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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Jul 02. 2019

52. 잉카의 영혼이 깃든
'엘 콘도르 파사'

페루-잉카의 길을 가다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


“와, 저 독수리 좀 봐요. 크기도 하네요!”

“어디? 정말 크군! 저건 남미의 새들 중에 가장 큰 콘도르라는 독수리래요.”


마추픽추로 느리게 달려가는 열차 위로 한 마리 콘도르가 날개를 펴고 날아갔다. 어찌나 크던지 마치 날개가 계곡을 덮을 듯 보였다. 페루에는 영웅이 죽으면 콘도르로 부활한다는 전설이 있다. 남미의 콘도르는 보통 몸길이 1.3m, 무게가 10kg 정도로 맹금류 주에서 가장 큰 새다. 주로 안데스 산맥의 바위산에 살며 절벽에 둥지를 틀고 산다. 원주민 가이드 한 명이 콘도르를 무심코 바라보더니 잉카의 피리로‘엘 콘도르 파사'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애잔한 피리소리가 우루밤바 강을 달리는 열차 안에 울려 퍼졌다. 승객들은 창밖을 날고 있는 콘도르를 바라보거나 혹은 음악에 취해 눈을 감고 있기도 했다.  

    

나는 달팽이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새가 되겠소

못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망치가 되겠소

……………………………

길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숲이 되는 게 좋겠소

그래요.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할 거예요.     


콘도르는 철새가 아니다. 콘도르(Condor)는 잉카의 말로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라는 뜻이 담긴 새의 이름이다. 빼앗긴 보금자리를 되찾기 위해 눈을 번뜩이며 안데스의 계곡을 날고 있는 잉카의 영혼이다. 콘도르는 잉카인들의 전설적인 영웅이다. 아직도 잉카의 후손들은 페루 곳곳에서 거의가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고 최하급 생활을 면치 못하고 있다. 도시의 빈민가에서, 안데스의 계곡에서, 잉카의 유적지에서…. 막일이나 행상, 포터 등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정부의 요직과 경제권은 스페인 혈통의 백인들이 모두 쥐고 있다.


‘엘 콘도르 파사’는 '사이먼과 카펑클'의 노래로 더욱 유명해졌지만 원래는 잉카의 노래다. 잉카의 원주민 반란 지도자 ‘투팍 아마루 2세’를 기리기 위해 페루의 작곡가 로블레스(Daniel Aomias Robles)가 1913년에 작곡한 오페레타 ‘콘도르칸키’의 테마음악이다. 원래 이 노래에는 가사가 없었지만, 후에 사람들이 구전되어 내려온 콘도르칸키의 이야기를 노랫말로 만들어 붙였다. 케추아어로 된 콘도르칸키의 절절한 마음을 담은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오, 위대한 안데스의 콘도르여

날 고향 안데스로 데려가 주오
콘도르여 콘도르여
돌아가서 내 사랑하는 잉카 형제들과
사는 것이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라오
콘도르여 콘도르여

쿠스코의 광장에서 날 기다려 주오
마추픽추와 와이나픽추에서
우리가 한가로이 거닐 수 있게(나무위키 참조)


사이먼-카펑클이 불렀던 가사 내용과는 전혀 다르다. 이 노래를 지금 마추픽추로 가는 열차에서 한 원주민이 애잔하게 연주하고 있다. 엘 콘도르 파사는 이처럼 페루의 전통 악기로 연주한 곡이 더 애절하게 가슴을 파고들며 잉카의 영혼을 느낄 수 있다.

     

오페레타 '콘도르칸키'는 18세기 스페인 지배하에서 잉카 부흥을 위해 스페인에 항거하며 봉기를 일으킨 실존인물 호세 가브리엘 콘도르칸키(1738~1781)의 일생을 담은 내용이다. 그는 스페인의 200년 폭정에 분노하여 대규모 농민 봉기를 일으킨 민족 지도자이다. 그는 1572년 스페인 정복자에게 마지막까지 항거하다 처형당한 잉카제국의 마지막 황제 ‘투팍 아마루(Tupac Amaru)’의 이름을 따서 ‘투팍 아마루 2세’라고 개명을 하고, 약 1만 명의 반란군을 모아 지휘하며 잉카의 재건을 노렸다. 그는 스페인 점령군을 ‘금을 숭배하는 강탈자’라고 선언하고 지방의 스페인 최고행정관 ‘아리아가’를 습격, 처형함으로써 반란의 불을 붙이며 잉카제국을 재건을 노렸다. 우리나라의 동학농민운동과 유사한 봉기다. 


그러나 투팍 아마루 2세는 선진무기와 전술적 우위에 앞선 스페인군에 생포되어 거열형(능지처참)을 받고, 쿠스코 중앙광장으로 끌려가 1781년 5월 18일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혀를 뽑고 사지를 찢어 목을 자르는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처형되었다. 그러나 잉카의 후예들은 지금도 위대한 용사 투팍 아마루 2세의 영혼이 콘도르가 되어 안데스의 창공을 날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나타나 잉카의 후손들을 지켜 줄 것이라는 전설을 믿고 있다. 18세기 투팍 아마루 2세의 저항정신은 페루는 물론,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베네수엘라까지 파급되어 스페인 식민 체제를 흔들리게 하는 도화선이 되었으며 남미 독립운동의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엘 콘도르 파사'는 이처럼 잉카인들의 한과 희망을 담은 노래다. 스페인 침략자에게 삶의 보금자리를 빼앗겨 쿠스코를 버리고 숲으로, 더 깊은 정글로 숨어들어야 했던 절박함과 콘도르가 되어 안데스의 정글을 헤매는 한을 담고 있다. 잉카인들은 어디론가 더 이상 떠나기보다는 고향인 숲을 지키는 콘도르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은 잉카 최후의 수도인 빌카밤바를 마추픽추에 건설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마추픽추를 떠나 다시 더 깊은 곳으로 제2, 제3의 빌카밤바를 건설하기 위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아직도 잉카 최후의 빌카밤바가 어디인지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사람을 죽이는 무기가 문제다. 칼, 총, 대포, 미사일, 핵무기 등 사람을 죽이는 무기를 만든 자여, 지옥에나 가라! 정정당당하게 싸우려면 무기 없이 맨몸으로 싸워라. 사자나 표범처럼. 그렇게 하면 최소한 대량살상은 일어나지 않고, 생존의 위험이 있을 때만 싸우게 될 것이다. 


잉카인들은 우리가 기차를 타고 가고 있는 계곡과 정글을 맨발로 걸어서 갔다. 잉카의 후예들이 침략자들을 피해 마추픽추를 찾아갔던 길을 우리는 덜컹거리는 협괘 열차를 타고 갔다. 


“Km104라는 역 이름이 참 재미있네요! 역 이름이 모두 거리로 표시되어 있어요.”

“참 좋은 아이디어 같아요. 쉽게 거리를 파악할 수도 있고.”


km104 간이역에 내린 아내의 모습


10시 30분, 기차는 마침내 ‘Km104 역’에 정차를 했다. 쿠스코를 출발한 지 4시간 여가 지났다. 마추픽추로 가는 기차역은 쿠스코를 출발점으로 하여 모두‘KM 00 역’으로 명명되어 있다. 거리로 역 이름을 지어 놓은 곳은 세상에서 이곳밖에 없지 않을까? 여행자들은 Km104 간이역에서 배낭을 짊어진 채 내렸다. 그 모습이 꼭 옛 잉카의 후예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나도 잉카의 후예가 된 양 의기양양하게 걸어갔다. 그 시대 잉카인들은 이렇다 할 무기도 없이 맨 주먹으로 독립의 영혼을 불태우며 정글로 숨어들었을 것이다. 철길을 걸어가는데 우루밤바 강에서 흘러가는 물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1박 2일 잉트레일은 KM104역에서 출발하여 위나이와이나에서 1박을 하고 마추픽추로 간다.


곧이어 강을 건너는 출렁다리가 나왔다. 우루밤바 강을 건너가는 외줄 다리다. 출렁거리는 외줄 다리 밑으로는 우루밤바 강물이 콸콸 거세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마치 옛 잉카의 전사들처럼 출렁다리를 건너갔다.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인처럼.


잉카 트레일로 가기 위해 우루밤바 강 출렁다리를 건너는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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