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1 에피소드 03 -- 김호광님 편
이 인터뷰는 2014년 2월 지앤선 티스토리 블로그를 통해서 소개되었던 인터뷰를 다시 브런치에 재등록하는 글입니다. 개발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프로그래머를 꿈꾸는 학생들과 젊은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기획된 프로젝트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다.
세 번째 인터뷰는 2월 19일, 강남의 어느 카페에서 진행되었다. 김호광(Dennis Kim)님은 처음 인터뷰를 하기 전에 페이스북 그룹에 올리신 글들을 통해서 굉장히 냉정하고 무서운 분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태기님이 추천해주셨을 때부터 가장 걱정이 되는 분이었다. 처음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컴퓨터도 잘 모르는 내가 무슨 도움이 있겠냐’며 걱정스럽게 거절하시는 모습을 보고, 내가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이 들어 용기를 내 졸라서 만나 뵙게 되었다.
Q 우선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본인 소개부터 해주세요.
A 나는 게임으로 치면 잡캐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드래곤볼 온라인, 툼레이더 온라인을 만들었고, 나이키 런더시티의 프로젝트 매니저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게임 보안 쪽 일을 하고 있다. 포털 쪽의 거래처가 5군데 정도 있다. 프로그래머로 활동하신지 얼마나 되셨는지 안 물어봤네^^;;;;
지금 현재는 스타트업에서 CTO로 근무 중이신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나는 프로그래머다'라는 팟캐스트를 운영 중이시다.
Q 프로그래머가 된 계기랄까, 언제 프로그래머가 되야겠다 결심하게 되셨어요?
A 중학교 1학년 때 비디오샵의 프로그램을 만든 후 쭉~ 이때부터 프로그래머로 활동하셨다고 생각해도 되려나??? 국민학교 때 학교에 컴퓨터가 들어왔는데, 그때 처음 GW basic을 배웠다. 아시안게임 전후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프로그래밍을 통해서 세상을 이해하게 되고, 세상을 배웠다. 다른 사람보다 프로그래밍을 빨리 배운 편이었는데, 솔직히 공부는 나보다 잘하는 애들이 굉장히 많은데, 이쪽으로는 경쟁자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데다가 재미있기까지 했다. 어릴 때는 일본 게임 소스를 너무 보고 싶어서 한글화에 참여하기도 했다. 위대한 게임의 소스는 열정이 만든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별로 잘 하는 게 없어서 이 일을 계속하게 된걸 수도 있다. 하나 잘 하기도 얼마나 어려운데요...
나는 사실 학교 다닐 때 공부는 안 하고 프로그래밍만 계속하는 학생이었다. 부모님께서 대학만 가라고 하셔서 대학만 갔다. 대학에서 관련 분야로 전공을 선택했으나 컴퓨터를 배우신 교수님이 아니어서 커리큘럼 등에 문제가 많았다. 그래서 그때는 주로 혼자 책과 도움말로 모든 공부를 했다. 예제는 최고의 프로그래머들이 만들어 놓은 것들이고 생각해서 예제를 모두 공부했다. 수입도서를 오프라인 서점에서 보면서 필요한 것들은 노트하며 공부했다. 영어는 못하지만 기술 용어만 알면 크게 문제없었다.
Q 업계에 들어와서 가장 영향을 받은 개발자를 꼽으라고 하면 어떤 분을 꼽으시겠어요???
A 굉장히 다양하고 많은 개발자를 만났기 때문에 한두 명을 거론할 수는 없고, 어떤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배우고 오만함을 다스려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600~800권의 컴퓨터 도서를 봤는데, 특히 마소(월간 마이크로소프트웨어)의 집필가들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나도 마소를 통해서 처음 개발자들에게 연락하기 시작했으니, 마소는 나에게도 업계에 들어와서 가장 영향을 준 잡지이다.
Q 개발자로 일하면서 가장 힘들 때는 언제인가요???
A 한국 사회 전반적인 문제이기도 한데, 프로그래머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점이다. 오래전에 많이 겪어 봤기 때문에 지금은 그런 회사와 일을 안 하고 있다. 그런데 비정상적인 회사들이 아직도 상당히 많다. 한편으론 비정상적인 회사들이 왜 있는지 생각해보면 비정상적인 개발자가 그런 것들을 만들어 놓고 갔다는 생각도 든다. 사고가 난 회사는 날만했던 경우가 많았다. 또한, 아주 오래전에는 보안의 개념이 별로 없이 만들었는데, 그 후 오래된 시스템에 대해서 업그레이드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돈 쓰고 싶어 하지 않는 기업도 문제이지만, 제대로 고치지 못한 개발자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프로젝트 기간이 말도 안 되어서 힘든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여러 가지로 이유로, 피치 못할 이유라고 하더라도, 분명히 안 되는 것을 선 긋지 못한 프로그래머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본다.
이런저런 경험이 많으시고 하고 싶으신 이야기도 많으신 듯했다. 조금 격양된 목소리로 말씀하셨지만, 인터뷰 성격상 조금은 하고 싶은 말을 참으시는 느낌이었다. 이런 건 따로 술자리에서 들어야 제맛인데~
Q 함께 일하기 싫은 프로그래머가 있나요???
A 우선, 뒤통수치는 프로그래머!!! 프로그래머와 거래처가 서로 다른 말을 할 때, 프로그래머를 믿어줬음에도 불구하고 말과 전혀 다른 결과물을 보여줄 때가 있다. 거짓말을 한다고 해야 할까? 실력이 안 되는 프로그래머보다는 인격 자체가 안 되는 프로그래머와는 같이 일하기 싫다. 엉망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놓고 도망가고 잠수 타는 프로그래머들이 종종 있다. 그런 사람은 몇십 명의 몇 백 년의 인생을 망가트리는 것과 같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다른 프로그래머들이 프로젝트 잡기가 더 힘들어진다.
사실 나도 주위에 잠수 타는 개발자 때문에 마음 졸이고 고생한 친구들이 좀 있는 편이라 그런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망가트린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Q 직원을 뽑기 위해 인터뷰어로도 많이 활동하셨을 텐데, 그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또 그런 것들을 파악하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쓰시나요???
A 자기가 성공한 프로젝트와 실패한 프로젝트, 자기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분명히 아는 사람을 뽑으려고 한다. 팀워크가 중요하기 때문에 사회성이 너무 없는 사람은 힘들다. 그래서 사전에 동의를 구하고 추천인 3 사람을 받고 따로 연락을 취하기도 한다. 외국 속담에 ‘임신한 수녀가 수도원을 욕한다’는 말이 있다. 백그라운드도 알아보고 조심스럽게 접근을 해본 후 실제로 일주일 정도 같이 일을 해본다. 같이 일 할 사람은 까다롭게 고르는 편이다. 열정으로 실력을 커버할 수는 없다. 게임 같은 경우는 더욱 그렇다. 철저한 자본주의 정신으로 게임을 만드는데, 좋아서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Q 이 일(직업)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예전에 해외에 나갔을 때, 예산을 잘못 세워서 정말 돈이 한 푼도 없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머물던 곳 근처 웹에이전시나 프로그래밍 회사에 메일을 보내서 일거리를 달라고 해서 면접을 보고 돈을 벌었다. 금액은 들었으나 비밀!!! 내 생각보다 어마어마했다. 영어를 잘할 필요도 없었다. 단지 내가 이걸 해내면 돈을 주고 못하면 안 주면 된다는 것만 말했다. 전화랑 노트북만 있다면 어디서건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이 일의 매력이다. 물론, 툼레이더 온라인, 드래곤볼 온라인 등 알만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커리어패스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우와~ 어쩌면 개발자들은 코드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영어가 안 되더라도 이런 것들이 가능하겠구나 싶었고 한편으론 부러웠다. 그러면서도 한국은 시기와 질시가 너무 심해서 이런 이야기들이 잘난 척으로 비칠까 조금 걱정하셨다. 아니, 왜 이런 이야기가 잘난 척이지???
Q 이야기를 들으면 해외 나가서 일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다는 느낌이 든다.
A 한국은 갈라파고스이다. 너무 특수성이 있어서 한국의 개발자들이 해외로 나가기 애매한 경우가 많다. 해외에서 원하는 스펙과 너무 다르다. 영어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너무 한쪽으로 편향되어 있어서 외국에서 원하는 배경을 가지기가 힘들다.
Q 사용자나 고객을 이해하기 위해 개발자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커뮤니케이션이 제일 중요하다. 고객이 바라는 게 무엇인지 기본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사용자의 니즈에 부합하지 않는 프로그램을 갑이 요구할 때는 그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것이 맞다. 그렇지 않을 때에 꼭 사고가 터지고 결국 프로그래머에게 좋지 않은 이력을 남기게 된다.
Q 요즘 인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프로그래머에게 정말 인문학적인 소양이 필요한 것일까요???
A 문과 교수들이 자기 학생들 밥벌이 안 되는 것들을 보면서 명분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빌 게이츠나 잡스가 주장한 인문학과 현재 한국에서 프로그래머들에게 강요하는 인문학은 다르다고 본다. 사람을 이해한다는 의미의 인문학이 아닌 지금 사회에서 강요하는 인문학은 모두 이 사회가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생각한다.
Q 개발자로서 사회생활(회사 생활)에 대한 조언을 주신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A 사용자 혹은 고객과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 고객과 이야기를 할 때 고객의 수준에 맞춰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설득을 못하면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대형 공공 프로젝트가 산으로 간 이유는 프로그래머인 척하는 아키텍트와 벤더인 척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가 망조가 될 거 같으면 이직을 하는 것이 좋다. 이기적인 것 같지만 자신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프로젝트도 성공할 수 있다.
Q 프로그래머가 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을 하셨을 것 같으세요???
A 백수!!! 사회 무능력자!!! 운동도 공부도 잘 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사회가 고도화되면 될수록 분석자가 인정받는 사회가 될 것이고 프로그래머가 바로 그 직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프로그래머가 최적의 직업이라고 믿고 있다. 솔직히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닌데, 이 직업이 천직이라고 생각한다.
Q 스트레스를 푼다거나 재충전은 어떻게 하시나요???
A 스트레스는 잘 모르겠고, 재충전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책을 읽거나 와인을 마시거나 차를 마신다.
Q 취미가 있으신가요???
A 재충전을 하는 방법이 곧 취미이다. 방에서 벗어나지 않고도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좋다.
Q 최근에 가장 관심 있게 보는 것은 어떤 것이 있으세요???
A 와인!!! 호주나 뉴질랜드 등에서 접하기 시작하면서 관심이 생겨서 깊이 있게 공부하기 시작했다. 영업을 하지 않다 보니 술을 즐기지 않는데 와인은 좋아하게 됐다. 차도 골라서 마시는 편이다. 나도 와인을 많이 좋아해서 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에 좋아하는 와인은 아르헨티나 말벡인데 4만 원 정도의 와인이 95점 이상의 포인트를 받을 만큼 괜찮다고 추천해주셨다.
Q 최근에 가장 짜릿한 경험을 하신 적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A 나이키 런더시티를 두 달 반 만에 완성했을 때 가장 짜릿함을 느꼈다. 윈도 서버와 php, 유니티를 사용한 프로젝트였다. 기간이 짧은 만큼 최적화된 프로그램만을 사용했고 그 선택이 맞아떨어져 제대로 된 결과물을 만들어냈을 때 정말 기분이 좋았다.
Q 30년 뒤의 나의 모습은 어떨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지금과 거의 똑같은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하루에 두세 시간 일하고 와인을 마시며 호주 골드코스트나 뉴질랜드 퀸즈타운 등에 있고 싶다. 좀 더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프로그래밍을 배워야 할까???
Q 본인 스스로 어떤 개발자라고 생각하시나요???
A 나는 솔직히 실력적으로 최고의 프로그래머는 아니다. 하지만 (이제와서야) 일을 제대로 되도록 할 수 있는 개발자라고 생각한다. 너무 리스키 한 일을 능력만 믿고 덤볐던 시절이 있었다. 대부분 끝내긴 했지만, 복귀해보니 리스크가 너무 컸다는 걸 깨달았고 이제는 그런 일들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Q 후배 개발자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A 꿈을 생각하고 가면 그 길이 열린다. 한국 개발자들은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도전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크게 보자. 나는 해외에 일하러 나갈 때 정말 무작정 찾아갔다. 두드리면 길이 열리더라. 실리콘밸리에서 인도와 중국의 프로그래머를 쓰는 이유는 저렴하고 영어가 되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자꾸 도전하고 두드리기 때문인 경우도 많다. 한국 개발자는 도전하지 않는다. 하지 않고 투덜거리지 말자. 한국에 있는 상황이 말이 안 된다는 생각만 하지 말고 고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노력하는 개발자가 되자!!! 그리고 도움말 좀 읽어라!!! 기본 도움말에서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헉~ 뭘 사도 설명서조차 안 읽고 사용하기 어렵다고 투덜대는 내가 갑자기 막 찔리면서... 또한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의견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하였으면 좋겠다. 자신의 머리만 믿고 오만하게 개발하는 개발자가 늘었다. 제발 그러지 않길… 오만한 개발을 하면 본인의 프로젝트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팀원의 인생과 열정까지 말아먹어 좀비를 만들게 된다.
인터뷰 후 느낀 점... 말을 거침없이 하시는 성격 탓에 오해를 많이 받으실 수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하면 더 나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시는 분이라는 확신도 들었다. 조금은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자신에 대한 또 자신이 선택한 프로그래머라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많으신 분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갖질 수 있다는 거… 어쩌면 엄청난 행운이지 않을까??? by 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