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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돌 Mar 31. 2020

도대체 뭘 먹어야 임신이 될까

7년째 추어탕을 먹고 있는 난임 주부의 고민


난임은 암 진단만큼의 스트레스를 유발한다는 말이 있다. 얼마나 근거가 정확한지는 모르겠으나 이 말을 보면 없던 스트레스까지 올라올 지경이다. 암으로 고생하는 분들을 봐온 사람으로서 이 말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한 가지 비슷한 점이 있다면 음식에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난임이라는 사실을 밝히면 가장 많이 듣는 조언도 음식 관련 이야기다. 특히 한약과 관련된 이야기들. 몸을 따뜻하게 해 주어 여성 건강에 도움이 되는 한약을 먹어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남성 활력에 좋은 즙이나 영양제 소개도 많았다. 그 외에도 추어탕, 오리고기, 생선, 호두, 아보카도, 키위, 석류, 두유 등등 일상적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들도 자주 추천받는다. 이런저런 정보들을 종합해 보면 결론은 '고단백 저탄수화물'로 이루어진 식단이다. 여기에 순환을 돕는 차나 포도즙, 마늘즙, 양파즙 같은 것이 추가된다.


조언에 따라 음식을 잘 챙겨 먹고 있는데, 이리도 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뭘까.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임신에 좋은 음식'들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특히나 결혼 직후부터 친정엄마가 꾸준히 보내주시는 추어탕은 나의 패이보릿 푸드다. 가만 생각해보면 미꾸라지탕이라 징그러울 수도 있겠지만, 시래기가 듬뿍 들어 있는 탕을 보고 있으면 먹기도 전에 입에 침이 고인다. 담백하면서도 고소한 맛에 밥 한 그릇은 뚝딱이다. 먹을 때만큼은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그저 맛있게 먹는다. 또 보내줄까? 하면 신나서 네~보내주세요~ 한다. 엄마.. 미안해요..


아보카도도 마찬가지. 살짝 비린맛 때문에 못 먹겠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너무 맛있다. 완숙의 까만 아보카도는 마트에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칼로 쓱 칼집을 낸 뒤 살짝 뒤틀어 반토막을 낸 후, 칼 아랫부분으로 씨를 팍 때려 꽂으면 쉽게 씨를 분리할 수 있다. 그냥 과일처럼 먹어도 괜찮고, 식빵이나 샐러드에 곁들여도 맛있다. 아보카도만큼 엽산 많기로 유명한 키위 역시 참 좋아한다. 


오리고기, 생선, 해산물 등도 임신에 좋은 음식으로 불리는데, 다행히 붉은 고기 못지않게 이쪽 단백질도 즐기는 편이다. '고기가 좋아, 해산물이 좋아?'라고 물었을 때, 조금이라도 망설이면 해산물을 좋아하는 거라고 했다. 그만큼 붉은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호오가 분명하다. 나도 고기를 좋아는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라서 충분히 해산물로 대체할 수 있다. 문득, 해산물 뷔페에 가고 싶어진다.


임신에 좋다는 한약도 몇 달에 걸쳐 여러 번 먹어보았다. 서울뿐 아니라 경상도 지역에서 유명하다는 한약방을 찾아가 지어오기도 했다. 한약방 냄새를 좋아해서 익모초처럼 쓴맛이 많이 들어간 한약도 잘 챙겨 먹었다. 확실히 몸이 뜨끈해지는 효과를 보기는 했다. 생리 주기를 잠시 되찾기도 했고. 하지만 아쉽게도 임신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냥 내가 한약을 잘 먹는다는 사실만 깨달았을 뿐이다.


포도즙, 마늘즙, 양파즙은 항시 냉장고에 구비되어 있다. 두유도 마찬가지. 한 가지 즙을 장기 복용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해서 돌아가며 먹고 있다. 즙 종류도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엽산과 비타미 B, C, D, E, 오메가 3까지 영양제도 종류별로 구비되어 있어 아침마다 손바닥에 가득 올려놓고 한 번에 입에 탁 털어 넣는다. 최근에 먹기 시작한 당귀차도 입맛에 맞는다. 이 정도면 임신을 위해 준비된 식성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혹시 너무 챙겨 먹어서 그런 걸까.


아니다. 그렇지는 않을 거다. 그저 고민이 고민을 부르는 것뿐이다. 


특정 음식을 먹어서 아이가 생겼다면 난임이라는 단어가 생기지도 않았을 테다. 특정 음식을 너무 먹어서 잘못되는 일도 흔한 일은 아니다. 몸이 불편하면 가장 먼저 찾아보는 것이 OO에 좋은 음식, OO에 나쁜 음식 같은 검색어다. 그만큼 음식은 우리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음식만으로 병을 고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알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막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작은 확률에 기대어 좋다는 음식을 찾아 먹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잘 먹는 것과 운동, 좋은 생활습관을 유지하는 일이라 자꾸 더 집착하게 되고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 그냥 몸에 좋고 맛있는 음식들을 정성껏 지어 먹고 건강하게 하루하루를 지내는 것이 정답이겠지만, 이왕이면 좋다는 음식을 챙기는 것이 나쁘진 않으니까. 식성에도 맞고. 하지만 문득, 사실은 나의 불안이 내 식성마저 좌우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집착하고 있던 건 아닐까 싶다.


'다이어트에는 닭가슴살, 난임에는 추어탕'은 캠페인 문구 같은 말이다. 닭가슴살 먹는다고 다 살이 빠지지는 않듯이 추어탕 먹는다고 다 임신하는 건 아니다. '임신에 좋은 음식'이란 임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영양소를 담고 있으니 먹으면 좋다 정도일 거다. 챙겨 먹되 집착하지는 말기. 뭘 먹어야 임신이 되는지 고민할 시간에 어떻게 더 맛있게 먹을까 생각하는 편이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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