 부족으로 오는 병이다. 많은 양의 산소를 취할 수 있는 복식호흡은 고산증세에 상당한 효과가 있다. 나는 복식호흡 덕분인지 가까스로 토하지는 않았지만 점점 한계점에 다다르고 있었다.


아내에게도 복식호흡을 권했지만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 아내는 토하고 또 토했다. 토한 냄새와 토하는 소리로 버스는 아비규환을 이루고 있었다. 승객들이 출발하기 전 나누어준 멀미 봉지에 입을 넣고 토하기는 했지만 순식간에 버스는 시궁창 같은 냄새로 가득 찼다. 토하는 것이 마치 도미노 현상처럼 일어났다. 한 사람이 토기 시작하니 전후좌우 좌석의 승객들이 "욱욱~" 하며 줄줄이 토하기 시작했다. 오마이 갓! 관세음보살!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것은 인간의 오장육부가 아닐까? 오장육부에서 토해내는 냄새는 세상에서 가장 맡기 어려운 지독한 냄새다. 세상의 모든 사물은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이 조합되어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가슴 위로는 비교적 깨끗하지만 가슴 밑 오장육부에는 똥으로 가득 차 있다. 생각해보면 세상은 더럽고 깨끗한 것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깨끗하고 더러운 것이 어디 따로 있겠는가? 깨끗한 것이 더러운 것으로 변하고 더러운 것이 깨끗한 것으로 변한다. 불구부정(不垢不淨)! 지금 인간의 오장육부에서 토해 내는 오물은 더러운 냄새로 가득 차 있지만, 생각해보면 깨끗하다고 생각되는 음식을 입을 통해서 우리가 먹었던 음식들이다. 생각해보면 세상은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이 따로 없다. 모든 것이 마음에서 지어내는 조작이다. 


버스는 승객들이 토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는다는 듯 멈추지 않고 덜컹거리며 제 갈 길을 달려갔다. 하기야 이 길을 가자면 토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날 것이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라 밖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토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지자 버스는 컴컴한 산비탈에 잠깐 멈추었다. 승객들이 모두 밖으로 나가 마음껏(?) 토하며 신선한 공기를 마셨다. 나도 비틀거리는 아내를 부축하며 밖으로 나가 컴컴한 안데스의 밤하늘 밑에 마지막 남은 오물을 토해냈다.  


버스는 산비탈에서 20여분 쯤 멈추었다가  다시 출발을 했다. 이제 승객들도 더 이상 토해낼 것이 없는 모두가 비몽사몽 잠이 들었다. 아내와 나도 깜박 잠이 들었다. 내리막길에 들어선 버스는 어느 마을에서 섰다. 아반카이(Avancay)라는 마을이라고 했다. 아반카이는 페루 남쪽 안데스 산맥 2,377미터에 위치한 산악도시로 쿠스코에서 200km 정도 떨어져 있고, 리마에서 900km, 쿠스코에서 200km 정도 떨어져 있다. 유리는 밤새 안데스 산맥을 1,000km  정도 달려온 셈이다.  


아반카이에 멈춘 버스는 움직일 줄을 모르고 몇 시간 동안 서 있었다. 자동차 바퀴가 펑크가 나서 수리하느라 버스는 몇 시간이나 늑장을 부렸다. 여행객들은 버스 고장 덕분에 밖으로 나와 고도가 좀 낮은 지역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었다. 아내와 나도 밖으로 나와 신선한 공기를 마시니 좀 살 것 같았다. 거의 새벽 동이 틀 무렵에 타이어 펑크를 가까스로 때운 버스가 가까스로 출발했다. 타이어 펑크만 난 게 아닌 모양이다. 아마 다른 고장이 더 있었던 것 같았다. 


지옥 같은 밤이 지나고 안데스 산맥에 먼동이 터 오기 시작했다.  안데스의 산봉우리가 신선처럼 구름 위에 둥둥 떠 있었다. 저게 산인가 신기루 인가! 버스는 구름 위를 달리고 눈 덮인 산 위를 슬금슬금 기어갔다. 마치 신선이 된 기분이었다. 내가 언제 속세에 살았는지 기억이 아득했다.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로 가는 길 


“여보, 컨디션이 좀 어떻소?”

“날이 밝으니 좀 나은 것 같아요.”

“하긴, 더 이상 토 할 것도 없지. 속이 텅 빈 공의 세계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아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그저 모든 것이 아득하기만 해요.”

“눈을 감고 좀 쉬세요.”


나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아내는 더 이상 토할 것도 없는 듯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 멍하니 밖을 바라보았다. 하기야 밤새 토했으니 남아있는 것도 없으리라. 정상에 도달한 버스가 내리막길을 달릴 때에는 마치 패러글라이딩을 탄 것처럼 오금이 저렸다. 안데스 산맥을 굽이굽이 돌아 내려온 버스는 이제 평지를 달려가는 것 같았다. 아침 9시, 시야에 붉은 지붕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보, 저기 쿠스코가 보여요!"

"오, 그렇군요!"

드디어… 우리는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에 도착한 것이다! 마치 곡예를 하듯 곤두박질치며 산마루를 내려왔지만 쿠스코는 여전히 해발 3,399미터의 고산지대다. 버스에서 내리자 발을 헛디딘 듯 비틀거렸다. 머리가 띵하고 뒷골에 저울추를 달아놓은 것처럼 무겁게 뒤로 당겨졌다. 버스터미널에서 비틀거리며 미리 알아두었던 비바 라틴호스텔에 도착하니 태극기가 보였다. 오지에서 태극기를 보니 반가웠다. 그러나 우리는 고산증세 때문에 꼼짝 못 하고 누워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누워 있어도 여전히 뒷골이 당기고 뱅뱅 도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고산증세 때문에 쿠스코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리마로 되돌아와 여권, 지갑 등 모든 것을 도난당했다는 폴란드 부부가 생각났다. 으윽, 이러려고 내가 쿠스코까지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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