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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돌 Apr 14. 2020

40대 시작에서 부모가 된 부부

마흔 난임 부부의 고군분투 그림일기 - 오 베이비 리뷰

에세이가 넘쳐나는 출판 시장에 난임 소재의 책은 많지 않다. 왜 그럴까. 대부분은 임신 잘 되는 법 같은 의료서적으로 분류돼서일까. 병으로 보기에도 라이프의 단면으로 보기에도 애매한 상황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굳이 돌이켜보고 싶지 않은 시절이라 그런가. 그나마 읽어 본 책들은 대부분 '축 임신'이라는 해피엔딩을 담고 있다. 결말이 없는 현재 진행형 고통은 아무래도 출판물로서 매력이 없는 모양이다. 저출산 시대, 아이 없는 삶이 주목받는 이 시대에 난임은 이해하기 어렵고 굳이 공감할 이유도 없는 건가 싶기도 하고.




하지만 분명 난임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한 번씩 만나게 되는 난임 관련 책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된다. '마흔 난임 부부의 고군분투 그림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오 베이비>는 말 그대로 부부가 함께 등장하는 난임 극복 그림일기다. 담백하면서도 디테일이 살아있는 그림체로 부부의 허니문부터 아이를 갖는 순간까지의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 책이다. 가끔은 글로 된 설명보다 하나의 그림이나 장면이 더 큰 감정을 전달할 때가 있다. <오 베이비>는 글 못지않은 그림의 매력을 잔뜩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서점에서 찾은 <오 베이비>는 노란색의 예쁜 표지로 쌓여있었지만, 유난히 손때가 많이 묻어 있었다. 꽤 많은 사람이 책을 훑은 티가 났다. 거뭇한 손때에 조금은 색이 바랜 책. 평소라면 당연히 새 책을 요청하거나 인터넷으로 주문했겠지만, 왠지 이 책은 내가 구매하고 싶었다. 헌책방도 아닌데 이런 책을 산 건 처음이었다. 어쩐지 나처럼 검색으로 이 책을 찾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 서서 한 번에 다 읽고는 조용히 내려놓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러고 나서 인터넷으로 책을 샀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애틋한 감정이 이 한 권에 모여있을 것 같아 나도 모르게 헌책이 된 새 책을 집어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삼십 대 후반에 결혼을 하고 바로 아이를 가지려고 했던 부부는 어쩐지 임신이 어려워 병원을 찾았고, 시술을 권유받는다. 일반적인 난임부부들이 가장 먼저 갖게 되는 '이게 무슨 상황이지?'가 물음표 하나로 설명되고 있다. 함께 병원을 찾고, 의사의 이야기를 듣고, 정신없이 병원 스케줄을 쫓다 보면 어느새 시술 날이 다가온다. 자세한 얼굴 표정도 없고 말풍선에 글이 많지도 않은데 정확하게 이해되는 책 속의 상황들. 긴장되고 떨리는 마음으로 '굴욕 의자'에 앉던 날 나도 그림 속 아내처럼 치맛자락을 꽉 쥐었다. 책은 시종일관 담담한 표현으로 시술 과정을 전한다. 잠시 잊고 있던 그날들이 그림을 통해 머릿속에서 리와인드 됐다.

알람에 맞춰 자가주사를 놓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배 주사는 직접 놓기 전까지 공포감이 크다. 안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체로는. 병이 있는 것도 아닌데 주사를 놓는다는 것이 어딘가 억울하기도 하고 자기 연민이 들기도 하고. 복잡한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지라 막상 닥치면 다 하게 되어 있다. 처음 주사를 놓을 때는 손이 달달 떨려서 멍자국이 크게 났지만, 그 다음번엔 제법 프로페셔널하게 찌르고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적응이 되지 않는 일은 이런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 순간들이다. 병원에서 전화가 오고 간호사의 낮은 목소리 톤을 들을 때. 피검사 수치가 낮아지고 있으니 병원으로 오라는 통보를 받을 때. 자궁외임신이 아닌 자연유산이라 다행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 그런 순간에 비하며 희망을 가지고 배에 주사를 놓는 순간이 훨씬 낫다.

시술이 진행되는 과정 묘사도 좋았지만, 가장 공감했던 것은 혼자만의 시간 속 아내의 생각이었다. 마흔 전에 엄마가 되는 건 불가능하다는 말은 나도 자주 하던 이야기다. 어쩐지 30대에 엄마가 되는 것이 정상이라는 생각에 항상 조바심이 났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다. 이럴 시간에 더 건강해지자는 생각으로 40이라는 나이가 주는 불안감을 눌러왔다. 자책해도 나아질 것 없음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검은색 프레임에 휩싸여있던 아내는 점점 그러데이션 되는 색을 그리며 고민 속에서 빠져나온다. 이런 표현력에 놀라고, 생각의 흐름에 공감하며 천천히 책장을 넘겼다. 어쩐지 바로 옆에서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난임 치료 과정을 '실패하면 리셋되는 게임'에 비유하고, 성공하지 못한 시간을 '뫼비우스의 띠에 갇힌 것 같다'고 표현한 것도 크게 공감됐다. 이사 올 때 갓난아기였던 옆집 아이는 이제 복도를 뛰어다닌다. 친구나 친척의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 과정을 한 번만 겪어도 '아이 없이 둘이 사는 삶'을 자연스럽게 생각해 보게 될 거다. 다른 사람들과 내 삶을 비교하다 보면 더더욱. 하지만 저자의 말대로 '출산도 선택'이다. 후회 없는 선택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그만 쉬라고 말하는 것은 응원이 아니다. 그저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 가장 힘이 되는 일일 것이다.




부부는 마지막 시험관 시술에 성공하고 예쁜 아이를 출산했다. 그리고 이 책을 출간했다. 30대 후반에 결혼해 40대 초반에 부모가 된 부부는 서로를 보듬으며 가정을 지켰고 이제 셋이 함께하는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 심플한 그림체, 공감 가는 에피소드와 감성적인 멘트. 이 책을 칭찬할 말은 많지만, 솔직한 고민과 그간의 노력, 행복한 결말까지를 하나로 묶어 전해 준 점에 가장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서점에서 이 책을 훑었을 많은 사람처럼 사실 나 역시 그 자리에 서서 한 번에 모두 읽었다. 그림과 짧은 글들을 보며 머릿속에 상상되는 장면과 그때의 기분이 떠올라 여러 번 울컥했다. 집으로 돌아와 꼼꼼히 읽으며 더 큰 공감을 했지만, 그냥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를 받았다. 같은 고민을 하고 있고, 지금 마음의 위로가 필요한 분이라면 한 번 읽어보길 권하고 싶은 책이다.


40대의 시작에 부모가 된 부부, 이쁜 아가를 얻어서 참 다행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공유해 주어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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