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찰라 Jun 27. 2019

50. 잉카의 성스러운 계곡 순례

페루 쿠스코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에서 첫날 아침을 맞이했다. 여명이 밝아오는 잉카의 새벽이다. 나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아침에 솟아오르는 태양을 향하여 잠시 명상에 들었다. 나는 호흡에 집중을 했다. 어제는 너무 지쳐서 호흡을 제대로 쉴 수도 없었는데 오늘 아침은 제법 상쾌하게 집중이 되었다. 명상을 시작하자 온갖 잡념이 스쳐 지나가더니 호흡이 깊어지자 점점 잡념이 사라지고 호흡만 느껴졌다. 해발 3,000미터가 넘는 고원지대에서 명상에 드는 마음은 조금 특별하다. 잉카인들이 세계의 배꼽, 즉 세상의 중심이라고 받들었던 명당 터라서 그럴까? 시간이 지날수록 단전, 즉 배꼽만 들락날락하고 머리가 점점 맑아졌다. 반시간쯤 명상에 들고 나니 컨디션이 매우 좋아졌다. 아내도 컨디션이 좋아진 모양이다.  

    

오늘은 '잉카의 성스러운 계곡(Valle Sagrado de los Incas)'을 순례하기로 했다. 우리는 비바 라틴호스텔 식당에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코카 잎 차를 한 잔 마신 후 아르마스 광장으로 갔다. 쿠스코의 아르마스 광장은 언제나 여행객들로 붐볐다. 아침 일찍 ‘잉카의 성스러운 계곡' 순례와 다른 잉카의 유적지로 나서기 위해 여행객들이 몰려들었다. 버스에 오르니 동양인은 오직 나와 아내뿐이다.  

    

'잉카의 성스러운 계곡'은 ‘우루밤바 계곡’이라고도 부르는데, 우루밤바 강을 따라 계곡과 산언덕에 흩어져 있는 잉카 제국의 유적이나 마을을 순례길이다. 대부분 잉카의 유적을 끼고 형성되어 있는 마을에는 작은 시장과 전통문화 등 옛 잉카 시대의 생활상이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잉카의 향기가 여과 없이 묻어나는 곳이다.  

   

쿠스코를 출발한 버스는 옛 잉카의 꼬불꼬불한 도로망을 따라 덜컹거리며 산언덕을 기어갔다. 쿠스코의 유적지를 순회하는 버스는 대부분 열악한 고물 자동차이다. 펑크가 나지 않을지 심히 염려스럽다. 산은 높고 계곡은 험준하지만 경관만은 일품이다. 우리는 점점 신비스러운 '잉카의 성스러운 계곡 순례'에 빠져들어 갔다. 쿠스코에서 피삭으로 이어지는 오래된 잉카의 길에는 잉카제국시대의 유적들이 보물처럼 숨어 있다. 버스는 먼저 사크사이와만 요새에 멈췄다. 쿠스코에서 도보로 40여분 거리에 위치한 사크사이와만 요새는 거대한 돌로 석축을 쌓아 올린 요새다. 


매들의 둥지사크사이와만      


“흐음, 사크사이와만, 무슨 주문 같은 이름이군.”

“잉카의 언어들은 모두 신비하게 느껴져요. 사크사이와만… 에고, 발음하기도 힘들군요. 이 말이 무슨 뜻일까요?”

“매의 둥지란 뜻이래요.”

“매의 둥지?”     


사크사이와만(Sacsaywaman)은 ‘매의 둥지’란 뜻이다. 잉카 언어인 케추아어는 모두가 신비하게만 들린다. 1536년 5월, 잉카인들과 스페인 침략자들과의 치열한 전투가 이곳에서 벌어졌다. 백병전에 익숙한 잉카인들이 밤에는 싸우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파한 침략자들은 한 밤중에 잉카인들이 잠들고 있는 틈을 타서 공격을 했다. 

     

사크사이와만 유적지


허점이 찔린 잉카인들은 스페인군의 화승총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죽어갔다. 만코 카팍 이 요새에 2만 명의 병사들과 함께 진을 쳤으나 전멸을 당하고 성벽은 파괴되었다. 많은 원주민이 죽어 시체가 산같이 쌓였고, 그 시체를 뜯어먹으려고 매들이 몰려들어 인육을 포식을 했다. 그래서 ‘매의 둥지’ 혹은 ‘배부르게 먹은 매’라는 뜻의 사크사이와만이란 지명이 붙여졌다고 한다. 자신들의 율법으로 평화롭게 살고 있었던 잉카의 마을은 침략자들의 욕망과 무기로 처참하게 죽어가고 파괴되었다.       


고대 남미의 건축물 중에서 가장 크다는 이 요새는 3층 계단으로 쌓아 올려져 있는데, 높이 18미터, 길이 500미터의 성벽이 톱날처럼 서 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이 성벽을 쌓는 데 사용된 거대한 돌들이다. 어떤 것은 높이 8미터, 무게가 100톤에서 361톤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바위들이 다양한 각도로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고 정확하게 맞물려 있다.   

  

“도대체 이 돌들을 어떻게 옮겼을까요?”

“그러게 말이요. 참으로 대단하군!”     


이 바위들은 이곳에서 15km 내지 35km나 떨어진 채석장에서 운반을 해온 것이라고 한다. 멀리 올란타이탐보에서도 운반해 왔다고 한다. 이 요새를 완성하기까지 하루에 3만 명을 동원하여 약 80년이 걸렸다고 한다. 잉카문명은 쇠나 강철, 수레바퀴, 마차도 없었다고 하는데 도대체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운반을 해 왔을까?  

   

잉카인들은 커다란 바위 덩어리 사이에 쐐기를 박아 넣어 물로 수축을 시키고 불로 팽창시켜 절단한 뒤 돌과 돌 사이에 모래를 넣어 연마하고 다듬어서 안데스 산길을 인간의 노동력으로 운반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여행자의 눈으로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다. 거대한 돌덩이 너머로 구름이 무심하게 흘러갔다. 그 위로 콘도르 두 마리가 먹이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며 날아갔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에 검붉은 피를 솟구치며 장렬하게 전사하는 잉카인들의 환영이 보이는 것 같다. 수로의 흔적이 있는 꼭대기에 오르니 쿠스코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쿠스코는 도시 전체가 퓨마 모양을 하고 있는데, 사크사이와만은 그 머리 부분에 해당된다고 한다.     


사크사이와만을 출발한 버스는 ‘켄코(Q'enqo)’라는 유적지에서 잠시 정차를 했다. ‘켄코’는 케추아어로 '미로'라는 의미다. 돌을 깎아서 만든 6미터가 넘는 퓨마 조각을 중심으로 반원형의 벽이 둘러져 있다. 뒤쪽에는 황제가 앉았던 옥좌와 제단이 있다. 퓨마를 섬기는 일종의 우상숭배의 유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켄코를 출발한 버스는 붉은빛이 도는 산을 지났다. 안내원의 말로는 이 지역이 ‘푸카푸카라(Puka Pukara, 케추아어로 ‘적색’이라는 의미)' 요새라고 한다. 탐보 마차이 근처에 있는 이 지역은 ‘붉은 요새’라는 별명이 있는데, 쿠스코의 북쪽을 굳게 지키기 위해 만들어 놓은 요새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간간히 보이는 초가지붕 위에 황소 모형을 한 인형이 보였다. 황소는 가옥의 수호신으로 가족과 집을 지켜 주십사 하는 원주민들의 순박한 기원을 담고 있다. 도로 옆 산등성이에는 옥수수 밭과 붉은 흙이 드러난 계단식 밭 들이 여러 가지 형태로 모자이크를 이루고 있었다.      


나무 한그루 보이지 않는 민둥산이 뾰쪽뾰쪽한 봉우리들을 하늘로 내밀고 있다. 산봉우리는 하얀 모자를 쓴 듯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있다. 늙은 잉카인들의 주름살처럼 쪼글쪼글한 산줄기는 잉카의 성스러운 계곡을 호위라도 하듯 우루밤바 계곡으로 병풍처럼 이어져 있다. 버스는 아슬아슬한 절벽을 타고 내려와 강가에 있는 어느 마을에 멈췄다. 버스에서 내리니 가벼운 현기증이 났다. 이곳은 해발 3000미터를 전한 고산지역이다. 아내와 나는 잠시 멈추어 서서 심호흡을 하고 물을 마신 뒤 천천히 움직였다.  그러자 현기증이 천천히 사라졌다. 고산지역에서는 서두르면 안 된다. 천천히 슬로비디오처럼 움직여야 한다.  

    

일요시장의 피삭의 강냉이 맛 

        

피삭(Pisac) 유적지는 쿠스코에서 30km 떨어진 작은 마을로 일요일에는 장이 선다. 우리나라 5일장과 같은 장이다. 인근에 있는 원주민들이 갖가지 식료품이나 손으로 만든 일용품을 가지고 와서 물물교환을 하거나 팔고 있다. 장으로 가는 골목에는 원주민들이 손수 만든 민예품들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다.    

  

그저 구경만 해도 즐겁다. 마을광장에는 야채, 고기, 의류, 일용품들을 팔고 있는 모습이 우리나라 장터와 매우 흡사하다. 의류는 모두 원색으로 색깔이 강열하다. 피삭 시장은 페루의 전통 디자인과 수공예 역사를 고스란히 품은 곳으로 태피스트리(잉카의 직물)와 러그(잉카의 방석), 잉카의 전통 옷으로 유명한 곳이다. 원주민의 전통치마를 입고 둥근 전등갓처럼 생긴 모자를 쓴 원주민 여인들의 패션이 퍽 재미있게 보였다. 잉카의 원주민 여인들은 대부분 키가 작고 통통하다.  


피삭 일요시장


라마와 염소를 끌고 온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땅바닥에 철퍼덕 앉아서 원단을 짜고 있는 할머니도 있었다. 원색의 천을 두르고 여러 가지 색깔로 수를 놓은 모자를 쓰고 있는 할머니의 표정은 마냥 편하고 순박하게만 보였다. 주변에는 돼지들이 꿀꿀거리며 자유롭게 달려 다녔다. 아이를 등에 업고 민예품을 파는 아주머니, 소라를 붕붕 불어대는 아저씨도 있다. 사람들은 물건을 사라고 조르지도 않고 호객행위도 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있는 그대로를 좌판을 벌여 놓고 보여주고만 있다. 아, 이 얼마나 자유롭고 여유로운 정경인가!      


“정말 시간을 잊어버리겠어요! 여긴.”

“당신도 마치 과거로 회귀한 잉카 여인처럼 보이네, 하하.”    

 

우린 마치 잉카시대의 과거로 회귀한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의 표정은 순박하다 못해 다정다감하다. 마을 중앙광장에 이르면 야채와 생활용품을 파는 사람들로 시장은 더욱 활기를 띤다. 배추, 무, 당근, 파, 고추…. 사람이 먹고사는 모습은 어디를 가나 비슷하다. 등에 보따리를 짊어진 여인들의 모습과 천을 휘감아 아이를 등에 업은 여인들의 모습이 퍽 이채롭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사람들은 다소곳이 포즈를 취해준다. 아직 때기 묻지 않은 순박한 모습 그대로다. 도회지 풍경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아이를 등에 업고 있는 민예품 가게에서 아내는 무엇인가를 흥정하며 샀다. 우린 시간을 잃어버린 채 피삭 시장을 구경했다. 강냉이 맛도 일품이다. 햇빛을 많이 받아서인지 알이 굵고 맛이 좋다. 출발할 시간이 되어 버스로 몰려든 여행객들의 입에는 어김없이 잉카의 옥수수가 물려 있었다.      


“하하하. 모두들 잉카의 하모니카를 불고 있군.”

“호호호. 강냉이를 물고 있는 표정이 정말 재미있어요.”     


여행객을 태운 버스는 다시 가파른 언덕을 올라갔다. 그러나 덜컹거리던 버스가 마침내 일을 내고 말았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버스가 한쪽으로 기울며 급정거를 했다. 기어코 타이어가 펑크가 난 것이다. 쿠스코를 출발할 때부터 우려했던 일이 드디어 일어나고 만 것이다. 정말 큰 일 날 뻔했다. 자칫 잘못하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불귀의 귀신이 되고 말 뻔했다. 잉카의 신이 돌보아 주었을까? 다행히 아무런 불상사가 없었다. 꽤 많은 시간이 걸려 버스 기사는 겨우 타이어를 교체하고 다시 시동을 걸어 가파른 언덕을 덜덜거리며 올라가다가 성벽처럼 생긴 언덕 밑에 정차를 했다.     


 

버스에서 내려 가파른 길을 1km 정도 걸어가니 피삭 유적지가 나왔다. 계단식 밭과 돌로 쌓은 성이 오랜 비밀을 간직한 채 산등성이에 놓여있다. 유적 밑 언덕에는 계단식 밭이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놓여 있다. 파란 하늘과 초록의 계단밭 사이로 천년의 비밀을 머금고 있는 유적지는 방문객을 먼 잉카시대로 회귀시켜놓고 만다. 분홍빛 안산암(安山巖)들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 인티와타나(Intihuatana:태양을 잡아 매 두는 곳) 신전이 신성한 계곡을 흘러가는 우루밤바 강을 말없이 내려다보고 있다.     


유적지는 인티와타나를 중심으로 우물과 정원이 있고, 신전 밑에는 주민들이 살았던 집들이 사각형의 형태로 허물어진 채 돌담만 남아있다. 마을 양 옆에는 계단식 밭이 첩첩이 잉카의 유적지를 둘러싸고 있다. 바위 밑에는  천년의 무게를 안고 빨간 선인장 꽃이 한 송이 피어 있었다. 저 꽃은 천년 잉카의 비밀을 알고 있겠지.  

   

피삭 유적지는 페루의 어떤 곳에 있는 유적지보다 몇 배나 더 큰 규모의 도시였다고 한다. 유적지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은 과히 일품이다. 우루밤바 강을 휘돌아 잉카의 성스러운 계곡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강은 계곡을 흘러내려와 마을과 들판을 지나고 잃어버린 도시의 이름들과 사라져 버린 잉카인들의 이름을 노래하며 끝없이 흘러가고 있다.     


피삭 유적지


멀리 만년설을 끼고 있는 6,000m급 안데스의 봉우리들이 잉카의 성스러운 계곡을 호위하고 있다. 우루밤바 강은 아마존의 눈썹에 해당하는 상류다. 계곡을 휘돌아 흘러가는 강물은 아마존 계곡과 티티카카 호수로 나누어진다. 현지 안내원은 해발 4,335m의 아브라 라 라야(Abra La Raya)가 아마존 강 근원지라고 일러주며 우쭐한 모습을 취한다. 이 성스러운 강물이 아마존과 티티카카 호수를 이루는 근원지라니 우쭐할 만도 하다.  

    

잉카의 유적지를 둘러볼 때 가이드로부터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은 “~라는 설이 있다”말이다. 글자가 없는 잉카의 역사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 모두 설로 시작해서 설로 끝난다. 어쩌면 잉카의 역사는 그래서 전설 따라 삼천리처럼 더욱 신비하고 재미있는지도 모른다. 원래 아마존 강의 발원지는 페루 남부 안데스 산맥 미스미 산(Nevado Mismi, 5597m)의 만년설에서 녹아내리는 융빙수에서 발원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아브라 라 라야가 아마존의 발원지라고 믿고 있다.   

  

우리는 태양신전을 숨바꼭질을 하듯 이리저리 끼어 다니다가 다리도 쉴 겸 태양의 신전에 철퍼덕 앉았다. 멀리 안데스의 고봉 위로 한 가닥 구름이 쉬어간다. 아내가 준비한 커피포트에서 차를 따른다. 잉카의 유적지에 앉아 여유롭게 마시는 커피 한잔에 모든 시름이 사라져 갔다. 세상의 모든 일이 한순간에 멈추어 버린 것 같다. 방아착! 잉카의 성스러운 계곡은 우리들의 마음을 영원토록 쉬게 하는 마력이 있는가 보다.   

  

"여보, 당신 지금 어디에 있지요?"

"그냥 여기에 있어요!"    

 

그렇다! 그냥 여기에 있다! 과거는 흘러가 버리고, 미래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시간이다. 후회도 두려움도 없다. 우린 오직, 그냥 여기에 있을 뿐이다!         


피삭을 출발한 버스는 우루밤바 강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잉카시대의 작은 마을들이 띄엄띄엄 강가에 들어서 있다. 강을 사이에 두고 야채 등 작물을 재배하는 푸른 밭들이 점점이 나타났다. 강가로 내려오니 숨쉬기도 한결 편해졌다. 강물이 흘러가는 곳을 향해 갈수록 지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버스는 작은 마을 코야(Coya)를 지나고, 라마이(Lamay)를 지나 우르밤바 강가 어느 한적한 들판에 있는 레스토랑 앞에서 멈췄다. 카사그란데(Casagrande)란 잉카 전통 음식점이다. 음식점에는 토끼도 키우고 돼지도 키우고 강가에는 야채 등 잉카의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었다.      



우리는 카사그란데 레스토랑에서 뷔페식으로 간단한 요기를 했다. 우루밤바 강가 한적한 위치에 자리 잡은 레스토랑은 조용하고 아늑했다. 멋진 풍경을 바라보며 잉카의 요리를 맞보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점심을 먹고 다시 버스를 타는데 잉카의 소년 세 명이 남미의 전통악기를 들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출발하자 두 소년이 피리를 불고 한 소년은 북처럼 생긴 타악기를 손으로 구성지게 두드리며 안데스 음악을 연주했다. 순간, 버스 안은 한바탕 음악 잔치가 벌어졌다. 애절한 남미의 음악이 차창에 흘러나갔다. 신명 나게 음악을 연주하는 소년들은 먼 잉카시대에서 온 태초의 잉카인들처럼 보였다. 한 곡 한 곡 끝날 때마다 승객들은 뜨거운 갈채를 보냈다. 소년들은 점점 더 신들린 것처럼 연주에 몰두를 했다.   

   

소년들은 버스가 올란타이탐보에 도착할 때까지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버스가 올란타이탐보 마을에 도착할 무렵 그들은 ‘엘 콘도 파사’를 마지막으로 연주했다. 승객들의 박수갈채가 터졌다. 그리고 가장 어린 소년이 들고 있는 모자에 승객들이 감사의 표시로 잉카의 화폐를 집어넣었다. 아내도 1 솔을 소년의 모자에 넣었다. 공연료를 챙긴 소년들은 일어서서 얌전히 답례인사를 하고 버스 무대에서 내렸다.     

 

“정말 멋진 공연이군요!”

“아마 평생 이런 천연 사이다 같은 공연은 좀체 보기 어려울 것 같아요.”     


정말로 멋진 한 편의 공연이다. 나는 잉카 소년들의 연주를 캠코더에 모두 담았다. 내 비디오 감긴 이 공연을 나는 두고두고 추억을 되새기며 가끔 열어보고 있다.      


잉카의 마지막 항전지 올란타이탐보      


쿠스코에 88km 지점에 위치한 잉카의 성스러운 계곡 중심에 있는 올란타이탐보는 잉카제국시대의 역참 마을 요새 터였다. ‘탐보(Tambo)'는 케추아어로 ‘여행가방’을 의미한다. 기록에 의하면 1536년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반기를 든 망코 카팍이 잉카 군사와 함께 올란타이탐보에 잠입하여 스페인군을 격퇴하였다고 한다. 마지막 항전을 한 잉카는 남은 무리들을 이끌고 빌카밤바(Vilcabamba)로 떠났는데, 그 빌카밤바는 수많은 탐험가, 고고학자, 모험가들이 찾고 있는 정글 속에 깊숙이 숨어버린 잉카의 마지막 정착지라고 믿고 있다. 그 많던 잉카의 병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우리는 마을 배후 언덕에 있는 유적지로 올라갔다. 숨을 헐떡거리며 가파른 300개의 계단에 올라서니 광장이 나왔다. 광장에는 바위로 벽을 쌓은 아름다운 잉카의 석조가 석양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여섯 개의 붉은 거석을 쌓아 올린 건축물은 노을빛에 더욱 신비롭게 보였다.   


   

올란타이탐보 유적지


거석과 거석 접합 부분에는 어떤 접착제의 사용도 없이 석면을 바로 밀착시키거나 작은 돌들을 사용하였다. 단순히 돌을 쌓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돌과 돌이 밀착하는 면적을 많이 잡아서, 양옆의 돌과 겹쳐지게 함으로써 비바람과 한기를 막고, 지진으로 인해서 허물어지는 것을 최소화시키고 있다.   

   

저 거대한 돌들을 어떻게 이곳에 옮겼을까? 이 의문은 페루의 유적지에서 언제나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풀 수 없는 화두이다. 이 수수께끼의 거석들은 맞은편에 있는 채석장에서 운반해 온 것이라고 하는데, 이 경사면을 어떻게 들어 올렸는지 알 수 없다. 거석 무게는 하나에 족히 50톤이 넘는 엄청난 무게이다.      


잉카의 문명은 수레바퀴나 문자가 없다. 잉카문명은 최후까지 종이와 문자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어 건축에 관해서도 거의 추측에 의해서 짐작을 할 따름이다. 확실하게 알려져 있는 것은 추를 이용하여 수평면과 각도, 거리를 재고, 큰 돌을 이동하는 데는 지레를 응용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시간과 사람의 땀이다. 현대에서도 이처럼 거대하면서도 정교한 건축물을 만들 수가 있을까 하는 것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전설이 전하는 대로 ‘하룻밤에 신이 만들어 주었다’라는 설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마을로 이어지는 언덕에는 관개수로와 식품저장고, 주거지의 흔적이 비교적 원형대로 남아있다. 이 수로들은 지금도 그대로 사용을 하고 있다.      


“자, 천년을 흘러온 물을 한번 마셔 볼까요? 만병통치약이라고 하는데.”

“저는 만병통치약이라는 것을 믿지 않거든요. 그래도 마셔보기는 해야지요.”     


그렇다. 세상에 만병통치약이란 없다. 그러나 수로에서 졸졸 흐르는 물을 손으로 받아 마시니 뱃속까지 시원하다. 이 물이 아내의 몸속으로 들어가 조금이라도 더 건강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올란타이탐보는 마추픽추로 가는 ‘잉카의 길(Camino del Inca)' 도중에 위치하고 있어 트레킹을 하려는 사람들의 휴식처이자 식량을 보급하는 전진기지다. 그 때문에 이곳은 항상 많은 여행객들로 붐비고 있다. 마을은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높은 산 그림자들로 어두워지려고 했다. 바위산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더욱 신비한 자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잉카의 가장 높은 마을 친체로    

   

버스는 올란타이탐보를 떠나 가파른 언덕을 헐떡거리며 올라갔다. 금빛 찬란한 태양이 눈 덮인 안데스의 높은 산들을 비추고 있어 마치 산 전체가 황금처럼 보였다. 양탄자 같은 산줄기들이 손에 잡힐 듯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채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버스는 사진 촬영을 위하여 라찌 전망대(Mirador Racchi)라는 곳에서 잠시 정차를 했다.   


라찌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해발 3,700m 라찌 전망대에 서니 발아래 점점이 흩어진 마을과 집들이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였다. 한동안 이 장엄한 광경에 나는 잠시 넋을 잃고 말았다. 모든 것이 한 편의 장엄한 서사시처럼 보였다. 조각구름이 설산에 피어오르더니 석양빛을 받아가며 묘한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춤을 추듯 설산에서 마법의 그림을 그리던 구름도 어두워지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석양빛을 받으며 점점 어두워져 가는 설산! 버스는 다시 산길을 헐떡거리며 올라갔다.      


마침내 버스는 해발 3,762m에 위치한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친체로(Chinchero) 마을에 도착했다. 쿠스코보다 무려 400m나 높은 친체로는 '무지개의 탄생지(The Birthplace of Rainbow)'로 알려져 있다. 계곡 사이에는 자연석을 교묘하게 쌓아 올려 계단식 밭을 만들어 놓고 있다. 그 돌담 아래 원주민들이 원색의 옷을 입고 무언가를 팔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석양빛을 받아 파스텔 톤으로 빛나는 담벼락 아래 갖가지 물건을 늘어놓고 있었다. 갈색의 담벼락 뒤에는 작은 성당이 있고, 성당 뒤로 석양의 그림자가 길게 지며 울퉁불퉁한 산줄기가 마치 거대한 성벽처럼 둘러쳐 있었다.  


친체로 마을

    

해가 완전히 기울고 사방이 어둠에 싸이자 친체로 마을에는 성당을 중심으로 하나 둘 전등이 켜지고 마을은 더욱 신비한 베일에 가리듯 환상적으로 보였다. 해는 지고 어두워졌지만 노점상들은 아직도 물건을 팔고 있었다. 이 그림 같은 친체로 마을은 옛 잉카의 마을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불빛이 아롱거리는 성당은 인간이 닿을 수 없는 천국처럼 보였다. 성당 앞을 서성거리는 여행객들은 어느 혹성에서 온 외계인들처럼 괴이하게 보이기도 했다.   

  

"꼭 외계인들이 서성거리는 것 같군. 천국에 온 것 같기도 하고요."

"난 마치 그림자 인형극을 보는 기분인데요?"

"흐음, 그렇기도 하네!"    

 

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을 그린 프레스코화가 천장에 그려져 있다. 프레스코화는 벗겨지고 얼룩이 져 있지만 오히려 그 점이 색 다른 더 느낌을 준다. 안내인은 마지막 열변을 토해냈다. 키가 크고 빼빼 마른 안내원은 내 모습과 비슷하다. 어쩌면 나와 먼 과거에서부터 인연이 지어져 있었지 않았을까?     

 

"친체로! 친체로! 무지개의 고향 친체로! 잉카의 가장 높은 마을. 현지인들의 물물교환 교역 장소지요. 비록 작은 규모지만, 1천 종류의 감자, 150종류의 옥수수, 마법의 코카 잎, 신비한 잉카의 약초, 아름다운 잉카의 옷이 거래됩니다. 지금 사지 않으면 절대로 후회할 겁니다. 자, 사세요, 골라 사세요, 후회하지 말고. 다시는 오기 힘든 무지개 행운의 쇼핑을 하세요...."      


그의 목소리는 쉰듯하면서도 카랑카랑했다. 실제로 그렇게 많은 물건이 거래가 되는지는 알 턱이 없지만 그의 코멘트가 하도 재미있어 사람들은 물건을 골라 사기도 하고 모두가 그를 바라보며 비시시 웃었다. 이제 쿠스코로 돌아갈 시간이다. 버스에 올라 어둠에 싸여가는 친체로 마을을 뒤돌아보고 있는데, 악기를 든 어떤 소년이 ‘올라’ 하면서 손을 흔든다. 자세히 보니 그는 우루밤바 계곡 버스에서 연주를 했던 그 소년이다. 싱긋 웃는 소년의 모습이 전등보다 더 밝게 다가왔다. 옷깃만 스쳐도 5백 생의 인연의 있다고 하는데, 이곳에서 잉카 소년들을 다시 만나다니 나는 먼 과거 시대에 잉카제국에서 살지 않았을까?


“올라!”

“올라!”

“올라!”


손을 흔드는 소년이 불빛 속으로 사라져 갔다.     

매거진의 이전글 49. 약탈당한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