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는, 독자는 결국 이득을 보았나?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풀어쓴 것임을 미리 밝힌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조사해본 것은 현행 도서정가제에 관한 문서 단 하나였다. 고로 여기서 내가 하는 말들이 근거가 부족할 수도 있기 때문에 확정적으로 말하지는 않을 것이며 나의 이야기가 맞다고 주장하고 싶지 않다.
2014년에 개정된 도서정가제가 3년간 현행대로 연장된다는 기사를 접했다. https://goo.gl/yf9dw6 나하고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법률이기 때문에, 또 솔직히 그동안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제도이나 강하게 반대하지 않았던 입장에서 조금 생각을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 년에 많게는 2~3번, 적게는 1번 해외 도서전을 참관했었다. 이제는 내가 출간하는 도서 관련해서 새로운 출판사도 생기지 않는 추세이고 또 거의 대부분의 출판사들과 메일이나 온라인을 통해서 연락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도서전에 참석하지 않고 있다. 해외 도서전에 참석하면 여러 출판사를 만나고 새로운 도서를 찾아내는 즐거움도 있지만 전 세계의 다양한 많은 도서들을 보면서 언제나 감탄하며 부러워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갔을 때 똥에 관련된 도서만 10여 종이 넘게 출판한 출판사를 보면서 그런 시도를 할 수 있는, 그런 책도 재미나게 출간할 수 있는 그 시장이 너무 부러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부터 왜 국내는 조금 더 다양한 도서가 출간되지 않는 건지... 왜 이렇게 자기개발서는 매년 베스트셀러가 되는지(그때 당시는 그랬다)... 베스트셀러는 왜 모두 다 비슷비슷한 건지... 국내에 출간되는 도서의 분야는 왜 이리 한정적인지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안타까워하고 아쉬워했다. 도서정가제의 배경에는 이런 문제도 적용되었다고 생각한다. 모두 비슷한 도서들만 만들어내다 보니 경쟁적으로 책 가격을 낮춰서 더 많이 팔고 더 많이 이슈가 되려는... 도서정가제는 처음 '과도한 책값 할인 경쟁'을 저지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이론적으로는...
예전(2014년 이전) 도서정가제에 대해서는 모른다 치고, 현행 도서정가제는 출간된 지 18개월 내의 도서에 대해서는 10% 이상 할인할 수 없고, 18개월이 지나서도 할인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책 가격을 변경할 수 있는 형식이다. 즉, 신간뿐만 아니라 구간에 대해서도 할인을 10% 이상 할 수 없기 때문에 책 가격을 다시 책정해야 하는데 이 경우 ISBN을 그대로 사용하고 정보만 변경된다면 상관없으나, 책 가격이 표지에 이미 기제 되어 있는 경우 표지를 다시 바꿔야 하는 번거로움과 추가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또한 기존에는 표지에 살짝 흠이 생겼다거나 본문을 읽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는 파본에 경우 할인을 해서 판매했었는데 이것 또한 불가능해졌다. 나의 경우, 몇 년 전만 해도 많은 개발자 행사장에서 독자들을 위해 20% 이상 할인율을 적용해 행사를 했었고 또 파본에 경우 만원에 판매하는 행사도 진행했었는데 이런 것들이 불가능해져서 행사에 참여하는 것도 의미가 없어졌다.
도서정가제가 적용되면 할인이 안되니 출판사들이 도서 가격을 낮춰서 책정하고 도서 가격의 거품이 빠질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해외에 비하면 책값이 꽤나 많이 싼 편이다. 국민소득과 물가 여러 가지를 반영해야 하므로 해외와의 비교가 꼭 맞다고 볼 수만은 없다. 하지만 종이의 10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한국어 책은 대한민국의 국민 외에는 사보지 않는 작은 시장규모를 생각하면 정말 너무 싼 가격으로 책정되어 있는 것은 맞다. 하물며 책이 출간된다고 해서 전국의 모든 대서관에 납품을 하는 것도 아니니...
그런데 여기에서 더 큰(?) 문제는 온라인/오프라인 서점의 공급률은 1도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도서정가제가 시행되고 18개월 동안 도서를 10% 이상 할인할 수 없게 되었는데 여전히 온라인 서점은 30%(소설이나 단행본의 경우 최대 50%까지) 할인된 가격으로 출판사들로부터 도서를 공급받는다. 위탁업체이고 대신 홍보도 해주고(크고 돈 되는 회사만 홍보해주는 것이나 다름없지만) 등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어쨌든 지금 우리는 10,000원짜리 도서를 출간하면 온오프라인 서점에는 7,000원에 제공하고 3,000원은 그들의 이득이 된다. 독자는 달랑 10%의 할인만 적용받으니 당연히 우리가 책 값을 낮게 책정하지 않는 이상 1도 이득을 볼 수 없었고, 출판사 역시 파본이나 구간에 대한 할인이 불가능해서 재고에 대한 부담은 늘고 달라진 좋은 점은 그다지 체감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국내에 도서들이 더 다양해지고 출판시장이 더 커졌나? 그건 솔직히 모르겠다. 교보문고에 서서 눈에 띄는 곳에 진열된 도서들을 보면 7~8년 전과 달라진 점을 느낄 수가 없다. 다행히 최근에 지역 서점들, 다양한 작은 책방들 그리고 중고서점들이 하나둘씩 문을 열기 시작하고 또 다양한 활동을 통해 더 많은 독자들과 만나고 있는 듯하다. 이런 변화가 도서정가제로 인해 발생한 것인지 나는 알 수 없으나 대형 서점들의 횡포로 인해 작은 서점과 출판사들이 이런 변화를 주도하는 경우도 생기는 것을 보고 더욱 환영하게 되었다. (IT 쪽으로 특화된 사랑방과 같은 서점을 하나 하고 싶다는 꿈도 생겼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독자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앞에서 도서정가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시피 지금 현재 18개월 내의 도서는 파본이라고 해도 10% 이상 할인율을 적용할 수가 없어 출판사에 재고에 대한 부담이 늘어난 상태이다. 그런 와중에 대형 온라인 서점에서 운영하는 중고서점이 곳곳에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출간된 지 6개월도 안된 책들이 중고서적으로 등록되며 30% 이상의 할인(반값의 경우도 있다)을 적용되기도 한다. 이렇다 보니 출판사는 그런 부분까지 감안하여 소위 잘 팔리는 도서만 출간하고 싶어 하고, 해외 도서에 대한 과도한 선인세 경쟁이 생기며(얼마 전 하루키의 도서는 선인세가 30억 이상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광고비와 번역비 등등을 감안하면 이는 국내 시장에서 100만 부 이상 팔려야 이득을 볼 수 있는 금액이다.), 도서 가격은 처음부터 낮게 책정하기 힘들어지고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그 피해가 돌아간다. 물론 넓은 서재를 보유하고 있는 집이 아니라면 책이 차지하는 공간에 대한 부담감도 클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런 경우라면 가급적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보고 만약 신간도서를 구입했다면 적어도 1년 후에 중고서점에 판매해 주었으면 하고 부탁하고 싶은 것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우리가 출간하는 책들은 중고서점에 별로 없다. 서점에서 받아주지도 않고... 하하하)
도서정가제 이야기를 하다 어느새 하소연(?)을 한 것 같은 느낌이지만, 누구보다도 국내에 다양한 도서가 조금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이렇게까지 이야기하게 된 부분을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너그럽게 이해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