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찰라 Jun 22. 2019

49. 약탈당한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

페루  쿠스코

코카잎 차를 마시고 또 마시다  


고산증세가 점점 심해졌다. 어제 밤새 한잠도 자지 못하고 버스에서 웅크리고 앉아 멀미에 시달리며  안데스 산맥을 넘어오느라 지칠 대로 지친 데다가 해발 3,400m나 되는 쿠스코에 도착하니 고산증세가 더 심해지고 있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복식호흡을 하여 보았으나 워낙 지친 탓인지 별 효과가 없었다. 침대에 몽롱한 정신으로 누워 있는데  호스텔 지배인이 펄펄 끓인 물에 푸른 이상한 잎사귀를 넣은 주전자를 가져왔다.


"이 차를 마시고 가만히 누워 계세요."

"이게 뭐지요?"

"코카 잎 차예요."

"코카 잎 차?"

"네, 고산병 특효약이지요."

     

사실 고산병의 특효약은 따로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낮은 지역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 종일 물을 자주 마시며 누워 있어야만 한다. 배설을 자주하여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 그나마 고산증세를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요즈음은 고산병 약으로 비아그라를 처방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고산증세가 심하면 즉시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것이 바로 치료약이다.


고산증에 좋은 코카잎 차


리마에서 여권과 돈 지갑을 몽땅 도둑을 맞고 하얗게 질려 있던 폴란드의 부부가 생각났다. 얼마나 고산증세가 심하면 이 힘든 길을 왔다가 다시 리마로 돌아갔을까? 그들은 비행기를 타고 쿠스코에 도착을 했다고 했다. 우리도 비행기를 타고 도착을 했으면 고산증세가 더 심했을지도 모른다. 밤새 토하면서 가까스로 쿠스코에 도착을 했지만 그나마 고산증에 적응을 하며 온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했다.


난생처음으로 코카잎 차를 마셔보았다. 우리는 코카 잎 차를 마시고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했다. 안데스 원주민들은 오랫동안 혈액의 산소 흡수를 돕는 성분이 함유된 코카잎을 씹거나 우려 마시며 고산증을 예방해왔다. 때문에 안데스 원주민들은 코카를 '신성한 작물'오 여기고 있다. 마테 차도 코카잎으로 만든다. 코카잎 차는 커피와 마찬가지고 강력한 각성효과 있다고 한다. 코카잎 차를 들고 온 비바 라틴여자 지배인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다. 코카잎 차를 자꾸만 마시라고 하는 그녀는 마치 다정한 오누이처럼 친절했다.


비바 라틴호스텔 지배인과 그녀의 아들


"감사합니다. 그런데 차 맛이 약간 쓰고 떫군요."

"네, 조금 쓰지요. 자꾸자꾸 마셔요. 정신이 맑아지고 두통도 한결 좋아질 겁니다. 더구나 어제 밤새 토하셨다니 비운 속을 청소도 될 거예요."


아내와 나는 지배인이 가져온 코카잎 차를 계속 마셨다. 밤새 토한 탓인지 아내의 얼굴이 샛노랗다. 휴대용 산소 호흡기 3개를 가지고 갔으나 아직 쓰지는 않고 있다. 산소 호흡기는 아주 비상시에만 써야 한다. 한 번 산소 호흡기에 의존하면 습관이 되어서 고산증세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가급적이면 그대로 천천히 현지 적응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코카 차를 마시고 누워있는 데도 천장이 뱅뱅 돌았다. 마시고, 배설을 하고, 마시고, 또 배설을 하고…. 고산병에 걸리면 일반적으로 두통, 구토, 권태감, 졸림, 위통 등이 오는데, 나는 두통을 수반하며 자꾸 졸림 증세가 나타났다. 고산증은 산소가 부족하여 몸의 각 부위에 원활하게 피가 돌지 않기 때문에 심하면 내수종이나 폐수종이 걸려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하루 종일 코카 차를 마시며 누워 있었더니 뒷골 당기는 것이 한결 누그러졌다. 배가 고팠다. 점심도 거르고 오후 늦게까지 누워만 있었으니 배가 고플 수밖에. 더구나 어제 밤새 토해내고, 오늘은 코카 차를 하루 종일 마셔대며 계속 배설을 하여버렸으니 속이 텅 비워 아무것도 없었다. 몸은 가벼워져 둥둥 뜨는 기분인데 힘이 없었다. 우리는 호스텔 안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여보, 여기 라면도 있어.”

“정말요?”


비바 라틴은 원래 한국인이 경영하는 호스텔인데 지금은 한국인이 없고 쿠스코의 원주민인 여자 지배인이 경영을 하고 있다. 잉카의 여인은 매우 친절하게 우리를 대해 준다. 넉넉한 웃음과 순박한 모습. 아무튼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다. 먼 전생에 우리 이웃에서 살았던 여인이 아닐까? 그녀가 아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있는데, 윗니가 빠진 아이의 웃는 모습이 천진무구하게 보였다.


“여보, 기운이 좀 나오?”

“이제 한결 나아졌어요.”

“그럼 시내 구경이나 슬슬 나가 볼까?”

"좋아요."
"그런데 아주 천천히 걸어야 해요. 슬로비디오 모션처럼."

"걱정 말아요. 길 안나 잘하세요."


마법의 코카잎 차 덕분일까? 거기에 얼큰한 라면을 먹고 나니 한결 기운이 솟아났다. 지배인에게 ‘잉카 트레일(Camino del Inca)’과 ‘잉카의 성스러운 계곡(Valle Sagrado de Los Inca)'에 대한 투어 예약을 부탁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작은 배낭에 따뜻한 물과 지배인이 준 코카 잎 봉지를 담고 아르마스 광장 쪽으로 갔다. 힘들수록 걸어야 한다. 아르마스 광장에 도착하니 대성당이 우측에 자리 잡고 있다. 그 주변엔 중앙광장을 가운데 두고 호스텔과 카페, 상점들이 둘러싸고 있다.


쿠스코는 케추아어인 ‘코스코(qosqo)’에서 유리된 이름으로 ‘세계의 배꼽’을 의미한다. 신비한 안데스 산맥에 위치한 쿠스코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아메리카 대륙의 고고학적 중심지이다. 한 때 화려했던 옛 잉카제국의 수도로 잉카의 황제 만코 카팍(Manco Capac)이 12세기에 건설한 도시이다. 전설에 의하면 ‘태양의 신’ 인티(Inti)는 그의 아들 만코 카팍과 딸 마마 오크요를 티티카카 호수 ‘태양의 섬’으로 내려 보낸다. 그리고 이들에게 황금 지팡이 하나를 주며, 이 지팡이가 박히는 땅에 정착하라는 계시를 내린다. 이 두 남매는 게시의 땅을 찾아 방황을 하다가 이곳 쿠스코에 도착한다. 만코 카팍이 쿠스코의 언덕에서 막대기를 던지니 막대기가 그만 땅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버지 인티는 우리가 이곳에 머물도록 명령하셨다. 지금부터 각자 헤어져서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모아 여기서 다시 만나자.”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태양의 아들과 딸들에게 몰려들었다. 태양신의 아들은 자기를 따라온 사람들에게 아난사야(Hanasaya-윗마을)에 정착을 하게 하고, 딸(만코 카팍의 아내)을 따라온 사람들에게는 우린사야(Hurinsaya-아랫마을)에 정착을 하도록 하여 새로운 제국을 건설하게 하였다. 그 이후로 잉카의 땅에 세워진 모든 도시와 마을은 항상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이는 오른손과 왼손, 즉 남자와 여자와 같은 관계라고 한다. 멀리 산등성이에 있는 집들의 모습은 재개발되기 전의 상대원동, 하대원동이 있는 성남시와도 닮아 보인다.


쿠스코는 피사로가 점령을 한 이후로 옛 건물이 모두 파괴되고 에스파냐 식민지 풍의 건축물이 들어섰다. 그러나 기단 부는 잉카의 돌로 석축 된 담벼락 위에 에스파냐식 건축물을 올려 지은 기현상을 빚어내고 있다. 시가지를 걷다 보면 겹겹이 포개진 잉카문명의 흔적이 느껴진다. 쿠스코는 3개의 문명이 공존하고 있다. 잉카 이전 돌을 자르지 않고 불규칙하게 배열시킨 건축, 잉카시대에 규칙적인 배열로 정교하게 쌓아 올린 돌담, 그리고 에스파냐 식민지풍의 건물이 그것이다.


원래 쿠스코는 십자가 형상의 네 방향의 도시로 설계되어 있다. 현재의 아르마스 광장은 잉카제국 시대에 건설한 아우카이파티 광장이다. 대성당이 있는 중앙광장은 비라코차의 신전을 모셨던 자리로 도시의 중추를 이룬다. 스페인의 식민 통치자들은 잉카제국의 보물을 약탈하고, 잉카의 건물을 무참하애 파괴한 후  그 자리에 유럽풍의 궁전과 교회를 세웠다. 태양신전 코리칸차 터에는 산토도밍고 교회를, 와이나 카팍 궁전 터에는 라 콤파냐 헤소스 교회를 세웠고, 태양 처녀의 집 터에는 산타 카타리나 수도원을 지었다.  


광장 주변에는 여행사와 식당, 카페들이 늘어서 있고, 광장에서 이어지는 언덕 위에는 두 팔을 벌리고 시가지를 굽어보는 예수 상이 보인다.


퍼즐 조각처럼 정교한 '12각 돌'    


쿠스코의 중심은 아르마스 광장이다.  비라콘차 신전 터에 지어진 대성당은 1560년부터 건축을 하기 시작하여 무려 100년이란 세월이 지난 다음에 완성된 건물이다. 그 육중한 외관을 바라보며 문을 들어서니 내부는 의외로 매우 섬세하게 느껴진다.


“저게 300톤의 은으로 만든 제단이래요.”

“제단을 삼백 톤이나 되는 순은으로 만들다니 대단하군요. 그런데 이곳의 그리스도상은 갈색이네요.”

“원주민이 갈색이니 예수님도 원주민을 닮은 걸까?”


벽에는 수없이 많은 종교화가 걸려있다. 그중에서 화가 마르코스 사파타가 그린 ‘최후의 만찬’이 눈에 띈다. 다빈치의 그림과 상당히 비슷한 모습이다. 지붕에는 남미에서 가장 크다는 종이 걸려 있다. 이 종소리는 40km를 넘게 멀리 울려 퍼져 나간다고 한다.


성당 앞으로 나오니 화려한 원색의 페루 전통의상을 입은 원주민 여인네들이 “우나 포또! 운 솔!(사진 한 장에 1 솔!)”을 외치며 손짓을 했다. 검고 머리를 색색의 끈으로 묶어 두 갈래 세 갈래로 정갈하게 쫑쫑 딴 모습이 이채롭다. 모델료 1 솔을 건네주고 사진을 찍었다. 어릴 때부터 돈을 버는 소녀들이 가련하게도 보이지만 영특하게도 보였다.     


광장 남쪽에 위치한 라 콤파니아 성당 내부는 섬세한 나무 조각들과 바로크 양식의 열주가 아름답다. 라 콤파니아 성당을 나와 모퉁이로 돌아서면 양쪽으로 길게 이어진 잉카의 돌담이 나온다. 잉카 후기에 세워진 돌담이라는데 그 견고함이 장난이 아니다. “면도날 하나도 통하지 않는다!”라는 평판답게 잉카의 석재 건축술은 과연 놀랍다.


“정말 한 치의 여백도 없군요.”

“그래서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았다는 군. 현대식 건물은 다 무너지고 말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잉카의 벽은 아툰루미욕(Hatunrumiyoc)이라는 골목길에 있다. 마치 퍼즐 조각으로 끼어 맞춘 듯 촘촘히 짜 맞춘 돌들의 모습은 아름다운 하나의 조각품을 보는 것 같다. 크고 작은 돌들이 다양한 각도로 서로 맞물려 한 치의 틈도 없이 완벽하게 짜여 있는 돌 벽은 하나의 예술품이다!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은 종교예술박물관을 지탱하는 ‘12각 돌’이다. 지름이 115m나 되는 돌 하나를 12각으로 다듬어 사방으로 종이 한 장 들어갈 틈이 없이 물려놓은 건축술은 놀랍기만 하다. 12각은 잉카의 달력을 나타내는 것이라니 돌 하나하나에도 잉카의 영혼과 오묘한 진리가 숨어 있다.


퍼즐 조각 초럼 정교한 '12각 돌'


1950년도에 강진이 일어났을 때에도 에스파냐 인들이 지은 건물은 다 허물어져 내리고 말았는데, 잉카인들이 올려 쌓은 담벼락은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굳건하게 버티고 있었다고 한다. 잉카인들은 지진에 대비해서 담을 쌓을 때에 안쪽으로 조금씩 좁혀가면서 견고하게 담을 쌓았다. 한 건물에는 한 곳에서 채취한 돌과 같은 종류의 색깔을 사용하였고, 아래쪽은 큰 돌을, 높이 올라 갈수록 작은 돌을 사용했다. 돌 사이에 회반죽 등 일체의 접착재료를 쓰는 일도 없이 축조한 담이 경이롭게만 보인다. 문자가 없는 잉카인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내진 설계 법을 그들은 오랜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아르마스 광장에서 태양의 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산토도밍고 교회가 나온다. 이 성당은 원래 잉카의 ‘태양의 신전’인 코리칸차(Qoricancha) 터였는데, 정복자들이 이를 허물고 그 위에 성당을 지었다. 정복자들이 맨 처음 이 건물을 발견하였을 때 흥분으로 숨을 집어삼켜야 했다. 건물 벽에 20cm 이상의 금띠가 붙여져 있었던 것.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안으로 들어가니 꿈같은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건물 광장에는 금으로 만든 샘에서는 물이 흐르고, 금돌로 깔아 놓은 밭에는 옥수수가 심어져 있었다. 금 라마로 만든 인간상, 금으로 덮여 있는 태양의 제단, 금으로 만든 태양상이 휘황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잉카제국 전성기에 이 건물의 지붕에는 2kg이 나가는 700장의 순금 기와가 덮여있었다. 신전 전체가 황금으로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정복자들은 그 찬란한 광경을 보고 태양이 흘러내리는 눈물이라고 불렀다.


황금에 눈이 뒤집힌 에스파냐 침략자들은 신전에서 탐나는 모든 것을 빼앗은 후 건물 상부를 부수고 그 위에 산토도밍고 교회를 지었다. 그러나 대지진이 일어나자 그들이 지었던 교회건물은 무참하게 무너지고 오직 잉카의 석조 토대만이 한 치의 뒤틀림도 없이 남아있었다. 잉카제국의 수도는 정복자들의 탐욕에 의해 약탈을 당하고 여지없이 파괴되고 말았다.


신전 안은 광장을 둘러싸고 태양, 달, 무지개, 별 등의 방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잉카인들은 태양을 비롯하여 우주의 항성과 천둥, 번개를 숭배했다. 태양의 눈물이 찬란하게 흘러내린다는 황금 도시 쿠스코. 수레바퀴와 마차도, 쇠나 강철도 없이 어떻게 저 무거운 돌들을 운반하여 이토록 아름다운 건축을 하였을까? 우리는 아르마스 광장을 어슬렁거리다가 석양 노을이 황금빛으로 물들어갈 때 호스텔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48.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로 가는 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