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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 Jul 26. 2021

나의 라라랜드

解願 페스티벌

대학교 동아리에서 나의 별명은 ‘해방’이었다. 무언가 해방을 시켰나 싶겠지만, 그것과는 전혀 연관이 없다. 농활(농촌 봉사활동)에 가서 막걸리를 진탕 마시고, 다 같이 모여 회의하는 자리에서 방귀를 뀌어서 생긴 별명이다. ‘해원 방구’의 준말인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이 별명이 마음에 들었다. 주변에서도 나와 어울리는 별명이라고 했고, 나도 무언가를 해방시키고 싶은 욕구가 갈수록 커졌다. 먼저 틀에 갇혀 살아온 나를 해방시키고 싶었고,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 했다. 


농활에서 생긴 또 다른 이름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다른 의미가 생겼다. 논산 주곡리에서 진행된 농활에서 나는 ‘새내기 농주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농활대원들을 이끌었다. 마을 어르신들과 화합도 내 몫이었다. 나는 어르신들께 먼저 다가가 성함을 여쭤보고, 늘 성함으로 이름을 불러들이고, 에너지를 드리기 위해 애썼다. 댁마다 방문해 인사를 드리고, 어르신들 머리를 염색해드리고, 노동요를 부르며 논에서 피를 뽑고, 방울토마토를 땄다. 마을 잔칫날 백숙을 함께 만들고, 사물놀이를 하며 북과 꽹과리를 신명 나게 쳐댔다. 항상 웃는 얼굴로 명랑하게 농활을 보낸 후 떠날 때가 되자, 어르신 중 한 분이 인자한 미소로 악수를 청했다. 그러고는, “해원아, 꿈을 해원 하라”고 덕담을 해 주셨다. ‘바다의 옥’이라는 내 이름 뜻에 새로운 의미가 더해졌다. 원하는 것을 풀어내는 것. 인생 최고의 덕담이라고 할 만큼 너무도 멋진 풀이가 아닌가. 뜻도 ‘해방’과 맞닿아 있는 뜻이었다.


사람들이 내게 붙여준 이름처럼, 에너지를 분출하고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전염시키는 일이 내게 내재된 사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열정의 불을 지르는 방화범. 그때부터였을까. 언제부턴가 나는 모두가 함께 어우러지는 축제를 만들고 싶어졌다. 나이, 경제적 지위, 사회적 지위, 학력, 부모님 등 그 무엇도 상관없이 모두가 하나 되어 놀 수 있는 축제. 해방구를 만들고 싶었다. 일단 그런 소망을 가지고 티켓부터 뿌리고 다녔다. 교환학생으로 호주에 가서 파티에 사람들을 초대하면서, 나중에 내가 만들 페스티벌에도 초대한다고 한 것이다.


근 10년이 넘은 이 꿈을, 이제는 점점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일단 옷이 통일되었으면 좋겠다. 농활이 정말 좋았던 것이 모두가 ‘꾸밈’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마주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모두 농활 티셔츠와 몸뻬 바지를 입었었다. 화장 따위는 할 새도 없고, 하지도 않게 되는 농촌이라는 공간에서 농활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사람 그 자체로 대면했다. 이처럼 가식이 들어갈 공간을 최대한 없애 주고 싶다. 사람들은 서로 별명을 부르고, 모두 반말을 하게 하여 나이 위계를 없앤다. 서로에 대해 물어볼 때에는 직업과 학교 등에 대해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한다. 


규칙은 이 정도로 하고, 페스티벌에서 무엇을 할지가 더 중요하겠다. 일단 ‘해방’, ‘해원’의 취지에 맞게 각자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으면 좋겠다. 가장 먼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감정의 해방’이다. 인간은 누구나 선악이 공존한다. 분노, 울분, 극단적으로는 살인 충동까지 느끼는 게 인간이다. 하지만 사회에서는 이러한 감정들은 표현되기 어렵다. 부정적인 감정들은 배출될 길이 없어 쌓인다. 함께 어울려 먹기 보다는 혼자 즐기고 혼술, 혼영이 유행하는 세상이다. 서로 품어주는 사람이 없다 보니 갈 곳을 잃은 분노는 범죄라는 사회 병리적인 현상으로 표출된다. 어깨를 쳤다고 살인을 하는 세상이다.


그 동안 쌓아 온 자신의 감정을 안전하게 마음껏 쏟아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예컨대 ‘분노를 허락해드립니다 – 분노의 기쁨’ 부스다. 내가 배운 연극을 활용하여, 사람들이 마음껏 분노를 꺼내 놓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고 싶다. 연극은 모든 감정을 표현하고 배출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다. ‘있는 힘껏 화를 내보세요’라는 연출의 주문으로 사람들은 ‘혀용된 분노’를 표출할 수 있다. 혼자서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그 모습을 바라봐 주는 것 또한 나의 행위가 인정되는 경험으로 분노 해소에 도움이 된다. 플레이백 시어터(즉흥극) 기법을 활용해서 참여자가 분노하는 상황을 설명해주면, 배우들이 그 상황을 만들어주고, 참여자는 마음껏 분노해보게 하고 싶다. 


다른 부스에서는 쑈가 펼쳐졌으면 좋겠다. 나도 쑈를 담당할 것이다. 연기도 하고, 노래도 하고 춤도 출 거다.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쑈가 있다면 장르 불문 무엇이든지 가능하다. 노래, 춤, 무용, 마술, 연주, 코미디, 연기, 스탠딩 코미디 등 원하는 것을 뭐든지 ‘시도’해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세상에는 무대가 고픈 사람들이 많다. 자신을 표현할 기회를 찾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고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또 다른 공간에서는 몸으로 노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서로 몸이 닿기도 하면서, 연결됨을 느낄 수 있는 스포츠나 무용 활동, 게임을 진행하고 싶다.


나는 내 삶이 축제였으면 좋겠다. 끝까지. 사는 동안 내 생일에는 페스티벌을 열 것이다. 나의 죽음도 하나의 축제가 되었으면 한다. 죽고 나서는 장례 페스티벌을 열 것이다. 내가 죽음과 동시에 축제가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 환호성을 지르게 할 것이다. 그 뒤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추모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 남 눈치를 보느라 마음껏 울지 못하는 게 아니라 원하는 만큼 울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나라가 잃은 것처럼 우는 사람, 분노에 차서 소리 지르고 있는 사람, 추억을 보며 웃는 사람, 춤을 추는 사람이 한데 어우러지는 축제가 될 것이다. 나와 쌓인 묵은 감정은 따로 마련된 부스에서 배우들의 도움을 받아 나에게 마음껏 욕하고 풀어내는 시간을 가져서 상대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앞으로 인생을 살도록 하고 싶다. 다른 이들과 함께한 추억들도 같이 나누고 싶다. 마지막에는 모두 추모의 춤을 추는 시간을 가질 거다. 신나는 음악에 맞추어 추모의 마음을 담아 원하는 대로 몸을 흔드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가는 대로 고인을 추모할 수 있는 장례 페스티벌을 만들 것이다.


언젠가 이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조금씩 이 꿈에 가 닿을 수 있는 일을 찾아 진행해 볼 생각이다. 축제 기획 수업도 찾아 들어봐야겠다. 언젠가 생길 그 페스티벌에서 이 글을 읽은 여러분도 만나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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