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돌 Apr 17. 2020

남의 집 애들은 빨리도 자란다

나는 아직 임신도 못 했는데

아이를 기다리는 하루하루가 문득 버거운 건 주변 소식이 전해져 올 때다.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에 가끔 툭 하고 던져지는 소식들. 보통은 결혼식을 기점으로 친구관계가 정리된다고 하는데, 그 기점이 임신인 경우도 꽤 있다. 결혼을 해도 아이가 없으면 아가씨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기에 공유할 것이 많지만, 아이가 생기면 주변 환경이 달라지고 대화 주제도 180도 바뀌어서 쉽게 섞이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제는 '임신' 소식에 더 이상 놀라거나 마음이 쨍해지지 않지만, 8년 차가 되니 새로운 소식이 나를 버겁게 만든다. 예를 들면 '학부모'가 된 내 친구 소식 같은 것들 말이다. 


남의 집 애들은 금방금방 자란다고 하더니 그 말이 딱 맞다. '임신 축하해~~'하며 호들갑을 떨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초등학생이라니. 자라는 모습을 눈으로 보며 직접 챙긴 조카도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땐 꽤나 묘한 기분이었다. 아이 엄마와 학부모는 왠지 천지차이의 느낌이다. 이제 정말 어른이 된 친구들에 비해 나는 너무도 철없는 아이같이 느껴진다. 몸은 좀 편해도 마음은 더 힘들어지고, 점점 빨라지는 요즘 아이들의 사춘기 때문에 벌써부터 걱정이라는 친구의 이야기는 내게 먼 나라 얘기로 들린다.




대한민국에서 평균에 미치지 못하고 뒤떨어진다는 건 제법 큰 스트레스다. 튀지 않고 남들처럼 사는 일이 오히려 목표가 될 정도로 중간층에 들어가야 안정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늦어버린 일에 후회나 아쉬움을 가져봤자 득 될 일이 없음에도 뒤돌아보게 되는 건, 내가 그 중간층에 끼지 못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이러다가 영영 중간층에서 멀어지면 다시는 그 안정감을 누릴 수 없게 될까 봐 두렵다.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사는 것에 많이 적응됐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중간층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쉽게 떨치기가 어렵다.


서른다섯 살이 넘으면 노산으로 취급된다는 사실을 알고 만 나이를 계산하기 시작했었다. 아직은 아니야, 아직은 괜찮아를 되새기면서 2년을 보냈다. 만으로 따져도 서른다섯이 넘었을 때는 마흔 전엔 괜찮아를 마음에 품고 살았다. 40대에 부모가 되는 사람들도 많다는데 뭐, 하는 생각으로 살다보니 어느덧 서른아홉이 됐다. 시험관을 미뤄왔던 것도 같은 맥락 일터다. 어떻게든 중간층이고 싶던 마음이 사실은 그저 자기 위안이었음을 깨달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학부모가 된 친구들을 보면 이제 진짜 늦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실낱같은 기대감마저 잃어버리고, 놓쳐버린 풍선을 멍하니 쳐다보는 듯한 망연자실함을 느낀다. 주로는 별일 없이 하루를 보내지만, 오늘처럼 불안감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는 나도 어쩔 수가 없다. 그냥 내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두어야 탈이 나지 않는다는 걸 터득했기에 이렇게 가쁜 숨으로 글을 써 내려갈 뿐이다. 별 수 없지 뭐,, 하다가도 둥둥 떠가는 풍선을 어떻게든 다시 잡고 싶어 지고 마음에 답답증이 도진다. '임신'을 한 친구와 '학부모'가 된 친구는 이렇게 또 다른 무게로 내 가슴을 쳐댄다.

이미 이 평범함은 놓쳤으니, 이제 그만 미련을 놓자. 원래 남의 집 애들은 빨리 크는 법이라고 했다. 그 아이를 키우는 동안 들였던 친구의 노력을 폄하하지 말고, 내게 남아있는 시간에 집중하자. 게다가 남의 집 아니고 친구 집 애들이니까. 잠시의 불안감이 지나면 또 예쁜 그 아이들을 보러 친구 집에 놀러 갈 수 있겠지. 아이들이 좋아하는 선물을 잔뜩 사들고 가 '너네 어릴 때 이모가 까까도 많이 사줬다~' 하면서. 평범하지 않다고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니다.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지금을 행복하게 가꾸다 보면 함께 행복해질 시간도 올 것을 안다. 그저 아이가 건강하고 씩씩하게 와 주었으면 한다. 초등학생 되면 학용품 사줄 이모 여럿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매거진의 이전글 40대 시작에서 부모가 된 부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