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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돌 Apr 10. 2020

방송에 비치는 난임부부 #2

아이 낳기를 포기한 연예인 부부를 보며

삶의 갈래는 여러 가지다. 정형화된 길을 걷지 않으면 손가락질받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고 믿고 싶다. 심진화, 김원효 커플의 시험관 시술 과정을 방송한 채널A <아빠 본색>이 '아빠'에 초점을 두고 일반적인 가정의 이야기에 집중했다면 MBN <모던 패밀리>는 말 그대로 다양한 삶의 방식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관찰 예능으로 풀어낸 프로그램이다. 연예인 부부 미나와 필립은 17살이라는 평범치 않은 나이 차이로 주목을 받으며 방송에 등장했다. 그리고 1년 가까이 방송에 출연하며 부부애를 과시하고 있다.




아내인 미나의 나이는 40대 후반으로 임신 준비와 관련한 에피소드를 몇 차례 방영한 적이 있다. 결혼 3년 차인 두 사람은 난자 냉동과 시험관 시술을 진행했지만 실패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양가 어머님들과 함께 한 에피소드에서는 아내 미나가 더 건강해지면 임신이 가능할 수 있다며 몸에 좋은 음식들을 챙겨 먹이는 장면도 나왔다. 다산을 한 선배에게 노하우를 전수받기도 하고, 기운을 얻기도 하며 희망찬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특히 아이를 원하는 미나의 모습이 자주 비쳤다.

하지만 최근 방송에서는 난자의 상태와 자궁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시험관 시술 자체도 어렵다는 병원의 진단을 받았다고 전했다. 자궁선근증이 있어 임신이 되더라도 유지가 힘들 수 있다는 말에 남편 필립은 미나보다 조금 더 일찍 마음을 내려놓았다고 한다. 내내 힘들어할 아내를 위해서 그만두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것이다. 미나의 경우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 본 것으로 만족하겠다고 말했다. 수정 자체가 어렵다는 말에 이제는 포기하게 됐다고. 남편에 이어 아내도 더이상 시술을 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함께 맥주를 마셨다는 부부. 이제 둘만의 삶을 행복하게 꾸려나가겠다는 결심을 방송을 통해 밝혔다. 누구보다 젊고 건강해 보이는 부부가 하나씩 마음을 내려놓는 과정을 지켜보기가 쉽지는 않았다. 

식사자리에서 시험관 결과를 들은 미나의 부모님은 적잖이 놀란 듯했다. 미나의 시어머니가 시험관 시술을 앞둔 미나에게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딱 낳았으면 좋겠다고 했을 때, 너무 부담 주지 말라고 강하게 이야기하던 엄마였지만, 그래도 임신을 위한 노력을 이제 내려놓겠다는 딸의 말에는 많이 놀라신 모양이다. <모던 패밀리>는 다양한 가족들의 관계를 다루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가족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난임으로 힘들어하는 부부를 바라보는 친정과 시댁의 차이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차이와 속상함보다 가장 가슴에 남은 것은 미나의 엄마였다. 손주를 보고 못 보고의 문제가 아니라, 자식의 아픔이 더 큰 아픔으로 다가오는 부모의 마음이 느껴져 나도 심장이 툭 하고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강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여린 내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같은 날 방송에는 필립의 누나 수지의 임신과 유산 소식이 함께 전해졌다. 5주간의 임신을 수술로 마무리한 필립의 누나는 임신이 되었을 때의 기쁨과 유산 후의 아픔을 짧은 시간에 보여주었다. 고도비만을 관리하기 위해 20kg을 감량했을 때 찾아온 아이라 더 감격스러웠을 텐데.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나 역시 결혼 후 7년이 지나는 사이 웬만한 친구나 친척들은 다 아이를 키우고 있다. 그중에는 수지처럼 안타까운 일이 생기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할지 모르는 경험도 해보았고. 지금은 어느 정도 초연해졌고, 축하와 위로를 건넬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막 모든 것을 내려놓은 미나에게 시누이의 임신과 유산 소식은 적잖은 충격이지 않았을까 싶다. 




작년, 난임 정책과 관련한 국민토론회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인터넷으로 알던 난임부부들을 실제로 만나, 나보다 훨씬 힘든 상황의 사람들의 사연을 들으며 함께 눈물 흘린 기억이 있다. 특히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정부의 지원으로 시술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힘들게 희망의 끈을 잡고 있다고 울면서 발표하는 한 분의 떨리는 목소리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 힘든 시술을 10번 넘게 하고도 포기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그분의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었다. 절박함. 아직 그 정도의 노력과 경험이 없는 나에게는 정말 큰 충격이었다. 최선을 다해도 안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했던 시간이었다. 아직도 그 두려움에 시험관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 절박함을 넘어, 내가 내려놓는 것과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선고받는 것은 또 다른 일일 거다. 아직 40살이 되지 않았고, 인공수정의 경험밖에 없는 나에게 미나 필립 부부의 모습은 나의 미래일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병원에서 수정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미나의 가슴이 얼마나 무너졌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만약 내가 모든 것을 정리하고 남편과 둘만의 삶을 살겠다고 말하면 엄마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다. 계속해서 들려올 주변의 임신 소식에 지금보다 더 초연해질 수 있을지... 자신할 수가 없다. 나이 차이라는 핸디캡이 있지만, 발전된 의료기술과 의지를 믿고 희망으로 도전하던 부부의 새로운 결심은 다소 잔잔해지고 있던 나의 마음에 작은 파동을 일으켰다. 




난임과 입양 그리고 딩크. 출산과 관련해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어들이 자주 머릿속을 맴돌지만, 선택은 결국 부부의 몫이다. 자꾸자꾸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서로를 응원하는 것이 최선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우리는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갈 권리와 의무가 있다. 마음속의 파동에 잡아먹히지 않도록 정성껏 하루를 가꾸다 보면 예상치 못한 기쁨이 찾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미나 필립 부부도, 주변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그저 행복한 부부로 살아가기를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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