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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돌 Apr 03. 2020

방송에 비치는 난임 부부 #1

관찰 예능에서 시험관 시술 과정을 보게 될 줄이야


과거에 비해 폭발적으로 많은 수의 채널이 생기면서 방송이 다루는 내용의 폭도 굉장히 넓어졌다. 장르의 경계도 불분명해지고 다큐인지 예능인지 모를 방송도 늘고 있다. 특히 관찰 예능 트렌드는 꽤나 오래 사랑받고 있다. 패널들이 둘러앉아 출연진들의 일상 영상을 보며 이야기 나누는 포맷은 여러 케이블채널에서 방영되고 있다. 최근 다양한 관찰 예능이 등장하면서 늦은 결혼을 한 연예인들의 난임클리닉 방문 내용도 전파를 탔다.


방송사의 입장에서, 난임은 사실 일반적 소재가 아니다. 임팩트가 강하지도 않고, 어머어머.. 정도의 시선을 받는 이야기 꺼리일 수 있다. 가끔 드라마에 등장하는 난임부부 불임부부라 표현됐던 는 결국 이혼을 하거나 안쓰러운 시선을 받으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사실 난임이 방송 전반에 드러난 경우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관찰 예능에서의 난임 소재는 조금 다르다. 만약 관찰 예능에서도 난임 부부가 측은한 사연으로 포장되어 힘들어하는 모습만 보였다면 방송을 끝까지 보지 못했을 거다.


작년 11월 A채널 <아빠 본색>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김원효 심진화 부부가 시험관 시술 과정을 공개했다. 우리 부부와 연수가 비슷한 둘은 금슬 좋은 개그맨 부부로 유명하다. 처음에는 신혼을 즐기자는 마음이었지만 계속 아이가 생기지 않아 인공수정을 했다가 실패하고, 더 늦기 전에 도전하기 위해 시험관 시술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그대로 방송에 내보냈다. 병원에 방문하고, 배란 주사를 놓고, 난자 채취술을 하는 장면까지 모두 방송됐다.


씩씩하고 발랄한 부부지만 병원을 방문하고 주사를 챙겨 와 남편이 직접 놓는 장면들에서는 안쓰러운 모습이 컸다. 시술을 시작하고 엄마와 통화를 할때는 웃었지만, 직후 친구와의 통화에서 울음을 터뜨렸을 때는 나도 함께 울었다. 마음은 먹었지만 막상 이런 처지에 놓인 내가 서러워지는 그 기분. 엄마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한 감정이 친구 앞에서 툭하고 터져버린 것이다. 시술 직전의 장면에서는, 홀로 남겨진 침대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어찌해야할 지 모를 긴장감이 되살아나 보는 동안 내 손에 땀이 나기도 했다.  비슷한 과정을 겪었고, 희망과 공포가 공존하는 그 기분을 알기에 더 공감이 갔다. 


나에게 그들의 모습은 곧 우리 부부의 모습이었기에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기는 어려웠다. 생각보다 너무 디테일한 부분까지 방송에 나와서 조금 놀란 것도 사실이다. 하필 같은 병원에서 시술을 진행했어서 더 현실감이 컸다. 작년 여름, 바로 그 공간에서 멘붕의 상황을 맞이했던 기억. 같이 영상을 지켜보던 패널들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면서 영상을 봤고, 그 과정을 전혀 몰랐던 남성 패널들은 조금 놀란 듯 했다.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서 그렇지 난임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는 멘트도 곁들여졌다.


결과적으로 부부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힘들어하는 부부와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의 반응까지 모두 방영되고 나서야 에피소드가 마무리되었다. 특정 시점에 인간의 감정을 최대한 자세히 들여다 보고 공감 혹은 반응하게 만드는 것이 방송이다. 내 생각에는. 난임에 관해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들에게는 간접 경험의 시간이었을테다. 같은 일을 겪는 사람들에게는 힘이 되어주기도 했을 테고. 그럼에도 나는 아내 심진화의 마음이 걱정됐다. 꼼짝없이 난임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보냈을 몇 달간 과연 마음이 편할 수 있었을까.


난임 치료는 점점 나아진다는 개념이 아니다. 성공 아니면 실패다. 하지만 그 실패도 흔히 말하는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기에 당사자가 아니면 이해받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이 부분이 일반적인 투병과 난임 치료의 차이다. 게다가 부부간의 프라이빗한 영역이 A부터 Z까지 모두 드러나서 '뭐 저런 것까지 방송에...' 라는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두 부부의 방송이 걱정됐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익숙한 사람들이니 출연을 결심했겠지만, 혹여 실패하게 되어 시작부터 실패까지 실시간으로 노출되면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았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시작 전에는 많이 망설였다. 그래도 이 부부처럼 누군가 보고 힘을 얻는다면, 나도 더 힘을 얻을 것 같아서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복잡한 마음을 홀로 되새기며 정돈된 글로 전하는 것과 그 과정을 카메라에 담아 방송으로 내보내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특히 시술 과정을 공개해야 하는 심진화에게 적지 않은 부담을 주었을 거다. 개인적인 소장용 동영상도 아니고 방송국 카메라가 병원까지 나를 쫓아온다면, 마음 편할 수 없을 듯하다. 아무리 직업이라 해도 말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방송은 난임보다 부부에 초점을 둔 장면들을 많이 보여줬다. 서로를 다독이며 애정 표현을 하고 솔직한 심정을 나누는 장면을 통해 난임과 관련 없는 사람들에게도 바람직한 부부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본다. '아이 때문에 이렇게 고민할 거라고 생각해 봤어?'라고 묻는 남편의 모습에서 난임도 집집마다 존재하는 나름의 사정 중 하나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시험관 시술이 실패한 이후 바에 가서 미래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지금 아이가 생기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 거냐 고민하는 모습은 눈 앞의 숙제를 잠시 내려놓게 만들어 준다. 부부간의 대화란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


작년에 방송을 보고 블로그에 리뷰를 남기며, 몇몇 분들과 울면서 방송을 봤다는 이야기를 나눴었다. 부부의 애틋한 모습과 애정이 담긴 눈빛이 특히 더 좋았다고 한다. 나 역시 부부의 사정을 가감 없이 방송에 보여준 두 사람의 용기와 그들의 사랑에 박수를 보냈다. 결과를 듣고 마음이 아팠을 텐데, 그 사실을 방송에까지 알리며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 미안한 마음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둘을 보며 부부의 삶이 먼저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긍정적인 모습을 보며 희망을 느끼기도 했다.


방송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이 나온다.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도 이슈가 되고 소재가 된다. 일인 미디어의 시대가 오면서 그 소재는 점점 세분화되고 있다. 소수자라는 타이틀이 붙는 특정 부류의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부담이 될 수도 있지만, 편견을 줄일 수 있다면 나쁜 일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도 있고. 난임 부부에 대한 시선 역시 방송의 순기능이 작용할 수 있는 범위에 속할 수 있다. 같은 경험을 했기에 마음이 아프긴 했지만, 이 방송에서는 따뜻한 시선으로 부부를 찍고 편집했으니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에 비친 난임 부부가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어 다행이다. 가족의 시작은 부부임을 확인시켜주어 감사하다. 심진화 김원효 부부를 비롯해 아이를 기다리는 모든 분들에게 따뜻한 소식이 전해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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