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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Jul 01. 2019

51. 협궤열차를 타고 '아마존의 눈썹'을 달리다

페루-잉카의 길(Camino Inca)

마추픽추로 가늘 길 -카미노 잉카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에서 마추픽추로 가는 길은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헬리콥터를 타고 2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 있다. 두 번째는 협궤열차를 타고 3시간을 달려가는 것. 마지막으로는 '잉카의 길'을 걸어서 트레킹을 하면서 가는 것이다. 마지막 방법이 가장 힘들기는 하지만 잉카제국 시대의 멋진 경관을 바라보며 잉카의 길을 걷는 것이야말로 남미 여행의 백미 중의 백미다.


“그 험한 잉카의 길을 정말 걸을 수 있겠소?”

“문제없어요.”

“정말로? 고산증세 때문에 힘들 텐데요?”

“정말 자신 있다니까요?”

“3,000미터 고산지대를 걷는 길이 무려 33km 되는데? 리마에서 쿠스코로 넘어오며 밤새 토하던 생각을 잊었나요?”

“50km 아니 100km라 할지라도 전 가고 말 거예요. 난 이래 봬도 아직도 힘이 넘친 다구요.”

“허허, 그러지 말고, 내가 절충안을 낼 테니 잘 들어요. 잉카의 길은 3박 4일 동안 해발 4,000미터를 넘는 험준한 산을 몇 개를 넘어야 해요. 그것도 텐트에서 자면서 말이요. 나야말로 꼭 그 길을 걷고 싶지만 생각처럼 같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길인 것 같아요. 더욱이 그룹을 지어서 가니 그룹에서 낙오라도 되면 옴짝 딸싹 못하는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고…”

“그럼 다른 방법이라도 있나요?”

“있고말고. 1박 2일 코스가 있어요. 3박 4일보다는 짧지만 그 길만 걸어도 옛 잉카의 길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고 해요. 그래서 우리처럼 나이가 든 사람이나 여성들은 오히려 이 길을 많이 선택을 한데요.”

“좋아요. 그럼 그 길이라도 걸어야지요.”


나는 3박 4일 코스 잉카 트레일을 가겠다는 아내를 겨우 설득시켰다. 호기심이 많고 어디든 가고야 말겠다는 고집불통인 여자. 아내가 그랬다. 사실 아내는 움직이는 종합병원이다. 루푸스를 앓고 난 아내는 그 후유증으로 당뇨, 갑상선저하증, 고혈압 등 여러 가지 질병을 앓고 있다. 그래서 집에 있으면 우울증이 심해지고 자꾸만 아프다. 툭하면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거나 입원신세만 지던 아내다. 그런데 저렇게 팔팔하게 호기심과 의욕에 차 있으니 내심 기쁘다. 역시 아내에게는 여행이 명약인가 보다. 우리는 결국 1박 2일짜리 트레킹을 하기로 하고 사전에 미리 예약을 했다.


16세기의 기록에 의하면, 잉카제국은 해안과 산중에 남북을 종주하는 2대 간선도로와 이 두 간선을 잇는 여러 갈래의 횡단로를 축조해 전국을 도로망으로 엮어놓았다고 한다. 이러한 길을 ‘잉카의 길’이라고 부른다. 총 3만 8,600km애 달하는 이 길에는 20~30km마다 탐보(tambo, 역참驛站)를 배치해 군사의 원정이나 고관들의 여행을 이용하였다. 각 지방의 물자를 통제하기 위해 길가에 창고를 마련하기도 했으며, 왕명 등 정보를 전달하는 차스퀴(chasqui, 릴레이 파발꾼)도 이 길을 달렸다. 


잉카제국은 반(半) 레구아(Legua, 약 2.8km)마다 숙관(宿館) 하나씩을 배치해 파발꾼들이 휴식과 숙박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런데 파발꾼 차스퀴의 속도는 1일당 50 레구아(약 280km)로 놀릴 정도로 빨랐다.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에 400 레구아(약 1,120km)나 떨어진 에콰도르 키토까지 10~12일에 주파를 했다고 한다. 몇 명의 차스퀴가 릴레이 방식으로 해발 5,000~6,000미터의 산을 넘어 달려간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잉카인들은 이 길은 '카파쿠냔(위대한 길)'이라고 불렀다.


쿠스코를 잉카의 심장이라고 한다면 잉카의 길은 잉카제국의 혈관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잉카의 멸망과 함께 잉카의 길도 끊겨버렸다. 현재는 그 일부가 관광객을 위한 트레킹 코스로 남아있을 뿐이다. 잉카의 길은 안데스 산맥의 고산 지대로 이어져 있다. 그러나 끝나는 곳이 어디이며,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직까지도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채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현재 여행자들이 걷는 '잉카의 길(Camino Inca)'은 Km82역이나, Km88역에서 출발하여 마추픽추에 이르는 약 33km의 트레일을 4일 동안 걷는 것이 일반적이다. 잉카의 길은 해발 2,500~4,000미터에 이르는 고산길을 계속 걸어가야 한다. 그러므로 고산증세가 심한 사람은 조심을 해야 한다. 또 도중에 숙박은 위나이 와이나 숙소를 제외하고는 모두 텐트에서 캠핑을 해야 한다. 


카미노 잉카 트레일 코스
카미노 잉카 고도


우리가 선택한 잉카 트레일 코스는 ‘Km104 역’에서 출발하여 위나이와이나에서 1박을 하고 마추픽추에 도착하는 2일간의 짧은 트레킹 코스다. 트레킹 시즌은 건기인 5월부터 10월까지가 좋다. 해발 4,200미터를 넘는 고산지대이기 때문에 방한구와 충분한 양의 물을 준비해야 한다. 요즈음은 대부분 포터 겸 안내인을 대동하기 때문에 텐트를 치는 일, 짐을 운반하는 일, 음식 준비 등을 포터들이 대행해 주므로 훨씬 수월하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 잉카 트레일은 1일 500명으로 입산 숫자를 제한하고 있었다. 매년 2월은 코스 정화 기간으로 입산 금지가 되어있어 예약 시 유의해야 한다. 예약 신청 시에는 여권사본, 정확한 여권번호와 이름을 기재해야 한다. 3박 4일 트레킹 코스에는 세 곳의 검사 포인트에서 여권과 실명을 확인하고 있다. 성수기인 6~9월 사이에는 1~2개월 전에 예약이 마감되는 경우도 있으므로 미리 예약을 하는 것이 안전하다.      


협궤열차를 타고 '아마존의 눈썹'을 달리다


아침 6시. 이른 아침에 쿠스코의 산 페드로 역에 도착을 하니 마추픽추로 가는 많은 여행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여행객들이 입은 가지가지 색깔의 옷과 배낭으로 역사는 한 폭의 추상화를 연상케 했다. 파란색에 노란 줄을 그어놓은 마추픽추 행 협궤열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쿠스코에서 마추픽추로 가는 협궤열차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에서 북서쪽으로 100km 떨어진 마추픽추로 가는 기찻길은 폭이 채 80cm도 안 되는 좁은 선로다. 이 기찻길을 초 슬림형 협궤열차가 거북이처럼 기어간다. 이처럼 선로 폭이 좁은 것은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의 열대우림이 이곳 마추픽추 인근에서부터 시작되는 것과 연관이 있다. ‘아마존의 눈썹’으로 불리는 이 지역에 아열대 식물들이 자랄 수 있는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선로의 폭을 좁혔다고 한다.      

우리가 탈 기차는 백패커(Backpacker)로 6시 15분에 출발하는 열차다. 열차 등급은 세 가지가 있는데, 백패커보다 약간 고급인 비스타도메(Vistadome)가 있고, 최고급 열차인 하렘 빙엄은 500달러가 넘는 호화열차이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백패커를 타고 가도 오늘 중으로 도착하면 되지 않겠는가.  


열차에 오르니 가이드 겸 포터인 어네스토(Ernesto)가 우리 좌석으로 와서 인사를 했다. 그는 다소 어눌한 표정으로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 원주민답지 않게 피부색이 조금 하얀 편이다. 트레킹 그룹은 각 여행사마다 포터와 가이드가 다 다르다. 그런데 6시 15분에 출발하기로 한 기차는 40분이 자나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미 특유의 늑장 출발이라고나 할까? 이윽고 기차가 덜컹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덜컹거리는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아내가 간 떨어지겠다며 놀랜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내심은 즐거운 표정이다. 기차는 우리나라의 옛 완행열차 수준이랄까? 시설은 낡고 속도는 느리다. 기차가 역 구내를 빠져나가  느리게 기어가더니 이내 다시 뒤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어럽쇼? 기차가 왜 뒤로 가지요?”

“뒤로 돌아서 가는 길이 있는 게 아닐까?”


그런데 뒤로 미끄럼질 치던 기차는 삐익~ 브레이크 소리를 내더니 다시 앞으로 천천히 올라간다.


“여보, 기차가 다시 앞으로 가네요.”

“엇? 그런데 다시 뒤로 물러나는군."

"기차가 왜 자꾸 왔다 갔다만 하지요?

"글쎄?"

 

알고 보니 마추픽추로 가는 기차는 쿠스코에서 급상승하는 경사를 타고 바로 올라갈 수가 없어 지그재그로 오르락내리락 반복하며 고도를 조금씩 높여가야 한다고 한다. 경사가 가파른 구간을 기차는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며 오르는 스위치 백(swich back)을 하며 점점 고도를 높여갔다. 다섯 번 정도를 왔다 갔다를 반복했을까? 기차는 겨우 언덕에 올라섰다. 


쿠스코에서 마추픽추로 가는 기차를 타기 전


기차가 정상에 올라서자 쿠스코 시내가 한눈에 아스라이 보였다. 정상에 오른 기차는 내리막길을 달려가며 속도를 제법 냈다. 마추픽추로 가는 길은 쿠스코 보다 지대가 낮아진다. 그러나 기차의 속도에는 한계가 있다. 길이 워낙 꼬불꼬불한 데다가 험해서 마음 놓고 달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협궤가 좁아 커브를 돌거나 언덕을 오르내릴 때마다 기차가 심하게 흔들렸다. 좁은 선로를 달려가는 차창에는 야자수와 각종 아열대 나뭇가지가 스치며 바스락거렸다. 


기차는 역도 아닌 엉뚱한 곳에서 가끔씩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왜 정차를 했는지 그 어떤 안내 방송도 없다. 기차가 설 때마다 승객들은 기차에서 내려 철길에서 사진을 찍으며 주변을 서성 거리기도 했다. 열차가 정차를 하면 어디선가 행상들이 몰려와 기념품을 팔기도 했다. 



밀림 속을 달려가는 계곡은 깊고 공기는 신선하다. 깎아지른 계곡이 금방 손에 닿을 것만 같다. 기차는 점점 깊은 정글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키 큰 유칼립투스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선 원시림, 청정한 공기, 멀리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있는 설봉들이 파노라마처럼 느리게 지나갔다. 심호흡을 하며 대자연의 신선한 공기를 흠뻑 마셔본다. 마치 내 몸이 대자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런 여행이 참으로 좋다!

 

승객들은 느리게 달려가는 기차의 난간에 기대어 사진을 찍거나 가끔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기차는 우루밤바 강을 끼고 달려갔다. 안데스 산맥의 만년설에서 흘러내린 강물이 모여 낮은 곳으로 내려갈수록 불어나고 물살도 거칠어졌다. ‘아마존의 눈썹’에 해당하는 강물이다. 기차의 속도는 강물이 흘러가는 속도와 거의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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