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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Jul 03. 2019

53. '잉카의 길'을 걷다

페루-잉카 트레일(Camino Inca)

Km104역(2100m)에서 출발하여 출렁다리를 건너가니 곧바로 잉카 트레킹을 하는 여행자들을 체크하는 검문소가 나왔다. 여기서부터는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야 한다. 가이드 어네스토는 본격적인 트레킹을 하기 전 최종 점검을 했다. 여행객들이 그룹별로 모여서 다시 한번 짐을 챙기고, 트레킹 가이드는 주위사항을 전달했다.


우리가 속한 그룹은 보스턴에서 온 쇼와 아르헨티나에서 온 마리노 일행 4명, 스코틀랜드에서 온 마리아 일행, 아일랜드에서 온 남자 등 모두 11명이다. 우리는 서로 인사를 하며 악수를 나누었다. 특히 아르헨티나에서 온 마리노가 우리 부부를 매우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농산물을 수출하는 무역회사 근무를 한다는데 아내를 집에 두고 여자 친구와 함께 여행을 왔단다. 아내는 직장에 다니는데 시간을 내지 못해 그렇게 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 우리나라 같으면 여자 친구와 여행을 간다면 난리가 날 텐데 마리노와 그의 여자 친구는 멀쩡한 모습이다. 


어네스토는 검문소 입구에서 점심을 먹고 올라가야 한다고 하면서 준비한 도시락을 나누어 주었다. 다른 그룹들도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점심을 먹었다. 도시락 내용은 형편없었다. 그러나 험한 산을 올라가려면 먹어야 했다. 사 먹을 곳도 없어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Km104역 인근 잉카 트레일 입구에서 점심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여행자들


11시 30분. 드디어 입산 체크인을 하고 트레킹 장도에 올랐다. 잉카의 길로 가는 좁은 길에 긴 행렬이 이어졌다. 출발하자 말자 첫 번째로 도착한 곳이 차차밤바(Chachabamba, 2250m)란 유적지다. 어네스토의 설명에 하면 차차밤바란 어머니의 대지란 뜻이라고 했다. 유적지는 지붕은 없고 벽만 남아있다. 


차차밤바 유적지는 마추픽추로 가는 두 번째 관문역할을 한다. 자연석을 깎아 제단을 만들고 주위에 둥그렇게 담을 쌓아 놓았다. 유적의 양쪽에는 다섯 개의 욕조가 만들어져 있다. 차차밤바를 잠시 둘러본 뒤 일행은 다시 언덕을 올랐다. 잉카 트레일은 고산 중턱에 폭 1m 정도의 좁은 길로 바닥을 평평하게 다듬어 놓아 걷기에  편하다. 


폭 1m 정도의 잉카 트레일


“우와! 이 아름다운 꽃들!”

“정말 아름답네!”

“무슨 꽃이 이렇게 앙증맞지요?”

“어네스토, 이 꽃 이름이 뭐지요?”

“우리는 이 꽃을 위나이 와이나라고 불러요.”

“위나이와이나?”

“네, '영원한 젊음'이란 뜻이지요.”

“영원한 젊음이라… 너무 특이한 이름이군.”


'영원한 젊음의 꽃'. 학명은 에피 덴드룸에 속하는 란이다.


영원한 젊음의 꽃! 신비로운 전설 속에 감추어진 폐허의 바위틈에서 피어나는 분홍색 꽃이 너무 아름다웠다. 꽃 모양은 제비꽃처럼 생겼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란(蘭, orchid)처럼 보였다. 처음 보는 꽃이다. 나중에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 꽃의 학명은 에피덴드룸(Epidendrum) 속에 속하는 꽃이다. 에피덴드룸 속은 1000여 종 이상의 난이 포함된 속이다. 대부분의 에피덴드룸은 ‘나무 위에’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의 위에’라는 뜻의 그리스어 에피(epi)와 ‘나무에’라는 뜻의 덴드론(dendron)의 합성어로 대부분 나뭇가지에 착생을 하지만 일부는 땅에서 자라는 종류도 있다. 


'젊음의 꽃'은 성스러운 잉카의 길로 가는 바위틈에서 앙증맞게 피어나고 있었다. 꽃이 작지만 연중 내내 피어있어 ‘영원한 젊음의 난(Wiñay Wayna orchid)’이라고도 한다. 원주민의 케추아 어로 위나이 와이나(Wiñay Wayna)는 ‘영원한 젊음’이라는 뜻이다. 위나이 와이나 유적지란 이름도 이 꽃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잉카 트레일 석벽 바위틈에 피어나는 '영원한 젊음의 꽃.


꽃처럼 피어나는 마음, 꽃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 아름답다. ‘영원한 젊음의 꽃’처럼 우리네 인생이 언제나 싱싱하다면 어떨까? 그러나 꽃은 시들기에 더욱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언제나 시들지 않고 피어 있다면 그도 지겨울 것이다. 꽃도 인생도 시들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여기저기 피어있는 ‘영원한 젊음은 꽃’을 바라보며 우리는 피곤한 줄 모르고 잉카의 길을 걸어갔다.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점점 숨이 더 가빠졌다. 그러나 어네스토는 우리보다 몇 배 무거운 짐을 지고도 전혀 숨이 가쁜 기색이 없이 앞뒤로 오가며 우리들을 보살펴 주었다. 그는 마치 인간 파발꾼 차스키처럼 보이는 그의 심장은 도대체 얼마나 클까? 잉카시대에 이렇게 험한 길을 인간 파발꾼 차스키들은 하루에 수백 킬로미터를 주파하였다고 하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어네스토, 당신은 마치 인간 파발마 차스키처럼 보이는군요. 그렇게 무거운 짐을 메고도 전혀 힘든 기색이 없으니.”

“차스키요? 어림도 없지요. 잉카시대 차스키는 하루에 200km 이상을 나는 듯이 달려 다녔답니다.”

“와아, 그렇게도 빨라요?”

“그럼요. 그들은 릴레이식으로 잉카의 길을 달리며 황제의 명을 전달했는데, 목적지에 가까워지면 키푸라는 전보 문자를 들고, 소라 고동을 불면서 자신의 도착을 알렸지요.”


어네스토의 설명에 의하면 ‘차스키(Chasqui)’는 ‘교환하다’라는 뜻인데, 그들은 릴레이식으로 황제의 명을 전달했다고 한다. 차스키는 명문 귀족 출신 자제들로만 선발했으며, 강인한 체력과 뛰어난 기억력이 요구되었다. 잉카시대에는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전달한 내용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외워야 했기 때문이다. 잉카의 길에는 탐보(Tambo:케추아어로 휴식을 취하는 곳)라고 하는 간이 숙박시설이 20~30km 간격으로 세워져 있었는데, 차스키는 탐보 사이를 오가며 왕의 급보를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차스키들은 키푸(Khipu)라고 불리는 매듭을 지어 만든 짧은 문장을 들고뛰어 목적지가 가까워지면 푸투투(Pututu)라고 하는 소라 고동을 불어 자신의 도착을 알렸다. 그들은 때로는 안데스의 5000~6000m 험준한 산을 넘어 에콰도르, 콜롬비아,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칠레에 이르기까지 잉카제국의 파발꾼 역할을 했다. 16세기 시대에 세상에서 가장 빠른 방법으로 왕명을 전달함은 물론, 해안에서 잡은 생선이나 잉카제국에 있는 진기한 음식을 쿠스코에 있는 왕의 밥상에 싱싱한 상태로 올리기도 했다고 한다. 


잉카 시대 인간 파발꾼 차스키(참조:위키피디아)


“와아, 정말 대단하군요. 그럼 우린 세상에서 가장 느린 차스키가 되겠네요. 하하.”

“느리기는 하지만 당신들은 가장 빠른 차스키라고도 할 수 있지요. 눈 깜짝할 사이에 비행기로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와 잉카의 옛 길을 걷고 있으니 말이요.”

“하하, 그럴까요? 어네스토, 당신은 참 재미있군요?”


어네스토의 여행자들의 질문에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잉카의 길을 걸어 마추픽추로 가는가? 잉카 문화의 체험을 위한 길이라고는 하지만 무거운 짐을 어네스토에게 지게 하고 잉카의 길을 걸어가는 나 자신과 여행객들이 사치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괜히 어네스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점점 숨이 가빠졌다. 2시간쯤 올라오니 갈대로 역어 만든 움막이 나왔다. 이곳은 해발 2600m 정도 되는 고지다. 그런데 일행 중에 스코틀랜드에서 온 마리아가 얼굴이 빨개지며 숨을 가쁘게 몰아쉰다. 그녀는 길에 주저앉아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늘 아픈 아내와 함께 여행을 다니는 나는 걱정이 되어 마리아에게 다가가 물었다. 


“마리아, 어디 아파요?”

“네, 조금. 심장에 문제가 좀 있어서요.”

“어네스토, 빨리 와 봐요.”


괴로워하는 마리아를 바라보며 앞서가는 어네스토를 부르자 그가 급히 뛰어왔다. 그는 뛰어와도 심장에 아무런 문제가 없나 보다. 어네스토는 마리아의 상태를 살펴보더니 빨리 하산할 것을 권유했다. 마리아는 어네스토의 충고에 따라 일단 하산을 하기로 했다. 서양인들은 말을 잘 듣는다. 억지를 쓰는 법이 별로 없다. 어네스토의 말에 의하면 이 상태로 계속 산을 오르다간 더 큰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보, 당신은 괜찮아요?”

“네, 전 문제없어요. 우린 이미 고도 적응을 해 왔지 않아요.”

“그래도 난 당신이 걱정이 되는 데?”

“내 걱정은 붙들어 매시고 당신이나 잘 견디세요.”


고혈압에 당뇨로 인슐린 주사를 맞는 아내가 내심 걱정이 되어 물었지만 아내는 의기양양하게 걸어갔다. 다행이다. 참, 알 수 없는 여인이다. 여행만 나오면 저렇게 팔팔해지니 말이다. 아르헨티나에서 온 마리노가 숫제 웃통을 벗은 채 익살을 떨었다. 


“헤이, 초이, 괜찮아?”

“아직은 괜찮아요.”


카미노 잉카 트레일 여행자들과 함께


오른쪽 밑은 가파른 낭떠러지다. 멀리 우루밤바 강이 흐르고  쿠스코로 가는 두 칸짜리 기차가 꽁지 빠진 새처럼 갑자기 기적을 울리며 강을 따라 느리게 기어갔다. 가끔씩 헬리콥터도 계곡의 바람을 가르며 날아갔다. 편하게 마추픽추를 구경하려는 관광객을 테우고 가는 헬리콥터다.


움막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길을 오르니 시원한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마리노는 환성을 지르며 물줄기 속으로 뛰어들더니 물살을 손으로 떠서 익살스럽게 일행들에게 뿌렸다. 모두가 마리노의 장난에 괴성을 지르며 한동안 폭포 근처에서 더위를 식혔다.


가파른 낭떠러지로 아슬아슬하게 이어진 잉카의 길과 폭포


폭포를 떠나 나무로 된 다리를 건너 언덕을 조금 올라가니 곧 위나이 와이나(Winay wayna, 2650m) 유적지가 나왔다. 케추아어로 영원한 젊음이라는 뜻을 가진 유적지다. 계단식 밭에 둘러싸인 유적지는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채 가파른 언덕에 세워져 있다. 중앙에 수로가 놓여 있고 수로에는 맑은 물이 졸졸 흐르고 있다. 물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듯 수로를 타고 흐른다.


위나이 와이나는 카미노 잉카에서 가장 빼어난 유적지다. 원형이 매우 잘 보존되어 있고 특히 주변의 계단식 밭이 압권이다. 차곡차곡 쌓아 올린 돌담 지붕, 성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돌담에서 솟아 나와 핀 ‘영원한 젊의 꽃’이 너무 아름답다. 우리는 이 비밀에 싸인  유적지를 숨바꼭질을 하듯 이리저리 끼어 다녔다. 


위나이 와이나(Winay wayna, 2650m) 유적지



위나이 와이나는 카미노 잉카에서 가장 빼어난 유적지로 원형이 매우 잘 보존되어 있다.


위나이와이나 유적지 바로 옆에는 트렉커스 호스텔이 있다. 오늘 밤 우리는 여기에서 야영을 하기로 되어있다. 호스텔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호스텔은 방이 누에를 치는 상자처럼 좁은 침대에 3층으로 되어 있다. 방 하나에 10명이 함께 자야 한다. 사다리로 연결된 침대는 성냥갑을 올려놓은 것처럼 보였다. 


호스텔 옆에는 줄줄이 텐트가 처져 있었다. 방을 미처 예약을 하지 못하거나 텐트를 준비한 여행객들이 머물 숙소다. 포터들은 준비해온 음식재료를 씻어서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우리는 호스텔에서 제공한 저녁식사를 먹기로 되어 있었다. 저녁 식사시간이 되어 일행들이 모두 레스토랑 한 자리에 앉았다. 잉카의 시원한 맥주가 한잔씩 배달되었다. 맥주잔을 든 우리는 잔을 부딪치면서 여기까지 무사히 올라온데 대한 축배를 들었다. 식사를 하면서 일행은 여행담으로 꽃을 피웠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어네스토가 도중에 심장 문제로 하산을 했던 마리아를 데리고 들어왔다.


“와아! 마리아 파이팅!”

“어서 와요. 마리아.”

“You are real winner!(당신은 진정한 승리자야).”


저마다 한 마디씩 하며 마리아를 환영했다. 그녀는 우리와 헤어져 계곡 아래로 내려가 잔디 위에 한동안 누워 있다가 컨디션이 좋아지자 다시 천천히 올라왔다고 했다. 여기까지 와서 도저히 잉카의 길을 포기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힘든 길을 다시 올라와 우리 일행을 만난 그녀의 얼굴은 성취감과 재회의 기쁨이 뒤섞여 상기되어 있었다. 


“마리아, 사실 아내도 심장이 썩 좋지를 않은데 여기까지 올라왔거든요. 정말 축하해요.”

“아, 그렇군요. 누구든지 죽기를 각오하고 포기를 하지 않는다면 올라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하. 죽기까지 해서야 되겠소? 살아야 올라올 수 있지요? 하하하.”

“호호호, 물론이지요!”


위나이 와이나 숙소에서 여행자들과 함와


말은 그렇지만 그리 쉬운 결단은 아니다. 나는 마리아보다도 아내가 대견하게만 느껴졌다. 움직이는 종합병원이란 닉네임이 붙은 아내가 아닌가! 아내는 의지가 매우 강한 여자다. 리마에서 육로를 통해 쿠스코까지, 그리고 다시 잉카시대 인간 파발꾼들이 걸었던 고산지대의 잉카의 길을 큰 문제없이 걷고 있었다. 아마 우리가 비행기를 타지 않고 고도에 서서히 적응을 하여 걸어온 것이 고산증을 이겨내는데 큰 도움이 된 것 같았다. 아무튼 인간의 정신력은 한계가 없는 것 같다.


"여보, 마리아보다는 당신이 더 대단해요!"

"왜요?"

"움직이는 종합병원이 잉카의 길을 끄덕 없이 걷고 있으니 말이요."

"그거야 당신이 옆에 있으니 그렇지요."

"당신은 지칠 줄 모르는 거북이 차스키야."

"호호, 별소릴 다 듣겠네요. 잠이나 자요."


그랬다! 나는 지칠 줄 모르고 잉카의 길을 걷고 있는 아내가 거북이 차스키처럼 보이기만 했다. 밤이 깊어지자 우리는 누에고치처럼 각자의 침대로 기어 들어가 잠을 청했다. 내일 아침엔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한다. 마추픽추의 일출을 보기 위해서는 일찍 서둘러야 했다. 1박 2일의 잉카 트레킹은 마추픽추의 일출을 보기 위해서 가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일 새벽 시야에 펼쳐질 마추픽추를 생각하니 가슴이 설렌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트레킹으로 인한 피곤으로 모두가 잠에 떨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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